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노숙동(盧叔仝)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대사헌, 형조참판,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노숙동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대사헌, 형조참판,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노흥길(盧興吉)이고,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노언(盧焉)이며, 어머니는 군기시소윤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427년(세종 9)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분관되었다. 그 뒤 승문원의 박사·교리(校理)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 직후 집현전에 선임되고, 수찬(修撰)이 되어 지제교를 겸임하며, 『치평요람(治平要覽』 편찬에 참여하였다.
143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을과로 급제하고 직강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와 집현전의 교리·응교를 역임, 항상 춘추관직을 겸임하고 경연에 참여하였다. 필선(弼善)·보덕(輔德)·사인(舍人)을 거쳐, 1448년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언사(言事)로 지통례첨사(知通禮詹事)에 체직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세자시강원좌필선·예문관직제학을 거쳐 집현전직제학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당상관으로 승진하면서 호분위상장군 겸 지병조사춘추관편수관을 거쳐, 다시 동부승지로 발탁되었다. 1451년에 찬진(撰進)된 『고려사(高麗史)』의 기(紀)·지(志)·연표 집필에 참여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년) 좌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좌승지를 거쳐 호조참판에 승진하면서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과 동지경연사를 겸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예문관제학 겸 동지경연사에 이어 대사헌이 되면서 세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을 겸임하였고,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6년 형조참판에 체직되고, 이듬해 덕녕부윤(德寧府尹)·도진무를 거쳐 가정대부에 오르면서 예조참판 겸 동지춘추관사·예문관제학 겸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58년 호조참판에 제수되었고, 이 후 판진주목사(判晉州牧事)·경상도관찰사·한성부윤·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역임하였다.
1462년 사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상호군(上護軍)이 되었다가 죽었다. 많은 저술에 참여했고,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숙종 때 함양의 도곡서원(道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한충희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