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지도 ()

충청도 도지도(호서지도 제3첩)
충청도 도지도(호서지도 제3첩)
인문지리
문헌
국가유산
조선후기 충청도 전도 2매와 대축척 고을지도 68매를 6첩으로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호서지도(湖西地圖)
분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08년 12월 22일 지정)
소재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서울대학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충청도 전도 2매와 대축척 고을지도 68매를 6첩으로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
개설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2·5첩에는 1리 간격의 눈금선(方眼)을 그어 정확하게 그리려 노력한 고을지도 41매가, 3첩에는 20리 간격의 눈금선을 그은 충청도 전도 1매가 수록되어 있다. 4·6첩에는 27매의 그림식 고을지도와 충청도 전도인 호서전도(湖西全圖) 1매가 수록되어 있다.

1·2·5첩의 고을지도 위의 눈금선 간격은 모두 7mm로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표현 방식도 그림식으로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졌다. 1리 눈금선을 그어 지도를 제작한 이유는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눈금선 지도 중 가장 크고 자세하며 고을마다 통일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꽤 떨어지는 편이다. 4·6첩에 수록된 그림식 고을지도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중요한 정보가 밀집된 곳, 특별이 부각시키고 싶은 정보를 확대·강조하여 그렸다.

편찬/발간 경위

1·2·3·5첩의 정확한 편찬 연대가 적혀 있지 않은데, 해서지도(황해도), 호남지도(전라도), 영남지도(경상도), 영동지도(강원도 영동), 함경도전도(함경도) 등 ‘비변사(備邊司)’의 인장이 찍혀 있는 대축척 고을지도첩과 함께 1750년 안팎에 편찬된 것으로 연구되었다. 중앙에서 모든 고을에 1리 간격의 눈금선을 그려 정확한 지도를 제작해 올리라는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4·6첩의 그림식 지도는 최초 원본이 1720년 안팎에 제작된 그림식 고을지도책(또는 첩) 계통이다. 동일 계통의 지도책(또는 첩)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도서관,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등에 10본 안팎이 전해지는데, 이 지도첩 속의 것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연구되었다.

서지적 사항

면적에서 상당한 편차가 있는 모든 고을에 동일한 1리 눈금선 간격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지도의 크기가 다양하다. 고을의 지도 중 가장 큰 공주(公州)의 세로×가로 크기가 144.5×89cm이고, 가장 작은 석성은 47.5×58cm이며, 3첩의 충청도도지도(忠靑道都地圖)는 74×128cm다. 4·6첩의 그림식 고을지도는 고을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세로×가로 82×70cm의 종이 위에 그렸으며, 호서전도만 70×104cm다. 지도의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책으로 묶여있지 않으며, 36.4×22.6cm의 첩 표지에 맞게 접어서 보관하였다. ‘비변사(備邊司)’의 인장이 3첩의 충청도 전도인 충청도도지도(忠靑道都地圖)와 5첩의 문의(文義) 지도 뒷부분에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하며 사용한 지도임을 알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로 명명되고 있다. 동일 기관 소장의 충청좌도각읍지도(忠淸左道各邑地圖)에 수록된 13장의 고을지도도 동일한 형식으로 그려져 있는데, 두 지도첩의 고을을 합하면 충청도 전체 고을 수인 54개가 된다.

내용

1·2·5첩의 고을지도에는 정확하고 자세한 고을지도를 확보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에서는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니다. 조선에서 확보한 거리 정보는 대부분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 실제로 가는 길 위의 거리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평면의 직선 정보로 전환할 수 있는 전문 과정이 전제되어야 정확한 지도가 제작될 수 있다. 결국 정확한 지도의 제작은 수없이 많은 거리와 방향 정보를 비교·검토하면서 지도 위에 옮겨본 전문적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고을에는 이런 전문가가 존재하기 어렵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고을지도를 제작하려는 국가의 의지가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대축척 지도이기 때문에 기존의 지리지나 지도에 없는 새로운 정보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740년대에 정상기(鄭尙驥)는 4․6첩의 그림식 고을지도 계통의 정보를 중요 자료 중의 하나로 이용하여 모두 이으면 남북 약 2.5m에 이르는 대형 지도를 제작하였다. 정상기의 대형 지도를 기초로 하면서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린 정철조(鄭喆祚)와, 1770년영조의 명을 받아 모두 연결하면 남북 약 6m에 이르는 초대형 고을지도, 도별도, 전국지도를 그린 신경준(申景濬)이 지도를 제작할 때 중요 자료 중의 하나로 4․6첩의 그림식 지도 계통과 1․2․5첩의 1리 눈금선 고을 지도 계통을 모두 이용하였다.

참고문헌

『조선의 지도 천재들』(이기봉, 새문사, 2011)
『한국의 고지도 발달사』(이상태, 혜안, 1999)
「조선후기 방안식 군현지도의 발달 연구 : 『동국지도 삼』을 중심으로」(김기혁, 『문화역사지리』19(1), 2007)
「조선지도(규16030) 해설」(이기봉, 『조선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군현지도의 발달과 『해동지도』」(양보경, 『해동지도』해설․색인,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5)
「18세기 비변사지도의 고찰 - 규장각 소장 도별 군현지도집을 중심으로」(양보경, 『규장각』15호, 1992)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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