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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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도 / 강희언
인왕산도 / 강희언
회화
인물
조선 후기에, 「인왕산도」, 「석공도」, 「사인삼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이칭
경운(景運)
담졸(澹拙)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8년(영조 1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진주(晉州)
주요 작품
인왕산도(仁王山圖)|석공도(石工圖)|사인삼경도(士人三景圖)
주요 관직
감목관|천문학겸교수|의영고주부|조지서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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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인왕산도」, 「석공도」, 「사인삼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담졸(澹拙). 만호(萬號)를 지낸 강태복(姜泰復)의 아들이며, 정내교(鄭來橋)의 외손자이다.

활동사항

1754년(영조 30)에 운과(雲科: 음양과의 이칭)에 급제한 뒤 감목관(監牧官),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 등을 지냈다.

서울 삼청동에서 62세 위인 선배 화가 정선(鄭敾)과 이웃하여 지내면서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강세황(姜世晃)과 교유가 깊었으며, 7세 아래인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김홍도(金弘道)와도 교분이 두터웠다. 김홍도는 1778년 여름에 강희언의 집에서 풍속도 병풍을 그리기도 하였다. 강희언은 1781년 김홍도의 집에서 열렸던 진솔회(眞率會)에 참석하였다. 이로 미루어 1781년까지는 생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희언의 유작은 드문 편으로 현재 「인왕산도(仁王山圖)」와 「석공도(石工圖)」,『사인삼경도(士人三景圖)』 등이 알려져 있다.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을 따른 「인왕산도」는 늦은 봄 도화동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고 그린 작품이다. 미점(米點)과 부벽준(斧劈皴) 등을 혼용하여 나타낸 바위 표현, 담청색의 색감, 솔 숲의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정선 화풍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수채화풍을 연상시키는 담채 처리에서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석공도」 등 그의 풍속화들은 윤두서(尹斗緖), 조영석(趙榮祏) 등 문인화가의 풍속화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서 뒤에 김홍도의 풍속화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회화대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근역서화징』(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담졸 강희언의 회화 연구」(이순미,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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