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Nigeria)

나이지리아의 국기
나이지리아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나이지리아연방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Nigeria
정의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 있는 공화국.
개관

정식 명칭은 나이지리아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Nigeria)이다. 대서양 연안의 나이저 강 유역에 위치하며, 해안선이 853㎞에 달한다.

면적은 92만 3768㎢, 인구는 1억 8156만 2056명(2015년 현재), 수도는 아부자(Abuja)이다. 행정구역은 1개 특별시, 36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제 국가이다.

종족구성은 하우사-풀라니족 30%, 요루바족 20%, 이보족 17%을 비롯하여 약 250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언어도 영어(공통어) 외에 250여 부족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 50%, 기독교 40%, 토착신앙 10%의 구성을 보인다.

나이지리아 최대의 사회적 갈등요인은 부족간의 대립인데, 특히 아랍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북부의 보수적 이슬람교파의 하우사족과 기독교도가 많은 진보적인 남동부의 이보족 사이의 반목이 심하다.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코코아·땅콩·야자·천연고무·면화 등이 주산물이다.

1960년대 이후 세계 제7위의 매장량에 달하는 방대한 석유자원의 개발과 더불어 급속한 산업화가 전개되어 아프리카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5685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950달러이다.

나이지리아의 정체는 임기 4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인 상원(109석)과 하원(36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전인민당(APP), 국민민주당(PDP), 민주동맹(AD) 등이 있다.

약사

고대 아프리카의 교차로 구실을 하던 나이지리아 지역은 850년경부터 소왕국들이 형성되었으며, 11세기 초에는 왕국이 연합된 형태의 정치제도를 갖고 있었다. 1470년 포르투갈인들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라고스 해안에 상륙하였다. 16세기에는 유럽인들이 대거 진출하여 노예무역에 종사하였다.

특히, 영국은 16세기 중엽 이후 다수의 노예무역회사를 설립하는 등 나이지리아에 대한 경제권을 장악하여 1862년에 노예무역기지인 라고스를 직할 식민지로 만들었고, 1900년에는 나이지리아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1957년부터 자치가 허용되었으며, 1960년 10월 1일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에는 군사쿠데타가 계속되어 현재에도 군정이 실시되었으나 1989년 5울 신헌법을 제정. 현재 30개 주(states)로 이루어진 연방제 국가형태를 취하고 있다. 1993년 11월의 쿠데타로 의회가 해산되기도 했으나 현재 상원과 하원의 의회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독립 이래 우경중립의 비동맹중립노선을 유지하면서 제3세계의 주권 및 권익 보호, 초강대국 간의 냉전에 따른 세계적 불안 제거 등을 주장해 왔다. 1960년 유엔에, 1964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80년 2월 22일에 나이지리아와 수교하였고, 같은 해 3월에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급속히 발전되어 왔으며, 1982년 8월전두환 대통령의 나이지리아 방문을 계기로 양국간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관계는 두드러지게 성장하였으며, 2000년 7월에는 나이지리아 오바산조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바 있다.

양국은 1982년 8월에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 12월에 항공 협정, 1988년 10월에 이중과세방지 협정, 1989년 8월에 해운 협정, 1996년 10월에는 체육교류 협정, 1998년 3월에는 투자보장 협정을 체결하였다.

1974년 동산토건주식회사가 초자로(硝子爐) 건설공사를 맡아 최초로 진출한 이래, 198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현대, 대우, 삼성물산 등 10여 개 업체가 진출하여 호텔 건설, 석유화학공장 건설에 참여했으며, 아연도금철판공장·변압기수리생산공장 등 중소기업 형태의 합작투자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기술협력의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총 95명의 기술연수생을 초청하여 훈련을 실시한 바 있으며, 현재 KOTAR를 비롯하여 현대·한양·대림·삼환 등 건설회사와 정한실업·(주)태화·누리코리아 등의 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나이지리아 수출액은 6억 8580만 달러로서 철골구조·합성수지·자동차 등이며, 수입액은 11억 2616만 달러로 천연가스가 주종목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08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년 현재 교민 1명과 체류자 1021명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76년 5월 25일 나이지리아와 수교하였고, 1977년 4월에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북한은 수교 이후 주로 관개수리 및 농업관련기술자들을 파견해 왔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투자보호 및 국사협력 등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2007년도 북한의 대나이지리아 수출액은 352만 달러로서 수산물·향신료·철강제품 등이며, 농업기술자 10명이 진출해 있다.

나이지리아 안의 한국 문화

1983년 6월에는 나이지리아 민속무용단이 내한공연을 하였고, 1984년 6월에는 우리나라 민속무용단이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여 순회공연을 가지는 등 상호 문화교류도 활발하였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나이지리아』(대한무역진흥공사, 1991)
『아프리카 아프리카』(최평규 편, 국풍, 1983)
『나이지리아 경제와 기업진출 환경』(이경선·이상직, 산업연구원, 1983)
『아프리카정치론』(하경근, 일조각, 1974)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현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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