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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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송응현과 송걸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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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송응현과 송걸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
개설

1927년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송응현(宋應賢)과 그의 아들 송걸(宋傑)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지금의 건물은 1972년에 중건된 것이다. 현재 매년 2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내용

송응현은 자가 사희(士希), 호는 양오당(養吾堂), 본관은 은진이다. 밀양 화악산 아래 살면서 인근에 정사를 지어 양오당이라 이름하고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와 협력하여 적을 토벌하기로 약속한 후, 의병을 이끌고 곽재우에게 가는 도중 적의 대군을 만나 싸우다가 아들 걸과 함께 전사하였다. 두 부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송응현의 부인 광주김씨도 남편을 따라 자진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도승지 신흠(申欽)이 전지(傳旨)를 받들어 송응현을 선무원종공신이등(宣武原從功臣二等)에 병록(幷綠)하였으며, 나라에서는 송응현에게 첨정(僉正)의 벼슬을, 송걸에게 주부(主簿)의 벼슬을 증직하였다. 송응현의 저서로는 『양오당실기(養吾堂實記)』가 있다.

서원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충덕사(忠德祠)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에는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며, 평면은 가운데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좌측 협실은 ‘집의당(集義堂)’, 우측 협실은 ‘경의재(敬儀齋)’라 편액하였다.

사당에는 ‘충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평면은 전면에 퇴칸(退間)을 두지 않고 내부를 모두 통칸(通間)으로 구성하였다. 기둥은 정면과 측면에만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二翼工)으로 장식하였다. 1992년에 간행된 송응현의 문집인 『양오당실기』 영인본이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양오당실기(養吾堂實記)』
경산시청(www.gbg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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