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고흥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고흥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동남부 해안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동남부 해안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순천만을 건너 여수시, 서쪽은 보성만을 건너 보성군·장흥군·완도군과 마주보며, 남쪽은 제주해협과 임하고, 북쪽은 보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05′∼127°40′, 북위 34°18′∼ 34°50′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807.35㎢이고, 인구는 6만 7656명(2016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4개 면, 515개 행정리(13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다.

자연환경

고흥반도와 벌교읍간의 지협 사이로 소백산맥의 줄기가 뻗어 내려와 산이 62.4%를 차지할 정도이나 대부분이 500m 내외의 낮은 구릉이다. 동쪽에 팔영산(八影山, 609m), 중앙에 운람산(雲嵐山, 487m), 남서쪽에 조계산(曹溪山, 473m)과 천등산(天登山, 554m), 남쪽에 마복산(馬伏山, 539m) 등이 솟아 있어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은 지형이다.

팔영산은 영남면 양사리에 있는 고흥군의 진산으로서 원래 팔전산(八顚山)이라고 했으나 중국 위왕의 세수대야에 팔봉이 비치어 신하들을 보내어 찾아 나서게 해 고흥반도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위용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다는 고사에 의해 여덟 봉우리를 의미하는 팔영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또 산봉우리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졌다고 해 팔영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고종대에 편찬된 『흥양읍지(興陽邑誌)』에 의하면 유영봉(幼影峯)·군선봉·성주봉(聖主峯)·천주봉(天主峯)별봉·팔응봉(八應峯)·일출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자락에서 많은 암자와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산세가 수려하고 신비해 신흥종교가 한때 득세하였다. 해발 609m의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암봉과 암봉 사이가 수직에 가까운 암벽 바위여서 험준한 느낌을 준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의 봉수대(烽燧臺) 흔적이 남아 있다. 그 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푸른 바다와 엎드려 있는 섬들의 절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산의 남동지역에 자연휴양림이 펼쳐 있으며 그 아래 남열해수욕장이 있다. 큰 강이 없어 물 사정이 좋지 않다.

주요 하천으로는 고흥읍의 고흥천·송산천·양사천, 동강면의 오월천(梧月川)·매곡천(梅谷川), 점암면의 성기천(聖基川)·팔영천(八影川)·금사천(錦蛇川)이 있으며 낮은 구릉에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어서 유역 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다. 해안선이 매우 복잡해 득량만·순천만·여자만·해창만 등의 만이 많다.

해안지역에 개펄이 발달해 이들의 많은 부분이 간척사업으로 농지로 변모하였다. 특히, 도양읍 오마도(五馬島)와 포두면 해창만을 중심으로 한 간척지가 대표적이다.

도서로는 유인도 23개, 무인도 207개가 있다.

난대성 기후의 특성이 뚜렷해 연평균기온은 13.9℃이며, 연강수량은 1,558㎜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은 발견된 바 없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은 봉래면 외나로도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와 군의 전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군, 고인돌 아래에서 발견된 간돌칼·김해토기편·간돌화살촉·돌도끼·잔무늬거울·세형동검편 등이 있으며 도화면 일대에서는 석실분이 발견되고 있다.

마한의 54국 중에 초리국(楚離國)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 이 지방은 분차군(分嵯郡: 낙안)의 영역에 속했고 비사현(比史縣: 지금의 동강)·조조례현(助助禮縣: 지금의 남양)·두힐현(豆肸縣: 지금의 두원) 등의 여러 현이 있었다. 신라시대를 통해 이들 현 외의 고흥지역은 보성군에 소속된 부곡지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장흥부에 속한 묘부곡(猫部曲, 혹은 高伊部曲)과 보성군의 타주부곡(他州部曲)·식촌부곡(食村部曲)·도량부곡(道良部曲) 및 보성군의 속현 태강현(泰江縣: 지금의 동강)·남양현(南陽縣: 지금의 남양)·두원현(荳原縣: 지금의 두원) 등의 여러 행정단위가 존재하였다.

1285년(충렬왕 11)묘부곡 출신 유비(柳庇, 또는 柳淸臣)가 몽고어에 능통해 자주 원나라에 사신으로 내왕하면서 능란한 외교수완을 발휘해 국왕의 총애를 얻게 되자 고이부곡(묘부곡)을 고흥현으로 승격시켰고 비로소 감무를 두게 되었으며, 보성군의 식촌부곡과 장흥부의 도량부곡을 거느리게 되었다. 고려 말의 인물로는 왜구의 격퇴 및 내정에 큰 업적을 남긴 유탁(柳濯)이 유명하다.

1395년(태조 4)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현치소를 보성군의 속현 조양(兆陽)으로 옮기게 되었다. 1397년 진을 설치해 병마사로 하여금 판현사(判縣事)를 겸하게 했다가 1423년(세종 5)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바꾸어 지현사(知縣事)를 겸하도록 하였다. 1441년장흥부의 속현인 두원현으로 다시 옮겨갔다가, 보성군의 남양현 및 동강·풍양·도화 등의 여러 현을 편입시켜 고흥과 남양의 이름을 따 흥양현(興陽縣)으로 개정하였다. 이 때 흥양읍성을 쌓았다.

예하에 발포진(鉢浦鎭)·사도진(蛇渡鎭)·여도진(呂渡鎭)·녹도진(鹿島鎭) 등의 4영을 거느렸는데, 이 영들은 1480년(성종 11)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좌수영 소속이었다. 1587년(선조 20) 왜구 침입시에 녹도만호 이대원(李大源)과 군관인 박관·박면 등이 전사했는데 이들을 기려 쌍충사가 세워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송대립(宋大立)의 의병군이 한천령에서 왜군을 무찔렀다. 이때의 일을 추모하는 한천령노래가 전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대마도정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유습(柳濕) 또한 유명하다.

1894년(고종 31) 동학운동 때는 유희도(柳希道)·구기서(具起瑞)·송연호(宋年浩) 등이 이끄는 3,000여 명의 동학군이 백산전투에 참여했으며, 이어 9월의 재봉기 때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1895년의 관제개혁 때 흥양군으로 되어 13개면을 관할하였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는 신기휴(申基休)·이병태(李秉泰) 등의 의병장이 활약하였으며, 1906년 이근택(李根澤) 암살사건의 주모인물 기산도(奇山度)가 도화면에 거주하면서 교육활동에 종사했고 3·1만세시위도 주도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흥양에서 다시 고흥군으로 개칭되었고 완도군에 소속된 득량도와 돌산군 소속의 금산·봉래·옥정 등의 면을 편입해 13개 면 132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1만세시위 때는 오석주(吳錫柱)·신의구(申義求) 등이 주도해 4월 14일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이 고장 출신 김재용(金在鎔)이 순국했는데, 그의 사적비가 과역면 과역리에 세워졌다.

1948년 여수·순천에서 일어난 반란사건의 여파로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1973년 7월 1일 도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 고흥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2월 15일 도양읍 도덕출장소가 도덕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동강면 장도리가 보성군 벌교읍으로, 풍양면 시산리가 도양읍 시산리로, 금산면 신촌리 일부, 즉 상화도와 하화도가 도양읍 봉암리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금산면 오천출장소가 신설되었다.

1986년 4월 1일에 점암면 양사출장소가 산내면으로 승격되고, 1987년 1월 1일에 도양읍 소봉리를 봉서리로, 풍양면 월동리를 영호리로 개칭했으며, 1989년 4월 1일에 산내면을 영남면으로 개칭하였다. 1990년 7월 1일에는 봉래면 내도출장소가 동일면으로 승격되었으며, 7월 19일에는 포두면 송산리 송산출장소가 설치되고, 8월 1일에는 보성군 벌교읍 장도리 중 죽도가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로 편입되었다. 1999년 1월 14일에는 포두면 송산리 송산출장소와 금산면 오천출장소가 폐지되었으며, 2001년 4월 28일에는 우주센터 지원사업소가 설치되었다.

유물·유적

고인돌이 1,000여 개 이상 있고, 유물로는 두원면 운대리 출토 비파형동검편·석검과 소록도 출토 구리거울·돌도끼·돌살촉을 비롯해 반월형돌칼·유구석구 등 많은 석기류가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인 석실분이 도화면 봉룡리와 당오리에 있다.

또 동강면의 고흥 유둔리 덕암지석묘(전라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 남양면의 고흥 중산리 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 과역면의 고흥 과역리 민등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 고흥 도청리 지석묘군(전라남도기념물,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성곽으로는 고흥읍 옥하리에 흥양현 읍성(전라남도 기념물, 1978년 지정), 도화면 내발리에 고흥 발포진성(전라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녹도진성·여호진성 등의 수군만호성과 봉래산성·남양산성·봉림산성, 남양면의 남양리 산성(전라남도 기념물, 2002년 지정), 고흥 독치성(전라남도 기념물, 2002년 지정), 도화면 신호리의 백치성(전라남도기념물, 2002년 지정)·고흥 오치 음성(전라남도 기념물, 2002년 지정) 등의 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점암면 성기리의 능가사에 능가사 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능가사 사적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능가사 대웅전(보물, 2001년 지정)·능가사 목조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사천왕문·석탑 등이 있으며, 포두면 봉리리금탑사에 금탑사 괘불탱(보물, 2002년 지정)·금탑사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 두원면에 고흥 용산리 석조보살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도화면 봉룡리에 마애불, 신호리한사(寒寺) 입구에 찰간(刹竿) 등이 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능가사·금탑사·수도암 외에 흥덕사·제석사·용흥사·송광암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고흥읍 행정리에 고흥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동일면 덕흥리에 덕양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과 사우로는 두원면 신송리에 고흥무열사(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를 비롯해 풍양면 상림리에 대성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보천리에 금성사, 과역면 석봉리에 봉암사, 도양읍 봉암리에 고흥 쌍충사(전라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 대서면 화산리에 충강사·성산사·숭양사·고흥서동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송씨쌍충일렬각(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동강면 마륜리에 고흥송씨쌍충정려(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신여량장군정려(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 고흥읍 옥하리에 고흥존심당 및 아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고흥 옥하리(수구) 홍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 남계리에 고흥남휘루(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등이 있다.

문헌으로는 두원면 대전리에 고흥이충무공친필첩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가 남아 있다. 도요지로는 고흥운대리도요지(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1972년 지정), 고흥 외나로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989년 지정), 영남면 금사리의 은행나무, 고흥향교 내 은행나무, 고흥읍 남계리의 느티나무, 과역면 도천리의 팽나무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고흥읍 행정리에 있는 고흥향교는 1441년(세종 23)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현의 서문 밖에 있었으나, 1587년(선조 20)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지방의 최고 교육기관인 향교의 교육기능이 약화되자 조선 중기 이후부터 서원과 사우의 설립이 두드러졌는데, 동일면 덕흥리의 덕양서원과 재동서원을 비롯해 현재 16개의 사우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51개소가 있었다고 하며, 근대교육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폐쇄되었으나 그 중 일부는 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고흥읍 호형리의 한문서당은 폐지되는 대신, 신충구(申忠求)·송주성(宋柱星) 등 지방유지들에 의해 1910년 고흥사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이 학교는 이 지방 최초의 근대식 학교로서 1911년 고흥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고 현재의 고흥동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이후 광복 이전까지 10여 개의 초등학교가 세워졌으나 일본의 우민화정책 때문에 중등 이상의 학교는 단 1개 교도 인가되지 않았다. 민족항일기인 1935년 이 지방 주민들에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농업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연한 1년의 고흥사립농업실수학교(高興私立農業實修學校)가 유지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비정규학교로서 농촌 자제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다가 1944년 5월 2년제의 공립농업실수학교로 바뀌었으며 이후 오늘의 고흥중학교가 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문화 시설로는 공공도서관 3개 소, 공연시설 1개 소가 있다. 종교 시설로는 불교사찰 27개, 원불교교당 1개, 천주교성당 6개, 개신교교회 162개 등이 있다.

민속

이 지방의 민속놀이는 인근지역과 비슷하다. 정월대보름이면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며 연운을 기원하였다. 이 때 달빛이 밝고 사방이 두터우면 풍년, 붉고 엷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또 대보름에 저녁을 먹은 뒤 남녀노소가 함께 거리에 나와 다리밟기를 하였다. 다리 열두 개를 밟으면 다리가 튼튼해지고 발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한편 새해를 맞이하면 자식을 둔 부모들은 그 해 신수가 나쁜 자식을 위해 개울에 나가 오쟁이에 모래를 퍼담아 징검다리를 놓음으로써 액막이를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노두라 한다. 역시 정월이면 하천을 사이에 둔 이웃마을과 돌팔매로 돌싸움을 벌이며 노는데 으레 심한 부상자가 나오고, 처음에는 청년들이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대대적인 행사는 역시 정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매구굿이다. 이는 농악으로, 농기를 앞세우고 상쇠·징·장구·북·포수·화동(花童)·양반광대 각 1명과 소고 5명으로 편성된 무리가 마을의 당산제가 끝난 뒤 마을 공동우물 등 공동집합소를 거쳐 집집마다 돌며 굿거리를 친다. 이것을 이 지역에서는 매구친다고 하며, 매구꾼들이 집에 오면 주부들은 음식을 내어 대접하고 또 곡식을 내놓아 마을 공동경비로 쓰게 하기도 한다.

마을 전체의 동제는 당산제이다. 마을에서 덕망 있고 정결한 사람을 뽑아 제주와 유사로 삼고, 이들은 제사 이레 전부터 근신해 정월보름에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당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작을 기원하고 제사가 끝나면 동네 어른들이 제막에 모여 음복을 하고 갈린다.

설화·민요

이 지방의 설화로는 「쇠섬[牛島]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옛날 세상이 어지럽고 흉년이 겹쳐 민심이 흉흉한 때 책 읽기에 골몰하던 어느 가난한 선비가 혼인을 했는데, 그 아내가 절세가인이었다. 산간벽지라 살기 어려워 차라리 섬이 먹고 살기에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섬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빠지면 육지와 이어져 생활에 편리하였다.

하루는 뭍에 나간 남편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더니 사흘 만에 전장에 나간다는 서찰을 인편에 보내왔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전사의 기별이 날아들었다. 선비의 아내는 기별 받은 날로 기일을 정해 시묘를 했는데, 건너편 뭍에 사는 부잣집 아들이 그녀의 미색을 탐내어 묘막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얻고 싶거든 뒷산 상봉에 올라 동쪽을 보고 크게 소 울음소리를 세 번 내고 오라고 하였다. 부잣집 아들이 뒷산에 오르는 사이에 그녀는 옷고름으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이 슬픈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섬 이름을 쇠섬이라 불렀다.

한편 「용추와 용바위 전설」은 점암면 우천리 해변의 넓은 암반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서로 다투며 등천하기를 기다리던 두 마리의 용이 있었는데, 유시인(柳時仁)이라는 사람이 그 중 한 마리를 쏘아 죽이지 않으면 그 마을이 폭삭 망해버릴 것이라는 웬 노인의 현몽에 따라 용 한 마리를 쏘아 죽이고 마을을 구했다는 내용인데, 지금도 그 암반에는 용이 기어오른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또 두원면 용당리 구룡마을에 있는 미륵불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하루는 중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시어머니가 구박해 쫓아 보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지성으로 시주하였다.

중이 사례하며 미구에 큰 장마가 닥칠 것이니 몸을 피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하였다. 며느리는 중의 예언대로 무사히 홍수의 재난을 피하기는 했으나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탓으로 미륵불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화살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말을 목베고 나자 화살이 뒤따라 날아와 백마 등에 꽂혔다는 「송팔응(宋八應) 장군의 전설」, 갓난아이가 방 안에서 천장을 날고 좁쌀로 수많은 군졸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다 역적으로 몰려 한 팔을 베이자 자결했다고 하는 「봉대산 말바위터 박장사 이야기」, 하룻밤 인연으로 사랑에 빠진 어느 과부가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죽어 구렁이로 변신, 출세한 애인을 죽이려 했다가 도승이 지내준 위령제로 원한이 풀렸다는 「홍총각과 임과부의 이야기」 등 많은 전설이 있다.

산업·교통

고흥군은 농업이 주 산업이나 다도해의 어장과 양식업으로 인해 수산업이 발달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산업구조는 1차 산업이 3분의 2를 차지하며 3차 산업이 3분의 1에 해당되나 2차 산업은 거의 발달하지 못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군 총인구의 48%에 해당된다.

논은 총경지면적 2만 1,959㏊ 중 66%이며 밭은 34%인데, 가구당 경지면적은 1.45㏊로서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와 달리 농가와 농가인구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07년 현재 농가인구는 3만 5,895명이다. 주요 농산물은 벼·보리를 비롯한 조·수수·옥수수·메밀 등의 잡곡과 콩·팥·녹두 등의 두류와 고구마·감자 등의 식용작물 이외에 원예작물로서 배추·무·마늘·양파·수박·오이·호박·고추·참깨·유채 등이 있다. 과일로는 감·유자·배·복숭아·포도 등이 재배된다.

쌀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증감의 변화가 거의 없으나 보리(쌀보리와 맥주보리 포함)는 매년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우리밀 재배가 점암면과 동강면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늘은 도양읍, 풍양면, 금산면의 거금도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데 알이 굵고 단단하다.

두원면 운대리와 포두면의 삼지닥나무는 특용작물로 유명하다. 유자는 고흥의 특산물로 군의 전지역에서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도화면 봉산마을에서 재배되는 취나물은 전국 재배의 60∼70%를 차지한다. 연안에서 잡히는 바닷고기는 도미·삼치·농어·감성돔·낙지 등이다.

김·미역·톳이 인근의 청정해역에서 양식되는데 금산면·도화면·도덕면·풍양면 등에서 생산되는 김은 완도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한다. 순천만과 득량만에서는 피조개·키조개 등 각종 조개류가 양식된다.

도양읍의 오마리에 큰 규모의 굴양식장이 있다. 또 개펄에서는 굴이 많이 생산되어 이 굴로 만든 진석화젓이 유명하다. 어업전진기지로 나로도항이 있으나 어선은 대부분 10톤 미만의 동력선으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5일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고흥읍의 고흥장이 4·9일, 도양읍의 녹동장이 3·8일, 도화면의 도화장이 3·8일, 봉래면의 나로도장이 2·7일, 과역면의 과역장이 5·10일, 동강면의 동강장이 1·6일, 대서면의 대서장이 2·7일에 각각 열리고 있다.

이 가운데 도양읍의 녹동장은 규모가 가장 크며 해산물과 마늘의 반입량이 많아 그 이용 인구가 많다. 특히 겨울철에는 득량만과 여자만 일대에서 양식된 김·미역·굴·피조개·키조개·바지락 등 각종 어패류가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다.

정기시장은 198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그 수가 감소하였다. 1970년대에는 점암면의 점암장이 2·7일, 금산면의 금산장이 2·7일에 번성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이는 인구의 감소와 교통의 발달에 따른 결과이다. 한편 읍면의 중심도로를 따라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농산물과 수산물의 수출이 점차 증가해 수출액이 1994년에는 943만 7000달러에 이르렀고, 2004년에는 2억 5384만 달러에 달하였다.

교통은 고흥반도에는 철도가 없고 국도 15호선이 벌교에서 외나로도까지, 국도 27호선이 고흥에서 도양까지 포장되어 연결되어 있으며 남해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또 지방도와 군도가 포장되어 군내의 읍면과 해안을 연결해 육상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특히 내나로도와 외나로도가 육지와 연결되는 연륙교와 연도교가 이어져 섬 주민의 교통문제를 해결하였다.

해상교통은 도양읍의 녹동항과 금산면의 신평과 금진, 외나로도의 축정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녹동항은 1984년 1종항으로 지정된 뒤 선박의 입출항과 물동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녹동과 제주간의 카페리가 운행되어 관광객과 특산물의 운반이 편리하여졌다.

관광

고흥반도는 오염되지 않는 청정바다와 수려한 해상경관, 숲과 아름다운 자태의 산, 역사유적지를 비롯한 잠재적인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가을 단풍과 계곡이 좋은 풍치를 이루는 팔영산이 있으며 그 기슭에 자리잡은 능가사가 점암면 성기리에 있다. 팔영산의 8개 봉우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태를 연출하고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가 일품이다.

단월산과 수덕산을 거쳐 군의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두원면에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 있는 풍류해수욕장이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득량만에 펼쳐지는 해안경관은 절경이다. 녹동에서 불과 4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소록도는 섬 전체가 아름다운 공원이다. 또 여기에는 나환자의 힘으로 조성된 중앙공원이 있으며 오갈피나무와 종려나무 등이 심어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고흥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나로도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의 경치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1981년다도해국립해상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부근의 바다는 깨끗해 청정해역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또 봉래면 신금리외나로도에 있는 나로도해수욕장은 360여 년 된 아름드리 해송 350여 그루가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멋과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룬다. 해수욕장의 길이는 1km 정도이며 폭은 100m 가량인데 고운 모래로 알려져 있다.

해수면 아래 대륙붕의 경사가 완만해, 해변에서 100m까지도 한길이 못 되는 안전한 곳이다. 수온이 높아 부인들에게도 좋다. 숙박시설도 괜찮은 편이고 민박시설도 잘 갖추어 졌다. 나로도 일원에는 숙박시설과 음식점, 휴게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연륙·연도교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섬 안의 해수욕장이다.

도양읍소록도의 동쪽 끝에 있는 소록도해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고운 모래밭이 길이 1.2㎞, 폭 60m 정도 되며 평균수심은 1.2∼2.5m이다. 소록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이 비옥해 각종 유실수, 과실수가 잘 자라며 산세도 수려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주간에만 해수욕장을 개장한다. 녹동에서 배를 이용해 5분이면 소록도에 도착한다. 돌산·거문도·나로도·완도를 연결하는 돌산·나로도권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해상관광지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03년부터 공사에 들어간 고흥 나로우주센터가 완공하였고, 여기에 우주선 발사대 관련 시설과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가 들어섬으로써 좋은 관광 환경을 갖게 되었다. 매년 고흥우주항공축제가 열리고 있다.

읍·면
  1. 고흥읍(高興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5.59㎢, 인구 1만 2565명(2015년 현재). 읍소재지는 남계리이다. 본래 흥양군 지역으로 흥양군 소재지로서 읍내면이라 해 고소(姑蘇)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흥군 고흥면으로 개칭했으며, 1979년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포두면, 남쪽은 풍양면, 북쪽은 두원면과 인접하고 서쪽은 득량만에 면해 있다. 동쪽에 운람산, 남쪽에 조계산, 북쪽에 주월산, 서쪽에 수덕산 등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중앙부에 작은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분지의 북부에 고흥읍의 시가지가 자리하며, 이와 같은 산간분지의 입지는 일찍이 왜구의 노략질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며, 과수로 단감이 생산되고, 원예농업으로 양배추와 오이를 재배한다. 해안에서는 굴·백합의 양식이 활발하고 호형리에는 굴과 양송이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다. 군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이며,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4일과 9일 정기시장이 있다.

도로는 좁은 계곡을 따라 동서 해안 및 남북으로 통하는 도로가 열려 있으며, 벌교에서 녹동항·외나로도 등을 연결하는 포장된 도로가 읍을 통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벌교읍에서 외나로도와 고흥읍에서 도양읍을 잇는 국도가 포장되어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옥하리의 존심당(存心堂) 및 아문(衙門), 홍교·흥양읍성, 호동리의 운곡사, 행정리의 고흥향교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옥하(玉下)·서문(西門)·고소(姑蘇)·호동(虎東)·성촌(城村)·등암(登巖)·호형(虎形)·남계(南溪)·행정(杏丁) 등 9개 리가 있다.

  1. 도양읍(道陽邑)

군의 남서단에 위치한 읍. 면적 33.56㎢, 인구 1만 124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봉암리이다. 본래 도양면 지역으로 1441년흥양면에 편입되었고 1910년도양면이 되어 문곳(門串)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에 지방제도 혁신에 따라 흥양군 도양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완도군 관청을 병합했으며, 1963년금산면의 오마리와 소록도가 편입 12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도덕출장소(道德出張所), 1974년소록출장소(小鹿出張所)가 개설되었다. 1983년풍양면 시산리가 도양읍 시산리로, 금산면 상화도(上花島)가 도양읍 봉암리에 편입되었다.

읍의 동남부에 넓은 간척지가 전개되며, 서북부에는 높이 100∼200m의 구릉성 산지가 많다. 도서 23개 중 유인도는 6개, 무인도는 17개이다. 해양성기후이기 때문에 난대성 식물인 비자나무·동백나무숲이 많으며,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은 거의 없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유채·마늘 등이며 특히 마늘의 생산이 많다. 유자·참다래·단감 등의 과수가 재배되며, 특히 유자의 생산량은 4,200M/T이다. 연안의 해역에서 쥐치·삼치·복어·활선어 등의 어획이 많고, 김·미역·고막·바지락의 양식장이 넓다.

녹동은 연근해 해산물의 집산지일 뿐만 아니라 해상교통의 요지이며 광주·순천·여수 방면의 출발점이다. 녹동장은 3·8일의 정기시장이다. 대부분의 주민은 도시적인 2·3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소록도는 녹동에서 400m의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위치하며 낮은 구릉성의 지형이고 산림이 울창해 경치가 아름답다. 국립나병요양소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봉암(鳳巖)·장계(長溪)·관(官)·용정(龍井)·득량(得良)·소록(小鹿)·시산(矢山) 등 7개 리가 있다.

  1. 과역면(過驛面)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27㎢, 인구 3,63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과역리이다. 원래 흥양현의 지역으로 남양면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해 내로(內老)·외로(外老)·우천(牛川)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점암면의 내백일(內白日)·외백일(外白日)의 2개 리를 병합해 8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31년과역리의 이름을 따서 과역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야산이며 동서 해안의 간척지가 농경지화되었고 3개의 유인도와 23개의 무인도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잎담배·마늘 등이며 국도 주변에 원예농업이 발달해 오이·고추가 주로 재배된다. 참다래의 재배가 성행해 생산량도 많다. 5·10일의 정기시장이 개장된다.

연안에서는 낙지·전어·숭어 등을 비롯해 바지락과 굴의 양식이 활발하다. 도로는 벌교에서 고흥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과역리와 도천리에 고인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과역(過驛)·노일(老日)·도천(道川)·신곡(新谷)·백일(白日)·석봉(石鳳)·연등(蓮燈)·호덕(虎德) 등 8개 리가 있다.

  1. 금산면(錦山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섬으로 이루어진 면. 면적 65.70㎢, 인구 4,83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흥리이다. 본래 강진군 지역으로 고금도(古今島) 또는 거금도(居金島)라 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돌산군에 편입되었고 금산면이라 해 소록도·금진(錦津)·신촌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돌산군에서 고흥군에 편입되면서 금산면이라 개칭하였다.

1963년소록리는 도양읍에, 오마리(五馬里)는 도덕면에 넘겨주어 현재 7개 리가 되었다. 1983년오천리에 오천출장소(五泉出張所)가 설치되었다. 거금도는 대부분 산지이고 높이 592m의 적대봉(積臺峰)이 중앙부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73.32㎞이고 유인도 2개, 무인도 21개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고구마·마늘·양파 등이며 연안에서는 민어·숭어·전어 등의 어류와 해산물로 김의 생산이 많다. 과실수로 유자가 재배되고 있다. 어전리 일대 용두봉 자락에서 석재가 채취되어 육지로 많은 양이 반출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대흥리에 고인돌군이 있다.

교통은 거금도 내에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녹동항에서 운항되는 페리 정기선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대흥(大興)·어전(於田)·신전(新田)·신촌(新村)·석정(石井)·신평(新平)·오천(五泉) 등 7개 리가 있다.

  1. 남양면(南陽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54㎢, 인구 2,5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남양리이다. 본래 남양현의 지역으로 1414년(세종 23년)에 흥양현에 병합되어 남양면이라 해 월악(月樂)·장담·송정(松亭)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서면의 탄포(炭浦)·아평(雅坪)·침교(沈橋) 등의 8개 리를 병합해 남양면에 편입하고 장담(長潭)·신흥(新興)·대곡(大谷) 등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3년 7월과역면 도천리우도(牛島)가 남양리에 편입되었다. 해발 100m의 구릉이 대부분이며 동서의 해안에 간척지를 조성해 농경지화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땅콩·마늘·두충 등이며, 특히 마늘의 생산이 많다. 또 유자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연안의 바다에서는 숭어가 많이 잡히며 신흥리와 월정리의 해안에서는 굴과 피조개의 양식이 많다. 문화유적은 중산리에 고인돌군과 남양산성이 있다. 남양산성은 군창을 방어하고 백성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세운 석성으로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나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벌교∼녹동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통해 교통은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남양(南陽)·장담(長潭)·신흥(新興)·중산(中山)·월정(月亭)·망주(望珠)·침교(沈橋)·대곡(大谷) 등 8개 리가 있다.

  1. 대서면(大西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28㎢, 인구 2,54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마리이다. 본래 흥양현 지역으로 옛 남양면의 서쪽이 되므로 대서면이라 해 서면(西面)의 구산(龜山)·화장(禾場)·내동(內洞)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서면의 온동(溫洞)·가야(柯也)·상남(上南) 등의 7개 리와 대강면의 마동(馬東)·마서(馬西)의 2개 리 일부를 병합해 개편, 관할하였다.

면의 북쪽 경계에 있는 봉두산(鳳頭山, 427m)이 최고봉으로 동북쪽은 높고 남서쪽은 낮아지는 지형이며, 하천을 따라 평야가 발달하였다. 쌍내천이 상남리에서 발원해 송강리를 거쳐 득량만에 유입되며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온화한 기후를 이용해 파인애플을 재배하고 원예농업으로 오이와 딸기, 느티리버섯이 많이 재배되며 유자의 생산도 많다. 해안에서는 바지락과 피조개 양식도 많이 한다. 면을 동서로 관통해 득량만방조제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안남리와 상남리에 고인돌군이 있다. 화산리에 서동사·충강사, 그리고 쌍충렬각(雙忠烈閣)이 있으며 금마리제석사(帝釋寺)에 높이 60㎝, 둘레 80㎝의 좌불상 1구가 남아 있다. 안남리는 남양송씨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금마(金馬)·상남(上南)·송강(松江)·송림(松林)·화산(禾山)·안남(雁南)·남정(南亭) 등 7개 리가 있다.

  1. 도덕면(道德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53㎢, 인구 3,2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덕리이다. 본래 도양면 지역으로 1973년도양읍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도덕출장소로 되고, 1983년 면으로 승격되어 도덕면이 되었다.

높은 산이 거의 없고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으며, 신양·오마 등의 간척지에서 많은 쌀이 생산되고 있다. 만재도(萬載島)에서 생산되는 파래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참깨 등이며 원예농업으로 마늘·오이·고추·완두콩·채소 등이 재배되는데, 특히 시설원예가 발달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마늘 가공공장이 세워져 가동중에 있다. 또 특용작물로 작약·느타리버섯이 재배되고 가야리 일대에서는 잎담배가 재배되고 있다. 연안의 해역에서는 낙지·활선어 등의 어획이 많고 김·굴·고막 등의 양식장이 있어서 높은 해산물 소득을 올리고 있다. 오마리에 500정보 규모의 새우양식장에서 보리새우를 키워 일본에 수출한다.

주민의 98%가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고흥읍과 도양읍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도덕(道德)·신양(新陽)·가야(柯也)·용동(龍洞)·봉덕(鳳德)·오마(五馬) 등 6개 리가 있다.

  1. 도화면(道化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66.17㎢, 인구 4,2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당오리이다. 본래 도화현(道化縣)의 지역으로 1441년(세종 23)에 흥양현에 편입되고 1895년도화면이 되어 봉동(鳳東)·청룡(靑龍)·동백(冬柏) 등 2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룡·가화·내발 등의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63년봉래면의 지죽리를 편입해 현재 10개 리가 되었다.

면의 중앙에서 동·서·남쪽으로 통하는 계곡을 따라 농경지가 발달했으며 남부의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들깨·잎담배 등이며 원예작물로 오이·고추·취나물 등이 생산된다. 유자·참다래의 생산도 많다.

연안해안에서 갯장어·갈치 등이 어획되며 굴·고막·바지락·김을 양식한다. 해안선의 상당 부분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맑고 깨끗한 해상경관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발해수욕장은 백미(白眉)로 꼽을 만한 곳이다. 1㎞가 넘는 모래사장이 있고 인근에 백로 및 왜가리 도래지와 바다낚시터도 있어 근래 들어 계절에 관계없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문화유적은 왜구의 침입이 잦아 성을 쌓았던 곳으로 내발성지(內鉢城址)·신호리성지·백치성지(柏峙城址)가 있다. 내발리에는 이순신의 기적비(紀績碑)와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당오(堂烏)·신호(新虎)·덕중(德中)·봉산(鳳山)·가화(加禾)·구암(九巖)·내발(內鉢)·사덕(四德)·봉룡(鳳龍)·지죽(支竹) 등 10개 리가 있다.

  1. 동강면(東江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44㎢, 인구 3,40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둔리이다. 본래 태강현(泰江縣)의 지역인데 1441년(세종 23)흥양현에 편입되고, 그 뒤에 대강면(大江面)이 되어 가교(柯橋)·중촌(中村)·유둔(油芚)·죽산(竹山)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의 운동(雲洞)·신촌(新村)·택촌(宅村) 등 18개 리와 보성군 남하면의 전석·장동(壯洞)·영동(永洞)의 3개 리의 각 일부와 돌산군 옥정면의 장도리(獐島里)를 병합해 동면과 대강의 이름을 따서 동강면이 되었다.

1983년 2월장도리가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되어 10개 리로 조정되었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며 원예농업으로 오이·딸기가 많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 대강리에서 작약, 매곡리에서 지모(知母) 등 생약재가 재배되고 있다.

연안의 해역에서는 갯장어·도미가 잡히며, 피조개·고막·새고막 등이 양식된다. 특히 한천리의 운동에서는 내화용 벽돌의 원료로 쓰이는 납석이 생산된다. 문화유적은 유둔리에 고인돌, 장덕리에 흥덕사(興德寺), 매곡리에 용흥사(龍興寺)가 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과 당포해전에서 공을 세운 신여량(申汝樑)의 정려각과, 이순신 막하에서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첨산(尖山)전투에서 전사한 송대립의 정려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유둔(油芚)·마륜(馬輪)·대강(大江)·매곡(梅谷)·장덕(掌德)·노동(魯東)·한천(漢泉)·오월(悟月)·청송(靑松)·죽암(竹巖) 등 10개 리가 있다.

  1. 동일면(東日面)

군의 동남부 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21.15㎢, 인구 1,59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백양리이다. 원래 돌산군의 지역으로 봉래면이 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흥군에 편입되어 신금·예내·외초 등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1964년내나로도에 내도출장소가 설치되어 백양·봉영·덕흥의 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90년내나로도가 봉래면에서 분리되면서 내도출장소는 동일면으로 승격되었다.

섬으로 이루어진 면으로 내나로도가 주요부를 형성하며 해안선이 44㎞이다. 17개의 무인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군에서 면적이 가장 작고 인구도 적다.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었던 곳으로 지형은 100∼200m의 산지이며 평지는 매우 적다.

남부의 해안은 봉래면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지정되어 절경이 뛰어나다. 연안해역은 청정한 바다로서 소라·문어·낙지·숭어·장어 등의 어류와 굴·바지락이 생산되는데 굴은 덕흥굴로 국내에 알려졌으며 바지락은 일본과 스페인의 해물 가공공장으로 거의 수출되고 있다. 미역·새고막 등이 양식된다.

주민들은 농사와 어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으나 어장의 풍요로움 덕택에 소득이 높은 편이다. 또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도로는 포두면과 봉래면을 잇는 연륙교와 연도교가 건설되어 육상교통이 편리하여졌다. 덕흥리에 덕흥해수욕장이 있다.

문화유적은 덕흥리에 덕양서원이 있고 백양리 일대에는 23기의 고인돌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백양(白楊)·봉영(鳳榮)·덕흥(德興) 등 3개 리가 있다.

  1. 두원면(豆原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3.26㎢, 인구 3,35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산리이다. 본래 두원현 지역으로 1441년흥양현에 편입되었고 1895년흥양군 두원면이 되어 운곡(雲谷)·상대(上垈)·금성(金城) 등 3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흥군 두원면이 되고 운대 등 13개의 이로 개편, 관할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높이 100m 내외의 야산이며 해안에 방조제를 만들어 농경지를 조성하였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이외에 맥주보리가 생산된다. 원예농업이 활발해 오이·딸기의 생산이 많고 운대리에서는 삼지닥나무와 유자재배가 성하다. 연안해안에서는 바지락·고막·피조개 등의 생산이 많다.

청과물 유통센터, 마늘 가공공장, 유자 가공공장이 건설되어 가동중이다. 양질의 고령토가 생산되며 운대리에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고, 대전리에는 길이 1.9㎞, 폭 100m의 백사장과 100∼200년 된 노송이 우거진 대전해수욕장이 있다. 교통은 동부에 벌교∼녹동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운대리 주교마을에 많은 고인돌과 도요지가 있으며, 신송리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군관으로 공을 세웠던 진무성(陳武晟)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무열사(武烈祠)가 있다. 학곡리에는 석불입상이 있고, 운람산 계곡에 여승들이 수도했다고 전하는 수도암(修道庵)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용산(龍山)·학곡(鶴谷)·관덕(觀德)·풍류(風流)·대금(大錦)·용당(龍塘)·대전(大田)·예회(禮會)·성두(城頭)·영오(永梧)·신송(新松)·용반(龍盤)·운대(雲垈) 등 13개 리가 있다.

  1. 봉래면(蓬萊面)

군의 동남부 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28.41㎢, 인구 2,1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금리이다. 본래 돌산군 지역으로 봉래면이라 해 신금·내동(內洞)·예하(曳下)·외초 등의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흥군에 편입되어 신금·예내·외초 등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1963년시산리를 풍양면에, 지죽리를 도화면에, 오취리를 포두면에 넘겨주어 7개 리가 되었고 1964년내도출장소(內島出張所)를 설치, 백양·봉영·덕흥의 3개 리를 관할하였다. 내도출장소는 1990년 7월동일면으로 승격되어 봉래면에서 분리되었다.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연결하는 연도교가 건설되어 육상교통이 편리하다 . 섬으로 이루어진 면으로 해안선이 51.30㎞이며 외나로도가 주요부를 형성하며 서쪽에 수락도(水落島)·사양도(泗洋島)·애도(艾島)·대항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1개의 무인도가 있다. 섬의 지형은 대부분 높이 100∼200m의 산지이며 평지는 매우 적다.

갯벌을 간척한 평지가 약간 있어 마늘과 보리를 생산한다. 주위의 바다는 삼치·병어·도미·쥐치·갈치 등의 주요 어장을 형성한다. 완도·청산도와 더불어 전라남도 5대 어장의 하나이다. 나로도는 1966년 어업전진기지로 책정되어 개발되고 있으며 제빙시설 및 조선, 수산물 가공공장도 있다.

그러나 어선의 대형화로 근해의 어종이 감소하고 육로 교통이 발달해 여수항·부산항·삼천포항 등에 밀려 어업전진기지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신금해수욕장이 유명한데 3㎞ 백사장 주위를 3년 된 노송 300여 그루가 감싸고 있어 일광욕과 해수욕을 겸할 수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서 어린이를 동반한 피서의 적격지이다.

문화유적은 신금리의 조개더미에서 민무늬토기와 골각기(骨角器)가 출토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금(新錦)·사양(泗洋)·외초(外草)·예내(曳內) 등 4개 리가 있다. 예내리에 150만 평 규모의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1. 영남면(影南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62㎢, 인구 1,4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사리이다. 본래 점암면에 속해 있었으며 1904년산내면(山內面)과 산외면(山外面)으로 나뉘었고 1907년 두 면을 다시 통합, 점암면이 되었다. 그 뒤 1966년양사출장소가 독립되었고 1986년산내면으로 승격되었다가 1989년영남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북쪽에 팔영산을 등지고 남쪽에는 우미산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고 서쪽에 해창만 간척지를 끼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저마 등이며, 연안에서는 낙지의 어획이 많고 바지락·고막이 많이 생산되며 굴이 양식된다.

용이 등천했다는 용바위가 있고 낚시터가 유명하며 인근 주민들의 유람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남열리에 남열해수욕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양사(楊蛇)·금사(錦蛇)·남열(南悅)·우천(牛川) 등 4개 리가 있다.

  1. 점암면(占巖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11㎢, 인구 2,9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모룡리이다. 본래 흥양현 지역으로 드문드문 바위가 있다 해 점암면이라 하였다. 안치(鞍峙)·상신(上新)·하신(下新) 등 37개 리를 관할했는데 1904년산내면(山內面)과 산외면(山外面)으로 양분되었다가 1907년 두 면을 통합, 점암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안·연봉 등의 15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66년양사(楊蛇)출장소를 두어 양사·금사·남열·우천의 4개 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1986년 면의 일부가 산내면으로 개편되었다.

면의 중앙에 팔영산이 솟아 있고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며, 북서부와 남서부에 약간의 평야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저마·고구마 등이며 연안에서는 숭어와 낙지의 어획이 많고 굴양식도 많다.

문화유적은 성기리에 능가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모룡(茅龍)·화계(花溪)·대룡(大龍)·성기(聖基)·사정(沙亭)·연봉(淵鳳)·신안(新安)·천학(天鶴)·장남(莊南)·강산(江山)·여호(呂湖) 등 11개 리가 있다.

  1. 포두면(浦頭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12.31㎢, 인구 5,41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길두리이다. 본래 흥양군의 지역으로 1895년 포구의 머리 쪽이 되므로 포두면이라 해 당산(堂山)·남촌(南村)·중흥(中興) 등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 등 11개 리를 관할했으며, 1963년봉래면의 오취리를 편입했고, 1990년 7월송산리에 송산출장소(松山出張所)가 설치되었다.

면의 동쪽은 바다에 접해 있고 북·서·남부는 산지이며 중앙을 향해서 낮아지는 지형이다. 내초마을 앞에서 오도(梧島)를 거쳐 영남면의 금사리를 연결하는 연장 3,462m의 방조제와 배수문이 1969년 준공되어 1,560㏊의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이곳이 유명한 해창만(海倉灣) 간척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마늘·고구마 등이며, 삼지닥나무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미곡종합처리장이 세워져 가동중이다. 문화유적은 봉림리에 금탑사(金塔寺)가 있다. 금탑사 주변에 장관을 이루며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대부분 파괴되어 유래를 알 수 없는 성터가 있다. 장수리에는 지석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길두(吉頭)·상대(上大)·봉림(鳳林)·장수(長水)·남성(南星)·옥강(玉崗)·차동(車洞)·세동(細洞)·상포(上浦)·남촌(南村)·송산(松山)·오취(梧翠) 등 12개 리가 있다.

  1. 풍양면(豊陽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1.29㎢ 인구 3,53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야막리이다. 본래 흥양현 지역으로 흥양현의 옛 고을터라 해 고읍면(古邑面)이라 하고 상림·보천·죽천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림·보천·야막 등 12개 리로 개편하였다.

1931년 옛 풍양현과 흥양현의 이름을 따서 풍양면이라 개칭하고, 1963년봉래면의 시산리를 편입, 13개 리가 되었다. 면의 남쪽에 천둥산이 솟아 있으며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지는 지형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참깨·유채·마늘 등이 있으며, 원예작물로는 배추의 생산이 많다. 김의 생산도 많으며 풍남리에 새마을 공장이 있어 굴·바지락의 훈제 통조림을 생산한다. 유자의 재배가 성행하는데 이와 함께 율치리에 유자시험장이 운영되어 유자의 재배기술과 식품개발 연구에 힘쓰고 있다.

문화유적은 풍남리에 1583년 순찰사 고형산(高荊山)이 축성했다는 성터가 있고 율치리에는 군사훈련과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는 석성이, 상림리에 대성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야막(野幕)·보천(普天)·당두(堂頭)·안동(安洞)·매곡(梅谷)·풍남(豊南)·송정(松亭)·상림(上林)·고옥(沽玉)·한동(寒東)·율치(栗峙)·봉양(鳳陽) 등 12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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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답사여행의 길잡이』-5전남-(한국문화유산답사회, 1996)
『내고장의 미찾기·전남편』(한국이동통신, 1995)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6)
『전라남도지』 1·2·3(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82·198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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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견·전라남도·』(뿌리깊은나무, 1983)
『한국의 뱃노래』(호락사,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내고장전통가꾸기편찬위원회, 1981)
『전남교육30년사』(전남교육30년사편찬위원회, 1977)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고흥군(www.goheung.go.kr)
고흥교육청(www.ghed.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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