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 ()

한국기상학회지
한국기상학회지
과학기술
개념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대기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대기과학.
이칭
이칭
대기과학
정의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대기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대기과학.
개설

기상학은 전통적으로 일기와 기후에 중점을 두고 다루어왔으나, 최근에는 대기의 물리학·화학, 유체역학 뿐만 아니라 지표면, 해양 및 생물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기상학은 관련 인접 분야와 광범위하게 연관되어 있어, 기상학을 대기과학(大氣科學, Atmospheric Sciences)이라고도 한다. 기상학이 대상으로 하는 내용은 대단히 광범위하므로 순수과학과 응용과학 분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기초기상학으로는 대기역학(Atmospheric Dynamics), 대기물리학(Atmospheric Physics), 종관기상학(Synoptic Meteorology), 기후학(Climatology), 미기상학(Micro Meteorology), 고층기상학(Aerology), 대기화학(Atmospheric Chemistry), 우주기상학(Cosmic Meteorology), 기상측기 및 관측 (Meteorological Instruments and Observations)등이 있고, 응용기상학으로는 항공기상학(Aeronautical Meteorology), 해양기상학(Marine Meteorology), 수문기상학(Hydrometeorology), 생기상학(Biometeorology), 농업기상학(Agrometeorology), 기상재해론(Meteorological Disasters), 도시기상학(Urban Meteorology) 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한국 기상학의 발달사는 삼국시대부터 광복 전까지의 기간을 시작기와 그 이후를 정착기로 크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기상학은 새로운 측기(測器)의 발명과 관측망(觀測網)의 정비를 통하여, 대기현상을 관측하고 기술하는 면과 대기현상을 기초적인 물리법칙에 의하여 이해하고 설명하는 면이 서로 보완되면서 발전하였다. 대기는 매우 다양한 현상이 복합되어 있으므로, 우선 관측 측면에서 진전이 되면서 이론이 발달하게 되었다.

기상학의 시초는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기상과 질병의 관계를 논한 데서 시작되었고,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최초의 기상학 전문서인 『기상학(Meteorologica)』을 저술하여 날씨와 기후를 논하였다. 기원전 2세기경에 중국에서는 눈[雪]이 육방정형(六方晶形)으로 되어 있음을 밝혔고, 1세기경에 이집트의 히포로스(Hiporos)는 인도양의 계절풍을 발견하였으며, 10세기에는 아라비아의 알한센(Alhansen)이 박명(搏明)을 관측하여 대기의 상한(上限)을 추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기상학도 대기현상에 대한 관심이나 관측을 통하여 싹트기 시작하였다. 농업중심의 국가에서는 농작물의 수확고가 나라 재정이나 국민생활과 직접 관련되므로 농사에 영향을 주는 기상에 관심이 컸다.

고대사회에서는 그 기록을 찾기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한발(旱魃)·비·바람·우박·눈·안개·흙비·천둥·이기(異氣)·이광(異光) 등의 기록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오행사상(五行思想)의 영향을 받아 여러 기상현상을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의 오행에 따라 분류하여 양적인 개념으로 관찰하였다. 즉, 한발에 대하여 한(旱)·대한(大旱)·구한(久旱)으로, 강우량에 대하여 우(雨)·소우(小雨)·대우(大雨)·음우(淫雨)·임우(霖雨)·항우(恒雨) 등과 같이 양적 규정에 따라 기술하였다. 당시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기상업무를 전담하는 관서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관측이 특정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기상관측업무가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에 갈릴레이(Galilei, G.)와 뉴턴(Newton, I.)에 의하여 근대과학의 기초가 이루어짐에 따라 대기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진전되었는데, 이 진전은 14∼16세기에 이루어진 여러 관측과 경험이 축적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15세기 전반에 이미 과학적이고도 독창적인 기상관측이 실시되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이가 공기온도계를 처음 발명하기 156년 전인 1441년(세종 23)에 세종은 측우기(測雨器)를 발명하여, 전국 8도에 우량관측망을 두고 국정에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우량관측은 그 규모가 전국적이었고 관측 내용이 조직적·정량적이어서, 기상학사에서 가장 먼저 과학적이고 근대적인 관측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 이후 여러 차례 외침과 내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우관측은 계속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자료는 전화(戰禍)에 대부분 소실 내지는 분실되었고, 관측제도도 침체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와 관측업무가 다시 부흥·발전되었다.

이때의 자료 중 1770년(영조 46년)부터 남아 있는 서울의 강우량과 강우일수 자료는, 현재까지 약 2백 년간의 장기간 자료가 되어 관측시대의 기후 변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국내외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기상관측은 1884년에 독일인 묄렌도르프(Mollendorf, P. G. von:한국명 穆麟德)가 인천항의 세관에, 그리고 3년 뒤에 러시아공사인 베베르(Waeber, K. I.)가 그의 공관에 각각 기상관측소를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어 주요 도시에 통감부관측소(統監府觀測所)가 설치되었으며, 이때의 관측시설과 방법은 서구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1910년 조선총독부관측소(朝鮮總督府觀測所)로 개칭됨에 따라 이때의 한국기상학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동안 지상관측 뿐만 아니라, 항공·고층·지자기 및 지진관측 등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관측소에서는 1917년에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의 기상·천문·지구물리 등의 관측자료를 조사한 『고대조선관측기록보고(古代朝鮮觀測記錄報告)』를 발간하여 외국에 소개하였다. 당시 총독부 관측소장, 일본인 와다(和田雄治)가 조선시대 우량자료를 이용하여, 「최근 140년간의 경성(京城)우량」을 연구하였다. 또, 1941년에 미국 선교사 맥쿤(McCune, G. S.)이 『한국의 기후(Climate in Korea)』를 영문으로 발간하여 한국의 기후 특성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나아가 기후구(氣候區)도 분류하였다.

19세기 중엽까지의 기상학은 물리학과 화학의 한 분야로서 취급되어 독립된 학문의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학문으로서 정착한 시기는 20세기 중엽부터라 할 수 있다.

광복 이후부터 모든 기상업무가 한국인들에 의하여 행하여지게 되었으나,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로 기상관측에 머물렀으며, 학문적 연구는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50년 중앙기상대가 세계기상기구(WMO)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회원국들의 기상요원 훈련계획과 정부의 해외연수계획 등에 의하여, 기상대직원들이 미국·오스트레일리아·영국 등 구미 각국에 6개월∼2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돌아와 한국 기상학 연구의 밑거름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 기상학은 대학과 한국기상학회를 중심으로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학 학부에서 체계적인 기상학 교육은 1958년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 때 첫 기상학 교수는 김성삼(金聖三)이었다. 그 후 1967년에 연세대학교에 같은 명칭의 학과가 설치되어, 기상학 교수로 조희구(曺喜九)가 처음 부임하였다. 이 학교의 기상학 강의는 이보다 51년 전인 1917년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농학과 3학년에서 실시한 바 있다. 1950년에 연희대학교로 개칭됨에 따라 물리기상학과가 신설되어 1957년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실질적인 기상학 교육은 하지 못하였고, 그 후 현재의 물리학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 후 1988년에 경북대학교와 강릉대학교(2009년, 강릉원주대학교로 교명 변경)에서 천문기상학과와 대기과학과가 각각 개설되었고, 1989년에는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교(이후 1996년 부산공업대학교와 함께 현재의 부경대학교로 통합됨)에, 1993년에 공주대학교에 각각 대기과학과가 개설되어 2013년 현재 우리나라 7개 대학교에서 대기과학 전담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그 밖에 대학교의 지구과학교육학과와 환경학과 등에서 기상학 강의를 하고 있다.

내용

기상학은 한국기상학회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학회는 6·25전쟁 이후에 초대 중앙관상대(지금의 기상청) 대장이었던 이원철(李源喆) 박사를 주축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학회 회원은 중앙기상대의 과장급 직원으로 구성되었고 실질적으로 학술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1963년 12월에 관상대 직원·대학·군 등 각계 기상관련 인사들이 구성되어 한국기상학회가 새롭게 창립되었으며, 초대 학회장에 당시 관상대장이었던 국채표(鞠埰表) 박사가 피선되었다.

1965년에 『한국기상학회지』 창간호가 발행된 이후, 1984년까지 매년 1권 또는 2권, 1985년에서 1988년까지는 매년 3권, 그리고 1989년 이후에는 매년 4권이, 2000년부터는 격월로 발행되었고, 2001년부터는 그 중 2회는 영문으로 된 『Journal of the Korean Meteorological Society』가 발행되었다. 2006년부터는 모두 영문저널지로 발행되었으며, 2008년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로 승격된 이후부터 『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ses』로 발행되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영문학회지인 『Korean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를 발행한 바 있으며, 그 밖에 한국어 학술지인『대기(大氣)』가 발간되고 있다.

학회의 국제적인 행사로서 1985년 5월에 ‘대기과학과 대기질에의 응용(International Conference on Atmospheric Sciences and Applications to Air Quality)’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지원을 받아 개최하였다. 그 후 1993년 10월에 학회창립 30주년기념 행사로 ‘기후변화와 환경(International Conference on Climate Change and Environment)’, 그리고 1998년 4월에 ‘몬순과 물순환(International Conference on Monsoon and Hydrological Cycle)’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어 한국기상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한편, 기상연구소는 매년 기상청 직원 및 연구원의 연구결과를 『기상연구논문모음집』에 수록·발간하여 한국 기상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황

기상학의 중요한 목표는 대기현상의 실태와 공기 흐름을 관측하고 이 관측자료를 분석하여 이들 현상을 이해하고, 그 이론을 정립하고 이 이론에 근거하여 정확한 예측과 적절한 인위적 제어(制御)를 행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기상학은 전통적으로 크게 물리기상학·종관기상학(綜觀氣象學), 그리고 기상역학(氣象力學)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밖에 기후학과 응용기상학이 포함된다.

1965년에 창간된 『한국기상학회지』에서 1980년대 초까지 발표된 연구논문을 중심으로 위에서 열거한 각 분야별 연구업적을 조사해 보면, 우리나라 기상학은 1960년대 초까지는 주로 종관기상관측과 기상예보 위주로 발전되어 왔으나, 그 후에 장기간의 관측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지역에 따른 기후의 특성에 관한 연구가 먼저 시작되었다.

최근 대기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과 지구온난화와 연관하여 기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측우기와 측우대』(국립기상연구소, 2010)
『서울대학교 기상학/대기과학 50년사』(서울대학교, 2008)
『한국기상학회지』(한국기상학회, 제1권∼제35권, 1965∼1999)
『한국기상학회보-대기-』(한국기상학회, 창립30주년기념호, 1993)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84)
『한국기상학회의 어제와 오늘』(한국기상학회, 한국기상학회지특집호, 1983)
『한국기상학사』(금성삼, 한국현대문화사대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7)
『朝鮮古代觀測記錄調査報告』(和田雄治, 朝鮮總督府觀測所, 1917)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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