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봉예랑 황귀경(黃貴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희성(黃希星)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황사우(黃士祐)이며, 어머니는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성균관에서 추천하여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가 되고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에 이르렀다.
1569년(선조 2) 52세로 알성 문과에 급제,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에 제수되었다, 호조·형조·공조의 정랑과 좌랑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588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고, 소명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곡을 군량으로 바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1594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또한, 향병대장(鄕兵大將)으로 추대되어 마을사람들에게 의기를 고취하고 장정·군량 등을 모집하여 출전하였다. 초서(草書)를 잘 썼다. 저서로 『송간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