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언해 ()

두시언해
두시언해
언어·문자
문헌
조선전기 문신 유윤겸 · 의침 등이 당나라 시인 두보의 한시를 풀이한 언해서.
정의
조선전기 문신 유윤겸 · 의침 등이 당나라 시인 두보의 한시를 풀이한 언해서.
서지적 사항

원제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이다. 25권 17책. 활자본. 을해자(乙亥字).

편찬/발간 경위

초간본은 세종·성종대에 걸쳐 왕명으로 유윤겸(柳允謙) 등의 문신들과 승려 의침(義砧)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1481년(성종 12)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있는 조위(曺偉)의 서문에 의하면 간행목적이 세교(世敎)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간본은 목판본으로서 초간본 발간 이후 150여년 뒤인 1632년(인조 10)에 간행되었다. 장유(張維)의 서문에 의하면, 초간본을 보기 힘들던 차에 경상감사 오숙(吳䎘)이 한 질을 얻어 베끼고 교정하여 영남의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간행시켰다고 한다. 이 중간본은 초간본을 복각(覆刻)한 것이 아니라 교정(校正)한 것이므로, 15세기 국어를 보여주는 초간본과는 달리 17세기 국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어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내용

체재는 두보의 시 전편(全篇)인 1,647편과 다른 사람의 시 16편을 기행·술회·회고·우설(雨雪)·산악·강하(江河)·문장·서화·음악·송별·경하(慶賀) 등 52부로 분류하였다. 국어사적으로 볼 때, 초간본과 중간본의 비교연구는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로의 언어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초간본에는 방점(傍點) 및 반치음 ㅿ, ᄠᅳᆷ 등이 사용되었으며, 자음동화 현상이 표기에 뚜렷이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구개음화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중간본은 방점과 ㅿ의 소실을 비롯하여 ᄠᅳᆷ이 사용되지 않을 뿐더러 말음 ㄷ의 ㅅ으로의 변화현상, 자음동화 현상의 표기법상 노출, 구개음화현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중간본의 언어 차이에 의한 국어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최초의 국역 한시집(漢詩集)이라는 점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순수 고유어를 풍부하게 구사하고 있는 점, 그리고 문체에 있어 운문의 성격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점 등 국어국문학연구에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고 있다.

≪두시언해≫의 중간본은 규장각도서와 서강대학교 도서관 등 각지에 그 완질(完帙)이 산재되어 있으나, 초간본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완질 25권 중 권1·2·4·5·12의 5개권이 발견되지 않고 그 나머지만 현존하고 있다.

초간본의 권 3·7·8·9·10·16·17·19·20·21·22·23은 이겸로(李謙魯)가, 권10·11·25는 이병주(李丙疇)가, 권7은 이희승(李熙昇)·김형규(金亨奎), 권10은 이능우(李能雨), 권13은 전형필(全灐弼), 권14는 조참연(趙參衍), 권15·16은 정철(鄭喆), 권18은 최현배(崔鉉培), 권25는 이관구(李寬求) 등이 소장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에 권6·7·11·15·16·24, 보성고등학교의 석남장서(石南藏書)에 권3, 연세대학교에 권6, 동국대학교에 권20·21이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의 현존본 중 권3·9·18·19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1954∼1959년통문관(通文館), 1976·1978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년홍문각(弘文閣) 등에서 영인되었다.

참고문헌

『두시언해비주』(이병주, 통문관, 1958)
『두시언해논석』(전재호, 선명문화사, 1969)
『두시언해의 국어학적 연구』(전재호, 이우사, 1975)
「중세어의 한글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안병희, 『규장각』 3, 서울대학교도서관, 1979)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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