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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서간(居西干)

    고대사제도

     신라 초기의 왕호(王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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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거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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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거슬한
    분야
    고대사
    유형
    제도
    성격
    왕호(王號)
    시행시기
    신라 초기
    시대
    고대-삼국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신라 초기의 왕호(王號).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시조 박혁거세를 거서간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 시조본기(始祖本紀)에서는 “거서간은 진한(辰韓)의 말로 왕을 이름이다.”라 하였고, “혹은 말하기를 귀인(貴人)을 부르는 칭호이다.”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서는 “위호를 거슬한이라고 하였다(位號曰居瑟邯).”는 말의 주(註)에서 “혹은 거서간이라고도 한다.
    처음 입을 열어 스스로 알지거서간일기(閼知居西干一起)라 하니, 그 말에 따라 칭한 것인데 그 뒤로 거서간은 왕자(王者)의 존칭이 되었다.”고 하였다. 일기는 한기·한치·큰치의 뜻이다.
    거서간 칭호의 사용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의 성립을 반영하고 있다. 철기문화의 보급 및 벼농사의 진전과 함께 북방으로부터 주민들이 이주해 옴에 따라 경주지역일대에 새로운 사회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주해 온 주민들은 토성을 쌓고, 철제품을 교역하는 한편, 초기국가체제를 형성하였으며, 그러한 사실을 구체화하여 나타낸 것이 박혁거세의 건국설화이다. ‘박’은 광명을 뜻하고, ‘혁거세’도 역시 밝음을 의미하여 태양숭배민족임과 천신족(天神族)임을 상징하여 그들의 우세를 과시하였다.
    이와 같이 거서간은 이주집단의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세력을 바탕으로 하여 6부촌장들에 의하여서 초기 사로국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정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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