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금오대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금오대(金吾臺)

    고려시대사제도

     고려 전기 시정(時政)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의 규찰·탄핵을 맡아보던 관서.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금오대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 전기 시정(時政)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의 규찰·탄핵을 맡아보던 관서.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010년(현종 1) 거란침입 이후 백관에 지급할 녹봉이 부족하여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일직(日直) 황보 유의(皇甫兪義) 등은 왕에게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빼앗아 백관의 녹봉에 충당케 하도록하였다.
    문치를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정책에 불만을 품어오던 무신들은, 이에 불만을 품은 상장군 김훈(金訓)·최질(崔質) 등이 1014년 11월 여러 위(衛)의 군사들과 더불어 난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장연우와 황보 유의를 귀양보내고 무관 상참(常參) 이상은 모두 문관직을 겸하였다.
    그리고 무신들은 왕에게 청하여 전대의 어사대(御史臺)를 혁파하고 금오대를 설치, 관원으로서 사(使)·부사(副使)·녹사(錄事)는 모두 상원(常員)을 없앴다.
    그러나 금오대는 그 이듬해 3월김훈 등 무신 19인이 처형되면서 혁파되고, 어사대는 사헌대(司憲臺)로 개칭되었고, 관원으로는 대부(大夫)·중승(中丞)·잡단(雜端)·시어사헌(侍御司憲)·전중시어사헌(殿中侍御司憲)·감찰사헌(監察司憲)을 두었다. 이와 같이 금오대는 현종 5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존치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시대대간제도연구(高麗時代臺諫制度硏究)』 ( 박용운 ,일지사,1981)

    •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어사대(御史臺)에 관한 일연구(一硏究)」 ( 송춘영 ,『대구사학(大丘史學)』 3,1971)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송춘영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