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성, 담양, 순창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성, 담양, 순창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북단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북단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북쪽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51′∼127°07′, 북위 35°07′∼35°28′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455.05㎢이고, 인구는 4만 700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304개 행정리(13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있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북고남저의 지형이며 동서보다는 남북으로 길다. 지질은 주로 백악기지층(白堊紀地層)과 대보화강암층이며, 토양은 회색토 및 충적토, 양질의 갈색삼림토로 되어 있다.

북쪽에는 노령산맥의 지맥에 추월산(秋月山, 731m)·금성산(金城山, 573m)·광덕산(廣德山, 584m) 등 일련의 높은 산들이 산악을 형성, 전라북도와 도계를 이룬다. 서쪽에는 병풍산(屛風山, 822m)·불대산(佛臺山, 602m) 등이 장성군과 군계를 이룬다. 남동쪽에는 국수봉(國守峯, 558m)·무등산 등이 솟아 있다. 남서쪽만 전라남도의 여러 평야와 연접해 중앙부를 분지로 만든다.

영산강의 최상류인 담양천(潭陽川)이 추월산의 용추봉(龍湫峯)에서 발원하여 군의 중앙을 통과한다. 이 하천은 무등산에서 발원한 증암강(甑巖江)·오례강(五禮江)과 합류하면서 중앙에서 서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비옥한 평야로 형성한다. 호수로는 영산강 유역의 농업개발사업을 위해 1976년에 완공된 용면의 담양호와 가사문학면의 광주호가 있다.

기후는 내륙에 위치하므로 비교적 한서의 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2.7℃, 1월 평균기온 -0.6℃, 8월 평균기온 25.4℃이며, 연강수량은 1,701㎜로 대체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로서 발견된 것은 없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은 대덕면과 봉산면에서 마제의 석검·석촉·석부 등이, 담양읍에서는 세형동검과 세문경이 출토되었다. 금성면·대덕면·대전면·무정면 등 군의 거의 전지역에 걸쳐 고인돌군이 분포되어 있다.

백제시대에는 추자혜군(秋子兮郡)으로 불렀고, 757년(경덕왕 16)에는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쳐 불렀다. 이때의 치소는 무정면 봉안리로 보인다. 백제 때 굴지현(屈支縣)이 있었던 창평면(昌平面)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어 기양현(祈陽縣)으로 개칭되었다. 868년(경문왕 8) 왕의 발원에 의해 개선사(開仙寺)가 창건되었다.

995년(성종 14) 담주(潭州)로 고치고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다가 담양으로 고쳐서 나주(羅州)의 속현이 되었다. 이 때 현의 치소는 금성면 석현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주현으로 독립하였다.

1237년(고종 24) 이연년(李延年) 형제가 원율(原栗, 栗原)에서 민란을 일으켜 한때 광주까지 위협하였다. 몽고의 침입기에는 차나대(車羅大) 등이 담양에 둔소(屯所)를 설치해 주둔하기도 하였다. 1391년(공양왕 3)에는 율원현(栗原縣)을 겸병하여 속현으로 삼았다.

1395년(태조 4) 국사 조구(祖丘)의 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하였다. 다시 1399년(정종 1) 정종비 김씨(金氏)의 외향이라 하여 부로 승격한 뒤 1413년(태종 13) 담양도호부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高敬命)의 아들 인후(因厚)가 창의하여 금산싸움에서 전사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관아와 축요루(祝堯樓) 등의 건물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1648년(인조 26) 부사 성이성(成以性)이 해마다 둑을 쌓아 수해를 막아오던 것을 1717년(숙종 43)의 대홍수 이후 관방제(官防堤) 축조에 착수, 1854년(철종 5)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관비를 투입해 완성하였다. 한편, 창평현은 1479년(성종 5) 강상죄(綱常罪)에 연관되어 일시 폐현, 광주에 병합되었다가 5년 뒤 복구되었다.

1728년(영조 4) 역적 박미귀(朴美貴)의 출생지라 하여 담양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38년 다시 승격하였다. 1762년 역적 이홍범(李弘範)의 태생지라 하여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72년 담양도호부로 승격되는 곡절을 겪었다. 가사문학면의 성산 일대에는 일찍부터 많은 문인이 거주해 문단활동을 하였다. 특히, 송순(宋純)의 면앙정(俛仰亭), 정철(鄭澈)의 송강정(松江亭)과 식영정(息影亭) 등을 중심으로 시가와 별곡이 제작되는 산실이 되었다.

1895년의 관제개혁으로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에 속하게 되었다. 창평현은 창평군으로 바뀌었다. 1908년 옥과군이 폐지되면서 일부가 담양에 이속되었다. 1914년 창평군이 폐지되어 그 예하의 면들과 광주군의 갈전면·대치면, 장성군의 갑향면·북하면 일부, 동복군 일부가 편입되었다.

1895년부터 일어난 의병투쟁에는 고광순(高光洵)·고제량(高濟亮) 등이 창평에서 일어나 남원·동복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연곡사에서 순절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송진우(宋鎭禹)가 활약한 것이 두드러진다.

담양에서는 정기환(鄭基煥)·임기정(林基政) 등 9명이 장터에서 시위를 벌였고, 창평에서는 조보근(趙補根)·한익수(韓益洙) 등이 주동하였다. 1923년 담양선이 개통되었다가 1943년 선로가 철거되었다. 1943년 담양면은 읍으로 승격하였다.

1949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용흥사(龍興寺) 등에서 전투가 있었으며, 6·25전쟁 때는 공비들이 용면의 용추산과 가마골에서 준동하여 1955년에야 완전히 진압되었다. 1957년담양군 남면(지금의 가사문학면)의 덕의리·충효리·금곡리가 광주시로 편입되었다.

1976년 담양호와 광주호가 건설되어 용면·남면의 일부 마을이 수몰되었다. 1983년에 봉산면 강쟁리, 무정면 오계리·반룡리, 금성면 금월리·삼만리·학동리, 월산면 운교리·삼다리·가산리가 담양읍에 편입되었고, 1990년에 남면 외동리가 창평면에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담양읍 가산리, 무정면 오봉리 등 곳곳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봉산면 제월리에서는 석촉·환석·석검·지석·토기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철제대도·동경·마구류·옥류·토기호·개배 등 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전면 행성리 등에는 고분이 있다.

산성으로는 용면 도림리에 금성산성(사적, 1991년 지정)과 무정면 오봉리에 담주산성(潭州山城)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가사문학면 학선리에 개선사지석등(보물, 1963년 지정), 담양읍 객사리에 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 남산리 용화사에 불조역대통재(보물, 1982년 지정), 지침리에 담양읍내리오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등이 있다.

또, 월산면 용흥리에 용흥사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용흥사부도군(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고서면 금현리에 영은사석조여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용면 용연리에 용추사사리탑, 무정면 봉안리에 언곡사지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남아 있다.

이 밖에 무정면 오룡리 외당마을의 동방로방미륵(東方路方彌勒), 창평면 창평리의 이천부락석불(鯉泉部落石佛), 가사문학면 학선리의 향적사지석불(香積寺址石佛), 대전면 행성리의 행정부락천연석불(杏亭部落天然石佛), 고서면 분향리의 담양분향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용면 월계리 추월산의 보리암(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담양읍 향교리에 담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고서면 교산리에 창평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고서면 분향리 죽림유장(竹林遺莊) 안에는 죽림재(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세일재(歲一齋)·취사당(聚斯堂)·충효각이 있다. 또, 대덕면 매산리의 담양몽한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대전면 행성리의 대성사, 평장리의 담양오충정려(전라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포의사가 있다.

학당으로는 고서면 분향리의 수남학구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수북면 오정리의 수북학구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정자로는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전라남도 기념물, 1972년 지정), 가사문학면 지곡리의 담양 송강정(전라남도 기념물, 1972년 지정), 창평면 용수리의 상월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담양읍 백동리의 남희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남아 있다.

정원으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가사문학면 지곡리의 담양소쇄원(사적, 1983년 지정), 고서면 산덕리의 담양후산리 명옥헌원림(전라남도 기념물, 1980년 지정), 가사문학면 연천리의 독수정원림(전라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중요한 사료로는 조선 중기를 연구하는 데 기초자료가 되고 있는 『미암일기』(보물, 1963년 지정)가 대덕면 장산리 모현관(慕賢館)에 소장되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는 담양읍 향교리에 낙죽장(중요무형문화재, 1969년 지정)·참빗장(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과 양각리에 채상장(중요무형문화재, 1975년 지정)이 있다.

용면 월계리에 담양추월산(전라남도 기념물, 1972년 지정), 담양읍 객사리에 담양 관방제림(천연기념물, 1991년 지정) 등의 명승지와 고서면 산덕리에 담양후산리은행나무(전라남도 기념물, 1980년 지정),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등록문화재로는 창평면 삼천리 삼지천마을 옛 담장(등록문화재, 2006년 지정)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담양향교와 창평향교가 있었다. 담양읍 향교리에 있는 담양향교는 630여 년 전 고려 충혜왕 때 담양 출신 재보(宰輔)였던 전녹생(田祿生)이 그가 살던 주택과 대지를 헌납하여 세웠다. 그 뒤 1795년(정조 19) 이헌유(李憲儒)가 중수했고 영조 때 안정헌(安廷瓛)이 중건하였다. 창평향교는 1399년에 세워졌다.

서원으로는 1607년(선조 40)에 담양읍 향교리의 의암서원(義巖書院)이, 1694년(숙종 20)에 창평면 해곡리 동강의 송강서원(松江書院)이, 1713년(숙종 39)에 대전면 대치리의 대치서원(大峙書院)이 세워졌다가 세 서원 모두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수북면 오정리의 수북학구당은 약 400년 전 그 지역의 진(陳)·남(南)·박(朴)의 3성 주관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100년 뒤 김(金)·이(李)·우(禹)·정(丁)의 4성이 지금의 자리로 이축하였다. 또한, 고서면 분향리의 수남학구당은 1570년 향적사(香積寺) 터에 세워진 것이다.

근대 교육기관은 규장각직각이었던 고정주(高鼎柱)가 1908년 창평보통학교의 전신인 창흥학숙(昌興學塾)과 영학숙(英學塾)을 설립, 신학문을 보급하였다. 1907년 담양향교 재장(齋長) 이규담(李圭潭)이 세운 광명학숙(光明學塾)은 1909년 4년제 담양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이어 오늘의 담양동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으며, 전남도립대학교가 있다.

군립도서관이 있어 군민들의 교육·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담양문화원에서는 매해 5월 군민의 날에는 민속경연과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수북면에 성암청소년야영장이, 무정면에는 교육훈련장인 충의교육원이 세워져 국민정신교육의 도장이 되고 있으며, 추성경기장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들독놀이·풍작놀이·초군놀이·줄다리기 등을 들 수 있다. 들독놀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놀이로 단오·백중·추석·중양 때 많이 행해졌다. 들독은 무게가 60∼90㎏인 작은 들독과 100∼120㎏인 큰 들독이 있는데 역량에 따라 선택하였다.

들기의 종류로는 뿌리띠기·무릎들기·허리펴기·어깨올리기·고개치기·열발떼기 등이 있으며, 돌을 잡는 방법에 따라 맨손들기와 또가리들기로 나누어진다. 30대에 이르는 청년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개인별 힘겨루기, 장사뽑기, 머슴자랑과 마을 고샅(골목)별 단체놀이가 있었으며, 승전품은 대개 술과 닭이었다. 들독놀이가 시작되면 전주민이 관전하였으며, 놀이에 지게 되면 체력단련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풍작놀이는 백중에 농사가 제일 잘 된 집을 뽑아 즐기는 놀이였다. 장원농가로 뽑힌 집에서는 술과 음식을 마련해 잔치를 베푼다. 마을의 모든 농군들과 머슴들은 장원집 황소를 장식하고, 소의 등에 안장을 얹어 장원집 머슴을 태워서 장원답을 돌아 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이 때 장원집 머슴은 볏짚이나 대풀로 모자를 만들어 쓰며 얼굴에는 수수깡안경과 솔잎수염을 달고 숯검정을 칠하였다. 특히, 장원답으로 갈 때는 농악을 울리고 위세를 부린다. 장원집으로 돌아오면 거지들까지 참여한 잔치에 합류해 하루를 즐겁게 지낸다.

초군놀이는 풀을 베기 위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초군들이 풀터를 찾아 풀을 베고 돌아올 때까지 집단으로 즐기는 놀이이다. 풀을 베는 날 수머슴이 또쟁이(애기머슴)를 데리고 동구 밖에 나가 소굿을 치면, 초군들이 ‘대동(大東)’이라는 덕석기를 들고 모여 풀타령과 함께 지게목발에 장단을 치며 산의 풀터로 올라간다.

덕석기를 풀터 중앙에 꽂고 풀을 베기 전에 지게를 바르게 들어올리는 지게꼬누기·들독놀이·씨름 등의 놀이를 한다. 풀을 베고 나면 낫던져꽂기·풀뭉치차기·장사내기 등의 풀따먹기를 하고 나서 다시 「풀타령」을 부르며 내려오는 것이다. 줄다리기는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던 놀이였으며, 씨름 또한 인기 있는 민속놀이로 널리 행해졌다.

통상 거목을 당산나무로 한 당산제를 정월대보름 전후나 2월에 유교식 가제(家祭)와 비슷하게 지낸다. 제관과 동민이 모두 목욕재계하고 제단 주위를 깨끗이 하여 황토를 뿌린 뒤 금줄을 치며 제사 당일은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창평면 장화리 장전마을은 숙종 때 남씨부인의 꿈에 마을 수호신령이 나타나 정월대보름에 제를 지내면 후손이 번창할 것이라고 이른 뒤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정월 초이렛날 그 해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 중에서 제를 주관할 화주(化主) 3명을 결정한다. 선정된 사람은 제일까지 부인과 동침하지 않으며, 비늘달린 고기나 조개류는 먹지 않고 질그릇으로만 음식을 먹는다. 초아흐렛날 당산할머니나무 아래 마포차일을 치고 당산할아버지나무 아래 초롱을 달며, 두 나무에 금줄을 치고 제단 주위에 황토를 깐다. 초열흘에는 인구전(人口錢)을 걷는다.

열나흗날 밤 제상을 차리면 마을사람들은 걸궁으로 당산신을 모신다. 새벽 두 시에 화주가 “강신이요.” 하고 알리면 각 가정에서도 방에 제상을 차려놓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빌게 된다. 제 뒤에는 떡을 흰 종이에 싸서 각 가정에 돌린다. 이 떡을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한다. 당산신은 3일 동안 머무른다 하여 초롱불은 계속 켜두고 삼실과와 술은 그대로 놓아두며, 열여드렛날에야 제가 끝나게 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담, 자연물 관련 설화, 사찰연기설화와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소설 「전우치전(田愚治傳)」으로 유명한 전우치는 담양전씨(潭陽全氏)로, 수북면 황금리에 그에 관한 설화가 남아 있다. 해적이 들끓고 관리의 탐학이 심하여 당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에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는 동자 한 쌍과 함께 구름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구름 위에서 궁중을 내려다보며 “나는 선관으로서 옥황상제가 지상의 임금들에게 황금들보를 하나씩 거두어오라 하여 왔다.”고 하면서 황금들보를 거두었다. 들보의 일부는 팔아 쌀을 사서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때를 만나면 쓰기 위해 지금의 황금리에 묻어 두었다. 불행하게도 전우치는 역적으로 몰려서 죽고, 사람들이 금괴를 찾기 위해 이 일대를 파헤쳤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담양댐 근처에는 고구마같이 생긴 ‘애기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온다. 옛날 금성면에 6대독자를 둔 금부자 부부가 살았다. 그들은 좋은 며느리를 얻어 후손을 많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들이 혼기에 차 혼인을 시켜 놓고 조바심이 난 금노인은 1년 사이에 며느리를 여섯씩이나 갈아들였다. 이상한 일은 여섯 며느리가 모두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때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여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 삼신을 쫓았으니 새 며느리가 말이 많지 않으면 자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금노인은 그날부터 일곱 번째 새 며느리에게 말조심을 시켰는데 과연 1년 안에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즈음 며느리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날이 밝거든 나를 찾아오되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날 며느리는 산신제단이 있는 철마단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 집채만한 바위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어메, 먼 바우가 걸어온다냐?”고 말하는 순간 바위가 걸음을 멈추며 며느리를 깔고 앉아버렸다. 후손을 보려는 금노인의 꿈은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 뒤 이 바위를 ‘애기바위’라 불렀고, 이 지역 여자들은 말이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담양읍 지침리의 옛 지명은 효자리였다. 이 지명에는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 한씨부인은 전씨집안에 시집와서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편을 잃고 말았다. 부인은 유복자를 데리고 품팔이를 하며 고생스럽게 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열다섯이 되던 해 새벽에 눈을 뜬 아들은 잠자리에 어머니가 없는 것을 보고 찾다가 부엌에서 어머니가 치마를 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곡절이 있다고 생각하여 밤중에 집을 나서는 어머니 뒤를 밟았다. 어머니는 서당의 홀아비훈장을 만나러 갔다가 오던 길에 새벽이슬에 젖은 치마를 말렸던 것이다. 아들은 그 뒤 산길의 풀을 말끔히 베어낼 뿐 아니라 어머니와 훈장이 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감동한 사람들이 이 마을을 효자리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밖에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와서 창업을 신령에게 아뢰었다는 삼인산, 효자의 아홉 가지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아홉바위전설」, 호랑이가 나타나면 과거에 급제했다는 벼슬재, 영조의 어머니가 기도하여 영조를 낳았다는 「용흥사설화」 등이 전한다.

담양 지방은 예로부터 벼농사를 많이 지었으므로 민요 또한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많이 전해 온다. 「모판만드는 소리」·「모찌기소리」·「상사소리」·「김맬 때 부르는 소리」·「풍장소리」 등이 그것이다.

「모판만드는 소리」는 볍씨를 뿌릴 모판 혹은 이종을 할 모판을 만들면서 부르는 것이다. 메기는 소리는 3분박 4박자 두 장단에 불리며, 받는 소리는 3분박 6박자에 “오위에라 오위” 하며 일정하게 받는다. 간간이 소리를 길게 받기 때문에 장단은 일정하지 않다.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모찌기소리」는 모판에 뿌린 볍씨가 이종할 만큼 자라면 모판에서 뽑아 한 단씩 묶으면서 부르는 것이다. 선소리꾼이 3분박 4박자 두 장단에 메기는 소리를 내면 일꾼들이 3분박 6박자 한 장단에 “오위 오호 먼들” 하며 일정하게 받는다.

「상사소리」는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중모리에 맞추어 느리게 「긴상사소리」를 부르다가, 뒤에는 모를 빨리 심으면서 중중모리에 맞추어 「잦은상사소리」를 부른다. 김은 모두 세 번을 매는데 초벌을 맬 때는 「오호소리」·「지화자소리」, 두벌 맬 때는 「떨아지소리」, 세벌 맬 때는 「나해소리」·「사뒤여소리」를 한다.

논매기가 끝나거나 혹은 가을에 추수가 끝나고 나서는 장원질을 하며 「풍장소리」를 한다. 「김매기소리」는 그 구성음이 경토리와 비슷한 점을 보이나, 선율의 특징에서는 전라도의 육자배기토리를 보여준다. 주로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렇듯 이 지방의 민요는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들이 종류별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산업·교통

담양호·광주호와 오례강, 그리고 대흥저수지 등이 있어 비옥한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논농사와 근교농업이 활발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채소·느타리버섯·딸기 등이다. 농경지율은 24.8% 임야율은 61.5%이고, 금성면과 무정면에 대규모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대전면에서 시설농업으로 생산되는 느타리버섯은 배양된 종균을 볏짚에 뿌려서 약 40일 동안 기른 다음, 완전히 성숙되면 수확한다. 성장기에 주의할 점은 재배사 안의 온도조절을 평균 15∼20℃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름과 겨울은 피해 봄·가을에 주로 배양하며, 1년에 한두 차례 생산한다.

봉산딸기는 1978년 담양군이 고등원예 주산단지로 지정받고, 농촌진흥청에서 조생종인 보교종(寶交種)의 딸기 종자를 공급받아 촉성재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명해졌다. 딸기의 생산은 주로 봉산면에서 이루어진다. 5∼6월의 노지생산(露地生産)이 아니라 11∼3월까지 겨울 동안 전조재배(電照栽培)라 하여 비닐하우스 안에 전등을 켜 일조시간을 늘이고, 전열기로 가온하여 재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퇴비를 거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공해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새큼한 맛이 제철에 나는 딸기와 거의 같아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 창평면의 창평엿과 죽순회도 유명하다.

임산물로는 대나무 생산지가 1,802㏊로 전국 제일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죽세공업이 예로부터 유명하다. 대바구니류를 비롯한 대발·부채·대쟁반과 소형 장식용 공예품 등 수십 종류의 죽제품이 생산되어 전국적인 판매는 물론 해외로 수출되어 호평받고 있다. 주로 농가의 부업과 수공업으로 이루어진 죽세공업은 담양읍을 비롯해 월산면·수북면·금성면·봉산면·무정면 등 5개 면이 주요 생산지역이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와 죽제품의 수요 감소 때문에 죽세공업은 차츰 위축되는 추세에 있다. 게다가 죽물시장에 등장하는 죽제품도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죽제품들로 대치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2003년 대나무자원연구소를 신설하여 대나무를 활용한 신상품 개발, 신소재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업으로는 고서면 동운리에 편직물공장과 피혁공장 등이 있다.

군내에는 상설시장 1개와 5일 정기시장이 세 곳에 있다. 1720년대에는 금성면 산성의 북문외시(北門外市), 용면 두장리의 서문외시(西門外市), 금성면 금성리의 남문외시(南門外市), 봉산면 삼지리의 삼지천시(三支川市), 고서면 고읍리의 창평읍내시(昌平邑內市), 창평면 삼지내의 삼지천시 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로 근교도시와 가까워졌고, 상설시장의 등장과 도시화로 인해 대도시 중심의 경제활동이 강화됨으로써 이들 전통시장은 점차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60년에는 담양읍의 담양장·창평장·한재장(일명 대전시장), 그리고 갈전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갈전시장은 그 뒤 운영이 잘 되지 않아 폐쇄되었다.

시장의 개시일은 담양장이 2·7일, 창평장은 5·10일, 한재장은 3·8일이다. 시장의 규모는 예로부터 담양장이 가장 컸으나 근래에는 광주광역시와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한 가사문학면·봉산면·고서면 일부가 광주시장권에 편입되어감에 따라 축소되고 있다.

그러나 담양장에는 이 지역의 특산물인 대나무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도 구매자들이 많이 찾아와 죽제품과 대나무를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죽물시장이 2·7일에 개시된다.

도로망은 전라북도 순창과 광주로 통하는 국도가 있고, 곡성 및 장성과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雙置)로 연결되는 국도와 지방도가 있다. 특히, 1973년에 개통된 호남고속도로가 군의 동남부지역을 통과하며, 광주∼담양읍간 고속도로가 부설되어 20분대의 거리로 단축되었다. 또, 광주∼대구간의 광주대구고속도로가 1984년에 완공되어 군의 중앙을 지나고 있다. 2007년 12월 13일에는 호남고속도로의 지선인 고창담양고속도로(고속국도 제253호선)가 완공되어 서해안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이어줌으로써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관광

담양군은 1980년대 이후 교통의 발달로 곡성·장성·순창 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광주광역시의 외곽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추월산·양호·광주호·관방제의 임수 등이 손꼽힌다. 추월산은 전라남도 5대 명산 중 하나로 사계절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숲과 기암괴석, 용소, 용연 제1·2폭포 등 많은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다.

용연리 가마골의 담양호는 농업용수로 이용되는 동시에 주변의 추월산과 어우러져 수려한 경치를 보여준다. 호수의 오른쪽 금성산에는 삼한시대 산성의 성곽이 남아 있고, 산성의 남문 밖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강천사(剛泉寺)와 연대정(蓮臺亭)의 관광명소와 직결되어 관광 코스 및 호반유원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가사문학면의 광주호는 무등산 계곡의 물이 모여들어 농업용수로 공급되며 주변경치 또한 아름답다. 증암천 상류에는 독수정이 있으며, 호수 주변에는 「성산별곡」·「사미인곡」 등의 산실인 식영정이 있고, 조선 중기의 정원인 소쇄원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 조선 중기 작가인 송순이 작품활동을 하던 면앙정이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한편, 1854년(철종 5)에 완성된 관방제는 담양천에 있는 제방으로서, 길이가 담양읍 남산리 동정자마을로부터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200년 이상 자란 팽나무·느티나무·이팝나무·개서나무·엄나무 등이 풍치림을 이루어 여름철 피서지로 이용된다.

가마골은 용면 용연리의 용추봉을 중심으로 사방 약 4km의 주변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이며, 여러 개의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산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1950년 이전까지는 삼림이 우거져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으나, 6·25 때 거의 벌목되었다. 피비린내나는 참화를 겪은 격전지로서 1950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 북상하던 전라도 주둔 북한 공산군들이 이곳에 빨치산으로 잔류, 마지막 토벌될 때까지 5년 동안 버티던 곳이다.

광주호는 고서면·가사문학면과 광주광역시 북구에 걸쳐 있는 호수로 광주댐에 의해 조성되었다.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 제1차 사업으로 완공된 상류 4개 댐 중 규모가 가장 작은 광주댐은 무등산 원효계곡의 물과 규봉 쪽의 장불천(長佛川)을 합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1974년 3월에 착공, 1976년 9월에 완공되었다.

이 댐의 완공으로 고서면·창평면·무정면·봉산면 일대와 광주광역시의 우치동·본촌동·장운동 일대가 농업용수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 호수의 주변은 정철이 「성산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등을 집대성한 곳이기도 하며, 식영정과 조선 중기의 정원인 가사문학면의 소쇄원 등 문화재가 있어 좋은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2002년 산림청이 ‘가장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지정한 8.5㎞에 이르는 메타세퀘이아길이 유명하고, 인근의 한국대나무박물관·가사문학관 등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고려 초에 연원하는 죽취일(竹醉日)을 이어받은 대나무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읍·면
  1. 담양읍(潭陽邑)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29.54㎢, 인구 1만 437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담주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담양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변면(西邊面)이라 하여 시산(匙山)·고산(高山)·사미(四美)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변면의 남산·동정·향교 등 17개 리와 무면(武面)의 일부, 목면(木面)의 일부가 담양면이 되었다. 1943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봉산면·무정면·금성면·월산면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영산강의 상류지역에 위치하며, 동남쪽의 구릉지와 북쪽의 소규모 구릉지 사이로 흐르는 영산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넓고 기름진 평야가 전개된다.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므로 주요 작물은 쌀·보리이다. 광주광역시의 근교지역으로서 원예농업, 특히 딸기 재배를 많이 한다.

또한, 지역 특화산업인 죽세공예제품의 생산은 국내에서 제일이다. 만성리·향교리·백동리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며, 생산된 제품들은 ‘삿갓점머리’라고도 불리는 죽물시장에서 주로 거래된다. 각종 죽세공예품을 전시한 죽물박물관이 1998년에 개관하였다.

1984년에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곳에 인터체인지가 설치됨에 따라 교통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또, 광주와 전라북도의 순창·장성·곡성 등을 연결하는 국도로 정기버스가 빈번하게 운행된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광주와의 거리가 20분대로 단축되면서 광주광역시의 생활권으로 진입, 위성도시로서 급부상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지침리의 오층석탑, 객사리의 관방제림과 석당간, 향교리의 담양향교, 백동리의 남희정, 남산리의 용화사(龍華寺)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고, 전남도립대학이 있다.

담주(潭州)·객사(客舍)·천변(川邊)·지침(紙砧)·백동(柏洞)·남산(南山)·향교(鄕校)·만성(萬成)·양각(羊角)·강쟁(江爭)·반룡(盤龍)·오계(五桂)·삼만(三萬)·금월(錦月)·학동(鶴洞)·삼다(三茶)·가산(佳山)·운교(雲橋) 등 18개 리가 있다.

  1. 고서면(古西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57㎢, 인구 3,5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운리이다. 본래 창평군 지역으로 1793년(정조 17) 이곳에 있던 창평현청을 창평으로 옮기고 고현내면(古縣內面)이라 하여 분향(分香)·용대(龍臺)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면의 8개 리와 북면(北面)·내남면(內南面)·가면(加面) 일부와 우면(右面) 일부가 병합,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산맥은 무등산에서 뻗어내린 서석산의 3봉과 고읍리를 병풍처럼 두른 세령(細嶺, 실바우재)을 이룬다. 서쪽으로는 무등산에서 삼각산과 분리해 야산을 이루면서 주산리 원류마을의 옥녀봉(玉女峰)을 따라 송강정에 이르고, 북쪽은 산이 없이 창평면까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오이·토마토·딸기 등의 원예작물도 많이 생산된다. 최근에는 시설포도 재배가 왕성하다. 주산리는 죽세공업이 활발한 곳으로 한일섬유공장과 남일피혁공장이 가동 중이다. 그러나 면의 일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단기간 안에 생산시설이나 상업시설이 증가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는 광주에서 시내버스가 이곳을 경유하고 있으며, 국도가 면의 서북쪽을 지나고,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합쳐지는 인터체인지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산덕리에 명옥헌의 정원, 원강리에 송강정(지방문화재, 1972년 지정)이 있으며, 정각 옆에 「사미인곡」의 시비가 있다.

이 밖에 분향리에 수남학구당·죽림재·석불입상, 교산리에 창평향교, 금현리에 영은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산덕리에 은행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동운(東雲)·교산(校山)·고읍(古邑)·분향(分香)·금현(金峴)·성월(聲月)·보촌(甫村)·주산(舟山)·원강(院江)·산덕(山德) 등 10개 리가 있다.

  1. 금성면(金城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7.31㎢, 인구 2,7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현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고지산 밑에 있으므로 고지산면(古之山面)이라 하여 문암(文巖)·주진(舟津)·부곡(釜谷)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4년에는 천면(泉面)·고면(古面)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동면의 금월·장은 등 13개 리, 용천면(龍泉面)의 3개 리가 편입되고 금성산 밑에 위치한다고 하여 금성면이 되었다.

서쪽에 월출산·추월산의 맥이 이어져 금성산이 주봉이 된다. 남서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산지이고 평야는 적은 편이다. 영산강의 상류인 금성천은 금성산과 추월산에서 발원하여 면을 양분하면서 담양읍으로 흐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다. 양계가 활발하며 대나무 생산이 많다. 원율리에는 시멘트 가공공장이 있다.

도로는 광주와 대구간의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며, 전라북도 정읍과 장성군 진원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금성리에는 삼한시대에 축성된 요새지로 임진왜란과 동학란 때의 격전지였던 금성산성과 연동사지지장보살입상·연동사지삼층석탑이 있고, 와추리에는 보광사가 있다. 봉서리 와룡마을에는 삼현영당(三賢影堂)이 있고, 오평리에는 왕버들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석현(石峴)·원천(元泉)·대성(大成)·원율(原栗)·금성(金城)·덕성(德成)·봉서(鳳棲)·대곡(帶谷)·외추(外楸)·봉황(鳳凰) 등 10개 리가 있다.

  1. 가사문학면(歌辭文學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43.54㎢, 인구 1,3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천리이다. 본래 창평군 지역으로 창평읍내 남쪽에 있으므로 외남면(外南面)이라 하여 수구(守口)·무동(茂洞)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남면의 개선·외지·학미 등 13개 리, 군내면 일부와 광주군 석제면(石堤面)과 상대석면(上大石面) 일부를 병합, 남면으로 개칭하고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1990년 외동리가 창평면으로 편입되었고, 2019년 2월 '읍·면·리·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 조례안'이 시행됨에 따라 '가사문학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소백산맥의 지맥인 수양산(591m)에서 서쪽으로 장원봉(壯元峰), 남쪽으로 작산봉(鵲山峰)이 있고, 면의 중앙에는 유둔산맥(留屯山脈)이 지나고 있다. 따라서 총면적의 80% 이상이 산지에 속하므로 경지는 하천을 따라 소규모로 형성될 뿐이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보다는 고추·감·담배의 생산이 많고 인삼을 시험재배한다. 최근에는 딸기·포도 재배와 메주 생산이 활발하다. 교통은 광주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으며 연천리가 그 종점이다.

문화유적은 학선리에 개선사지 석등, 지곡리에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이름난 식영정이 있다. 또한, 연천리에 독수정원림, 지곡리에 민간정원인 소쇄원이 있어 광주 근교의 명소로 꼽힌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가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은거하기 위해서 만든 정원이고, 인근에는 가사문학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

연천(燕川)·학선(鶴仙)·지곡(芝谷)·정곡(鼎谷)·경상(京相)·무동(茂洞)·만월(滿月)·구산(九山)·인암(仁巖)·가암(柯巖)·풍암(豊巖) 등 11개 리가 있다.

  1. 대덕면(大德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68㎢, 인구 2,0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매산리이다. 본래 창평군 지역으로 대면이라 하여 입석(立石)·등갈(等葛)·사창(社倉)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평군 덕면(德面)의 시목·당촌·무월·요곡 등 19개 리와 외남면 일부와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 일부를 병합해 대면과 덕면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이라 칭하고, 창평군이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의 지형으로 노령산맥에 속하는 만덕산(萬德山, 575m)·수양산·국수봉 등 군소 연봉이 면적의 80%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지만 수확이 적고 특용작물로 잎담배를 재배한다. 특산물로는 시목단감·흑염소·도예품 등이 있다. 운암리·비차리에서는 부업으로 싸리광주리가 생산되고, 매산리에서는 적벽돌도 만든다. 도로는 광주와 부산간의 호남고속도로가 면을 동서로 가로질러 관통하고, 곡성군 옥과면과 광주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매산리에 몽한각(夢漢閣), 장산리에 김선기가옥과 미암사당인 모현관에 『미암일기』가 있다. 이 책은 미암 유희춘(柳希春)이 그의 생전에 조정의 공사(公事)로부터 관의 사사(私事)에 걸쳐 기록한 것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매산(梅山)·장산(章山)·비차(飛0xFB28)·금산(錦山)·성곡(聲谷)·운암(雲巖)·문학(文學)·용대(龍臺)·갈전(葛田)·운산(雲山)·입석(立石) 등 11개 리가 있다.

  1. 대전면(大田面)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30.44㎢, 인구 4,4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치리이다. 본래 광주군 지역으로 대치 밑이 되므로 대치면이라 하여 중옥(中玉)·문내(門內)·금곡(金谷)·용동(龍洞)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전면(葛田面)의 월인·본상 등 5개 리와 삼소지면(三所旨面) 일부,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외동면(外東面) 일부를 병합해 대치면과 갈전면의 이름을 따서 대전면으로 개칭하고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는 불대산·병풍산 등이 둘러 있으나 남쪽으로는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논농사를 주로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참깨 등이다. 대치리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양송이버섯 재배가 성했으나 1980년대 초반부터 느타리버섯 재배가 활발하다. 행성리·성산리에서는 가내부업으로 죽피제품도 생산한다. 도로는 장성군 진원과 전라북도 순창 사이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중옥리에 중옥고분, 평장리에 오충정려가 있고, 대치리에 팔현사(八賢祠 : 일명 대치사), 행성리에 대성사(大成祠)가 있다. 대치리에 천연기념물 느티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대치(大峙)·강의(講義)·갑향(甲鄕)·월본(月本)·태목(台木)·중옥(中玉)·서옥(西玉)·응룡(應龍)·평장(平章)·성산(城山)·행성(杏城)·병풍(屛風) 등 12개 리가 있다.

  1. 무정면(武貞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27㎢, 인구 2,70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안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무이동면(無伊洞面) 또는 무면(武面)이라 하여 신촌(新村)·반룡(盤龍)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이상면·무이중면·무이하면을 합해 무면이라 하고, 정석상면·정석하면을 합해 정면(貞面)이라 하였다. 1932년부터 무면과 정면을 병합해 무정면으로 개칭하고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중앙 북부에는 비봉산(飛鳳山, 350m), 남부에는 금산(錦山, 500m)이 있어 면계를 이룬다. 대덕면의 만덕산에서 발원한 오례강이 면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 농경지가 발달하였고, 5만여 평의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오룡리에는 가내부업으로 죽세공업이 활발하다.

도로는 곡성군 옥과면과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면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문화유적은 봉안리에 언곡사지사층석탑·담주산성이 있고, 오룡리에 석불입상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봉안리에 은행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봉안(鳳安)·오룡(五龍)·오봉(五峰)·영천(靈泉)·성도(成道)·동산(東山)·안평(安平)·덕곡(德谷)·서흥(瑞興)·정석(貞石)·정석(貞石)·동강(東江)·오례(五禮) 등 13개 리가 있다.

  1. 봉산면(鳳山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48㎢, 인구 2,9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학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두면(豆面)이라 하여 연동(淵洞)·죽림(竹林)·삼지(三支)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면(木面)의 강쟁·두곡 등 5개 리와 우면(牛面)의 양지·월전 등 12개 리, 창평군 장남면(長南面) 일부, 광주군(光州郡) 우치면 일부를 병합해 구암면(九巖面)으로 개칭했다가 1931년에 다시 봉산면으로 바꾸었다.

영산강 상류가 서부로 흐르고 오례강·증암강이 합류한다. 전면적의 65% 이상이 평야로, 주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다. 원예작물로 딸기가 유명하고 죽세공예도 성하다. 특산물로는 와우딸기·봉산쌀·고추 등이 생산된다. 도로는 면의 남동부로 광주대구고속도로가 통과하며 광주와 순창을 잇는 국도가 지나간다.

문화유적은 원강리에 송강정이, 제월리에 면앙정이 있다. 면앙정은 우리나라의 가사문학 연구가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1970년에 「사미인곡」 시비를 건립하였다. 무형문화재로 가곡리에 죽염장 박성춘이 있고, 와우리에 우도농악설장구 김동언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

신학(新鶴)·강쟁(江爭)·대추(大秋)·제월(齊月)·기곡(錡谷)·연동(淵洞)·유산(柳山)·양지(陽地)·와우(臥牛)·삼지(三支) 등 10개 리가 있다.

  1. 수북면(水北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20㎢, 인구 4,4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수북리이다. 본래 창평군 지역으로 장평부곡(長平部谷)의 북쪽지역이므로 장북면이라 하여 송정(松亭)·행정(杏亭)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남면의 정중·금구 등 15개 리, 동서면의 상촌·나산·신월 등 16개 리, 광주군 갈전면의 두동·용정 등 7개 리, 담양군우면·부면·두면·목면·고면·갑량면 일부를 병합해 영산강의 북쪽이 되므로 수북면이라 개칭하고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2004년 조례 개정으로 수북리가 신설되었다.

지형은 일견 마늘쪽 모양으로 북서쪽에 여러 산들이 방풍벽을 이루고, 그 산록에서 시작해 가벼운 경사를 이루며 뻗어 내렸다. 면의 남부에는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봉산·고서·창평 등지와 연접해 영산강 대평야의 북단부를 이룬다. 논이 밭보다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고, 토마토·딸기·오렌지[한라봉 등의 원예작물과 죽세공업제품도 생산된다. 도로는 장성군 진원과 순창으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오정리에 수북학구당, 삼인산 아래에 전라남도 성암청소년야영장이 있다. 황금리에 풍요를 기원하는 황금들노래전수관이 건립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대방(大舫)·개동(開東)·정중(井中)·황금(黃金)·두정(斗井)·주평(舟坪)·풍수(豊水)·고성(古城)·오정(梧亭)·나산(羅山)·궁산(弓山)·남산(南山)·대흥(大興)·수북(水北) 등 14개 리가 있다.

  1. 용면(龍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62.55㎢, 인구 1,90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추성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예로부터 용연(龍淵)이 있으므로 용천동면(龍泉洞面) 또는 용천면으로 칭하다가 1911년에 용면이라 개칭하고 대흥(大興)·분통(粉桶)·용평(龍平) 등 3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면의 신흥·두지·오정의 일부를 병합해 용연·용치 등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6년 담양호 조성으로 도림리·용연리·월계리 일부와 산성리·청흥리가 수몰되었다. 면적은 담양군내에서 가장 넓지만 영산강의 최상류지역으로 노령산맥의 험준한 지맥이 형성되어 있어 경지면적은 좁은 편이다. 따라서, 농사지을 땅이 거의 없는 대신에 감나무·밤나무·싸리나무가 많아 꿀을 따기에 알맞으므로 용마을 등에서는 한봉을 치고 있다. 최근에는 인삼재배도 시험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용면 추성주·한봉꿀·고로쇠 등이 있다.

도로는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하므로 광주·정읍·순창으로 통하는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용연리 용추산의 용추사지에 부도군과 사리탑이 있고, 또 가마골이라는 계곡에는 용소, 용연 제1·2폭포 등 관광명소가 있다. 추월산과 담양호는 산자수려한 관광지 구실도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추성(秋城)·두장(斗長)·통천(桶泉)·쌍태(雙台)·도림(道林)·월계(月桂)·용연(龍淵)·용치(龍峙) 등 8개 리가 있다.

  1. 월산면(月山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63㎢, 인구 2,6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산리이다. 본래 담양군 지역으로 산막곡면(山幕谷面) 또는 산면(山面)이라 하여 신계(新溪)·신평(新平)·도동(道洞)·용금(龍錦)·중방(中方)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면(廣面)의 산정·사암·월천·개양 등 18개 리, 고면(高面)의 봉명·마산·회룡 등 9개 리, 천면의 오정리(梧丁里), 서면(西面)의 만성·시산 일부, 장성군 북하면 적암(赤巖)·대정(大井) 일부,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유곡·용산·신평·월송·가곡·죽림 등 6개 리 일부를 병합하고 면소재지인 월산리의 이름을 따서 월산면이 되었다.

산맥이 용구산으로부터 기복하여 신랑봉(新郞峰)·도마산(陶馬山)을 형성한다. 도마산을 수원으로 하는 면 중심의 평야와 신랑봉 남쪽인 추월산을 수원으로 하는 평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산지이다. 주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무·배추·딸기·방울토마토·메론 등 원예작물 재배도 활발하다. 특히 온실에서 재배되는 장미는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월산리·가산리·삼다리에서는 가내부업으로 죽제품을 생산한다. 도로는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와 곡성군 옥과면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문화유적은 용흥리의 용흥사지에 7기의 부도와 범종, 지정(池亭) 등의 정자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월산(月山)·월평(月平)·중월(中月)·용흥(龍興)·용암(龍巖)·신계(新溪)·광암(廣巖)·오성(五星)·월계(月溪)·운교(雲橋)·화방(化方)·삼다(三茶)·가산(佳山) 등 13개 리가 있다.

  1. 창평면(昌平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80㎢, 인구 3,96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평리이다. 본래 창평군 지역으로 백제 때는 굴지현, 신라 경덕왕 때는 기양현이다가 고려 때 창평(혹은 명평)이 되고 1910년에 창평군으로 개칭하였다. 창평읍내가 되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당곡(唐谷)·오산(梧山)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면의 장전·장산·연화 등 13개 리와 대면의 가흥·화양·증산 일부, 북면 일부, 담양군 우면 일부를 병합해 창평면으로 변경하고 담양군에 편입하였다. 1990년에 남면 외동리를 편입하였다.

지형은 북동부가 산악의 기복이 중첩하고 남서부는 구릉평야가 연속하여 지질이 비옥하다. 영산강의 상류인 증암천이 관류하고 있어 농경지에 필요한 관개용수로 유용하게 쓰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인삼도 재배한다. 의항리·용수리 등지에서는 가을추수 이후에 부업으로 싸리제품을 생산한다. 특산물로는 예로부터 창평엿·파시(波枾)·백동시(柏桐枾) 등 감이 유명하다. 최근에는 한과·죽염·한우 등이 많이 생산된다.

도로는 호남고속도로가 관통하며, 곡성군 옥과면과 광주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용수리에 상월정, 삼천리에 고재선가옥, 해곡리에 유종현가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창평(昌平)·삼천(三川)·용수(龍水)·유천(柳川)·유곡(維谷)·해곡(海谷)·광덕(廣德)·오강(梧江)·의항(義項)·일산(一山)·장화(長華)·외동(外東) 등 12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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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담양군지』(담양군청, 1994)
『전남의 농요』(지춘상 편저, 전라남도, 1986)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내고장담양』(담양군,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2)
『담양문헌집』(담양군, 1980)
담양군(www.damyang.go.kr)
담양교육청(www.jndy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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