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동해와 면하여 있고, 서쪽은 무산군, 남쪽은 길주군과 명천군, 북쪽은 부령군과 접한다.
동경 128°59′∼149°49′, 북위 41°15′∼41°58′에 위치하며, 면적 2,801.01㎢, 인구 11만 7894명(1945년 현재)이다. 어대진·주을 등 2개 읍과 4개 면 115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경성면 일리동이다.
지세는 함경산맥(咸鏡山脈)이 서쪽에 위치하여 동북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고성산(1,756m)·여령(驪嶺, 1,728m)·설령(雪嶺, 2,442m)·관모봉(冠帽峰, 2,541m)·괘상봉(掛上峰, 2,139m)·만탑산(萬塔山, 2,205m) 등이 있다.
함경산맥에서 발원한 오촌천(梧村川)·주을천(朱乙川)·주남천(朱南川)·어랑천(漁郎川)과 보화보(寶化堡)에서 발원한 주북천(朱北川)이 동해로 흘러 들어가며, 어랑천 하류에는 어랑호로 불리는 5개의 작은 호수가 있다.
하천 하류에는 비옥한 해안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어랑천은 수량이 풍부하며, 중·하류에는 현무암 지대가 위치하여 특수한 하곡경관을 나타낸다. 이 밖의 지층은 대개가 화강암·편마암·퇴적암이다.
기후는 삼한사온이 뚜렷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연평균 기온 7.1℃, 연 강수량 700㎜ 내외이다. 내륙과 해안의 기온차가 현저하며, 동해안은 봄에 온대성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파도가 높고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고 대]
인접지인 청진시 농포동과 경성면 원향동의 조개더미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원수대(元帥臺) 및 용평리에서도 신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선사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이 확실하다.
《사기》에 따르면, 옛날 이 지방에는 숙신(肅愼)·읍루(挹婁)·예맥(濊貊)·옥저(沃沮)·말갈(靺鞨)·부여(夫餘) 등 부족 국가가 있었고,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668년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이 땅은 당나라의 지배 아래 있었다. 699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을 때에는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관하에 있었다.
[고 려]
발해가 멸망한 뒤 고려 말엽에 이르기까지 이 지방은 거란(契丹)·금(金)·원(元) 등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발해 멸망 당시 이에서 벗어난 말갈족의 일파였던 여진(女眞)은 금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원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차츰 두만강 이남의 함경도 지방까지 남하하여 고려와 자주 충돌하였다.
1356년(공민왕 5) 원나라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함락되고 1368년원나라가 명(明)나라에 의하여 무너지자 고려가 북진하여 그 말기에는 두만강 하구 지방까지 수복하였으며, 당시 경성은 동북면(東北面) 관하의 우롱이(于籠耳, 일명 木郎古)라 불렀다.
[조 선]
1398년(태조 7) 북도의 행정구역을 책정할 때 비로소 이곳을 경성이라 이름하고 만호진(萬戶鎭)을 두었다가, 1400년(정종 2) 군으로 고치고 병마사로 하여금 군사(郡事)를 겸하게 하였다.
1403년(태종 3) 경성읍성을 쌓고 다음해 도병마사와 판군사로 고쳤다가, 1432년(세종 14) 도호부로 승격시켜 병마절도사 겸 판부사를 두었으며, 길주로부터 절제사본영을 옮겨 1467년(세조 13)에 북절도사로 직명을 바꾸어 남·북 병사로 갈랐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북평사(北評使) 정문부(鄭文孚)의 지휘 아래 이 지역의 유생 등 3,000여 의병이 경성읍·길주성을 탈환하였다. 이 관북대첩(關北大捷)을 승리로 이끈 8의사는 어랑 창렬사에 배향되어 있다.
1756년(영조 32) 판관을 부사로 하였다가 2년 뒤에 다시 판관으로 하였으며, 1884년(고종 21) 병사를 폐지하고 북도만무사 겸 절도사를 두었으니 이로써 경성은 북도의 수부가 되었고, 북병영은 북감영으로 고쳤다.
[근 대]
갑오개혁 후 1896년 분도될 당시의 경성군 관하에 6개 면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명간면이 명천군에 이속되고 주촌면이 주남·주북으로 갈림과 동시에 나남면이 새로 생겨 7개 면이 되었다.
1920년에는 도청이 나남으로 옮겨지고 1931년 나남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시 1940년에는 온천도시 주을온면이 읍이 되고, 또 수산 도시로 발전한 어대진이 어랑면에서 분리되어 어대진읍으로 승격되어 3개 읍 5개 면이 되었다.
1943년 청진시의 구역 확장에 따라 도청 소재지인 나남읍과 용성면이 청진에 편입되었으므로, 1945년 2개 읍 4개 면이 되어 호수는 2만 2020호, 인구 11만 7894명에 이르렀다.
근대 인물로는 1900년 사재를 기울여 관북의 개화 교육기관의 효시인 함일학교(咸一學校)를 세워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이운협(李雲協)을 비롯하여 간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부총재로 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친 현천묵(玄天默) 등이 있다.
선사 시대 유적으로는 경성면에 있는 원수대에서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와 주거지가, 어랑면 용평리에서 유물 포함층이 확인되었다. 군내의 국보급 유적으로는 경성남문이 있다.
이는 1433년(세종 15) 창건되었으며, 1756년에 중건하였고, 1961년에 완전히 보수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문루 형식이며, 정면 중앙의 기둥 사이가 다른 기둥 사이보다 현저히 넓은 것이 특징이다. 경성읍성도 보물급 유적으로 둘레가 684m이며, 동서가 남북보다 긴 장방형의 성으로 높이는 약 9m에 이른다.
4면에 성문지가 있고 7개의 포루가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종서(金宗瑞)가 축성하기 시작하여 이수일(李守一)이 완성하였다고 하며, 남문과 읍성은 북한이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읍성 외에도 경성군내에는 어유간보(漁遊澗堡, 석축, 길이 329m, 높이 2.42m)·주을온보(朱乙溫堡, 길이 323m, 높이 2m)·삼삼판보(森森坂堡, 석축, 길이 431m, 높이 1.5m)·오촌보(吾村堡)·보로지책(甫老知柵)·보화덕책(甫化德柵) 등의 많은 성책이 있다.
또, 승암에는 동북 변방의 방비에 공이 큰 네 장군을 모시는 정북사(靖北祠)가 있다. 1437년(세종 19) 창건되어 노당(盧堂)이라 불리었으나, 1847년 건물을 고쳐 세운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는데, 역시 보물급 문화재이다.
그 밖에 산수가 아름답고 수질이 좋은 온포리의 주을온천이 명승지로, 용평리의 장연호와 무계리의 무계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세종 때에 창건된 경성향교가 교육기관의 시초이다. 그 뒤 1666년(현종 7) 어랑면에 창렬사 촉룡당(燭龍堂)을, 1670년에는 거유 박흥종(朴興宗)의 출생지인 주북면에 화곡서원(華谷書院)을, 1722년(경종 2)에는 함경감사 윤헌주(尹憲柱)가 경성읍에 정북사(靖北祠)양헌당(養賢堂)을 병설하여 많은 유생을 교육시켰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0년 우국지사 이운협이 경성읍에 유지의숙(有志義塾)을 창설한 것이 관북 지방 개화 교육의 시초이며, 뒤에 함일학교로 개칭하여 심상과·중등과·사범과·측량과·농림과 등을 개설하였으며, 특히 애국정신 함양에 힘썼다. 독립 유공자인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徐一), 북만군민회 사령관 안무(安武)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그리고 함일학교의 영향으로 도내 각지에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경성공립보통학교와 1921년 어랑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어, 그 뒤 1면1교의 교육 체제를 갖추었다.
1918년에는 경성공립농업학교, 1922년에는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23년에는 선각자 오억(吳億)이 중등 교육기관인 동명의숙(東明義塾)을 세웠고, 1941년에는 어랑면 단독으로 지방민의 희사금과 종중 재산을 모아 어랑사립중학교를 설립하였다.
1945년 현재 군내의 교육기관은 유치원 4개소, 초등학교 22개교, 농업학교 1개교, 중고등학교 2개교이다. 종교 상황은 불교는 함경남도 구주사의 말사로 3개 사찰이 있고, 기독교는 캐나다 계통의 장로교 교회 5개가 있어 각종 복지사업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고장의 설화는 〈치성전설 雉城傳說〉과 〈장연호전설〉이 전한다. 경성은 옛날 우롱이 또는 목랑고 등으로 불러오다가 1398년에 경성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뒤 속칭 치성이라고도 한다.
세종 때 함길도도절제사 김종서가 경성읍의 성터를 정하려고 여러 날 고심하고 있는데, 어느 눈 내리는 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성터는 내일 아침 꿩 발자국을 따라서 정하라고 일러 주었다.
다음날 살펴보니 과연 눈 위에 뭇 꿩이 밟은 자국이 있었으므로 그 자리를 따라 성을 쌓았는데, 이 때문에 성의 이름을 치성이라 하고 마을 이름까지 치성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군내 어랑면에는 크고 작은 연못 5개가 있는데, 그 중 장연호는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큰 자연호이다. 이 못에는 전국에 퍼진 ‘장자못’ 유형의 ‘장지아비’의 전설이 전한다.
아득한 먼 옛날 이 못 자리에 장지아비라는 큰 부호가 살았는데, 어찌 인색한지 구걸하거나 곡식을 빌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쌀 한 톨 주지 않고 오히려 크게 호통을 치며 내쫓기 일쑤였다.
하루는 노승이 와서 동냥을 하는데 시주는 고사하고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내쫓으므로 이 광경을 보던 며느리가 하도 딱하여 시아버지 몰래 노승에게 시주를 하였다.
그러자, 노승이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부터 몇 시간 후면 그대의 집터가 없어지고 가족이 몰살될 터이니 부인은 내 뒤를 따라오되 뇌성벽력이 있더라도 절대로 집을 뒤를 돌아보지 말라. ”고 당부하였다.
며느리는 즉시 약간의 보화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노승을 따랐는데 약 20리쯤 가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났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때 장지아비의 집터와 그 넓은 전답은 일순에 장연호로 변하였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는데 바위 모습이 마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아서 광주암(廣周巖)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고장 민요로는 함경도 대표적인 민요 〈애원성〉이 애조를 띤 사설과 가락으로 널리 불렸다. 농업노동요로는 〈상사노래〉가 불렸고, 여성들 노동에 두루 불리는 〈시집살이노래〉는 “성님 오네 성님 오네 분고개로 성님 오네”라고 시작하여 갖은 산나물 반찬을 마련하여 대접한다는 것으로, 사설이 특이하다. 이 밖에도 어린이들의 유희요 등이 불렸다.
민속놀이로는 궁사(弓射)놀이가 있었지만 근래 자취를 감추었고, 사자탈을 쓰고 춤추는 ‘사자놀이’가 이 고장에서도 행해졌다. 정월을 전후해서는 윷놀이가 성행하는데, 남도의 장작윷과는 달리 강낭콩에 금을 새긴 콩윷을 쓰며 추운 지방이므로 집 안에서 논다.
추석보다는 단오를 소중히 하며 단오에는 씨름과 그네뛰기가 성행하고, 널뛰기는 정월과 단오에 한다. 그 밖에 연날리기·팽이치기·돌차기·자치기 등의 풍습이 있다.
이 고장에서는 산천제(山川祭)를 지내는데 제신은 산천신이며, 제삿날은 대개 음력 정월 초정일(初丁日) 또는 중정일(中丁日)로 정하여 마을 전체가 참여한다. 제사의 목적은 마을에 맹수가 횡행하거나 질병이 유행하는 등의 재해를 없게 하고 길상(吉祥)과 안도의 가호가 있기를 축원하는 데 있다.
제단은 임시로 노목이나 바위가 있는 정결한 곳을 택하여 만들며, 제수나 기타 모든 준비는 도가 또는 이장 집에서 미리 선정된 소임 여럿이 이를 행한다.
돼지머리와 시루떡·술·쌀 등을 제물로 바치며, 각 가정에서는 밥 한 그릇씩 지어 올린다. 백지에 ‘산천지신위(山川之神位)’라고 써서 목판에 붙인 신주를 제단 가운데에 모시고 제물이 진설되면 마을에서 선출된 세 헌관이 분향헌작한 다음, 축문 낭독이 있고 일동이 배례하며 소지(燒紙)로써 행사는 끝난다.
제례 뒤에는 그 자리에서 음복의 회식이 있고 제물은 집집마다 나누어 준다. 오촌면의 산천제는 ‘부근치성’이라고도 하며, 동북산록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음력 정월·7월·11월 중 산신이 내려오는 날(天機大要에 의하여 날을 잡음.)에 헌관 3인과 집사 2인이 3일간 도가에서 함께 숙식을 하며 제사를 지낸다.
제물이 준비되면 소찬으로 토지신에게 먼저 제사를 올리고, 다음 육찬으로 본제단에 제사를 드린다. 원래 제물용 고기로 정월과 11월에는 돼지고기, 7월에는 쇠고기를 썼으나 일제 강점기 말에는 닭고기로 대신하였다.
이 군은 거의 산지이므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성하다. 총농경지는 463.60㎢로 이 중 논 109.37㎢, 밭 354.23㎢(1943년 현재)이며, 벼농사는 주로 해안 평야 지대에서 이루어진다. 어랑쌀·배추·배 등은 품질이 좋다.
어랑천은 중·상류로부터 사행하면서 많은 운반물을 하류에 퇴적하여 범람원을 이루는데, 이곳의 토양은 미세한 사양토이며 부식의 함량이 많아 비옥하다.
옛날부터 관개시설이 잘되어 전천후 농업이 가능하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매우 많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은 함경북도 일대에서는 가장 우수한 쌀로서 높이 평가될 정도로 미질이 우수하다.
동해 연안에 독진·온대진·어대진 등의 어항이 있어서 명태·대구·고등어·꽁치·정어리·문어·임연수어·게·가자미·낙지 등 여러 종류가 잡힌다. 어대진에는 통조림 및 어유공장이 있다.
주을·용현·삼향에서는 석탄이 채굴되며, 생기령(生氣嶺)에서는 고령토와 유연탄이 채굴되어 일찍부터 요업이 발달하였다. 고령토는 화강암 또는 화강편마암에서 분해된 것으로, 제3기 층 화강암 중간에 성층(成層)을 이룬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에서 생산되는 고령토는 불순물이 70% 이상 함유되어 있으나, 생기령에서 생산되는 고령토는 불순물의 함유량이 25%에 지나지 않으며, 내화도가 강하여 전국에서 가장 좋은 품질로 평가된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여 도자기·내화연와의 원료로서 청진·서울·부산 등지와 일본에 많은 양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한편, 주을읍 직동의 생기령탄광, 용교동의 주을탄광, 오류동의 용현탄광 및 주남면의 삼향탄광 등에서 생산되는 갈탄과 삼향탄은 케이블카로 명천·영안 인조석유 공장의 원료탄으로 공급되고, 생기령탄전은 주을읍과 경성읍 사이 중간 지점의 함경선 철도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대문동탄전과 주남탄전의 지질은 길주명천지구대내에 발달한 제3기 층이며, 생기령탄전의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을 기반으로 하여 퇴적된 제3기 층에 속한다. 유연탄층의 상하층은 사암과 역암(礫巖)이며, 그 사이에 함탄층이 있다.
특히, 셰일층에서는 많은 식물화석이 산출되기도 한다. 석탄층의 두께는, 지역적인 차이는 있으나 대략 3, 4m 정도이다. 탄질은 흑휘탄(黑輝炭)이며, 점결성(粘結性)이 적어서 코크스 제조에는 부적당하고, 가정이나 공장의 연료용 또는 석탄액화에 적당하다.
휘발분은 40∼46%이고, 고정탄소는 35∼42%이며, 발열량은 약 4,000cal이다. 매장량은 주남탄전이 1017만t이며, 생기령탄전은 2240만t(1935년 현재)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연탄은 주로 함경선을 이용하여 청진·성진·나남·경성 등지에 수송된다.
변방 지대인 경성은 일찍부터 국제 교역에서 중요한 구실을 담당, 1406년(태종 6) 여진과의 교역을 위한 무역소를 설치하여 번창하였으나, 1923년함경북도 도청이 나남으로 이전한 뒤로는 상업적 기능이 정체되었다.
1943년 현재 경성·주을·회문·수남 등 4개의 정기시장이 있다. 경성시장은 6일장으로서 읍장(邑場)이라고도 하며, 경성면에 위치한다. 가축 시장과 일반 시장이 구분되며, 가축 시장에서는 소·말·돼지가 거래되고, 일반 시장에서는 농수산물과 일반 잡화가 거래된다.
주을시장은 5일장으로, 주을읍에 위치한다. 산간벽지에서 채집된 송이·산나물·약초 등과 수산물이 집하되고, 부근에 온천 지대와 탄광 지대가 있어 매매 물량이 경성군 제일이다.
회문시장은 주북과 주남을 시장권으로 하는 5일장이며, 산간지대의 특산물과 수산물이 주로 거래된다. 수남시장은 어랑면에 위치하는 가축 시장으로, 주로 소가 거래된다.
함경선이 지역 경제의 성장에 큰 구실을 한다. 이 군에는 용현(龍峴)·독진(獨津)·회문(會文) 등의 해수욕장과 온보온천(溫堡溫泉) 등이 있고, 산세도 아름다워 관광객 및 요양객이 여름과 겨울에 많이 찾는다.
[어대진읍 漁大津邑]
군의 남동단에 위치한 읍. 면적 25.00㎢, 인구 1만 8204명(1943년 현재). 읍 소재지는 송신동이다. 동쪽과 북쪽은 동해에 임하고, 서쪽과 남쪽은 어랑면과 접한다.
본래는 어랑면의 한 동리인 송신동으로서 속칭 어대진이라는 어촌이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 도내 굴지의 어업 기지로 급격히 발전하여 1940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어대진은 경성만(鏡城灣)의 남쪽 반도에 위치하고, 양제산(楊濟山, 208m)이 해안까지 돌출하여 천연 방파제 구실을 하므로 동해의 거센 파도를 피할 수 있으며, 수심도 깊은 천연적인 양항이다.
동남쪽의 해안선은 해식애를 형성하였으며, 시가지는 동남쪽을 향하여 완만한 경사의 대지 위에 발달하였다. 북부는 어랑천이 동해로 유입하는 하구의 충적평야로서 쌀 생산이 많으며, 배추·양배추·무·우엉·감자 등의 각종 야채류 재배가 성하다.
연안 일대에는 플랑크톤이 많이 서식하고, 근해에서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므로 어족이 풍부하다. 주된 어획물은 명태·대구·고등어·꽁치·임연수어·문어·게·정어리·미역 등이며, 수산 가공물로서는 건어(乾魚)·염어(鹽魚)·명란·창란·어비(魚肥)·유지(油脂)·통조림 등이 생산된다.
함경선이 읍내를 통과하며, 구 용평역(龍坪驛)인 어대진역으로부터 읍내 시가지까지 약 5㎞의 구간은 도로로 연결된다. 또한, 어대진항은 동해안에 돌출하여 지리적으로 북방의 청진·나진·웅기 등의 항구와 면의 두만강 하구까지 직선거리에 있으므로 연안 해운의 중요 기항지 구실도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송신(松新)·송흥(松興) 의 2개 동이 있다.
[주을읍 朱乙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772㎢, 인구 3만 1150명(1943년 현재). 읍 소재지는 온천동이다. 동쪽은 동해에 임하고, 서쪽은 무산군 면사면, 남쪽은 주북면과 주남면, 북쪽은 경성면과 무산군 어하면과 접한다.
옛 이름은 주을온면(朱乙溫面)이었으며, 주을온은 줄온(0x9764溫)에서 비롯되었고, 줄온은 여진 말로 온천을 뜻한다. 1940년 읍으로 승격되면서 주을로 바뀌었다.
북쪽과 서쪽은 함경산맥의 주봉인 관모봉을 비롯하여 험준한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심산유곡의 산악 지대를 이룬다. 관모봉 동쪽에서 발원한 주을천과 남쪽 계곡을 흐르는 보로천(甫老川)이 하류에서 합류하여 충적평야를 이루며, 하천유역에서는 벼농사가 성하다. 생기령·주을·용현 등 여러 갈탄광산이 있으며, 내산성 자기 공장(耐酸性磁器工場)과 아마 공장 등이 있다.
동해안의 차향동에 위치한 온대진은 연안어업의 기지로 명태·대구·고등어 등의 각종 수산물이 어획되며, 서북부 산악 지대에서는 목재와 각종 임업 부산물이 생산된다.
예로부터 국내 제일의 온천 지대인 온보온천·역전온천(驛前溫泉)·성정온천(城町溫泉)·천평온천(天坪溫泉) 등은 모두 라듐천으로 용출량이나 수온은 물론 주위 풍경이 아름다워 우리 나라 팔경의 하나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가 있다.
온천(溫川)·봉파(鳳坡)·중향(仲鄕)·상칠(上七)·중칠(仲七)·용산(龍山)·용교(龍郊)·육향(六鄕)·팔향(八鄕)·직(直)·연향(蓮鄕)·일향(一鄕)·초향(初鄕)·차향(次鄕)·중평(仲坪)·용현(龍峴)·오류(五柳)·영강(永康)·용천(龍川)·이암(梨巖)·대향(大鄕)·하면(河面)·화하(花下)·화상(花上)·도암(道巖)·청암(靑巖)·보암(甫巖)·회(檜)·매향(梅香)·보상(甫上) 등 30개 동이 있다.
[경성면 鏡城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690.02㎢, 인구 2만 3346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일리동이다. 서북쪽에 남하석산·북종봉(北宗峰, 1,368m)·대연곡산·고성산 등의 험준한 산이 솟아 있고, 그 기슭에서부터 발원한 오촌천과 구덕천(九德川)이 동류(東流)하여 하류에서 충적평야를 이루고 동해로 들어간다. 평야 지대에서는 채소와 과일 등 원예작물을 재배하며, 수묘포(樹苗圃) 경영이 발달하였다.
서북부 산간지대에서는 목재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다. 근해에는 플랑크톤이 많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여 어족이 풍부하다. 주요 어획물은 명태·대구·고등어·꽁치·임연수어·문어·게·미역 등이며, 주요 어항은 독진이다.
독진항은 경성면 시가지와 3㎞, 나남시와는 8㎞ 지점에 있으며, 배후도시를 잇는 도로가 개설되어 일찍이 동해안 여러 지역과 교역을 하였다.
주요 기관으로는 군청·원잠종제조소·농사시험장·종축장·삼림보호구 등이 있다. 경성읍성은 세종 때 김종서가 축성한 것으로서 성벽과 문루가 남아 있다.
그 밖에 오촌천 하구에 돌출한 높은 절벽 위에는 고려 윤관(尹瓘)의 북벌기념비각인 원수대가 있고, 서남쪽 운주산(雲住山)에는 여진의 토성지와 관해사(觀海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 중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일리(一里)·수성(壽星)·승암(勝巖)·오상(梧上)·아양(阿陽)·회향(檜鄕)·구덕(九德)·봉남(鳳南)·박중(朴中)·박하(朴下)·박상(朴上)·소(巢)·성남(城南)·성북(城北)·독연(獨淵)·원향(元鄕)·용포(龍浦)·남부(南部)·용천(龍川)·남석(南夕)·봉암(鳳巖)·직두(直頭)·어유(魚遊)·부윤(富潤) 등 24개 동이 있다.
[어랑면 漁郎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79.28㎢, 인구 1만 8100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강동이다. 면의 형상은 표주박형으로 서부는 좁고 긴 계곡이고 동부는 넓은 평야로 이루어졌다.
주변부는 낮은 구릉이 기복되어 있고, 다만 동남단 해변에 강릉산이 솟아 있다. 주남면에서 흘러온 어랑천이 면의 중앙을 관류한다.
어랑천과 명간천(明澗川)이 합류하는 하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인 어랑평야가 전개된다. 어랑평야에서는 양질의 쌀이 생산되며, 배와 배추의 명산지로도 이름이 높다.
동해안에 위치한 사진(沙津)·이진(梨津)·오상진(五常津) 등의 어항에서는 많은 수산물이 어획된다. 어랑천 하구에는 풍경이 아름다운 장연호와 무계호가 있고 무계호의 주변에는 창렬사와 팔경대(八景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 중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봉강(鳳岡)·오상(五常)·이암(梨巖)·무계(武溪)·지방(芝坊)·하남(河南)·용평(龍坪)·호양(湖陽)·하우(河隅)·용천(龍川)·용강(龍岡)·장연(長淵)·이엄(二崦)·부산(富山)·용양(龍陽)·화룡(花龍)·교향(橋鄕) 등 17개 동이 있다.
[주남면 朱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44.72㎢, 인구 1만 2054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전동이다. 서북쪽에는 함경산맥의 높은 봉우리인 궤산봉(机山峰, 2,277m)·투구봉[兜峰, 2,335m]·궤상봉(櫃床峰, 2,333m)·만탑산 등이 있고, 서남쪽에는 감토봉(甘吐峰, 1,584m), 북쪽 중앙부에는 연대봉 등이 솟아 있다.
또, 서부 오지에는 국내 3대 대지(臺地)의 하나인 광덕이 있으며, 대부분이 산악 지대이다. 함경산맥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어랑천 상류와 주남천 유역에 약간의 농경지가 있다.
농산물로는 쌀·조·피·수수·기장·옥수수·콩·팥·강낭콩 등이 주로 생산되며, 서북 산간지대에서는 귀리·메밀·감자 등이 주곡으로 재배된다. 함경산맥 동쪽의 고랭 지대에는 고산장과(高山醬果)로 유명한 들쭉이 자생하여 청량음료의 원료로 이용된다.
지하자원으로는 삼향동탄광에서 갈탄을 생산하여 주로 영안인조석유공장의 원료탄으로 공급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용전(龍田)·생룡(生龍)·선경(仙境)·용담(龍潭)·남평(南坪)·광덕(廣德)·신운(新雲)·삼포(森浦)·칠향(七鄕)·이향(二鄕)·삼향(三鄕)·용암(龍巖)·대문(大門)·일암(一巖)·오산(吾山)·자산(紫山)·소요(所要)·수남(水南)·부평(富坪)·화우(花隅) 등 20개 동이 있다.
[주북면 朱北面]
}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0㎢, 인구 1만 5040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중동이다. 동쪽은 동해에 임하고, 서쪽은 주남면, 남쪽은 주남면 및 어랑면과 접하고 있다. 본래 주촌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주북·주남의 2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북쪽에는 황부리봉(皇府里峰, 922m)·백사봉(白沙峰, 1,479m)·북황세령(北黃細嶺, 1,333m) 등 높은 산이 줄지어 있다. 서북쪽의 남하·금곡 일대에는 검의덕(黔宜德)이라 부르는 넓은 대지가 있다.
보화보 부근에서 발원하여 면 중앙으로 흘러 들어가는 주북천은 유로가 26㎞이며, 남쪽에 주남천 하류가 흐른다. 이 두 하천 유역과 동해 연안의 평야 지대는 농경지로 이용되고, 해안을 따라 함경선이 통과한다.
평야 지대의 농산물로는 쌀·조·피·보리·수수·옥수수·콩 등이 생산되며, 서부 산간 내륙에서는 귀리·메밀·감자 등이 생산된다.
일찍이 농사 개량이 잘되어 유축 농가가 많으며 채소 재배가 발달하였고, 가을 배추와 무의 품질이 우수하여 도시에 대량 반출된다. 지하자원으로는 운곡탄광(雲谷炭鑛)이 개발되고 있다.
연안 최북단의 접왕은 면내 유일의 어촌으로 각종 어패류가 생산되며, 임진왜란 때 두 왕자가 피난길에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지명을 접왕이라 한다.
회문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십리장정의 솔밭과 해당화가 아름다워 해수욕장으로 이름 높으며, 회문역전의 문암(文巖)은 벚꽃의 명소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용중(龍仲)·금곡(金谷)·남하(南河)·득마(得馬)·암광(巖光)·청송(靑松)·용호(龍湖)·용연(龍淵)·화곡(花谷)·영원(永院)·두남(斗南)·운곡(雲谷)·접왕(接王)·시남(柴南)·부하(富下)·회문(會文)·남천(南川)·하고(下古)·화산(花山)·이룡(利龍)·용산(龍山)·상고(上古) 등 22개 동이 있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군의 남부 지역인 어랑면·주복면·주남면이 분리되어 어랑군이 신설되었으며, 어대진읍·주을읍·경성면으로 읍·면이 폐지되고 경성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1953년 12월 도리와 온천리가 주을리에, 장평리 일부가 목성리에, 보상리가 대향리에 편입되었다. 1967년 10월 중봉리가 중봉노동자구로 개칭되었다. 1977년 11월 함경북도에서 분리, 청진시로 편입되었다가 1985년 다시 함경북도에 편입되었다.
군의 북쪽은 청진시·무산군, 서쪽과 남쪽은 연사군·어랑군과 접하여 있으며, 동쪽은 동해에 면하여 있다. 동경 41°15′∼41°58′, 북위 41°27′∼41°52에 위치하며, 면적은 1,220㎢, 인구 11만 여 명이다(1996년 현재).
행정구역은 경성읍과 생기령(生氣嶺)·승암(勝巖)·용천(龍川)·박충(朴忠)·하온보(下溫堡) 등 5개 노동자구, 용현(龍峴)·중평(仲坪)·온대진(溫大津)·일향(一鄕)·상온보(上溫堡)·용산(龍山)·관모(冠帽)·매향(梅香)·대향(大鄕)·하면(河面)·화하(花下)·오상(梧上)·남석(南夕)·장평(長坪)·독연(獨淵) 등 15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경성읍이다.
이 군은 해안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함경산맥이 뻗은 서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더 높고 험한 산지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관모봉(2,540m)을 비롯하여 도정산(2,199m)·궤산봉(2,277m) 등 2,000m를 넘는 산들이 솟아 있다. 지세는 서부에서 동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동해안에는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천은 북부에는 오촌천이, 중부에는 온포천이, 남부에는 포로천이 흐르는데, 모두 서쪽 산지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된다.
주요 기반암은 관모융기지괴에 속하는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으며, 토양은 대부분 갈색산림토와 산악표백화 갈색산림토가 분포되어 있다. 해안선은 경성만의 일부로서 단조롭고, 해심(海深)이 비교적 깊다.
기후는 연평균 기온 6.6℃, 1월 평균 기온 ·8.1℃, 8월 평균 기온 21℃이며, 첫서리는 10월 4일경, 마감서리는 5월 5일경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650㎜, 연중 안개 일수는 45일 정도로 봄과 초여름에 안개가 자주 낀다.
산림은 군 전체 면적의 90%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이깔나무·잣나무·분비나무·참나무·박달나무·사스레나무·봇나무 등이다. 서부 고산 지대에는 노랑만병초·누운잣나무 등 고산식물들과 왕대황(王大黃 : 장군풀)을 비롯한 약용식물들이 자란다. 특히, 강변에는 우리 나라 특산종의 하나인 채양버들이 많다.
하천유역과 해안을 중심으로 펼쳐진 평야 지대에 농업이 발달하여 쌀·옥수수와 각종 채소가 생산되고 있다. 쌀은 도내 총생산량의 57%, 옥수수는 32.8%를 차지한다. 승암·일향 일대에서 배추·고추·가지·오이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과수 면적은 군 경지면적의 5.5%로서 배·복숭아·사과 등이 생산된다.
피마자누에고치는 도 생산량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축산업은 소·돼지·면양 사육을 기본으로 토끼와 꿀벌도 널리 치고 있다. 군내에는 연산 1천만 개의 계란 생산 능력을 가진 경성닭공장과 주을닭공장이 있다.
경성만 앞바다에서는 명태·청어·도루묵·대구·멸치·낙지 등이 많이 잡히고, 굴·조개·미역과 다시마 등이 양식되고 있다. 군내에는 도자기 공업의 원료인 양질의 고령토와 석탄 자원이 풍부하여 도자기 생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점토를 생산하는 생기령광산과 주을전기공장·경성사기그릇공장·주을도자기공장·생기령요업공장 등이 있다. 각종 고품질의 고급 도자기를 생산하여 국내 수요는 물론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주을전기기계공장·주을전기공장에서는 여러 가지 전기 애자를 생산하고 있다. 그 밖에 갱목사업소와 아마공장에서는 철도 침목과 밧줄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망은 해안선을 따라 평라선 철도가 지나고, 청진·어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또 경성만의 어항을 연결하는 해상 항로도 있다. 북부 지역의 온포천을 따라 개발된 온천들은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이름난 관광 명소이자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온천으로는 상온포리의 온포온천, 하온포리의 경성온천, 관모리의 성정온천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관모봉과 조백산은 한국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명승지로서, 휴양소와 요양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승암노동자구에 1107년(고려 예종 2)에 축조된 경성읍성과 경성남문이 있다. 군사·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경성읍성은 1672년(현종 3) 개축되었으나, 현재는 남문(수성문)과 성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읍성의 남쪽에는 관해사가 현존해 있다. 그 밖에 1437년(세종 19) 윤관·김종서 등 동북 지방의 국방에 공이 컸던 장군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정북사라는 사당이 있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함북농업대학·주을공업대학·온포고등중학교·생기령고등중학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