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 생천현(狌川縣, 일명 也尸買 〉 또는 〉也口買)인데, 신라 경덕왕이 낭천으로 고치고 군으로 하여 삭주도독부에 예속시켰다. 고려 초기 춘주(春州)에 속하였으나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어 낭천현으로 하였다.
1644년(인조 23) 김화에 예속시켰다가 1653년(효종 4) 다시 현으로 하였다. 1895년(고종 32) 낭천군이 되었고, 1902년 명칭을 화천으로 바꾸었다. 광복과 더불어 38°선의 이북지역에 속하였다가 1950년 수복되었다. 현재의 강원도 화천군의 대부분 지역이 과거의 낭천현이었다.
낭천현은 철원진관(鐵原鎭管)에 속하여 약 3백여 인의 군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방천역(方川驛)을 포함하여 3역이 위치하였고, 고적으로는 용화산성(龍華山城)과 생산성(狌山城)이 있다. 토산품으로는 인삼ㆍ칠(漆)ㆍ잣〔海松子〕ㆍ누치〔訥魚〕ㆍ석이버섯〔石覃〕ㆍ배〔梨〕 등이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