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시조집인 김수장의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실려 전한다. 총 3장의 연시조인데 작자가 장릉 참봉이던 57세 때, 영월 땅을 지나면서 불행했던 단종을 생각하고 지었다. 『해동가요』의 관련 기록을 보면, “옛날 단종대왕이 영월 매죽루(梅竹樓)에 있을 적에 자규사(子規詞)를 지었는데, 비록 여항(閭巷)의 아녀자들도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왕손인데 적막한 묘사(廟祠)를 지키면서 청령포(淸泠浦)를 지날 때면 눈물지었다. 게다가 여기서 자규의 울음을 들었음에랴. 그래서 이 노래를 지어서 슬퍼하고 이름하여 ‘자규삼첩(子規三疊)’이라 한다.”라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1장은 매죽루(梅竹樓)에 서서 무심히 우는 소쩍새의 울음 소리에 귀양 온 어린 단종의 슬픈 운명을 떠올리며, 2장은 소쩍새의 애절한 울음에, 불쌍한 임금을 생각하며 우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늘이 시켜서 운 것이라며 자신의 감회를 토로한다. 3장은 슬픔을 배가시키는 두견새에 대한 호소다. 자규의 울음소리에 이입되어 어린 임금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담았다. 왕손인 이유는 12살의 어린 나이로 비명에 죽어야 했던 단종에 대한 남다른 연군의 정(戀君之情)을 쉬운 우리말을 구사하여 절절한 시어로 잘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