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정조 10)에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김시성(金是聲, 1602∼1676)을 향사하기 위해 남호사(南湖祠)라는 사우로 처음 건립되었다. 1855년(철종 6)에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28년에 남호서당(南湖書堂)으로 다시 복설되었다.
김시성은 본관이 청도로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익찬(翊贊)으로 임명되었다. 익찬 재임 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무사히 심양에 다녀온 공로를 인정받아 귀국 직후인 1646년(인조 24) 황주판관에 임명되고, 이후 용천부사·강계부사·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금포실기(錦浦實紀)』가 있다.
서원은 강당인 금포당(錦浦堂)과 사당인 충렬사(忠烈祠)로 구성되어 있다.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에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남호사입향시고유문(南湖祠入享時告由文)」과 「남호사이건시이안문(南湖移建時移安文)」은 조채신(曺采臣)이, 「상향축문(常享祝文)」은 박길원(朴吉源)이 지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필사본 『김시성기사(金是聲記事)』에 수록되어 있다.
청도김씨 문중 서원으로 조선 후기에 사우로 건립되어 서원으로 승격하는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