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년(태종 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 흥덕현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1621년(광해군 13)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건물이 퇴락하여 1675년(숙종 1)에 새로이 증축하였고, 1775년(영조 51) 현감 조신협(曺信協)이 유림과 협력하여 사마재(司馬齋)와 양사재(養士齋)를 창건하였으며, 1850년(철종 1) 중수하였다.
1838년(헌종 4) · 1853년(철종 4) · 1867년(고종 4) · 1872년 · 1885년에 중수하고, 1922년 · 1926년 · 1927년 · 1939년에 보수하였으며, 1947년 · 1949년 · 1951년 · 1955년 · 1958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4칸의 사마재, 4칸의 양사재, 헌관실,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에는 문묘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고 나서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명륜당(明倫堂)이 위치해 있고 그 좌우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위치한다. 명륜당 뒤쪽의 중수기념비가 서 있는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있고 그 밖에 별도로 사마재와 고직사, 홍관실 등이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소장 전적으로는 판본 117종 206책, 사본 14종 16책이 있으며, 이 중 『교전답총기(校田畓摠記)』 · 『교궁총록(校宮摠錄)』 · 『창의록(倡義錄)』 · 『수목계안(修睦稧案)』 · 『양사재흥학계안(養士齋興學契案)』 · 『청금록(靑衿錄)』 · 『향안(鄕案)』 · 『향교절목총록(鄕校節目摠錄)』 · 『향적(鄕籍)』 등은 이 고장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