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숙종(肅宗)이 병자호란 때의 명신이던 백헌(百軒) 이경석(李景奭)의 시문을 모은 『백헌집』을 살펴본 뒤 느낀 바를 칠언율시로 쓴 필적이다. 이 어제시의 제목은 「관백헌집유감부시(觀白軒集有感賦詩)」로 『열성어제(列聖御製)』 숙종대왕 편에 수록되어 있다. 어제시에서 숙종은 여러 해 찾던 중 이제야 보게 되었는데 온종일 보아도 피곤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경석이 임금에 대한 충성스런 사랑과 나라를 지키려는 성심의 마음을 가졌기에, 현종께서 궤장(几杖: 안석과 지팡이)을 내려 융숭한 은혜를 베푸셨고 효종께서도 감귤을 내려 총애하셨으며, 그 덕이 삼공(三公)에 부합할 만한 어진 재상으로서 송나라 문정공(文靖公) 이항(李沆)에 견줄 만하다고 찬미하였다.
『백헌집』이 이경석의 자손과 문하생의 노고로 1700년(숙종 26)에 교서관(校書館)에서 원집 53권, 부록 3권, 모두 18책으로 간행되었던 것을 보면, 이 숙종어필은 1700년경에 쓴 것으로 짐작된다. 채색 꽃무늬가 찍힌 상급의 어찰지(御札紙)에 쓴 것으로 이경석의 후손에게 내려져 “숙묘어제보묵(肅廟御製寶墨)”이라고 전서로 음각한 나무상자에 보관되어 왔다.
문충공(文忠公) 이경석은 인조·효종·현종 3대에 걸쳐 안팎으로 얽혔던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했던 명재상이다. 그는 65세 때인 1659년에 영돈령부사로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고 74세 때인 1668년(현종 9) 11월 27일에는 조선시대 신하로서는 매우 드물게 이원익(李元翼) 이후 50년 만에 임금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는 영예를 얻었다. 이 숙종어필 칠언시는 당시 이경석이 받았던 궤장과 잔치장면 등을 묘사한 『사궤장연회도첩(賜几杖宴會圖帖)』과 더불어 군신(君臣) 사이의 깊은 의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이 숙종어필은 유연하고 단아한 필치를 보여준다. 숙종은 조선 초 이래 유행되어 온 원나라 조맹부(趙盟頫, 1254~1322)의 송설체(松雪體)를 따랐다. 송설체는 자형이 미려하고 필획이 완곡한 것이 특징인데, 숙종은 부왕 현종(顯宗)의 어필에서 영향을 받아 이를 더욱 부드럽게 구사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송설체 어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