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지도 ()

함경도 영흥(조선지도 제1첩)
함경도 영흥(조선지도 제1첩)
인문지리
문헌
국가유산
조선후기 전라도를 제외한 7개도의 군현을 방안 위에 그린 지도집. 군현지도책.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조선지도(朝鮮地圖)
분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08년 12월 22일 지정)
소재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동 (신림동,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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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전라도를 제외한 7개도의 군현을 방안 위에 그린 지도집. 군현지도책.
개설

조선 후기 군현지도책 중 20리 방안위에 그려진 대표적인 지도이다. 다른 군현지도와는 다르게 주기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방안의 크기는 4.2㎝의 정방형이다. 각 고을의 크기에 따라 사용된 방안 개수가 다르다. 1면에 1개 고을을 그리는 기준을 따랐기 때문에 면적이 적은 일부 고을은 한 면의 부분만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함경도 함흥, 충청도 충주, 경상도 안동의 경우와 같이 면적이 넓거나 비월지(飛越地)가 있는 고을은 두면에 연결하여 그린 경우도 있다.

2책(평안도)에는 폐사군(廢四郡) 지역이 강계와 함께 두면에 걸쳐 그려져 있으며, 강원도에는 울릉도가 1면에 그려져 있다. 군현 지도책임에도 이들 지역의 지도가 삽입된 것은 당시 이곳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경상도에 1767년(영조 43)에 산음과 안음에서 개칭된 산청과 안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1776년 충청도의 이산(尼山)이 이성(尼城)으로 개칭되었으나 이 지도에서는 이산 지명이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 평안도 곽산 읍치의 위치 표현이 1746년(영조 22)∼1768년(영조 44)사이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이 지도는 1767년∼176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사항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지도책의 한 면의 크기는 49.8×38.5㎝이다.

제1책의 함경도(23면)를 시작으로 평안도(42면)-강원도(27면)-황해도(23면)-경기도(33면)-충청도(54면)-경상도(71면)의 고을 순서로 되어 있다. 3책의 강원도와 7책의 경상도 목차 부분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이 기관에서 이용하였던 지도였음을 보여준다. 전라도와 경기도(5책)의 연천(漣川)·가평(加平)·양주(楊州)·포천(抱川)·영평(永平) 등 5개 고을의 지도가 결질되어 있다.

내용

표현 양식은 모든 군현의 지도가 동일하다. 산지는 ∧표시를 중첩하여 그리고 그 위에 청록색으로 채색하였다. 다른 군현지도에서 나타나는 산줄기의 표현은 강조되어 있지 않다. 하천은 겹선으로 표현되었으며 규모에 따라 폭을 달리하면서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였다. 바다는 하천과 동일하게 연한 청색으로 묘사되었다. 섬은 큰 섬의 경우 지명과 함께 산지 표현을 통해 이를 표현하였으며, 작은 도서(島嶼)의 경우 윤곽만을 묘사하였다.

인문 정보의 경우 부호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고을의 읍치와 감영·병영·수영, 찰방역, 진보(鎭堡), 봉수, 창고, 도로망 등을 중심으로 지리 정보가 체계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동일한 부호를 이용하였다. 읍치의 위치는 적색의 원으로 표시하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이웃 고을과 연결되는 주 도로망이 적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감영, 병영, 수영 등은 겹선의 사각형으로 표현하였고 일부 감영의 경우 청색으로 칠하고 여장(女薔) 표현도 하였다. 진보는 ‘◇’로, 찰방역은 읍치보다 작은 적색 원으로 표현하였다. 창고는 건물 모양으로, 봉수는 적색의 불꽃 모습으로 표시하였다. 인문정보에서 표현방식이 모든 고을에서 이와 같이 동일한 것은 중앙에서 일정한 원칙에 의해 편집되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조선지도는 신경준(申景濬)의 20리 방안식 지도인『열읍도』8권에 가장 근접한 지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군현별 통일성을 기하면서 편집되어 제작된 대표적인 지도이다. 편집 과정에서 도로망이 체계적으로 묘사되고, 일부 지리 정보의 경우 기호나 지명(書院, 倉, 烽)을 이용하여 부호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지도』가『팔도군현지도』,『여지도』등의 다른 방안식 지도와 유사한 것을 볼 때, 이 지도가 모사·제작되면서 지리정보의 사회 보급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조선지도』가 제작된 이후『동국지도 3』은 수정·가필이 이루어졌고, 이 내용이『해동여지도』에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해동여지도』에 삽입된「경위전도」의 내용과 일부 읍치의 위치 묘사와 수록 지명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조선지도』를 비롯한 방안식 지도는 조선 후기 대축척 지도 제작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옛 지도』(문화재청, 예맥, 2008)
「조선후기 분첩식 전국지도의 제작과『조선도』」(장상훈,『문화역사지리』 20-2, 2008)
「조선후기 방안식 군현지도의 발달 연구-『동국지도 3』을 중심으로-」(김기혁,『문화역사지리』19-1, 2007)
「조선후기 군현지도의 유형연구-동래부를 사례로-」(김기혁 외,『대한지리학회지』40-1, 2005)
「18세기 지리서·지도의 제작과 국가의 지방 지배」(양보경,『응용지리』20, 성신여대 한국지리연구소, 1997)
「대동여지도를 만들기까지」(양보경,『한국시민강좌』16,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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