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간은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이다. 이 전투지구는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특히 도솔산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높이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기암절벽과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로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으므로 만약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편에서 북상중인 한국군의 전선부대가 한 걸음도 진격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공산군은 이러한 전술적인 이점과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도솔산지구전투는 처음에 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제5연대가 맡았으나 많은 손실만 입고 탈환하지 못하자, 1951년 6월 3일 한국 해병대 제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가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6월 4일 첫 공격을 시작하였다.
북한 공산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부으며 완강히 저항했으므로 한국 해병대는 한 걸음도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전진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 공산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투로 한국 해병대 제1연대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다. 그 뒤 해병대에서는 「도솔산의 노래」라는 군가를 제정하여 그날의 용전의 기백을 후배 해병들에게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