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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촉성중앙협의회(獨立促成中央協議會)

    현대사단체

     1945년 10월 23일 좌·우익을 망라한 민족통일기관 형성을 위해 조직된 정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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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10월 23일 좌·우익을 망라한 민족통일기관 형성을 위해 조직된 정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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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하 독촉)는 1945년 10월 23일 조선호텔에서 각 정당 대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다. 독촉의 회장으로 추대된 이승만(李承晩)은 독촉이 좌·우익을 망라하는 남한 내 유일한 정치체가 되어 자신이 민족통일전선의 최고지도자로 부각되기를 의도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 지지를 내세우면서도 임정이 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임정 귀국 전까지 독촉의 조직을 완성하고 좌익세력을 독촉에 포섭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승만은 1945년 11월 23일 임정 제1진의 서울 도착을 계기로 독촉의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을 서둘렀다. 그러나 1945년 11월 28일부터 시도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은 전형위원 선출 방식에서 갈등을 드러냈다. 여운형(呂運亨)은 전형위원 7명 중 5명이 한국민주당원이라면서 퇴장했다. 조선공산당 측 인사는 한 명도 없어 인민당과 조선공산당은 전형위원회에 불참했다. 임정 세력은 독자적인 활로를 꾀했다.
    이승만은 1945년 12월 13일 자신이 지명한 전형위원들을 소집하여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전형위원회를 진행했지만, 좌파세력은 독촉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임정 세력 역시 임정 인사들을 독촉에 참여시킨 후 임정을 해산한다는 이승만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특별정치위원회라는 독자적인 조직화 방안을 모색했다.
    탁치정국 하인 1946년 1월 15일 독촉은 제2회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임정 세력 중심의 비상정치회의를 흡수한다고 발표했다. 독촉을 주축으로 비상정치회의를 흡수해서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이었다. 1946년 1월 18일 독촉은 비상국민회의로 개칭하고 이승만에게 최고위원 선출권을 일임했다. 반탁투쟁을 반소·반공과 연결시키면서 임정 세력을 흡수하고자 한 것이었다. 독촉은 좌·우익 망라, 임정 포섭 등 처음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이승만을 부각시킨다는 프로그램에는 부응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0년)
    정태헌(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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