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대의 군단인 육정(六停)과 구서당(九誓幢)을 비롯하여 삼무당(三武幢)·계금당(罽衿幢)에 각각 1인씩 배속되어, 모두 합하여 19인을 두었다. 감사지는 523년(법흥왕 10)에 설치되어 장군 이하 대관대감(大官大監)·대대감(隊大監)·제감(弟監)을 보좌하였다.
그런데 그 명칭은 대감·제감의 감과 가인(家人)을 뜻하는 사지가 합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이 점에서 장군의 사인(舍人)적인 존재가 아닐까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이외에 국왕 측근을 의미하는 ‘사지’와 감찰 업무를 뜻하는 ‘감’이 결합한 직책으로서 지휘체계와는 별로도 국왕이 파견한 감찰관이라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관등은 대사(大舍)로부터 사지(舍知)까지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