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식품은 흉년에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곡식 대신으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는 백성들이 평소 비축해 둬야 할 구황식품이 소개되어 있다. 『구황촬요』와 『증보산림경제』에도 칡뿌리·메밀꽃 등 구황식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구황식물 중 식용하고 있는 것은 304종이다. 채소잎과 뿌리 구황식물은 말려 쌀·보리와 섞어서 죽이나 밥을 해 먹었다. 또 산간 지역에서는 고사리·소나무껍질 등을 주식 대용으로 먹기도 했다. 구황식품은 배고픔을 벗어나고자 가뭄, 수재 같은 재해 상황이나 춘궁기에 이용되었다.
농업은 기후 · 지세 · 토양 · 지질 등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데, 특히 기온과 강수량은 농작물의 종류와 분포를 결정짓는 한 요소가 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한재나 수재 등 예기할 수 없었던 기후의 변화로 말미암아 기근에 시달려 왔다. 『삼국사기』에도 한해 · 충해 · 상해(霜害) 등이 가장 두려운 재앙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예기치 않은 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수리사업 및 천문 · 기상의 관측에 힘써 왔으며 구휼책에 진력하였다. 조선시대의 『경국대전』 · 『속대전』 · 『대전회통』 등의 법전에도 구휼책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경국대전』의 비황조(備荒條)에는 백성들도 해마다 구황할 물자를 비축하도록 하였으며, 『속대전』에는 각 읍에 기아민을 구제하기 위한 곡식을 해마다 능력에 따라 비축하도록 하였고, 이를 시행하지 않는 자는 처벌하도록 하였다.
또한, 흉년에는 조세를 감면하고 굶주리는 사람을 위해 죽을 쑤어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백성들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꽃 · 종자 · 뿌리 · 어린잎 · 어린순 · 열매 · 나무껍질 등을 채취하여 기근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뜻있는 사람들은 기근을 넘길 수 있는 방법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적은 책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초기 세종은 흉년의 구휼에 요긴한 것을 언문으로 적은 『구황촬요』를 간행하였다. 또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흉년에는 백성이 나물로 양식을 대신하므로 소금을 치지 않으면 목으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소금값이 비싸지니 미리 장을 넉넉히 담그고, 다시마 · 마른 새우를 미리 준비하여 두라는 등 대비책을 제시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청량미(靑梁米) · 상실(橡實) · 황각(黃角) · 황엽 · 상엽(桑葉) · 만청(蔓菁) · 요화(蓼花) · 매홍실(梅紅實) · 송엽(松葉) · 송피(松皮) · 평실(萍實) · 목맥화(木麥花) · 소채(蔬菜) 등 백성들이 평소에 비축해 두어야 할 구황식품이 소개되어 있다. 『구황촬요』와 『증보산림경제』에는 송엽 · 송기(松肌) · 유피(楡皮) · 칡뿌리 · 메밀꽃 · 콩잎 · 콩깍지 · 토란 · 마 · 도토리 · 삽주뿌리 · 메뿌리 · 둥굴레 · 둑대뿌리 · 천문동 · 백합 · 마름 · 고욤 · 개암 · 쑥 · 은행 · 잣 · 호마 · 느티나무잎 · 팽나무잎 · 새삼씨 · 소루쟁이 등의 구황식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하는 구황식물의 종류는 초본 · 목본을 합하여 851종인데, 이 중에서 평소에 농촌에서 식용하고 있는 것은 304종이다. 이러한 구황식물을 자생지별로 살펴보면 일반 산야에서 나는 것이 246종이고, 들이나 길가 · 논두렁 · 밭 등지에서 나는 것이 90종이며, 논이나 늪 · 습지에서 나는 것이 17종이다. 이러한 초근목피류는 농가에서 긴 겨울을 나며 빠듯한 식량이 바닥이 날 무렵인 춘궁기에 절량농가의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어 곡식과 혼용하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식량으로 대용하였다.
식물의 식용부위는 잎 · 싹 · 줄기 등을 식용하는 것이 가장 많아서 명아주 · 쑥 · 냉이 등 240여 종이 있으며, 뿌리를 먹는 것은 마 · 칡뿌리 · 도라지 · 백합 등 20여 종, 과육을 먹는 것은 고욤 · 구기자 · 대추 등 40여 종, 열매를 먹는 것은 밤 · 도토리 등 16여 종이다. 또한, 꽃부분에 속하는 꽃가루를 먹는 것은 적송(赤松)이고, 꽃잎을 먹는 것은 진달래 · 국화 등이며, 나무껍질을 먹는 것은 적송 · 느릅나무 등이다. 이러한 식물의 채취시기는 식용부위에 따라 다르다. 싹 · 잎 · 뿌리의 채취시기는 대개 3월 하순부터 5월 하순 사이이며, 꽃은 개화기, 과실은 성숙기인 여름과 가을이다. 뿌리는 성장이 그쳐 저장양분이 가장 많은 시기인 가을부터 이듬해 봄이 채취시기로 적기이다. 나무껍질은 봄에 수액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 채취시기로 가장 알맞다.
우리나라의 농어촌과 산간지역에서 상용하던 구황식품을 살펴보면, 깊은 산간지역에서 살아가는 화전민의 식량은 밤과 옥수수 · 감자가 주종을 이루며, 이것이 부족할 때는 고사리 · 둥굴레 · 소나무껍질 · 도토리 · 도라지 · 칡뿌리 · 더덕 · 마 · 백합 · 두릅 · 달래 · 만삼 등을 주식대용으로 먹었다. 농촌지역에서는 쌀 이외에 잡곡 등을 심어 주곡의 소비를 줄이고 채소잎과 뿌리를 말려 저장해서 쌀 · 보리와 섞어 죽이나 밥을 해먹었다. 충청도지방에서는 춘궁기에 전단토(田丹土)나 백점토(白粘土)까지도 떡이나 죽에 새알심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는 칡뿌리, 경상도 지방에서는 만삼을 춘궁기에 식용하였다. 어촌지역 중에서 울릉도는 산마늘을 주식으로 대용하였고, 서부 · 남부 해안에서는 갯줄을, 황해도해안에서는 나문재를 식용하였다.
① 소나무: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침엽수로 널리 이용된 구황식품이다. 솔잎으로는 죽 · 미숫가루 · 경단 등을 만들어 다양하게 먹었다. 솔잎은 느릅나무껍질과 섞어서 먹으면 오장을 편하게 하며 곡식의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식물이라 하여 『구황촬요』에서도 가장 뛰어난 구황식물로 꼽고 있다. 봄이나 여름철에는 겉껍질과 목질 사이의 얇은 속껍질인 송기(松肌)를 벗겨서 말려 두었다가 기름을 뺀 다음 절구에 찧어 쌀이나 콩을 섞어 죽을 쑤어 먹었다. 소나무의 새순을 생식하기도 하였다.
② 도라지: 구황식물로서 긴요한 식품일 뿐 아니라 약용이나 일상의 부식물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봄 · 여름 · 가을에 뿌리를 캐서 날것으로 조리하기도 하고, 말려서 저장해 두었다가 조리를 하기도 한다. 밥에 섞어 쪄서 먹기도 한다.
③ 칡: 뿌리는 늦가을이나 이른봄에 캐다가 잘게 썰어 가루를 만들어서 주식대용으로 먹거나, 그냥 찌거나 끓여서 국수 · 죽 · 떡을 만들어 먹는다. 잎을 5월경에 따서 나물을 만들어 밥에 얹어 먹고 다 자란 잎사귀도 그늘에 말렸다가 식용한다.
④ 도토리: 가루를 내어 떡이나 밥에 섞어 먹기도 하고 묵을 만들어 주식대용으로 하는데, 흉년의 구황식품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도토리나무의 어린잎도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⑤ 토란: 향기와 단맛을 띠는 풍미가 있는 식품으로 녹말로 만들어 먹으면 위를 튼튼하게 하여 구황에 좋은 식품이다. 주로 가을에 캐며 생식을 하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하며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구황촬요』에는 각고산(閣皐山)에 토란을 심어 흉년을 견디었다는 기록이 있다.
⑥ 백합근: 봄과 가을에 캐는 것이 좋다. 뿌리를 캐서 굽거나 쪄서 먹는데, 4월하순경의 잎은 나물로 식용하며 성숙한 잎은 가루로 만들어 전을 만들어 먹는다. 흉년에는 잎과 뿌리를 쌀이나 보리에 섞어서 밥이나 죽을 쑤어 주식대용으로 식용한다.
⑦ 각총(茖蔥): 어린잎과 뿌리를 식용할 수 있다. 뿌리는 가을에 캐어서 흙에 묻어 저장하면 겨울에도 먹을 수 있고, 잘게 썰어서 건조, 저장했다가 탕을 끓여 먹거나 빻아서 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⑧ 황정(黃精): 봄이나 가을에 잎과 뿌리를 채취하여 식용으로 하는데, 뿌리는 전분이 많아서 단맛이 있다. 뿌리는 날로 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하며, 깨끗이 말려서 건조시킨 다음 가루를 내어 밥에 섞어 먹거나 콩가루와 섞어 주식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평소에 많이 캐다가 말려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흉년에는 곡식 대신 요긴하게 쓰인다.
⑨ 느릅나무: 봄에 잎을 쪄서 떡에 넣기도 하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속껍질에서 짜내는 즙은 솔잎경단에 섞어서 구황식품으로 쓰인다. 껍질은 잘게 썰어서 건조시킨 다음 가루를 내어 전을 부치기도 하고 쌀 · 보리 등에 섞어서 죽을 쑤거나 쪄서 경단을 만들기도 한다.
⑩ 밤: 가을에 열매를 따서 생과 · 건과로 먹거나 또는 굽거나 삶아서 먹는다. 그밖에 과자 · 엿 요리의 재료로 사용된다. 밤은 흉년에는 구황식품으로 평상시에는 간식으로 좋은 식품이며, 특히 주식대용으로 훌륭한 식품이다.
⑪ 개암: 도토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가을에 과실을 따서 건과로 먹기도 하고 삶거나 굽거나 쪄서 먹기도 한다. 떡이나 밥에 넣어 혼식도 하고 열매로 식용유를 짤 수도 있다.
⑫ 뽕나무: 봄에 잎을 따서 나물을 무쳐 먹고 여름에는 과실(오디)을 생식한다. 잎은 4, 5월경 잎이 무성할 때 따서 햇볕에 말려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가 곡식가루와 섞어서 먹는다. 뽕나무 속껍질은 벗겨 찧어서 물에 담가 햇볕에 말렸다가, 그 가루로 밥이나 죽 · 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⑬ 복령: 소나무에 기생하는 균체(菌體)인데, 흉년이 들면 이것을 캐다가 잘게 썰어서 여러 날 동안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다음 밥이나 떡에 섞어서 먹는다.
⑭ 마: 이른봄이나 가을 · 겨울에 땅밑의 뿌리를 캐내어 굽거나 쪄서 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또는 뿌리의 껍질을 잘 손질해서 가루를 내어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⑮ 더덕: 춘궁기에 캐다가 식용한다. 봄에 새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이른봄이나 늦가을에 캐어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양념장을 발라서 굽거나 쪄서 주식으로 대용하기도 한다. 또는, 반쯤 건조시켜서 된장 ·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