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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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농민학교 실습
신갈농민학교 실습
개념
농업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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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농업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교육.
내용

농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농업을 배움으로써 확고한 농업관과 근면성·협동성 등 바람직한 인간행동을 기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여기서 농업이라고 하는 것은 작물·원예·축산과 같은 생산 분야만이 아니라 농업기계·농업토목·농산물제조 등과 같은 농업관계 직업 분야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농업교육은 그 범위가 넓어서 학교 농업교육과 사회 농업교육을 모두 포함하며, 학교 농업교육에서는 교양농업교육·직업농업교육·고등농업교육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학교 농업교육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이며, 사회 농업교육은 농촌지도사업을 비롯한 각종의 사회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농업교육이다. 교양농업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농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태도를 기르는 교육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농업교육이 여기에 해당된다.

직업 농업교육은 장차 농업 분야에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농업에 관련된 직종을 찾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교육으로 농업계 고등학교 교육이 여기에 해당된다. 고등 농업교육은 전문대학 이상의 수준에서 농학에 관한 심오한 학문과 정치(精緻)한 이론을 교수, 연구하여 국가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다.

전통시대의 농업교육은 학교 등에서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아이들은 부모와 이웃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언제, 어떻게 씨뿌리고 김매며 추수하는가를 배웠다.

그 뒤 조선시대에 와서 비로소 조직적인 농촌지도가 시작되었다. 면마다 권농관(勸農官)을 두어 이들이 면임(面任)·동임(洞任)을 통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제때에 씨뿌리고 김매게 하였으며, 가을에는 추수하고 가을갈이를 하도록 지도하였다. 이러한 지도활동은 행정독려적이며 강제적인 성격을 띤 농업교육이었다.

1886년(고종 23) 육영공원(育英公院)이 설립되면서 격치만물(格致萬物)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그 과목의 내용은 거의 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1901년 1월에는 농상공부 직할의 잠업과 시험장에서 학생들을 모집하여 2년간의 수업연한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1904년 <농상공학교관제>가 공포되면서 근대적인 농업학교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1906년 농상공학교의 학생과 한성학당(漢城學堂)의 농업속성과 학생을 합하여 2년제 농림학교가 되었으며, 이듬해 1월에 수원으로 옮겨 수원농림학교(水原農林學校)가 되었다.

1909년 <실업학교령>이 공포되고 이에 의하여 농업학교와 농업보습학교가 설치되었으며, 1910년 대구·평양·전주·함흥·진주·광주·춘천·군산·정주·제주 등에 농업 또는 실업학교가 설립되었다. 1910년 이후에도 이들 학교는 거의 그대로 존속되다가 1918년에 수원농림학교가 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1922년에는 <조선교육령>이 개정되면서 3년제의 을종농학교와 5년제의 갑종농학교로 분리되었다. 광복 전까지 이들 농업보습학교와 을종농학교에서는 자영인 양성을, 갑종농학교와 수원농림전문학교에서는 고급관리의 양성을 담당하였다.

당시에는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민간에 의한 농업교육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925년 당시에는 마산복음농사학원(馬山福音農事學院)·통영고등농사학원(統營高等農事學院)·신천농민학원(信川農民學院) 등과 같은 농민학교가 있었다.

이러한 학교에서는 실제로 농촌에서 영농을 하면서 농촌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였으며, 이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릴 때에는 주위의 농민들이 함께 참석하여 즐기고 생활개선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큰 구실을 하였다.

1925년에는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에서 ≪조선농민≫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한글보급과 농촌계몽, 농촌신문화 수립을 목표로 교양·농업기술·오락 등에 관한 내용으로 농민을 계몽하는 한편, 수시로 농민강좌와 농촌순회강연회를 개최하여 농민교육을 실시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수원농림전문학교가 국립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편입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새로운 고등 농업교육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광복 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직업 농업교육의 급격한 양적 팽창기로 규정지을 수 있다. 1945년 30개 학교에 불과하였던 농업고등학교가 1952년에는 97개 학교, 1956년에는 135개 학교로 증가하였고, 학생수도 4만 9522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농업고등학교가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6·25전쟁 후 대학생을 비롯한 중학생까지도 병역연기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교육열이 크게 높아졌고, 국가정책으로 고등학교는 인문계와 실업계의 설립비율을 4:6으로 유도한 결과 농업고등학교가 많이 설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직업 농업교육은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으나 교육 내실면에서는 실제적인 영농경험을 가진 농업교사가 적어 이론중심의 교육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1953년 4월 농업고등학교 농업과 지도요강이 문교부에 의하여 작성, 배부되었으나 교육목표의 진술도 없이 각 교과별 전체 시간과 요목만 제시되었으며, 내용이 너무 이론적이고 분과별로 전문화된 과목들이 나열되었다.

1955년에는 전국농업고등학교 실습농장운영 종합심사제도가 실시되어 고등학교 실습농장의 합리적인 운영을 도모하고, 실습과 연계된 농업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체제 마련에 노력하였다.

1957년에는 농사원(農事院)이 발족되어 사회 농업교육의 주류인 농촌지도사업이 본격화되었고, 평택종합고등학교가 설치되면서 진보주의 교육철학에 기초를 둔 미국형 농업교육을 우리 나라에 시험적으로 적용하게 되었다.

기존의 농업고등학교가 농업과목을 전문화, 세분화하여 가르친 데 비하여 평택종합고등학교(平澤綜合高等學校)에서는 농업(1)·농업(2)·농업(3) 등과 같이 농업 과목을 종합화하였고, 가르치는 내용도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의 영농에 필요한 것을 종합적으로 가르쳤다. 1958년에는 농업계 고등학교의 교과 시간 배당기준표가 개정되어 농업교육의 틀이 어느 정도 잡히게 되었다.

1962년 <농촌진흥법>에 의하여 농촌진흥청이 발족되면서 농촌지도사업이 한층 강화되었다. 또한 1963년 농업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사범교육기관인 국립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교육과가 설치되어 학생모집을 시작하였고, 농업고등학교의 교육방향을 제대로 정립한 교육과정이 마련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농업고등학교 교육목표를 중견농업경영자 양성으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공학과에 관계 없이 모든 학생들은 토양비료·보통작물·조림보호·가금·중소가축·양잠·채소원예·농업경영·농업공작 등 9개 공통 과목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었다. 모든 농업교과목은 이론 50%, 실습 50%의 비율로 이수하게 하였으며, 새로운 농업교육방법인 가정영농과제실습법과 영농학생회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농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교과중심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이 개정으로 직업농업교육의 목표는 중견경영자와 기술자 양성으로 이원화되고, 전문교과의 이수비중을 전교과의 최소 50%, 최고 70%까지 이수할 수 있게 되었으며, 9개 공통 과목을 폐지하고 전문필수과목이 11∼13개 과목으로 확대되었다.

1972년 3월에는 많은 농업고등학교들이 인문계 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농업교육은 65개의 순수농업고등학교를 포함한 125개의 종합고등학교와 실업고등학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또 같은 해 <산학협동심의회규정>이 공포되어 문교부와 농수산부가 농업교육을 위하여 긴밀하게 협조하게 되었다. 그 결과 문교부는 1973년에 12개 농업고등학교를 산학협동시범농업고등학교로 지정하였고, 이 학교를 중점적으로 지원하여 실험실습 시설을 현대화하고 협업농장을 설치, 운영하였으며, 교과과정의 70% 이상을 농업과목으로 구성하고 60일 이상의 현장실습 또는 종합실습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노력과 아울러 영농 후계자 육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1980년부터 전국 10개 농업고등학교에 자영농과를 설치하고, 학생의 선발을 학업성적보다는 영농기반과 본인 및 부모의 영농희망 여부 등을 기준으로 하였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운영도 보다 실제적인 영농 능력과 의욕을 기를 수 있도록 편성, 운영하였다.

1981년에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산업사회의 발달에 농업교육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농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대폭 개편하였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생산학과는 종합농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농업관련직 학과는 직무능력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아래 종래에는 없었던 농업발전·농업생산환경·농업생산자재 등의 교과목이 신설되었고, 기초실습과 경영실습과목을 따로 두었으며, 보통 교과와 전문 교과의 이수비율을 각각 최저 40%, 최고 60%까지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는 1983년부터 순수 농업고등학교를 자립체제로 육성하기 시작하여 1987년까지는 모든 순수 농업고등학교를 자립체제로 육성하기로 하였다. 자립체제란 농장규모를 확장하여 현대화된 영농실습을 가능하게 하고, 농장실습에서 나온 수익금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함으로써 농업교육의 진흥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장규모가 커짐에 따라 농장운영에 필요한 학생들의 육체노작의 양이 증가하여 교육상의 문제점으로 나타나 1990년대에 들어와 더 이상 이러한 체제로 운영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성향 변화에 따라 학교명 및 학과 개편 등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어 농과·임과·축산과 등은 그 수가 대폭 감소되고 식품가공과·원예과를 비롯한 다양한 학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997년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도 40%이상이 전문대 이상의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고등 농업교육은 1946년에 국립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뒤 각 도에 국립대학이 설치됨에 따라 농과대학도 따라서 설치되었다.

1965년에는 우수한 농업고등학교를 5년제 고등 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가 1979년부터는 다시 2년제 전문대학으로 개편하였다. 사회 농업교육은 농촌진흥청의 농촌지도사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직업 농업교육을 담당하는 농업계 고등학교의 농업교육은 순수농업고등학교와 종합 또는 실업고등학교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1999년 9월 현재 농업계 고등학교 28개 학교에 29,648명의 학생이 농업과·임업과·축산과·원예과·잠업과·농업토목과·농업기계과·식품가공과·농업가정과·자영생활과 등에 재학하고 있다.

고등 농업교육은 농업전문대학 및 농과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1999년도 ≪교육통계연보≫에 의하면 전문대학에는 58개의 농림계 학과에 8,975명, 4년제 대학에는 256개 농업관계 학과에 3만 3472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방송통신대학의 농학과에도 7,335명의 학생이 등록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농업교육의 주된 담당자인 농촌지도사업의 현황을 보면, 1998년 현재 5,545명의 직원이 157개 농촌기술센터와 534개 소의 읍면 농업인상담소 등에서 농촌 주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촌지도사업은 1997년 농촌지도공무원이 국가직에서 지방직화 되었고, 이어서 단행된 조직 개편에 따라 농촌지도소가 농업기술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시군에 따라서는 행정 업무와 지도 업무가 통합되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 변화에 따라 농업계 고등학교의 주요 목적은 자립 영농인 양성과 농업 관계직 취업자 양성에서 농업에 관련된 기초 인력 양성으로 변화되었다. 국민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농업 분야에서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기보다 전문대학을 비롯한 대학 그리고 사회 교육기관에 나아가 더 많이 배운 다음에 취업을 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농업고등학교의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업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는 실과 교육에서 시작하여 중학교에서 진로지도의 한 영역으로서 직업 분야에 대한 탐색, 그리고 농업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길러 고등학교 때에 농업에 대한 기초 교육을 한 다음 전문대학 이상의 교육 기관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취업하도록 하며, 사회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배우게 하는 평생 학습 사회로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나라 사회에도 교육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농업교육도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에 맞추어 교과 중심,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 활동 중심의 교육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농촌 사회교육에서도 자연스럽게 고객 중심, 실용 중심의 교육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농업교육은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농업교육 프로그램, 교육 방법을 고안하여 학생, 학부모, 산업사회로부터 인정받는 농업교육 체제를 만들고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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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朝文化硏究』 Ⅱ(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4)
『水原農學八十年』(서울大學校 農科大學, 1986)
『농업교육학개론』(이용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職業敎育訓練100年史』(韓國職業能力開發院, 1998)
『農業敎育100년의 발자취』(泉溪宋海均敎授停年退任記念事業推進委員會, 1999)
『지방화시대의 농촌지도사업 발전방향』(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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