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암 석조 여래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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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암 석조여래입상
용주암 석조여래입상
조각
유적
문화재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용주암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용주암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석조여래입상은 화강암 1매석으로 제작된 불상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견두산 중턱에 위치한 용주암 안에 있다. 2009년 10월 9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남원시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내용

용주암은 원래 통일신라시대 개량사가 있었다고 전하는 고찰로서, 고려 말기에 폐찰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사찰만 남아있던 폐사지에 진안 약수암 주지가 수도하면서 움막을 지었으며 1940년경에는 도승이 와서 사찰을 개축하고 ‘용주암’이라 하였다. 용주암은 한국불교 태고종에 속한 사찰이다. 사찰 주위에는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이후 시기의 석재들이 산견되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경에 사찰이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역이 훼손되었다.

석조여래입상은 광배에 불신을 양각하였으며 좌대는 별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일부 결실되거나 절단된 것을 수리하였다. 불신의 무릎 이하 부분은 매몰된 상태로 바닥에 콘크리트가 도포되었으며 좌대의 아랫부분도 매몰된 상태여서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은 소발에 정수리에는 높은 육계가 솟아있다. 얼굴 역시 상당 부분 마모되어 그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며,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어 비교적 크게 표현하고 있다. 대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의 형태이며,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손모양이다. 팔에 걸친 대의는 길게 늘어지면서 옷자락을 뒤쪽으로 흐르게 표현하였다. 또한 허리 아래에는 음각선으로 옷주름을 처리했으나 하부가 매몰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광배는 배모양인데 윗부분이 절단 결실된 상태이며 두광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좌대는 복련좌로서 전체적인 형태는 평면 타원형을 이룬다. 중앙에 구멍을 두어 석불여래입상을 꽂을 수 있도록 조각하였다. 매몰된 상태에서 전체적인 크기는 알 수 없으나 노출되어 있는 광배 높이가 245㎝인 것으로 보아 좌대 등을 포함하는 전체 높이는 훨씬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입상의 하체 부분과 좌대 아랫부분 상태에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전체적인 형태와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석조여래입상은 남원의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이나 미륵암 석불과 비견되어 사찰이 창건되는 무렵인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 마모되고 결손된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인 불상의 양식을 살필 수 있다.

광배를 포함해서 전체 높이 243㎝, 불상 높이 205㎝, 두부 높이 75㎝, 어깨폭 90㎝ 내외이며, 광배 최대폭은 150㎝, 좌대폭은 101㎝(상단부)~130㎝(하단부) 내외이다.

의의와 평가

이 불상은 남원지역의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잘 대변하고 있다. 다만 불상의 온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고 얼굴의 마모가 심한 상태이지만, 그 마모 상태나 훼손 상태로 보면 세전리 석불입상, 가덕사 석조여래입상과 비슷한 정도로 남원지역 석불상 양식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문화재청, 2003)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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