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정의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삽교천을 경계로 아산시, 서쪽은 서산시, 남쪽은 예산군, 북쪽은 아산만을 경계로 경기도 평택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25'∼126°51', 북위 36°44'∼37°03'에 위치한다. 면적은 695.48㎢이다. 인구는 16만 7,762명 (2018년 기준)이다. 2개 읍, 9개 면, 3개 행정동(11개 법정동) 221개 행정리(138개 법정리)로 되어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다.

자연환경

북부는 여러 반도 사이의 좁은 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는데, 서산시와 당진시 사이의 대호지만(大湖芝灣) 지역은 방조제의 축조로 해안선이 단순해졌다.

남부는 가야산맥의 줄기인 아미산(峨眉山, 349m) 등 잔구성 산지가 솟아 있고, 나머지는 화강암이 침식된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다. 동부에는 오서산(烏棲山)에서 발원해 아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삽교천이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 면천면의 상왕산(象王山, 210m)에서 발원해 순성면과 신평면을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남원천(南院川)의 하류지역과 서부지역의 염솔천(鹽率川)과 역내[驛川]유역에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특히 역내 유역에는 학의 도래지로 유명한 ‘채운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한편, 20여 개의 유인도·무인도와 몇 개의 이름 없는 섬이 있었으나, 방파제·교량·간척사업 등으로 초락도(草落島), 도비도(搗飛島), 내도(內島), 탁주막도(濁酒幕島) 등이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은 대난지도·소난지도·대조도(大鳥島)·행담도(行淡島)의 4개 유인도와 계두도(鷄頭島)·우모도(牛母島) 등의 6개 무인도, 그리고 2개의 이름 없는 섬만이 남아 있다.

기후는 바다에 연접해 있어 겨울철에는 해풍의 영향을 받으며, 북서계절풍이 불어올 때는 대체로 기온이 낮아진다. 연평균 기온 11.4℃, 1월 평균기온 -3.8℃, 8월 평균기온 25.6℃이며, 연 강수량은 1,158.7㎜이다. 서리는 대개 10월 중순부터 내려 이듬해 4월 20일경에 끝난다.

역사

선사시대의 유물이 석문면·송산면·송악읍 일대와 당진동·고대면 등 해안지역에서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신석기시대인 듯하며, 그들은 바다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의 벌수지현(伐首只縣 또는 夫只郡)과 혜군(槥郡)·사평현(沙平縣)·여촌현(餘村縣)이 지금의 당진 지역에 해당된다. 신라 때는 벌수지현이 당진현으로, 사평현이 신평현(新平縣)으로, 여촌현이 여읍현(餘邑縣)으로 각기 개칭된 뒤 백제시대의 혜군이 변해서 된 혜성군(槥城郡)의 관할현으로 되었다.

당진현이 1018년(현종 9) 운주(運州) 지역에 속하고 예종 때 감무를 두었다. 혜성군 역시 같은 해 운주에 속했다가 그 뒤 감무를 두었으며, 1293년(충렬왕 19) 이 고을 사람 복규(卜奎)가 우리나라에 침입해 온 거란병을 격퇴시킨 공으로 지면주사(知沔州事)의 고을로 승격되었다.

신평현은 1018년에 홍주(洪州)로 편입되었다. 또한 여읍현은 고려 초 여미현(餘美縣)으로 바뀌어 운주에 속하였다. 1298년 황석량(黃石良)이 원나라에 가서 공을 세워 덕풍현에 딸린 합덕부곡(合德部曲)이 합덕현으로 승격되었다.

태조는 개국과 더불어 고려왕조의 중앙제도와 지방제도를 답습했으나, 국가의 기틀이 잡혀감에 따라 1413년(태종 13) 지방 관제를 개혁하였다. 이 때 다시 당진은 현이 되어 현감을 두게 되었고, 면천(沔川) 지역은 면천군으로 되었다.

그리고 합덕현은 세조 때 폐현이 되어 홍주군의 합남(合南)·합북(合北) 2개 면이 되고, 홍주에 편입되었던 신평현은 조선 초 폐현이 되어 현내(縣內)·신남(新南)·신북(新北)의 3개 면이 되었다.

1408년 왜구의 침입을 받았고, 1456년(세조 2) 구인문(具人文)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으로 정미면에 들어와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았다. 선조 때의 성리학자 송익필(宋翼弼)도 면천에서 이지함(李之涵)과 함께 주자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창하였다.

『구운몽』·『사씨남정기』 같은 명작을 남긴 김만중(金萬重)이 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도 우강면 출신으로 1845년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돌아와 기독교 전교에 힘쓰다 순교하였다.

갑오경장으로 지방관제가 바뀌면서 당진현은 1895년 군으로 승격해 8개 면을 관할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압으로 이루어져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이 고장에서도 1906년 5월 홍주성이 의병에게 함락되었다.

또 홍일초(洪一初)·김진원(金鎭元)을 중심으로 150여 명의 의병이 해로로 한양에 가서 일본군과 싸울 계획으로 배를 타기 위해 난지도로 갔으나, 이를 미리 알아낸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 모두 전사하였다. 이들의 무덤인 의병총이 난지도에 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면천군의 22개 면과 해미군의 일부지역과 예산군의 일부지역이 당진군에 병합되었다. 1919년 3·1운동의 첫 봉화는 3월 10일 면천보통학교 학생 200여 명의 시위에서 비롯되어 곳곳에서 독립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히 남계원(南桂元)·남계창(南啓昌)·남상식(南相植)·남상락(南相洛) 4명은 서울에 가서 파고다공원의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챙겨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끝내는 감옥에 갇혔다. 소설가 심훈(沈熏)이 이 고장에서 태어났으며, 『상록수』는 고향인 송악면 부곡리에서 주변 농촌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1957년 서산군 대호지면의 9개 리와 정미면의 18개 리가 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1962년 1월 1일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합덕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정미면 여미리가 서산군 운산면으로 편입되었다.

2010년 1월 1일 송악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3읍 9면이 되었다가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가 되어 2읍 9면 3행정동(11법정동)이 되었다.

유물·유적

당진1동 읍내동·시곡동와 합덕읍 성동리의 남방식 지석묘를 비롯해 성동리 출토 마제석촉·마제석검편, 당진3동 우두동 출토 쌍두령(雙頭鈴) 등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있다.

산성으로는 면천면 성상리의 당진 면천읍성(충청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성상리 산성(충청남도 기념물, 2004년 지정), 후백제 때 견훤(甄萱)이 쌓았다는 합덕읍의 토미산성(土尾山城)을 비롯해 송악읍 중흥리에 송악산성(松嶽山城), 정미면 봉생리에 국사봉산성(國師峰山城), 합덕읍 소소리에 퇴미산성(退尾山城)·몽산성(蒙山城), 당진1동 읍내동에 아후산성(衙後山城)·태성(泰城), 당진1동 읍내동에 당진읍성, 고대면 당진포리에 당진포진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신평면 운정리에 신평현성(新平縣城) 등이 있으며, 봉수로는 고대면 대촌리에 고산봉수(高山烽燧), 정미면 봉성리에 안국산봉수(安國山烽燧), 송산면 창택리에 창택산봉수(倉宅山烽燧)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고려시대 사찰로 추정되는 정미면 수당리의 안국사(安國寺) 터에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과 안국사지 석탑(보물, 1963년 지정), 안국사지 매향암각(충청남도 기념물, 2004년 지정)이 있다. 고려 중기의 명승 지눌(知訥)이 중수한 면천면 성하리의 영탑사(靈塔寺)에는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보물, 1964년 지정)·영탑사 약사여래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영탑사 칠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영탑사 범종(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또한 송악읍 가교리에는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보물, 1989년 지정)·신암사 칠층석탑이 있고,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영랑사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은 648년에 당나라의 아도(阿度)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합덕읍의 성동리 석불, 정미면의 산성리 석불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407년(태조 7)에 건립한 당진1동 읍내동의 당진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면천면 성상리의 면천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를 비롯해 신평면 거산리의 한원사(韓原祠)·이만유장군 유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 대호지면 도이리의 남이흥장군묘 일원(충청남도 기념물, 1984년 지정)·남이흥장군 일가 유품(중요민속문화재, 1970년 지정)·충장사(忠壯祠)가 있다. 송산면 명산리에 선조 때의 문신 이안눌(李安訥)을 봉안한 동악서원(東岳書院) 등이 있다.

한원사는 조선 숙종·영조 때의 장군 한원군(韓原君) 이만유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899년에 건립했는데, 이곳에는 그의 유품인 장검·전통(箭筒)·활·교지·영정 등이 보관되어 있다. 충장사는 조선 인조 때의 명신이며 무관인 남이흥을 모신 사당으로 1636년(인조 14)에 건립했으며, 1968년에 내부보수공사를 하였다. 사당의 오른쪽으로 정려각이 있고, 1979년에 건립한 유물전시관이 있다.

의병총은 백인총(百人塚)이라고도 하는데, 을사조약 체결소식을 듣고 국가의 주권을 다시 회복하고자 봉기한 의병 150명이 1907년 난지도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자주독립만세를 외치며 끝까지 싸우다 모두 전사해, 이들을 안장한 무덤이다. 석문면 소난지도의 의병총(義兵塚), 대호지면 적서리의 오산사당(五山祠堂) 등이 있다. 오산사당은 조선 선조 때의 문인 차천로(車天輅, 호는 오산)를 봉안한 사당으로 1790년(정조 14)에 후손들이 건립했으며, 1958년에 증축하였다.

이 밖에도 송악읍 금곡리에 이덕형(李德馨)의 영정을 봉안한 한음영당(漢陰影堂)이 있다.

면천면 성상리에 고려시대 곽충룡(郭翀龍)이 만든 군자정(君子亭)이 있다.

당진2동 채운동에 채운포 석교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당진동의 채운다리[彩雲橋]는 당진동과 고대면을 연결하던 다리로, 채운리 탑골고개에 ‘彩雲浦石橋銘(채운포석교명)’이라고 음각된 석교비(石橋碑)가 세워져 있는데 1688년(숙종 14) 영랑사 승려들이 높은 다리를 놓고 채운교라 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우강면 송산리에 김대건신부의 생가 터(충청남도 기념물, 1998년 지정)가 있고 당진에 합덕성당(충청남도 기념물, 1998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합덕읍 합덕리의 당진 합덕제(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가 있다.

고대리에 당진 안섬당제(충청남도 무형문화재, 2001년 지정)가 있다. 한편, 송악읍 기지시리에는 기지시 줄다리기(국가무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전승되고 있으며, 면천면 성상리의 면천 두견주(국가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송산면 삼월리 당진 송산면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수령이 1,100년 된 면천면 성상리의 면천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초기에 당진1동 읍내동의 당진향교와 면천면 성상리의 면천향교가 건립된 것이 관학교육의 시초이며, 1706년에 건립된 이안눌을 제향하는 동악서원과 함께 지방 유생의 교육을 전담해왔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군수 박지상과 지방 유지들이 신학문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사립 면양학교가 최초인데, 1911년 일제가 면천공립보통학교로 강제 개편해 오늘의 면천초등학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종교계 사학으로는 1910년경 프랑스 신부 크람즈(한국명 慶元喜)가 당진에 설립한 사립 치혼학교(致魂學校)가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해 1915년 폐교되었다. 그 뒤 1면 1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0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8개교와 신성대학교가 있다.

이 밖에 1974년에 개관한 당진군립도서관이 있어 이 지방의 교육·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965년에 개원한 당진문화원은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하고 해안지역 주민에 대한 문화·예술 보급 및 반공·계몽 교육, 각종 문화서클의 조직·운영을 통한 향토문화의 개발·선양에 공헌하고 있다.

한편, 상록문화제추진위원회를 두어 매년 10월에 상록문화제를 거행하며, 또한 기지시 줄다리기 추진위원회가 있어 윤년에는 3∼4월에 걸쳐 전통의 기지시줄다리기축제를 거행한다.

민속

중요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널뛰기·연날리기·그네뛰기·씨름·각시놀이·숨바꼭질·풍년놀이·뱃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뱃놀이는 초여름(5월) 좋은 날을 가려 여러 사람이 음식을 장만해 바다에 나가 배를 타고 즐기는 놀이였으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풍년놀이는 1월 16일 농민들이 마을 입구나 마을 유지의 집에 곡식꾸러미를 매단 기둥을 세워 놓고 농악을 울리며 그 해의 풍년을 비는 놀이이다. 1월 16일 기둥을 세울 때나 2월 1일 기둥을 넘어뜨릴 때는 집집마다 성의껏 금품을 내놓아 놀이 비용으로 사용한다.

대표적인 당굿으로 198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송악읍 기지시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이는 윤년마다 이른 봄에 거행하는 굿으로, 우선 마을 동남방에 있는 국사봉에서 당제를 올린다. 이어 신암사 주지의 산신경(山神經) 독축이 끝나면 서낭당에서 서낭굿, 못[池]에서 못굿, 공동우물에서 샘굿, 마을 동서남북에서 장승굿, 그리고 당주집에서 당주굿을 차례로 올린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다음 날의 줄다리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줄을 둘러싸고 농악을 울리며 밤을 새운다. 줄다리기는 도로를 중심으로 물 위와 물 아래의 두 편으로 나누어 거행한다. 줄다리기를 할 때는 암줄과 수줄을 비녀장으로 연결시켜 놓고 양편에서 수천 명이 서로 당길 자세를 갖춘 다음 신호총성이 나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줄을 당긴다. 일정시간 줄다리기를 계속한 뒤 승부를 가린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 널리 전래되는 전설로 「김복선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무렵 신평고을의 한 미천한 집에서 김복선이 태어났는데 갖은 꾀와 속임수로 상전을 골탕 먹이고 끝내 상전의 딸과 함께 잘살았다는 내용이다. 그는 대단한 힘을 가진 장수였다고도 하는데, 송악읍 중흥리 절 아래에 있는 큰 바위 위에 그가 잠시 앉았다 간 엉덩이자국과 함께 주먹을 짚었던 주먹자국이 남아 있다.

또한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이인(異人)이었다고도 한다. 이이(李珥)가 벼슬을 내놓고 나서 인물을 구하러 다녔는데, 그것을 먼저 안 김복선이 축지법을 써서 이이가 쉬고 있는 합덕에 찾아가 서로 미래에 대해 의논했으며, 그 때 김복선은 임진왜란이 언제 시작되고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도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고대면 용두리에 전해오는 「용두리전설」은, 옛날 이곳에 마음 착한 용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몰래 잠입한 두 마리의 악한 용이 이들을 모해하려 하다가 모두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로, 용두리라는 지명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호지면 지역에는 기지시줄다리기 유래담이 전하고 있다. 서당에 가는 학동을 유혹하는 처녀에게 할미꽃을 던졌더니 처녀가 지네로 변해 죽었는데,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윤년마다 줄다리기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용이 못 된 이무기가 조화를 부려 바위가 되었다는 「오섬거멋돌전설」, 술 취한 나발수를 잡아먹으려고 몰래 접근하는 호랑이를 향해 갑자기 나팔소리를 내어 이를 물리쳤다는 「나발수와 호랑이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이 되나, 타령류의 노래가 많이 섞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농업노동요로는 모내기에서 벼를 벨 때까지 전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으며, 「방아타령」이 모내기노래로 주로 사용된다.

“(앞소리) 어허허 우헤야 어허 으에이야/ 놀던 방아/ 오늘해도 서산마루에/ 걸려 있구나// (뒷소리) 에헤이 헤이야 우헤야 으허 으헤이야/ 으헤이야 으흐허어이/ 놀던 방아……”는 당진3동 원당동에서 부르는 「모내기노래」로 마을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어, 선후창이기는 하나 특정 선창자가 없이 돌아가면서 앞소리를 한다.

「논매기노래」는 「모내기노래」와 마찬가지로 「방아타령」이 사용되지만 고대면에서는 “(앞소리) 역발산아 귀가되라/ 항우같은 장사라도// (뒷소리) 에헤 에헤에 호오/ 어리넘차 에헤에 호아……”라고 해 「상여소리」계의 여음을 쓰기도 한다.

벼를 벨 때도 노래를 부르는데, 특정 여음이나 사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길같은 님을보려고/ 만길같은 담을넘자/ 가진장옷을 찢었으니/ 이말대답을 어찌허랴……” 등과 같이 연정·상사를 주제로 한 사설을 흥겹게, 또는 구성지고 낮게 부른다.

여성노동요로는 특정 노동과 관계 있는 「베틀노래」·「물레노래」·「다듬이질노래」가 있고, 그 밖에도 두루 불리는 노래로 시집살이의 고난·연정·상사 등을 주제로 한 「시집살이노래」·「목화 따는 처녀」 등이 있다.

동요로는 고무줄놀이·잠자리잡기 등에 부르는 유희요가 많고, 「나무타령」인 “동무동무 나무가세/ 배아퍼 못가겠네/ 무슨밴가/ 자라배지/ 무슨자라……”는 아이들이 나무하러 가기 싫어 핑계 대는 것을 꼬리따기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기능요로는 「장타령」이 많이 불린다. “껑충뛰었다 제천장/ 신발없어 못보고/ 바람불었다 청풍장/ 선선해서 못보고/ 청주장을 보잤더니……”라는 「충청도장타령」과 같이 순수한 「장타령」도 많이 부르지만, “일자나 한자 들고봐/ 일월 송송 해송송……장자나 한자 들고 보오/ 장원에 광대 박광대/ 광대중에도 제일이라”와 같이 「각설이타령」과 혼합된 「장타령」을 많이 부르는 것이 특색이다. 그 밖에도 「동풍가」·「사랑가」·「담배타령」·「꽃타령」 등 타령류의 노래도 많이 부른다.

산업·교통

삽교천 유역에는 우강평야(牛江平野)를 비롯해 신흥평야·구양도들·고래원들·검은들 등의 평지가 전개된다. 시 전체인구 중 약 15.1%가 농업에 종사하며, 농가수는 11,527가구(2019년 말 기준), 가구당 경지면적은 177.2a(2019년 기준)이다.

대호지구 및 삽교호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농경지가 확장되었음은 물론, 전천후 농업을 하고 있다. 특히 대호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대호방조제가 축조되었고 석문면·정미면·고대면·대호지면 지역에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또한 삽교호 준공 뒤에 관개시설이 완비되면서 토지생산성이 높아졌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무·배추의 경작면적은 충청남도에서 으뜸이며 주로 수도권 지역으로 반출된다. 과실 중 사과는 도내 주생산물의 하나이며, 순성면에서 생산되는 밤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또 고대면에서 생산되는 삼베는 품질이 좋아 유명하며, 인삼은 신평면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축산업으로는 한우가 당진동과 송악읍에서, 돼지가 순성면·신평면·송악읍에서 많이 사육된다. 수산업으로는 갈치·숭어 등 어류 외에 굴·김의 양식업이 활발하며, 바지락·대합·꽃게도 생산된다. 특히 숭어알로 만드는 어란은 맛이 뛰어난 특산품이다. 석문면·송산면에서는 천일제염이 활발하다.

지하자원으로는 정미면·송악읍에서 석회석이, 석문면에서 납석이, 석문면·송악읍에서 고령토가, 고대면·송악읍에서 장석 등이 생산된다. 광공업으로는 94개의 사업체가 있다. 최근에는 아산만 연안에 366만 평 규모의 석문국가공단, 163만 평 규모의 고대·부곡공단, 85만 평 규모의 한보철강 등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사업이 한창이어서 전형적인 농·수산업지역에서 농·수산·공업 복합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장으로는 『임원경제지』에 따르면 2일·7일, 4일·9일에 개시되는 당진읍내장, 1일·6일의 버그내장[泛斤川場], 1일·6일, 3일·8일의 틀무시장[機池市場]과 세거리장[三巨里場] 등의 정기시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거래된 상품은 약간의 곡류 외에 어염류·약쑥 등 해안지역의 산물이 대부분이었다. 또 고깃배가 들어오는 봄과 초여름이면 바닷가 곳곳에 생선장이 섰다.

특히 틀무시에서는 기지시줄다리기 행사철인 매 윤년 음력 3월 말경이면 닷새 동안 장이 서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해 수도권과의 거리가 단축되고 해상교통이 육상교통으로 바뀌면서, 종래 면 단위의 장시들은 기지시와 신평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될 뿐 대부분 폐시상태에 있다.

기지시장은 3일·8일에, 신평장은 2일·7일에 각각 개시된다. 그리고 시장권은 당진과 합덕 두 곳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5일·10일에 개시되는 당진장에서는 농산물과 기계류가 주로 거래되며, 봄철에는 꽃게·낙지, 겨울철에는 바지락·새우젓 등 수산물도 많이 거래된다. 상설시장은 당진 정기시장에 인접해 있으며, 정기장날에 거래가 더욱 활발하다.

교통망은 당진동을 중심으로 합덕∼서산간 32번 국도, 합덕∼석문 간 615번 국도 등이 관통하고, 합덕읍을 중심으로 당진∼예산 간 32번 국도가 관통하며, 면천으로 향하는 626번 지방도와 덕산으로 향하는 622번 지방도가 시작되어, 두 읍이 군내 교통의 결절점을 형성한다. 특히 예산·합덕·당진·서산·태안에 이르는 32번 국도는 당진시의 주요 간선도로이다.

삽교호방조제 준공 뒤에는 아산방조제를 거쳐 수도권까지 지름길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온양·천안으로 통하는 지름길도 열리게 되었다. 한편, 서해안고속국도가 아산만 대안의 평택시 포승읍을 거치고 송악읍·신평면·순성면·면천면·당진동 등지를 거쳐 서산시 운산면으로 진입하고, 송악인터체인지와 당진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수도권의 접근도는 더욱 커졌다.

당진(唐津)·한진(漢津)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이 옛날에는 바닷길로 중국과 거래가 이루어졌던 곳이며, 항구로서의 조건은 미약하지만 한진·통정 등에서는 아직도 연안의 소선박 해상교통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한진에서 출발해 대난지도를 경유하는 인천행 해상교통이 편리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육상교통이 고속화되면서 해상교통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관광

석문면의 난지도해수욕장을 비롯해 경치 좋은 섬과 해안이 많고 역사적인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삽교천방조제와 대호방조제 축조로 그 주변지역에 관광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고대면에서는 당나라의 아도가 창건했다는 영랑사를 관광하고 당진포리의 온동저수지를 거쳐 난지도해수욕장의 해당화 자생지를 볼 수 있으며, 면천면 성하리에서는 고려시대에 수축했다는 면천읍성을 관광하고 면천의 특산물인 두견주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심훈이 소설을 쓰던 필경사(筆耕舍)와 상록학원터에 들렀다가 삽교천방조제로 가거나 한진나루로 갈 수 있다.

이 밖에 안국사 터, 김대건의 생가 터가 있는 솥뫼마을, 남이홍의 사당과 유물전시관 등도 있다. 관광시설로는 시내에 여관·식당 등의 서비스업체가 집중되어 있어 관광객의 편의를 돕고 있으며, 대호방조제 주변에 관광객을 위한 각종 위락시설이 개발되어 있다.

군은 천혜의 자연자원과 서해안개발로 인한 인공자원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다가오는 2012년까지 삽교호지구·행담도 지구·한진 지구·석문 지구·도비도 지구·난지도 지구 등에 특성화된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연계하는 해안관광 루트를 개발할 예정이다.

읍·면
  1. 송악읍(松嶽邑)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80.46㎢, 인구 2만 621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기지시리이다. 본래 면천군 승선면으로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손동면의 12개 리, 초천면의 15개 리, 신북면의 11개 리, 중흥면의 15개 리, 송산면의 장파리, 정계면의 2개 리를 병합해 22개 리로 개편하면서 송악면으로 개칭, 당진군에 편입되었다.201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서부와 남부에는 송악산(150m)·오룡산(五龍山, 100m)·철마산(鐵馬山, 90m) 등이 있어 구릉지를 이루고, 동부와 북부는 평지와 간석지가 대부분이며, 농경지는 거의 전대리와 도원리에 발달해 있다. 간석지에서는 천일제염업도 활발하다. 주곡 작물 이외의 농산물로는 잎담배의 재배가 활발하다.

가학리·반촌리·봉교리에 복합영농시범단지가 조성되어, 벼농사 이외에 삽교호의 수자원과 지역 특유의 사질토양을 바탕으로 참깨 및 시설채소 등을 집중 재배해 주민소득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야산 구릉지를 개간, 사과과원을 조성해 많은 양을 생산하며, 또한 한우사육도 활발하다.

상업은 기지시리에 형성되어 있는 가촌과 그 일대에서 3일·8일에 열리는 기지시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의 가촌은 다른 면지역의 가촌과는 달리 규모가 크며, 5일장이 열리는 낮에는 더욱 활기를 띤다.

도로는 당진동과 신평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기지시리에서 아산만의 한진리로 향하는 630번 지방도, 기지시리에서 송산면으로 향하는 633번 지방도, 순성면으로 향하는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서 아산만상의 서해대교를 거쳐 송악면으로 진입해 면의 중앙부를 지나면서 당진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서 송악읍은 태안반도 북부의 육상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곡리의 내정(內井)나루터와 한진리의 한진나루터는 해상교통의 요지이다. 특히, 한진나루터는 조선시대 아산만 일대의 주요 기항지의 하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당진의 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인천으로 반출하던 곳이다.

현재는 이곳과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간에 정기여객선이 운행되고 있고, 인천행 여객선의 기항지이다. 문화유적은 금곡리에 한음영당, 중흥리에 송악산성, 가교리에 신암사(申唵寺), 가학리에 대성암, 기지시리에 기지시 줄다리기, 오곡리에 오사지(梧寺址) 등이 있다.

기지시리(機池市里)·가교리(佳橋里)·가학리(佳鶴里)·고대리(古垈里)·광명리(光明里)·금곡리(金谷里)·도원리(桃源里)·반촌리(盤村里)·방계리(芳溪里)·복운리(伏雲里)·본당리(本堂里)·봉교리(鳳橋里)·부곡리(富谷里)·석포리(石浦里)·영천리(靈川里)·오곡리(梧谷里)·월곡리(月谷里)·전대리(全垈里)·정곡리(井谷里)·중흥리(中興里)·청금리(靑衿里)·한진리(漢津里) 등 22개 리가 있다.

  1. 합덕읍(合德邑)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51.30㎢, 인구 1만 35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운산리이다. 본래 홍주목에 속한 합덕현 지역이었으나 조선 초 폐현이 되어 홍주군 합남면과 합북면의 2개 면으로 나누어졌다가 1895년에 면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합남면·합북면과 예산군의 일부를 병합해 당진군 합덕면이 되었다가,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에 둔군봉(屯軍峰, 136m) 등 낮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으며, 경지면적은 읍면적의 62%에 달하며, 대부분이 삽교천과 연안의 충적지대로 예당평야·채운평야와 더불어 중요한 쌀생산지인 우강평야의 핵심을 이룬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삽교천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과 대호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이룩된 안정된 농업기반으로 쌀의 생산성 신장과 생산량 증가가 현저하다. 특산물로는 생강이 대량으로 재배된다.

도로는 우강면과 예산군 신암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우강면과 예산군 고덕면으로 향하는 622번 지방도, 우강면과 면천면으로 향하는 626번 지방도, 순성면으로 향하는 615번 지방도 등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후백제 때 생겨 1천 년 이상 합덕평야를 관개한 합덕연지(合德蓮池)가 있었으나 예당저수지가 축조된 뒤 농경지로 변하였다. 그 밖에 소소리에 퇴미산성, 성동리에 토미산성·성동산성터가 있다.

운산리(雲山里)·대전리(大典里)·대합덕리(大合德里)·도리(島里)·도곡리(道谷里)·석우리(石隅里)·성동리(城東里)·소소리(素素里)·신리(新里)·신석리(新石里)·신흥리(新興里)·옥금리(玉琴里)·점원리(鮎元里)·합덕리(合德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고대면(高大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3.34㎢, 인구 5,9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두리이다. 본래 당진군 하대면(下大面)으로 사암(舍庵)·해촌(海村)·마술(馬述)·슬항(瑟項)·주동(珠洞)·상용두(上龍頭)·하용두(下龍頭) 등 14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대면의 13개 리, 고산면의 10개 리, 군내면의 대성리 일부, 외맹면의 영길동, 해미군 염솔면의 삼곡리 일부를 병합해 고대면으로 개칭되었다.

서쪽에는 고산봉(高山峰, 154m)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100m 내외의 저산성 구릉이 산재해 있고, 동쪽에는 논과 염전이 분포해 있다. 최근에는 석문면과의 경계지역에서 대호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어 간석지가 농경지로 전환되고 있다. 주곡생산이 주를 이루며, 잎담배를 재배하고 양봉도 활발하다. 또한 소와 돼지를 많이 사육한다.

용두리의 샛말 서쪽에는 1954년에 개설한 신시장(新市場)이 있다. 도로는 당진동과 석문면으로 통하는 615번 지방도, 석문면과 정미면으로 통하는 649번 지방도 등이 지나 있어서 편리하다. 해상교통으로는 슬항리에서 송산면 당산리와 오도로 통하는 오성(鰲城)나루터와 당진포리에서 석문면 초락도리로 통하며 인천항로의 기항지이기도 한 해창(海倉)나루터가 있다.

문화유적은 진관리에 성당사(聖堂寺)와 영랑사 대웅전, 슬항리에 사암지, 당진포리에 당진포진성, 성산리와 항곡리에 산성, 대촌리에 봉수대와 고분 등이 있다. 용두리(龍頭里)·당진포리(唐津浦里)·대촌리(大村里)·성산리(城山里)·슬항리(瑟項里)·옥현리(玉峴里)·장항리(長項里)·진관리(眞館里)·항곡리(項谷里) 등 9개 리가 있다.

  1. 대호지면(大湖芝面)

군의 가장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82㎢, 인구 2,67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조금리이다. 본래 해미군 서면으로 23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9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대호지면으로 개칭되어 서산군에 속했다가 1957년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자모산맥(子母山脈)이 형성하는 구릉지대가 발달해 있으며, 토양이 척박해 농업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대호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농경지가 조성 중이므로 앞으로 농업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도로는 정미면으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를 비롯해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대부분이 비포장 도로여서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도이리에 남이홍장군 유품과 충장사, 남유장군묘가 있고 적서리에 오산사당이 있다. 조금리(調琴里)·도이리(挑李里)·두산리(杜山里)·마중리(馬中里)·사성리(沙城里)·송전리(松田里)·장정리(長井里)·적서리(赤鼠里)·출포리(出浦里) 등 9개 리가 있다.

  1. 면천면(沔川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24㎢, 인구 3,73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상리이다. 본래 면천군 읍내면으로 12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면의 18개 리, 송암면의 12개 리, 승선면의 6개 리, 당진군 군남면의 발산리 일부, 덕산군 외야면의 마산리 일부를 병합해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마암면으로 개칭되어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1917년 면천면으로 다시 개칭되었다.

서부에 웅산(雄山, 254m)·아미산·이배산(螭背山, 220m), 남부에 오봉산(五峰山, 224m) 등이 있고, 남동부에 순원저수지 주변의 저지에서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그 주변의 구릉지에서 과수·잎담배 등을 재배하고 소와 돼지를 사육한다.

도로는 당진동과 예산군 봉산면으로 향하는 609번 지방도, 합덕읍으로 향하는 626번 지방도 등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상리에 면천읍성·은행나무·면천향교와 군자정, 성하리의 영탑사에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과 삼성당(三聖堂), 죽동리에 충정사 등이 있다.

성상리(城上里)·대치리(大峙里)·문봉리(文峰里)·사기소리(沙器所里)·삼웅리(三雄里)·성하리(城下里)·송학리(松鶴里)·원동리(元東里)·율사리(栗寺里)·자개리(自開里)·죽동리(竹東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석문면(石門面)

군의 가장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4.28㎢, 인구 8,17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통정리이다. 본래 당진군 의맹면으로 9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맹면의 11개 리, 도동면의 3개 리, 고산면의 유치리 일부를 관할하는 석문면으로 되었다.

해안 주변에는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 있고 염전이 분포해 있는데, 최근 대호방조제가 완성되어 대호지만 지역에 대단위농경지가 조성 중이다. 주민의 상당수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나, 해안에 암초가 많고 시설이 부족해 어업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난지도에는 해당화군락지와 해수욕장이 있다.

도로는 고대면과 대산읍으로 통하는 615번 지방도, 고대면으로 통하는 649번 지방도 등이 지나고, 초락리·삼봉리·장고항리 등지를 연결하는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데다 615번 도로상의 대호방조제가 석문면과 대산읍 삼길포를 연결해주어 교통이 편리하다. 해상교통은 난지도와 연결되는 교로리의 다리길나루터는 해상교통의 주요 선착장이다.

문화유적은 삼화리에 보덕사(普德寺), 초락도리에 해운암지(海雲庵址), 통정리에 사지(寺址), 난지도리에 의병총 등이 있다. 통정리(通丁里)·교로리(橋路里)·난지도리(蘭芝島里)·삼봉리(三峰里)·삼화리(三花里)·장고항리(長古項里)·초락도리(草落島里) 등 7개 리가 있다.

  1. 송산면(松山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58㎢, 인구 1만 25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거리이다. 본래 면천군 송산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천면의 10개 리, 창택면의 12개 리, 승선면의 2개 리, 당진군 동면의 2개 리를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되면서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대부분의 지역이 복잡한 저산성 구릉과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으나, 동쪽과 서쪽에는 간척에 의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고, 북쪽에는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보리·채소 등도 생산하고 양잠과 한우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송악읍 기지시리와 아산만의 성구미로 향하는 633번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고, 이 도로가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당진동과 합덕읍 간의 32번 국도에서 접속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가곡리에는 성구미(城九尾)나루터가 있다.

문화유적은 명산리에 동악서원, 무수리에 해동영당(海東影堂), 삼월리·도문리에 창택산봉수(倉澤山烽燧) 등이 있다. 삼월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있다. 상거리(上巨里)·가곡리(佳谷里)·금암리(錦巖里)·당산리(堂山里)·도문리(道門里)·동곡리(東谷里)·매곡리(梅谷里)·명산리(明山里)·무수리(無愁里)·부곡리(芙谷里)·삼월리(三月里)·송석리(松石里)·유곡리(柳谷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순성면(順城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39㎢, 인구 5,7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소리이다. 본래 면천군 덕두면(德頭面)으로 11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림면의 11개 리, 가화면의 8개 리, 정계면의 9개 리, 신남면의 2개 리, 당진군 군동면 수청리를 병합해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순성면으로 개칭되어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주변부에 당산(78m)·아미산·몽산 등이 있고, 중앙부의 남원천(南院川)과 서북부의 당진천(唐津川) 유역에 쌀과 보리 중심의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 활발히 개간되고 있는 하천 주변의 구릉지대에서는 잎담배재배와 양잠이 활발하고 밤나무단지가 조성되어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순성밤은 예로부터 이 고장의 명산물로 이름이 나 있다.

도로는 합덕읍과 당진동으로 통하는 615번 지방도, 신평면·면천면·우강면 등지로 통하는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봉소리에 구절사지(九節寺址), 본리에 성터, 성북리에 몽산성 등이 있다. 봉소리(鳳巢里)·갈산리(葛山里)·광천리(光川里)·나산리(蘿山里)·백석리(白石里)·본리(本里)·아찬리(阿贊里)·양류리(楊柳里)·옥호리(玉湖里)·성북리(城北里)·중방리(中方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신평면(新平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38㎢, 인구 1만 75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천리이다. 본래 면천군 신북면으로 17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북면의 8개 리, 현내면의 24개 리, 신남면의 11개 리, 손동면의 4개 리, 범천면의 오지리, 처천면의 사천리를 병합해 13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신평면으로 개칭되어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높은 산이 없고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이며, 서북부의 초대저수지(草垈貯水池)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평야가 발달해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은 삽교천유역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기 이전에는 해수의 역류로 농사피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중앙부의 구릉지에서는 과수재배가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생강과 마늘의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

상업은 금천리에 형성되어 있는 가촌과 그 일대에서 2일·7일에 열리는 신평장에서 이루어지는데, 가촌의 상업기능체들은 매우 영세해 5일장이 상업활동의 주를 이룬다. 도로는 서정리의 합덕읍·당진동 간 32번 국도에서 시작해 삽교제방을 거쳐 아산시 인주면으로 향하는 34번 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신흥리를 거쳐 우강면으로 향하는 622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거산리에 이만유장군 유품과 한원사, 금천리에 흥국사(興國寺), 도성리에 관사지(官寺址), 신흥리에 내절사지(內切寺址), 운정리에 신평현성 등이 있다. 금천리(金川里)·거산리(巨山里)·남산리(南山里)·도성리(道城里)·매산리(梅山里)·부수리(富壽里)·상오리(上梧里)·신당리(新堂里)·신송리(新松里)·신흥리(新興里)·운정리(雲井里)·초대리(草垈里)·한정리(寒井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우강면(牛江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87㎢, 인구 5,91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리이다. 본래 면천군 범천면으로 33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서면의 13개 리, 홍주군 신남면의 3개 리, 비방면의 일부를 병합해 12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1942년 우강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낮은 구릉지로 과거에는 농업보다는 장어와 조개류를 주로 잡는 어업이 주된 생업이었으나, 삽교천방조제 축조 이후 해안에 간척지평야가 대량으로 확보되어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짐으로써 군내의 곡창지대가 되었다.

도로는 합덕읍으로 향하는 626번 지방도, 합덕읍과 신평면으로 향하는 622번 지방도, 창리와 개뚝말을 연결하는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송산리에 김대건신부 생가 터와 당산암(堂山庵)이 있다.창리(倉里)·강문리(江門里)·공포리(孔浦里)·내경리(內鯨里)·대포리(大浦里)·부장리(富長里)·성원리(成元里)·세류리(細柳里)·소반리(小班里)·송산리(松山里)·신촌리(新村里)·원치리(元峙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정미면(貞美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58㎢, 인구 3,8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천의리이다. 본래 해미군 엄솔면으로 22개 리를 관할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도면의 17개 리, 서면의 경치리 일부를 병합해 18개 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정미면으로 개칭되어 서산군에 속했다가 1950년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중앙부에 솟아 있는 봉화산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성 산지가 대부분이며 염솔천이 흐른다. 쌀과 보리 중심의 주곡농업 이외에는 별다른 특산물이 없다. 도로는 고대면과 서산시 음암면으로 통하는 649번 지방도, 대호지면과 서산시 운산면으로 통하는 647번 지방도 등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수당리에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이 있고, 봉생리에 국사봉산성, 산성리에 자모산성, 하성리에 반월정터 등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수당리에 함평정씨(咸平鄭氏)가 있다.

천의리(天宜里)·대조리(大鳥里)·대운산리(大雲山里)·덕마리(德馬里)·덕삼리(德三里)·도산리(道山里)·매방리(梅坊里)·모평리(模坪里)·봉생리(鳳生里)·봉성리(鳳城里)·사관리(士冠里)·산성리(山城里)·수당리(壽堂里)·승산리(升山里)·신시리(臣是里)·우산리(愚山里)·하성리(下城里) 등 17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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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지방지정문화재목록』(문화재관리국, 1980)
『지방행정구역발달사』(내무부, 1979)
『충청남도지』(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대전시주변부락의 민속신앙연구」(박계홍, 『문화인류학』6, 1973)
당진시청(www.dangji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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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나도승·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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