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서(新唐書)』 발해전(渤海傳)에는 국도인 상경(上京)을 중심으로 하여 각 방면에 이르는 교통로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부여부(扶餘府)는 거란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요나라의 태조가 발해를 공격할 때 먼저 부여성을 함락시킨 뒤 홀한성(忽汗城 : 東京城)을 공격한 것이라든가, 부여부에는 항상 날랜 병사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비하였다는 『신당서』의 기록들은 발해와 거란의 교통에는 반드시 부여부를 거쳐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 구체적인 경로는, 상경에서 숭령(嵩嶺 : 張廣才嶺)을 지나 부여부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몇 개의 지역을 거친 다음 거란의 도성인 임황(臨潢 : 지금의 林東縣)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부여부에서 임황에 이르는 경로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가 다른데, 이는 양자가 부여부의 위치를 서로 다른 곳으로 추정한 데 말미암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