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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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법제
인물
일제강점기 때, 잡지 『개벽』의 주필을 역임하였고, 방정환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을 전개한 언론인 ·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소춘(小春)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4년(고종 31)
사망 연도
1948년
출생지
평안북도 구성군
관련 사건
반공의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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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때, 잡지 『개벽』의 주필을 역임하였고, 방정환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을 전개한 언론인 ·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내용

호는 소춘(小春)으로, 보성전문(普成專門)을 졸업한 뒤 1909년 천도교에 입교, 매일신보사 사원으로 일했다. 강직하면서도 사교성 있는 그는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매력이 있었으며, 폐병 3기의 증세를 10여 년만에 신념과 기원으로 완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1923년 ‘천도교 청년당’의 창당에서 비롯되는 그의 청년운동은 천도교 7부문 운동의 선두에서 민중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으며 『개벽』지의 주간으로서 대중계몽의 논문을 발표하여 또한 부문운동의 각 기관지에도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개벽』의 주필을 맡아보면서 이 잡지에 매호 논설·수필·시 등을 발표했다. 1921년 이정호, 방정환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 소년회는 창립 후 어린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새말을 사용하고, 소년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촉진시키기 위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였다. 이후 이듬해 3월 『어린이』를 창간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동화구연대회, 소년문제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소년운동의 활성화를 모색하였다. 해방 후 북한지역에서 천도교회 수습을 목적으로 활약중 1948년 3월 1일 반공의거운동(3·1재현(再顯) 운동)이 일어났을 때 행방불명되었다. 교인들은 1948년 4월 북조선 종무원(宗務院)대회에서 그를 종무원 도사장(道師長)에 추대하였다,

저서로 『천도교당당지』·『천도교청년회당지』·『당헌석의 黨憲釋義』·『조선지위인』 등이 있다. 1917년 이광수의 『무정』에 대한 최초의 실천비평인 「무정 12회를 독하다가」를 발표했다. 시 「금싸락」과 「옥가루」는 일제의 검열로 삭제되었다.

참고문헌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정용욱, 서울대출판부, 2004)
공훈전사사료관 (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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