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출생. 이형기(李炯基)는 1950년 『문예(文藝)』지를 통해 16세에 등단했으며 한국 문단에서 천재문사로 불려왔다. 그는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연합신문』·『동양통신』·『서울신문』 기자, 『대한일보』 정치부장·문화부장, 국제신문 편집국장, 부산산업대 교수, 동국대 국문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형기는 1950년 중학생 시절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후 55년에 걸쳐 시(詩)뿐만 아니라 비평과 소설, 수필 등에 걸쳐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본격적인 시인으로서의 자각을 얻게 된 계기는 세 번째 시집 『꿈꾸는 한발(旱魃)』에 이르러서이다. 이형기는 이 시집의 서문에서 “비로소 시인이란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토로하면서 “시란 필경 언어로써 구축되는 가공(架空)의 비전”(『꿈꾸는 한발』자서)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연발생적 서정을 중시하는 전통시와 결별하였다. 시인으로서의 철저한 자각에서 배태된 부정의 언어는, ‘현대성’의 선구로 간주되는 보들레르와 셰스토프, 카뮈와 같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항한 서구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형기는 평론과 시론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문학세계를 요약할 수 있는 시론적 명제는 묵시록적 의식과 우로보로스의 미학이다. 이형기가 시론적 수준에서의 구체적인 논의를 개진하게 된 것은 1962년 『현대문학』에 평론 「상식적 문학론」을 연재하던 무렵부터 시작된 활발한 평론활동을 발단으로 한다. 그의 시론적 입장은, 『감성의 논리』(1976), 『한국문학의 반성』(1980), 『시와 언어』(1987) 등의 저술을 거쳐, 시창작 입문서라 할 수 있는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1991), 『시란 무엇인가』(1993), 그의 마지막 시집 『절벽』(1998)과, 고희기념 시선집인 『낙화』(2002), 『아포리즘집: 존재하지 않는 나무』(2000)에 아포리즘 형식으로 표명되어 있다.
『감성의 논리』를 비롯한 5권의 시론집과 다양한 저술들 속에는 세 개의 범주로 묶여지는 중요한 시론적 이슈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현대라는 공간에서 시라는 것이 가지는 세계관적 의미와 언어예술행위로서의 시의 개념에 관한 학술적인 시론이다. 둘째는, 시적인 분석을 위한 가이드로서, 특히 현대시의 수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평론적 시론이다. 셋째는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1991), 『시란 무엇인가』(1993)와 같은 창작론적인 가이드 혹은 시집에 분재된 방식으로 표명된 시론적 단상이다. 이러한 시론적 입장은 1963년에는 이어령과의 문학논쟁에서 이미 제기된 평론표절과 모방문학론 문제에서부터 맹아를 엿볼 수 있다. 이형기는 1960년대 한국 문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순수논쟁, 참여논쟁에서 예술가의 개성적 자유를 옹호하고, 순수문학의 치열한 시정신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문학세계는 이후 줄곧 견지되었다.
이형기의 시세계를 개괄적으로 바라보면 3단계 정도로 규정된다. 초기시의 자연발생적인 낭만적 순수 서정의 모습으로부터 ‘복수의 미학’ 혹은 ‘독의 미학’으로 평가되는 악마적인 감수성을 내보이는 중기시를 거쳐, 허무와 폐허의 현실을 직시한 문명비판자 혹은 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후기시의 ‘모순과 파멸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극적으로 전개된다. 날카로운 언어적 직관을 내보이는 중기의 시세계는 1998년에 발간된 『절벽』에서 엿보이며, 실존의 탐구와 허무의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시집은 “소멸에 대한 인식과 불교적 인식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평가되며 이는 그의 후기시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초기시는 내밀한 서정성을 주조로 한 시들로, 『적막강산』과 『돌베개의 시』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시들은 자연에 개인의 감상을 투영하는 서정적 요소를 짙게 가지고 있지만, 서정적 자아와 자연과의 일치를 지향했던 기존의 청록파류의 시와는 다른, 지적이고 날카롭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후 이형기는 모더니스트로서 자의식과 시적 방법론적 필요를 자각하면서, 『꿈꾸는 한발』에서부터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일상적 인식을 전복하는 파괴와 부정의 언어를 실험하였다. 부조리한 현대적 삶에 대한 치열한 인식하에 상상력의 영구혁명이란 명제를 마련한 것도 이 시기에 해당된다. 파괴와 부정의 미학이 두드러진 중기시 『꿈꾸는 한발』, 『풍선심장』, 『보물섬의 지도』와 같은 시집은, 세기말적 파멸의식, 문명비판과 생태의식이 엿보이는 『심야의 일기예보』, 『죽지 않는 도시』 등의 시세계의 기반이 된다.
“시란 본질적으로 구축해놓은 가치를 허무화 시키는 작업이며 시에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절망을 확인할 때만이 꿈은 꿈으로써 참답게 존재한다.”, “허무의 세계에서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란 절망을 확인하는 일뿐이다.”라는 시인의 아포리즘처럼, 불교와 모더니즘 정신을 통해 끝없는 미적 혁신을 감행해온 그의 문학적 태도를 요약한다.
이형기는 전통 서정시의 유약한 화법을 극복하는 강인한 남성적 화법을 구사하면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문명적 현상에 대항하는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식을 지향한다. 특히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정황을, 선전적인 참여시의 어법이 아니라 파괴적 이미지 속에 용해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는 순수논쟁, 참여논쟁에서 이미 표면화된 그의 예술지상주의적 자유의식의 자연스런 발로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부조리한 사회와 문명적 폭력과 폐해에 대한 자각이 심화되면서 그로테스크한 언어실험은 문명비판적 시각과 결합되어 그 강도와 깊이를 심화시켰다. 1990년대에 발표된 『심야의 일기예보』와 『죽지 않는 도시』에는 현대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비극적 인식이 포스트모던한 수사로 형상화되어 있다.
파괴와 위악으로 대표되는 중기의 시세계는 1998년에 발간된 『절벽』에서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시인의 투병 기간 중에 지어진 이 후기 시편들은 허위의 현대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 실존의 상처를 힘겹게 뚫고 나온 말들이 깊이 있는 존재론적 탐구와 허무의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불꽃같은 시혼을 불사르듯 시인이 병상에서 써낸 『절벽』 속의 시편들은, 불교의 공의 정신과 소멸이라는 존재의 궁극성에 대한 심문을 던져주는, 그의 이전 시들을 총괄하는 완성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은 끊임없는 소멸을 전제로 주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에 의해 나타나고 촉발되는 것이다. 시집 밑바탕에 깔려있는 연기(緣起)와 공(空)의 세계는, 이형기의 시가 도달한 존재론적 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절벽』 속에 수록된 아포리즘 「불꽃 속의 싸락눈」은 50년 동안 갈무리해온 그의 시적 입장의 총결산이다. 그의 시론을 가장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는 핵심은 ‘우로보로스의 미학’과 ‘묵시록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묵시록적 상상력이 지향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억압적인 의미질서의 해체라면 우로보로스의 미학이 추구하는 것은 소멸과 생성이 상호 전화(轉化)하는 창조의 싸이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문학가협회상, 한국시인협회상, 문교부 문예상, 한국문학작가상, 윤동주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5년 2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2월 4일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회에서 가톨릭식 장례 미사를 거행한 후 천주교묘지에 안장되었다. 2006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이형기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