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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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무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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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의 무관직.
내용

신라 최대의 군단인 육정(六停)과 구서당(九誓幢)을 비롯하여 삼무당(三武幢)·계금당(罽衿幢)에 각각 1인씩 배속되어, 모두 합하여 19인을 두었다. 감사지는 523년(법흥왕 10)에 설치되어 장군 이하 대관대감(大官大監)·대대감(隊大監)·제감(弟監)을 보좌하였다.

그런데 그 명칭은 대감·제감의 감과 가인(家人)을 뜻하는 사지가 합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이 점에서 장군의 사인(舍人)적인 존재가 아닐까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이외에 국왕 측근을 의미하는 ‘사지’와 감찰 업무를 뜻하는 ‘감’이 결합한 직책으로서 지휘체계와는 별로도 국왕이 파견한 감찰관이라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관등은 대사(大舍)로부터 사지(舍知)까지로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정치제도사연구(新羅政治制度史硏究)』(이인철, 일지사, 1993)
「新羅兵制考」(井上秀雄, 『新羅史基礎硏究』, 1974)
「6~7세기 신라 6정의 전시 운용」(최상기, 『한국사론』5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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