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봉천자문 ()

언어·문자
문헌
중국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에 한글로 석과 음을 달아 1583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학습서.
내용 요약

『석봉천자문』은 중국의 『천자문』에 한글로 석음을 달아 1583년에 간행한 교재이다. 명필 석봉한호가 글씨를 썼으며 목판본 불분권 1책이다. 『천자문』에 새김과 독음을 단 책은 한문 입문서이자 글씨 교본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명필과 도학자가 천자문을 썼는데, 이 책이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의 원간본은 영주의 박찬성 씨가 소장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동양학총서』 제3집으로 영인하였다. 현재 여러 중간본과 이들의 복각본, 기타 방각본이 다수 전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한자음과 새김은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중국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에 한글로 석과 음을 달아 1583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학습서.
개설

한자 학습을 위해 간행된 『천자문』주1 250구(句)를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조선선조의 명으로 당대의 명필 석봉(石峯)한호(韓濩)가 글씨를 써 1583년(선조 16) 중앙에서 간행한 것이 『석봉천자문』이다.

편찬/발간 경위

『천자문』은 6세기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가 지은 책이다. 국내에는 백제 때 처음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나 우리나라 기록상으로는 고려 충목왕(1344∼1348)이 천자문을 배웠다고 하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에는 이 책에 ‘天 하ᄂᆞᆯ 텬’과 같이 새김과 독음을 달아 읽게 되었고, 이 석음(釋音)을 단 책이 간행되어 한자 입문서로 널리 이용되었다.

『천자문』은 한자의 자형, 독음 및 의미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교양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국의 고사를 배우고 글씨를 익히는 교본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래서 안평대군(安平大君), 박팽년(朴彭年),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 당대의 명필이자 저명한 주2들이 자신의 서체로 『천자문』을 써서 남겼다. 그 중 석봉한호가 1583년 쓴 『석봉천자문』이 국내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책이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불분권 1책. 『석봉천자문』의 원간본은 영주의 박찬성(朴贊成) 씨가 소장하고 있는데 ‘만력십일년 칠월일 내사 사간원 대사간 박승임(萬曆十一年 七月日 內賜 司諫院 大司諫 朴承任)’이라는 내사기(內賜記)가 있는 주3이다.

이 『석봉천자문』은 이후 간행된 많은 『천자문』들의 저본이 되어 여러 종류의 주4이 전한다. 임진왜란 전후의 간본으로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두 종류의 책이 전한다.

이 중 한 책(통칭 乙本)은 내사기가 있는 1583년본의 주5이고, 다른 한 책(통칭 甲本)은 비슷한 시기 다른 간본의 복각본으로 판단된다. 이들 책에 나타나는 언어적 사실은 서로 신형과 구형을 겸하고 있는데, ‘갑본’은 내사기가 있는 원간본에 수정을 가한 성격을 보인다.

이 외에도 김동욱 구장본인 1601년판(선조 34, 신축 중간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일본 궁내청 서릉부,내각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는 1650년판(효종 1, 경인 중보본),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691년판(숙종 17, 신미 중간본), 서울대 규장각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는 1814년판(순조 14, 갑술 중간본) 등 여러 중간본과 이들의 복각본, 기타 주6이 다수 현전하고 있다.

그리고 1752년 홍성원(洪聖源)이 편찬한 『주해천자문』역시 근대 국어적인 모습을 많이 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석봉천자문』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석봉천자문』을 근간으로 편찬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중 중간본으로 가장 널리 유포된 책은 ‘갑술중간(甲戌重刊)’의 간기를 가진 것으로 일제시대까지 책판(冊板)이 남아 있어 1938년에 경성제국대학에서 주7된 바도 있다.

『석봉천자문』은 『광주천자문』과 함께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동양학총서(東洋學叢書)』 제3집으로 영인하였는데 『석봉천자문』은 1982년에 『서지학』7호에도 영인된 바 있다.

내용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 언재호야(焉哉乎也)라는 허사로 끝나는 사자성구 2백 50구, 한자 1000 자로 되어 있다. 당나라 이후 급격히 보급되어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씌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습자 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주8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 주9주10의 두 체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본으로 1109년에 새긴 주11이 전하고 있다.

송대(宋代) 이후 이용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천자문』의 순서를 이용하여 문서 등의 번호를 붙이는 습관도 생기고 또 『속천자문』이 나오는가 하면 전연 딴 글자를 뽑아 『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이라 이름 붙인 종류도 많이 나왔다.

『천자문』은 한문의 입문서로서 초보자에게는 필수의 교과서로 중용(重用)되었으며 선조 때의 명필 석봉(石峯)한호(韓濩)가 쓴 바로 이 『석봉천자문』이 제일 유명하다.

『석봉천자문』과 비견되는 다른 계열로 『광주천자문』이 있다. 일본에 현전하는 『광주천자문』은 1575년(선조 8)에 간행되었는데, 『석봉천자문』과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인다.

『석봉천자문』의 ‘여모정렬(女慕貞烈)’로 된 구절의 ‘열(烈)’자가 『광주천자문』에서는 ‘결(潔)’로 나타나는 본문상의 큰 차이가 있다. 『석봉천자문』은 주12주13에 대하여 각각 한자의 왼쪽과 오른쪽에 주14을 쳐서 구분하였는데 『광주천자문』은 이러한 성조 구분 표시가 없다.

그리고 『석봉천자문』에는 ‘ㅿ’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반면 주15 ‘ㆁ’은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ㅿ’이 보이고 ‘ㆁ’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광주천자문』과 다른 점이다.

의의와 평가

4언 고시 250구로 된 『석봉천자문』은 기초 실용 한자의 한계를 넘어 고대 중국의 고사, 국명, 인명, 지명, 윤리, 물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갖가지 이본이 존재하지만,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석봉천자문』은 단순한 기초 문자 교육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4자 1구를 하나하나 학습하고 체계적으로 익힘으로써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언행을 교육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다.

『석봉천자문』은 한자교육의 기본서, 한문 글씨의 교본으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수록된 한자음과 새김은 국어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원간본과 여러 중간본 및 『광주천자문』, 『주해천자문』등을 비교해 보면, 새김이 역사적으로 주16되어온 경로를 더듬어볼 수 있다.

참고문헌

『새국어생활』(국립국어원, 2009)
『규장각소장어문학자료 어학편 해설』(서울대학교 규장각, 2007)
「『천자문』새김 어휘 연구-16세기 간행 천자문의 명사류를 중심으로-」(최지훈,『한국어 의미학』9, 2001)
「석봉천자문에 대하여」(이기문,『국어국문학』55·56·57, 1997)
「천자문의 계통」(안병희,『정신문화』12, 1982)
「내각문고 소장 석봉천자문에 대하여」(안병희,『서지학』6, 1974)
「석봉천자문」(남광우,『문경』5, 1958)
「천자문」(이병기, 디지털한글박물관)
주석
주1

한 구(句)가 넉 자로 이루어진 한시. 우리말샘

주2

유교 도덕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 우리말샘

주3

관아에서 간행한 책 가운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책. 우리말샘

주4

중간(重刊)한 판본이나 책. 우리말샘

주5

복각한 판으로 박아 낸 인쇄물. 우리말샘

주6

조선 후기에, 민간의 출판업자가 출판한 책. 주로 목판으로 만든다. 우리말샘

주7

책판(冊板)에 박아 냄. 우리말샘

주8

중국 진(晉)나라의 서예가(307~365). 자는 일소(逸少).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냈으며 해서ㆍ행서ㆍ초서의 3체를 예술적 완성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서성(書聖)이라고 불린다. 작품에 〈난정서(蘭亭序)〉, 〈상란첩(喪亂帖)〉, 〈황정경(黃庭經)〉, 〈악의론(樂毅論)〉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예전에, 우리글을 언문(諺文)이라고 낮춘 데에 상대하여 진짜 글이라는 뜻으로 ‘한문’을 높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10

십체(十體)의 하나. 필획을 가장 흘려 쓴 서체로서 획의 생략과 연결이 심하다. 전서(篆書), 예서(隷書)를 간략히 한 것으로 행서(行書)를 더 풀어 점획을 줄여 흘려 쓴 것인데, 초고(草稿) 따위에 쓴다. 우리말샘

주11

돌에 글씨 따위를 새김. 또는 그런 조각품. 우리말샘

주12

중세 국어 사성(四聲)의 하나. 높은 소리로, 글자에 표시할 때 왼쪽에 점 하나를 찍는다. 우리말샘

주13

중세 국어 사성(四聲)의 하나.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로, 글자에 표시할 때 왼쪽에 점 두 개를 찍는다. 우리말샘

주14

글을 맺는 끝에 찍는 고리 형상의 둥근 점. 우리말샘

주15

음절의 구성에서 마지막 소리인 자음. ‘감’, ‘공’에서 ‘ㅁ’, ‘ㅇ’ 따위이다. 우리말샘

주16

제도나 관습 따위를 새롭게 고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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