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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도설 / 천인심성합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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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개념
공경함 · 엄숙함 또는 삼가다 등의 뜻으로, 왕이나 군자가 지녀야 할 도덕적 정신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종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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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공경함 · 엄숙함 또는 삼가다 등의 뜻으로, 왕이나 군자가 지녀야 할 도덕적 정신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종교용어.
내용

경은 그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우리 나라와 동양에서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경의 문화적 의미는 우리 나라의 전통에서 학문과 생활 전체의 그 밑바닥 정신으로 계승되어오는 뿌리깊은 정신사적 유산이다.

경은 오늘날 한 글자(單字)로 쓰여지기보다는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통용되고 있다. 예컨대, 경건(敬虔)·경애(敬愛)·존경(尊敬) 또는 공경(恭敬), 심지어 경로(敬老)·경천(敬天) 등의 개념이 모두 그러하다.

개념이란 일반적으로 그 뜻하는 본질적 의미로서의 내포(內包)와 그 의미의 적용되는 범위로서, 이른바 외연(外延)을 가지게 마련이다. 물론 경의 내포는 공경함·존경함·엄숙함 등을 말할 수 있지만, 외연에서는 공경의 대상이 반드시 외향적·대타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경은 원래 유학에서 강조되는 개념이다. 유학교육을 통하여 학문과 생활전반에 걸쳐 그 밑바닥 정신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적 정신으로 제시되고 있다. 경은 고대의 유가경전에서부터 언급되었는데, 특히 성리학이 발달되면서 크게 새로운 각도에서 풀이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에 성리학이 발달되었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경에 관한 학문과 생활 전반에 걸친 실천정신은 이론적 체계로 깊이 연구되었고, 행위일반의 근본정신으로 살아 이어져오고 있다.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서양학자들마저 근래에 이 경을 동양정신의 특징 중의 하나로 보고, 이에 관한 이론적 해명에 열중하는 경향이다.

경의 개념적 의의는 그 내적 정신과 함께 예로부터 매우 중요한 문제로 강조되어왔다. 경은 유가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음의 자세로서, 그리고 도덕적 정신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고대중국의 유가경전인 ≪상서≫와 ≪시경≫에서도 이미 경의 관념은 도덕적 의미와 깊게 연관되고 있다. ≪상서≫에서 “왕은 경으로 처사하고 덕을 공경해야 한다.”라든가, ≪시경≫에서 “군자는 그 몸을 경건히 해야 한다.” 등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예기≫의 곡례상편(曲禮上篇)은 머리글에서부터 예(禮)를 “공경하지 아니치 말며(毋不敬)”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예란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경을 지녀야 한다는 강조의 표현이다.

≪논어≫에는 “경으로 자신을 닦는다.”, “처소에 기거함에 공손하고 일을 집행함에 경으로 한다.”, “행동은 돈독하고 경건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논어≫에는 경에 관한 언급이 모두 스물 한 번 나오는데, 도덕적 정신과 그 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의미를 다루고 있지만, 보다 분명한 인식이론은 보이지 않는다.

경에 관하여 그 개념적 외연을 좀더 분명히 밝히는 문헌은 ≪주역≫의 문언전(文言傳)이다. 즉 “군자는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밖을 방정히 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德)은 외롭지 아니하다.”는 설명에서, 경을 의와 견주어 내심(內心)의 정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정이(程頤)는 유가경전에 언급되고 있는 경을 중요한 수양정신으로 파악하고, 본격적인 해명을 시도했던 학자이다. 그는 ≪어록 語錄≫에서 “함양(涵養)에는 반드시 경을 쓸 것이며, 학문의 정진은 치지(致知)하는 데 있다.”고 하였고, 또 “경이란 하나를 주(主)로 함을 말한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해석은 뒤에 주희(朱熹)가 전폭적으로 받아들였고, 보다 구체적인 이론으로 전개시켰다. 그는 “경을 지님은 원리를 추구하는 바탕이 된다.”하고, “경 공부는 성인(聖人)이 되는 학문에서 첫째가는 것이다.”고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다.

원래 유학의 기본정신은 이른바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이지, 결코 ‘타인을 위한 학문(爲人之學)’이 아님을 전제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모두가 선하다는 성선설이 유학의 바탕을 이룬다.

여기에서 인간의 인간다움, 즉 인간의 선한 본성을 살릴 수 있는 근거를 경에다 두고 있다. 주희는 이 경을 인간다움을 실현시키고 학문공부를 진정한 의미에서 추진시키는 내적 정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유가사상에서 경의 의미는 참되고자 노력하는 자아실현의 정진과 성인의 학문 연구에 불가결한 마음가짐인 것이다.

(1) 초기의 전개

우리 나라 유학에서 경이 이론적으로 논의되고, 학문과 생활에서의 실천정신으로 강조되기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즉, 경을 학문적으로 문제삼는 성리학이 중국의 원나라에서 고려 중엽 이래로 전래되기는 하였으나, 그 당시 경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경을 해명하기 시작한 것은 권근(權近)에서 비롯한다. 그는 유배 중에 지은 ≪입학도설 入學圖說≫의 <천인심성합일지도 天人心性合一之圖>에서 경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머리부분은 둥글게 하여 하늘 천(天)자를 넣고, 가슴의 위치에는 마음 심(心)자를 커다랗게 넣어 이기(理氣)와 성정(性情)·심의(心意)의 관계를 그 안에서 밝히려 했고, 아래로 내려가 성(誠)·경(敬)·욕(欲)자를 넣어 각기 성인·군자·중인(衆人)으로 배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성인은 본래 천성 그대로 참되어 하늘과 더불어 도(道)를 같이하고, 군자도 경으로 존양(存養), 성찰(省察)하여 공을 이루면, 성인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인간이 합일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을 돕는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경이란 형기(形氣)에서 생겨난 인심(人心)을 성명(性命)에서 발하는 도심(道心)으로써 확충시키는 마음가짐임을 가리키고 있다. 즉, 경을 중심으로 해서 인욕(人欲)의 싹을 막고 천리(天理)의 정상을 확충하여, 도심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학도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무일지도 無逸之圖>를 그려, 다시 한번 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권근의 ≪입학도설≫은 우리 나라 성리학에서 이른바 ‘주경사상(主敬思想)’이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문헌으로 간주된다.

다음으로 경에 관하여 특이하게 설명한 학자는 김굉필(金宏弼)이다. 그는 평소에 실천 위주의 유학공부를 쌓으며 자칭 ‘소학동자(小學童子)’라고 말할 만큼 ≪소학≫을 기초로 몸가짐을 한결같이 하였다.

그는 43세 때 지은 <한빙계 寒氷戒>라는 글에서 “마음은 하나를 주할 것이고 두 갈래로 하여서는 안된다[主一不二].”고 하여 정신을 하나에만 집중시키는 것이 곧 경이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성(誠)과 경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소학≫에 있는 좋은 말과 착한 행실을 참고하여, 밤낮으로 외고 깊이 생각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김굉필은 이황(李滉)이 ‘근세도학(近世道學)의 으뜸’이라고 칭할 만큼 경을 바탕으로 삼은 도학적 실천을 강조하여, 조선 전기의 학문기풍을 순화, 정비시켰다.

그 당시 실천 위주의 도학정신은 김굉필의 문하제자인 조광조(趙光祖)에게 계승되어, 마침내 도학정치로 전개된다.

조광조의 학문도 ≪소학≫을 중심으로 직접 힘써 실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는 엄숙단정하면 자연히 정신이 하나로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고 사물의 응함에 옳고 바르며, 말과 행동이 예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고 행동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행위규범은 바로 “하나를 주로 하고 벗어남이 없다(主一無適).”는 경의 실천이었다. 그는 경을 내심이 깨어 있는 것, 이른바 ‘성성(惺惺)’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광조의 경우에도, 경은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는 내면의 노력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그러므로 경에 기초해서 외모의 방정함과 엄숙함이 갖추어져야 함을 내외본말(內外本末)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16세기에 접어들어서 조선시대의 학문풍토는 ‘경’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과, 그 실천함에 있어 유학자라면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비록 성리학체계에서 기본적으로 경이 역설되고 있기는 하지만, 경의 이론적인 심화와 함께 학문생활에서의 실천적 구현의 면모는 유교문화권 안에서 조선과 견줄 만한 나라가 없다. 조선은 그 무렵 유학을 중심으로 한 미풍양속을 실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이언적(李彦迪)은 학문과 태도의 인식분별에서 본말(本末)·내외(內外)·정조(精粗)·빈주(賓主)와 같은 선후순서가 있음을 강조하고, 도덕적 수양정신 실천에도 체용(體用)·동정(動靜)·선후(先後)의 질서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와 같은 질서와 분별의식은 마치 하늘에 오르려면 사다리가 필요하고, 강을 건너려면 다리가 요구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그러나 학문과 태도의 인식분별, 도덕적 정신에서의 선후 분별의 의식은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과 정신에 뿌리박은 것이어야 한다. 그 같은 마음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경이라고 그는 <일강십목소 一綱十目疏>에서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이란 동(動)과 정(靜)을 일관하는 것이고 내(內)와 외(外)를 합쳐 천덕(天德)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심신(心身)에 있어서 경의 정신은 일관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학문은 성숙하고 도덕적 정진은 진전이 있더라도, 그 밑받침되는 바 경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선후내외를 일관하는 것으로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관점은 <원조오잠 元朝五箴>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마음의 덕을 기르는 데도 오직 경이 요구되고, 경은 오직 하나를 주(主)하되 오래되어 이미 참되게 되면 일리(一理)에 순수해진다고 했으며, 외적으로는 경신(敬身)을 강조하였다.

내외의 관계에 있어서는 경이 일관하는 정신이며, 또한 내외를 포괄하여 천덕에 이르는 것이므로, 경은 이른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정신으로 이해되고 있다.

(2) 이론적 전개와 실천수범의 확립

경의 정신을 학문과 생활 모두에서 전체적으로 실현한 인물은 이황이다. 이황의 학문과 인생관의 기본 바탕은 무엇보다 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칠십 평생을 경으로써 실천궁행(實踐躬行)하여 학자 이상의 사표(師表)로서 존경을 받는다.

이황은 단순히 중국의 성리학이론에 심취한, 해박하고 정통한 학자 정도가 아니며, 흔히 머물기 쉬운 형식적 예교주의자(禮敎主義者)만도 아니다. 그는 학문의 면에서 주희 조차도 미치지 못한 이기심성(理氣心性)의 ‘호발론(互發論)’을 주장하였고, 인간정신을 경에 바탕을 두고 생활전반에 걸쳐 실천했다.

경에 관한 인식이론에서도, 이황은 문제의 전체를 모두 살피면서 그 핵심을 포착하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궁극적으로 정주계통(程朱系統)의 제약을 넘어서 보다 포괄적인 경의 정신을 설명한다.

주희는 경을 가리켜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그 목적에 이르기까지 요구되는, 이른바 ‘성시성종(成始成終)’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경은 일심(一心)의 주재(主宰)이며 만사의 근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황 역시 주희의 관점을 대체로 긍정한다. 유학이 경을 성인의 학문으로 제시하듯이, 이황은 경을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정신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해 마치 종교적 신념과도 같은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유학이 진실로 자아의 수양과 나아가 타인에게 이르는 학문, 혹은 자아의 도덕적 정진이 급기야 온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학문을 이상으로 삼고자 할 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경임을 역설한다. 하루도 경을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정신이고 성학(聖學)의 시종일관하는 요체라고 밝힌다.

이런 점에서 이황이 주장하는 경은 결국 누구를 막론하고 자아를 도덕적 정진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실현하려 하는 자율적 정신으로 파악되고 있다. 동시에 경은 건전한 윤리적 인간사회를 이룩하는 데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공동체의식으로 이해된다. 경은 너와 나를 막론하고 스스로를 성찰, 노력하면서 자신의 사회성을 깨달아가는 끊임없는 시종공부(始終工夫)로 설명된다.

그는 68세 때, 당시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선조에게 ≪성학십도 聖學十圖≫라는 열 폭의 그림과 해설을 함께 지어올린 바 있는데, 도설(圖說) 전체는 경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도설의 서문에서 이황은 “이 열 개의 그림이 모두 경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경은 입도의 관문이며 적덕(積德)의 기틀이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경 자체는 도도 아니고 덕도 아니면서, 도의 관문이고 덕의 기본이다.

우리 나라 유학에서 경 중심의 도덕철학은 이황에 의해서 포괄적으로 정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경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수범(垂範)은 우리 나라 유학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정신으로 후대에 계승되고 있다.

경에 대한 이이(李珥)의 인식이론도 이황의 것과 전반적으로 견해를 같이한다. 다만, 이이는 그의 형이상학적 관점이 이황과 다르고, 이황이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입지(立志)와 존성(存誠)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역설하는 가운데 경을 언급하고 있다.

경은 학문과 생활전반에 걸쳐 자아를 조절시키면서, 천부(天賦)의 선(善)에로 자아를 회복시키는 자율적 정신이고, 또한 당위적 정신이다. 따라서 경은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실천적 삶의 정신으로 살려야 하는 활력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 사상’이야말로 우리 겨레에게는 정신문화의 유산이 됨과 동시에 한국의 정신을 특징짓는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이정전서(二程全書)』
『양촌집(陽村集)』
『정암집(靜庵集)』
『회재집(晦齋集)』
『퇴계전서(退溪全書)』
『율곡전서(栗谷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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