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천군 ()

대동여지도 중 함경북도 명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함경북도 명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
광복 당시 함경북도 동남부에 있었던 군.
정의
광복 당시 함경북도 동남부에 있었던 군.
개관

동쪽과 남쪽은 동해, 서쪽은 길주군, 북쪽은 경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11′∼130°40′, 북위 40°35′∼42°50′에 위치한다. 면적은 2,080.43㎢, 인구는 12만 5743명(1943년 현재)이며, 10개 면 126개 동으로 되어 있다. 군청 소재지는 상우북면 용반동이다.

자연환경

지세는 함경산맥의 지맥들이 서북부에 걸쳐 있고, 동남부에는 소규모의 칠보산맥(七寶山脈)이 대략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다. 이 두 산맥에 의하여 명천군의 지형은 산악 지대를 형성하며, 명간천(明澗川)과 화대천(花臺川)을 따라 동북부와 남부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서북부에 감토봉(甘吐峰, 1,584m)·기운봉(氣雲峰, 1,668m)·등대산(登垈山, 1,261m) 등이 있고, 남동부에는 상응봉(上鷹峰, 1,308m)·하응봉(下鷹峰, 1,047m) 등을 중심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밖에 동북쪽에 강릉산(江陵山, 708m)이 있고, 중앙부에 재덕산(在德山, 893m)이 있다.

명간천은 등대산 기슭으로부터 동으로 흘러 서면과 동면의 중앙으로 흘러 들어가고, 화대천은 아간면에서 발원하여 상가면·하가면의 서부를 남류하면서, 각각 유역에 넓은 평야를 발달시키면서 동해로 흘러든다.

경성군 어대진(漁大津)부터 동남단의 무수단(舞水端)에 이르는 해안선은 약 106㎞에 달하고, 해안 곡선이 아름다우며 톱날 같은 절벽의 해식애를 이룬다. 그러나 육지에 면한 부분의 수심이 얕아 큰 항구는 없고, 서면의 양화어항(良化漁港)과 하가면의 사포어항(泗浦漁港) 등의 작은 항구가 있다.

명천과 길주를 동북에서 서남으로 연결하는 군의 중심 지대는 제3기 층에 속하는 퇴적암 지대이며, 북서부와 남동부는 화강암 지대이다. 명천읍에서 20㎞ 떨어진 곳에 용연(龍淵)이라는 하천이 있는데, 이 일대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대부분 산간지대이므로 기후는 한서의 차가 격심한 대륙성 기후이며, 해안의 일부 지역만이 동해 연안의 한류의 영향을 받는다.

연평균 기온 6∼9℃, 1월 평균 기온 -9.6℃ 내외, 8월 평균 기온 22.1℃ 내외로 여름과 겨울의 연교차가 31℃를 넘는다. 연 강수량은 667.1㎜이며, 안개 일수는 명천이 연평균 7.9일, 무수단이 49.2일이고, 서리는 10월 중순부터 내려 이듬해 4월 중순에 끝난다.

역사

[고 대]

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이웃에 있는 경성과 청진의 조개더미 유적에서 뗀석기·간석기·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발굴 가능성이 높으며 선사 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기 史記』에 따르면, 서기전 수세기에 걸쳐서 숙신(肅愼)·읍루(挹婁)·예맥(濊貊)·옥저(沃沮)·부여(夫餘) 등 여러 부족 국가의 흥망성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였다.

668년(문무왕 8)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에 의하여 군정이 실시되었을 때 이 지역은 한때 그 주·현에 속하다가 698년(효소왕 7)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의 지배권에 들어갔다.

[고 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초기의 영역은 발해와 접하였고, 거란에 의하여 발해가 멸망한 뒤(926) 고려태조는 발해유민을 받아들였으나 이 지역은 여진족이 차지하였다.

1107년(예종 2) 윤관(尹瓘)이 17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함흥 이북에 9성을 쌓았는데, 그때 이곳은 양군의 격전지로서 2년여 동안 고려의 통치를 받다가 다시 여진족의 치하로 들어갔다.

그 뒤 1115년 금나라를 세웠다가 1234년(고종 21) 원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여진족은 백두산 동북쪽에 할거하다가 차츰 남하하여 함흥 지방에까지 진출하면서 고려와 자주 충돌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한족(漢族)이 세운 명나라가 흥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틈타 원나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 공민왕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무력으로 되찾고 북진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은 공민왕 때 수복되고 1390년(공양왕 2)에 설치된 길주만호부(吉州萬戶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조 선]

1398년(태조 7)명원역(明原驛)이라고 부르며 길주목(吉州牧)이 관할하다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가 길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이듬해에 길주목은 길성현(吉城縣)으로 격하되고 장덕산 이북의 땅이 분리되어 명천현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명원역에 치소를 두고 도호부사가 관할하였다. 그 뒤 1512년(중종 7)길성현을 길주목이라고 하고 명천현을 이에 예속시켰다가 다음해에 다시 명천현을 독립시켰다.

[근 대]

1914년경성군으로부터 서면과 동면을 이 군에 이속시키고, 상우면을 상우북면과 상우남면으로 분할함으로써 명천군은 10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하가면의 화대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2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하였고, 이어서 상우남면의 우사장, 상고면 포하, 서면 우동동 등에서 산발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주도한 광복단은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 벌였다.

화대에서의 만세시위 중 동풍신(董豐信)의 용감한 행동이 특히 유명한데, 그는 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전소시키고 친일 면장과 회계원의 집을 방화하였다. 그 뒤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자결하였다.

3·1운동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소년회·실업청년회·신간회지부·농민조합 등이 조직되어 독립 운동이 계속되었으며, 만주 간도로 이주한 이 지역 출신의 김영학(金永學)과 이문순(李文淳)·이명순(李明淳) 형제 등은 독립군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였다.

근대 인물로는 상가면 출신의 이용익(李容翊)이 있다. 그는 고종의 총애를 받아 내장원경·군부대신·탁지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하고, 한일의정서에 반대하였다가 일본 세력이 미치자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 중 암살되었다.

유물·유적

상가면 장덕동의 선사유적에서 메머드 유골이 나왔으며, 아간면 양정동의 제3기 동물 화석층과 하우면 함진동의 제3기 동물 화석층에서 큰 동물 뼈가 출토되었다.

하고천 유역의 주의동·정문동·도원동·교항동 등에 걸쳐서 고분군이 발굴되었다. 이 하고천 고분군은 500여 기나 되며, 외형은 1변이 10m의 방형고분으로 현실(玄室)을 갖추고 있다. 광암동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산성으로는 입암동의 명간산성(明澗山城)이 흙으로 쌓은 성지만 남아 있고, 명천읍성은 1517년(중종 12)에 쌓은 것으로 둘레 1㎞, 높이 3m의 석성이다. 인조 때 개축하여 둘레가 1,486m로 늘어났으며, 성에는 3문을 갖추고 있다. 명천읍 서쪽 12㎞에는 둘레 251m, 높이 150m에 달하는 석성인 대사동보가 위치하고 있다.

명천읍에서 북쪽으로 12㎞ 되는 곳에는 주위가 122m에 달하는 소사마동보(小斜亇洞堡)가 있으며, 명천읍에서 동남쪽으로 74㎞ 떨어진 곳에 있는 갈마산성(渴馬山城)은 주위 263m의 석성이다. 이 밖에 양화동에 양천현기(良川縣基)가 있고, 명천읍의 서쪽 38㎞에 주위 595m의 석성으로 된 고장군파(古將軍坡)가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불교 유적으로는 개심동칠보산(七寶山)에 1377년(우왕 3) 나옹(羅翁)이 창건하고 1853년(철종 4)에 중건한 개심사(開心寺)가 있다. 이 밖에 내포동의 쌍계사(雙溪寺), 하고면의 송덕사(松德寺), 동면 가재공의 은벽사(隱碧寺, 일명 長德寺) 등이 유명한 사찰이다. 개심사에는 특히 약밤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명승으로는 칠보산이 ‘제2의 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원래 칠보산은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7개 있었는데, 현재는 1개가 바다에 가라앉고 6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그리고 금강봉과 금강굴(金剛窟)·천불봉(千佛峰)·만사봉(萬獅峰)과 삼부도(三浮屠) 등이 특히 볼만하다.

호남동의 동남쪽으로 홍개골 사이를 흐르는 용연천은 길이 약 10㎞로 절묘한 산세와 더불어 아름답다. 이 밖에 아간면·하우면·상우남면에 걸쳐 웅대하게 솟아 있는 재덕산과 황진동의 온수평온천(溫水坪溫泉)이 유명하다.

교육·문화

이 고을의 옛 교육기관으로는 조선 중종 때에 창건한 명천향교와 지방에 산재한 서당이 있어 유생 교육에 힘썼으며, 조선 말기의 개화기에 이르러서는 군내 각처에 우후죽순 격으로 근대화된 학교가 설립되어 신학문의 보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당시 경성군 관내였던 동면과 서면에는 1900년 경성읍에 창설된 관북 초유의 개화 교육기관인 함일학교(咸一學校)의 영향을 받아 1906년 전후에는 동면에 김병윤(金秉胤)이 설립한 광진학교(廣進學校), 이남재(李南裁)가 설립한 명승학교(明昇學校), 박영환(朴榮桓)이 설립한 남송학교(南松學校)가 있었고, 서면에는 김윤중(金潤重)이 설립한 우동학교(雩東學校), 김병하(金丙夏)가 설립한 양화학교(良化學校), 임헌중(任憲重)이 설립한 명동학교(明東學校) 등이 있었다.

그리고 1907년에는 보성학교(普成學校 :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창시자 이용익(李容翊)의 손자인 이종호(李鍾浩)가 그의 향리인 상가면 양촌에 보흥학교(普興學校)를 세워 초·중등교육을 시작하였으며, 또 그 이듬해에는 북도 여러 고을 군수를 지내고 귀향한 김병륜(金柄侖)이 출생지인 상우남면 마전동에 사재를 털어 광동중학교(光東中學校)를 설립하여 신학문의 주입과 민족정신의 함양에 공헌한 바 컸다.

이들 학교 출신자는 후일 애국지사로 항일운동의 중추 세력을 이루어 명천군은 일제에 의해서 이른바 불온사상의 온상지라는 평을 받기까지 하였다. 1911년 금성공립보통학교(錦城公立普通學校)의 개교를 비롯하여 군내에는 1943년 현재 공·사립 초등학교 27개와 사립 농업보습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은 1945년 현재 불교 사찰인 개심사(開心寺)·쌍계사(雙溪寺)·송덕사(松德寺) 등의 고찰이 있고, 개신교 교회로는 장로교 교회 8개가 있다.

이 고장의 설화로는 지명전설·사찰연기설화·장자못전설 등이 전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주대명탄생설화〉·〈명태설화〉 등이다.

〈주대명탄생설화〉는 약 400년 전에 칠보산 개심사 주지가 아침을 먹으려는데 큰 거미가 밥상 위에 앉아 있어서 밥을 주어서 키웠더니 자꾸 배가 불러왔다.

어느 날 새벽에 거미가 아기를 낳고 사라져 남아 있는 거미줄을 따라가 보니 백두산 천지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기는 거미 주(蛛)자에서 충(虫)자를 떼고 주씨(朱氏)로 성을 하고 이름을 대명이라 하였는데, 그 뒤 그 자손이 금나라 황제가 되고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명태설화〉는 태씨(太氏)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보는 고기를 많이 잡아 명천(明川)의 명(明)자와 합하여 ‘명태(明太)’라고 하였다는 설화이다.

민요로는 시국을 주제로 하는 것과 아리랑·동요 등이 불렸다. 그 대표적인 것은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동대산 바람은 이별 바람이라오/에∼”와 같이 만주나 러시아로 떠나가는 임과의 이별·그리움이나 “아강아강 울지 마러라/왜놈의 관병이 너 잡어간다/에∼”와 같이 시국을 주제로 하는 함경도 대표적 민요인 〈애원성〉이 널리 불려졌다.

“하구나 할일이 다 많은데/망할놈 화류계는 왜 생겼나/(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저 달이 지기 전 날 넘겨 주소/사랑도 아닌데 알랑알랑/머물 것 없어도 원수로세…….”라는 〈아리랑〉도 널리 불려졌는데, 대부분 남녀 관계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님 오네 성님 오네/분고개로 성님 오네…….”나 “범이 그리 세다 하나/세(시)아비 두고 더 세겠냐…….”와 같은 〈시집살이노래〉와 〈왈개달개〉·〈기러기〉·〈잠자리〉 등의 동요도 불려졌다.

민속놀이로는 사자놀이·투계 및 궁사(弓射)놀이와 같은 상무적(尙武的)인 것이 있었으나, 근래에는 세시 풍습으로 명절 때에 윷놀이·씨름·널뛰기·그네뛰기·연날리기·팽이치기·돌차기·자치기 등이 전하여 내려온다.

도내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추석보다 단오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월을 전후하여서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이 성행하고 단오에는 씨름과 그네뛰기, 추석에는 그네뛰기·널뛰기·연날리기 등이 성행하였다.

윷놀이는 옥내에서만 행해지고 윷짝은 콩윷을 쓰며, 부녀자들은 달맞이 윷점이라 하여 소반에 청아수를 떠 놓고 정월 보름날에 절하고 윷을 세 번 굴려 그 숫자에 따라 당년수책이라는 점서에 의하여 그해의 길흉을 점치는 풍습이 있었다.

이 지방에 전래되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동제는 농촌의 산신제(山神祭)와 어촌의 용신제(龍神祭)가 있다. 산신제는 마을 전체의 행사로 대개 정월 초정일(初丁日) 또는 중정일(中丁日)에 정결한 곳에 임시 제단을 설치하고 치성을 올린다. 제사의 목적은 마을에 맹수의 피해나 괴질의 유행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는 일이 없도록 산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하는 데 있다.

제사 준비는 미리 정해 놓은 도가에서 소임 수명이 목욕재계하고 시행하며 우선 큰 돼지를 잡아 삶는다. 제수로는 돼지머리와 시루떡·감주·백미·백포·백지 등을 마련하며, 각 가정에서는 밥을 한 그릇씩 따로 지어 제단에 바친다. 의식은 고령자 중에서 선출한 제관 3명이 분향·헌작·배례한 다음 고축이 있고, 일동 복배한 다음 소지로서 행사가 끝난다.

행사 뒤에는 그 자리에서 음복하며 삶은 돼지고기는 꼬챙이에 꿰어서 집집마다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동해안의 어촌에서는 산신제를 지내는 외에 어민들끼리 따로 모여서 풍어와 해난 사고의 근절을 위하여 용왕께 치성을 올리는 용신제가 있다.

대개 정월이나 3월 중에 택일하여 무당을 불러 치제하여 왔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수산업의 현대화에 따라 배 위에서 풍어제를 지내는 경향이 더 보편화되었다.

산업·교통

산지가 많아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활발하다. 1943년 현재 총농경지 4만 8581ha인데, 경지율이 총넓이의 23.3%로 함경북도에서 가장 높다. 그 가운데 논이 62.65㎢로 총경지 면적의 13%에 지나지 않으며, 밭은 423.15㎢로 87%에 달한다.

따라서 주요 생산물은 보리·콩·조 등의 잡곡이다. 축산업으로는 소와 면양의 사육이 활발하며, 동해의 어항인 사포와 양화에서는 대구·고등어·명태·방어 등이 많이 잡히고, 특히 무수단 앞바다의 다시마와 미역은 그 품질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가내 부업으로 모든 군내 농가의 대부분이 생산하는 삼베는 ‘명포(明布)’라고 하여 질이 좋기로 전국에서 유명하며, 도내에서 생산량이 제1위로서 연간 3만여 필을 상회한다. 명간천의 넓은 유역평야와 화대천 유역의 평탄한 양안(兩岸)은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한 사양토로서 삼의 재배지로는 적지이다. 특히, 기술면에 있어서도 짜임새 있고 삼베의 질이 좋아 유명하다.

광공업으로는 서면·하우면·아간면에 걸친 명천탄전이 유명하다. 서면 삼향동의 명주탄광(明州炭鑛), 하우면 용전동의 소화탄광(昭和炭鑛), 아간면 만호동의 명천탄광 등의 3개 탄전을 총칭하여 명천탄전이라고 한다.

함경북도 남부를 대표하는 갈탄 탄광은 제3기 층에서 하·중·상으로 구분되며, 함탄층(含炭層)은 하부의 용동층(龍洞層)이고 상부는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용동층의 두께는 80m 정도의 육성층(陸成層)으로서 셰일·사암·석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셰일 중에는 많은 식물 화석이 함유되어 있다.

1928년 당시에는 연 채굴량이 약 6,700t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명주탄광에서 채굴되는 갈탄은 인조석유 원료로 적합하여 1933년에 액화공업을 일으켰다. 그 주요 생산품은 코크스·타르·휘발유·중유·파라핀·메탄올·포르말린 및 윤활유 등이다.

특히 영안 방면에서 채굴되는 갈탄은 전국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1억4천만 톤 이상을 생산하여 액화공업의 원료로 이용된다. 이 밖에도 하고면의 운모와 상고면·상우북면의 고령토, 하우면의 석회석, 증산의 월장석(月長石)이 있다.

우시장이 각 면에 발달하여 있는데 동면의 극동시장(極東市場), 상우남면의 우사장시장(雩社場市場), 아간면의 황곡시장(黃谷市場), 하가면의 화대시장(花臺市場) 등이 유명하다.

극동시장은 군내 동북부 교통의 요지이며 부근에는 공장과 탄광이 개발되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우시장 중심의 시장 기능이 확대되어 곡류·채소·축산물, 기타 일용 잡화와 동해어장에서 산출되는 각종 수산물의 집산지로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아간면의 황곡시장은 군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명승지인 칠보산 방면과 군내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으로 우시장을 비롯한 곡물 시장과 칠보도기(七寶陶器)의 집산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군내 남부의 곡창지대와 어업 기지인 사포항을 사이에 두고 있는 화대시장은 군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매 1일과 6일에 열리는 5일장인 가축 시장에서는 축우를 비롯하여 돼지·닭 등의 매매가 성하며, 일반 시장에서는 각종 곡류와 수산물이 집산되어 크게 발전하고 있다.

우사장시장은 이 군의 북부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우시장으로 발전한 곳이었으나, 부근에 공업 도시와 탄광 지대가 발전함에 따라 축산물과 각종 곡류·채소·신탄류 등의 거래가 성하다.

교통은 국도 외에 각 면을 잇는 도로와 함경선의 철도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지난다. 상고면 황진동에 있는 황진온수평온천(黃津溫水坪溫泉)은 수질 및 인근 환경이 좋아 연중 관광객이 찾는다.

수온은 63∼65℃이고, 알칼리 석영조면암(石英粗面巖)과 화강반암(花崗斑巖) 등의 화산암으로 형성된 제3기 층의 단층선을 따라서 화산지의 큰 구멍에서 자연 용출되며, 수질이 좋고 라듐 함유량과 용출량이 많다.

이곳에서 약 12㎞ 떨어져 있는 곳에는 소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이 있으며, 동해의 해변에는 절경인 해칠보(海七寶)가 있고, 또한 동해의 작은 어촌인 황진동은 연안에서 어획된 싱싱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 등 그 입지 조건이 좋아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모인다.

읍·면

[동면 東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4.28㎢, 인구 1만 2172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호남동이다. 본래 경성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 군에 이속하게 되었다.

길주명천지구대(吉州明川地溝帶)의 단층곡(斷層谷)이 면의 서북부에 가로놓여 있고, 그 중앙을 명간천이 북류하여 어랑천으로 흘러들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다.

동해변의 경성군과의 군계에 강릉산이 솟아 있고, 남부에 칠보산맥의 여맥이 뻗어 있어 지세가 대체로 평탄하다. 해안선은 짧고 구릉이 연속되어 있으며 여러 곳에 작은 만이 있다.

면의 중앙부인 명간천 유역은 충적평야로 일찍부터 관개 사업이 이루어져 쌀 생산이 많고, 그 밖의 주요 농산물은 콩·팥·조·보리·감자 등이다.

축산업이 발달하여 소·면양·돼지 등의 사육 두수가 많으며, 특히 이 지방 소는 ‘명천소’라고 하는 우량종으로 북선소의 대표 품종이며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동해안에서는 명태·대구·고등어·가자미·섭·다시마·미역 등을 주로 어획한다.

교통은 명간천을 따라 함경선 철도와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학암동에는 백회석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용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가 있다.

호남(湖南)·장교(長橋)·극(極)·광암(廣巖)·수암(壽巖)·용암(龍巖)·양견(良見)·발하(發河)·다진(多津)·삼포(三浦)·학암(鶴巖)·양천(楊川) 등 12개 동이 있다.

[상가면 上加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2.52㎢. 인구 1만 344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촌동이다. 면의 동쪽과 상고면·하고면과의 면계에 하응봉이 솟아 그 여맥이 동쪽과 북쪽으로 뻗었고, 서부는 화대천이 남북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가장자리에 인근 길주읍에서 이 군의 남부 해안 지방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어 교통의 요충을 이루고 있다.

이 면은 화대천 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군내 남부의 곡창지대로서 쌀 생산이 많고, 그 밖에 조·피·보리·콩 등의 잡곡과 감자가 많이 산출된다.

그 가운데 콩은 알맹이가 굵고 윤택하며 유분이 적어서 장유나 제과용 원료로 외국에 수출도 한다. 축산업이 발달하여 소·면양·돼지·닭 등을 많이 사육하는데, 그 가운데 소는 이른바 북선소의 대표적 우량종으로 ‘명천소’라고 하여 유명하다.

부업으로 양잠이 성하고 특용작물인 삼이 재배되며, 이를 원료로 한 삼베는 세포로서 ‘명포’라고 하여 널리 알려졌다. 한편, 면양 사육열이 대단하여 양모를 원료로 하는 순모 방사(紡絲)와 홈스펀 직조업이 성행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양촌(陽村)·초장(草長)·낙동(洛東)·연덕(淵德)·판령(板嶺)·장덕(長德)·수(水)·철현(鐵峴)·석현(石峴)·용소(龍沼)·북간(北間)·자가(自佳)·와현(瓦峴)·조당(潮塘) 등 14개 동이 있다.

[상고면 上古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0.18㎢, 인구 1만 69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평동이다. 서부에는 상응봉·하응봉·향로봉(香爐峯, 944m) 등이 자리잡고 있고, 면내 중앙에는 칠보산 산지가 뻗어 있어 대부분 산지이며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평지가 있을 뿐이다.

구릉 지대가 많고 하천이 빈약하므로 쌀 생산은 적으며, 조·보리·콩·감자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동해안에는 황진·보촌·중평·포하 등 크고 작은 포구가 여러 곳에 있으며, 이들 어항에서는 주로 명태·대구·고등어·낙지·가자미·조개·미역·다시마 등이 많이 어획된다.

칠보산지는 우리 나라 제2의 금강이라 불리며 관북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지로서 현무암 알칼리 석영조면암과 알칼리 화강반암 등의 화산암으로 이루어졌으며, 금강굴·천불봉·만사봉·회상대(會像臺)·사암(寺巖)·주암(舟巖)·삼부도·연적봉(硯滴峰)·종각봉(鍾閣峰) 등의 명승이 있다.

산중에 고려 말엽에 창건되었다는 개심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인 지나율(支那栗)이 있다. 또, 칠보산 주변은 도기의 산지로 유명하다.

산지의 동해안은 거센 파도로 웅대한 해식애를 이루어 수백 척의 높은 절벽은 천태만상의 조화를 이루었으므로 이곳을 해칠보라 한다. 한편, 황진동에는 온수평온천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중평(仲坪)·보촌(寶村)·포하(浦下)·포중(浦中)·목진(木津)·포상(浦上)·개심(開心)·내산(內山)·황진(黃津) 등 9개 동이 있다.

[상우남면 上雩南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0.90㎢, 인구 7,880명. 면 소재지는 고성동이다. 본래 상우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라져 상우남면이 되었다.

면의 동부는 길주명천지구대로서 낮은 골짜기를 형성하였으며, 서부는 단층 후면의 고지대로 함경산맥의 여맥이 길게 뻗어 산악지대를 이루었다. 면의 남서부는 여러 골짜기에서 모여든 물줄기가 합쳐서 화대천이 되었다.

이 면은 지리적 환경이 밭농사에 적합하여 쌀 생산은 적고 조·피·기장·수수·옥수수·콩·팥 등 잡곡과 감자의 생산이 많으며, 그 가운데 콩과 팥은 그 품질이 좋아 장유나 제과용으로 수출된다.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는 몸이 크고 온순하여 ‘명천소’라고 하는 북선소의 대표적 우수종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용작물인 삼의 재배가 성행하였으며, 이를 원료로 만든 삼베는 ‘명포’라 하여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서부 산간지대는 참나무가 무성하며 측삼동 부근의 산지에서는 참나무숯[木炭]이 많이 생산된다.

면의 동쪽 길주명천지구대를 따라 함경선 철도와 국도가 통과한다. 측삼동백록산 계곡에 쌍계사가 있다. 일명 상계사(霜桂寺)로 불리는 이 고찰은 무학(無學)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부근은 진달래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고성(高城)·상장(上場)·마전(麻田)·내포(內浦)·청룡(靑龍)·웅주(雄州)·측삼(測三)·부암(富巖)·규(葵)·신설(新設) 등 10개 동이 있다.

[상우북면 上雩北面]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367.28㎢, 인구 1만 326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반동이며 군청 소재지이기도 하다. 본래 상우면이던 것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상우북면이 되었다.

면의 북부에는 함경산맥의 만탑산의 능선과 그 북쪽에 감토봉이 우뚝 솟아 남북으로 여맥이 뻗었다. 남부는 길주명천지구대의 단층 가장자리에 놓여 있으며 중앙부에는 등대산이 가로놓여 있고, 남쪽에 성명산(聖明山, 888m)이 자리잡고 있어서 면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를 이루었다. 북쪽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명간천은 등대산 동쪽 기슭을 남류하였고, 서남부에서 모여든 우북천(雩北川)은 동으로 흘러 명간천에 들어간다.

북부 산간지대에서는 신탄재(薪炭材)를 비롯하여 방풍(防風)·당귀(當歸)·오미자(五味子) 등 약초와 송이(松栮) 등 임산물이 산출된다. 농산물로는 조·피·보리·기장·수수·콩·팥 등이 많이 생산되며, 그 가운데 콩과 팥은 알맹이가 굵고 빛깔이 좋은 우량종으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는 ‘명천소’라고 하는 북선소의 대표적 우수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용작물로는 양잠과 삼의 재배로 삼베의 직조가 성행되며, 특히 이 지방에서 산출되는 삼베는 세포로서 예로부터 널리 알려졌다.

면의 동쪽 길주명천지구대를 따라 함경선 철도와 국도가 통과한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교가 있으며, 용반(龍蟠)·세이(洗耳)·상아(象牙)·웅평(雄坪)·신흥(新興)·장포(長浦)·이평(梨坪)·부화(富禾)·웅점(熊店)·중향(中鄕)·하장(下場) 등 11개 동이 있다.

[서면 西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9.71㎢, 인구 2만 2518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입석동이다. 본래 경성군에 속하여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과 함께 명천군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길며, 중부는 길주명천지구대의 단층곡이 동서로 가로놓여 있고 이곳으로 명간천이 흘러 들어가 농경지로 알려진 곳이었으나, 1930년대에 들어서 영안 일대에 탄광이 개발되고 인조석유 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광공업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농산물로는 명간천 유역의 쌀을 비롯하여 조·보리·수수·콩 등 잡곡 생산이 많고, 축산업이 발달하여 양질의 소인 명천소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다. 또 호주산 면양도 많이 사육한다.

영안 부근의 명주탄광에서 많이 나는 갈탄은 그 탄질이 인조석유 제조용으로 적합하여 1933년 이곳에는 저온건류법(低溫乾溜法)에 의한 액화공장이 건설되어 각종 석유류와 파라핀·포르말린·페크라이트 등 다양한 제품이 생산된다. 동해안 연안에서는 명태·고등어·대구·방어·섭·미역·다시마 등이 많이 산출된다.

교통은 면의 중부를 함경선 철도와 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입석동평야 가운데 장군대(將軍臺)라는 선돌과 그 맞은편에 옥녀암(玉女巖)이라는 큰 바위가 누워 있어 이를 입석기암이라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가 있으며, 입석(立石)·우동(雩東)·양화(良化)·고성(古城)·삼청(三淸)·산성(山城)·명남(明南)·호산(虎山)·백록(白鹿)·용산(龍山)·지경(地境)·신창(新昌)·삼향(三鄕)·평기(坪岐)·용(龍)·서삼(西三) 등 16개 동이 있다.

[아간면 阿間面]

군의 중앙과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6.81㎢, 인구 1만 9263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황곡동이다. 면의 동쪽 면계에는 상응봉이, 북부 상우남면·하우면과의 경계에는 재덕산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부는 길주명천지구대의 단층곡에 위치한다.

북부 상우남면에서 발원하여 면의 서부를 남류하는 화대천은 그 유역에 충적평야를 이루어 쌀 생산이 많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조·보리·기장·콩·팥·수수·감자 등 농산물이 산출되며 콩과 팥은 그 품질이 좋아 외국에 수출되기도 한다.

또 축산업이 발달하여 소와 면양의 산지로도 유명하며,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는 ‘명천소’라고 하는 우량종으로 북선소의 대표적 품종이다. 면양은 호주산 코리델 종이며, 특용작물로 이 지방에서 재배되는 삼으로 생산한 삼베가 있는데 ‘명포’라 하여 그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만호동에 있는 명천탄광은 갈탄광으로서 총매장량 5천만 톤이며, 주로 영안인조석유공장(永安人造石油工場)에 공급된다. 면의 중앙부를 따라 함경선 철도와 국도가 통과하며, 도로망은 고참역·황곡동·상고면 보촌동을 잇는 지방도로가 있다.

재덕산은 완만한 경사의 초원으로 이루어진 웅대한 산인데 그 정상의 넓은 대지에는 옛날 여진족이 쌓았다는 고성지가 있고, 크고 작은 늪과 못이 있으며, 근래 이곳에는 도립 종양장(種羊場)이 설치되어 여름에는 넓은 사면의 초생지가 방목장이 되고, 겨울이면 아주 좋은 스키장으로 이용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가 있으며, 황곡(黃谷)·배령(背嶺)·만호(萬戶)·어전(漁佃)·황덕(黃德)·사(沙)·용호(龍湖)·고참(古站)·용암(龍巖)·신계(新溪)·독포(讀浦)·거문(巨門)·양정(楊亭)·다호(茶湖)·답기(畓機)·허의(許儀)·노송(老松) 등 17개 동이 있다.

[하가면 下加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6.98㎢, 인구 7,540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대동이다. 면의 중앙을 화대천이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동해로 들어가는 최하류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유역의 충적평야는 군내 남부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를 이룬다.

해안선은 연안 굴곡이 많고 항만이 많으며, 해면에는 3개 도서(島嶼)가 있는데 이 가운데 2개가 강후이도(江厚耳島)이고 하나는 길주군의 양도(洋島)이다.

농산물은 쌀과 조·보리·기장·수수·콩·팥·감자 등이 생산된다. 그 가운데 콩과 팥은 품질이 좋아 외국에 수출한다. 목축업이 성하여 가축의 사육 두수가 많으며 특히 이 지방의 소는 북선소라 하여 우량종으로 유명하다.

농가 부업으로 양잠과 명포라 하여 호평을 받는 삼베의 직조가 성행하고 있다. 수산업은 연안 앞바다에서 명태·고등어·대구·임연수어·가자미·삼치·꽁치·낙지·문어·조개 등 다채로운 어패류가 많이 어획되며, 항구 남쪽 바다의 강후이도와 길주군 양도 등 도서 지방과 하고면 무수단에 이르는 연안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미역·다시마·섭 등이 대량으로 산출된다.

길주∼사포 간의 도로가 면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으며 사포항을 통한 물산 수송이 용이하다. 면의 서쪽 갑봉(甲峰) 기슭의 성지골에는 육진 설치 당시 이곳을 개척한 광천 동씨(廣川董氏)의 시산과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교가 있으며, 화대(花臺)·지명(池明)·남산(南山)·둔전(屯田)·성구(聖邱)·포항(浦項)·둔지(屯地)·용포(龍浦)·양상(梁上)·사포(泗浦)·평촌(坪村)·천(泉) 등 12개 동이 있다.

[하고면 下古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2.99㎢, 인구 1만 6711명(1943 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평동이다. 면의 최북단인 상가면·상고면과의 경계에 하응봉과 작봉(鵲峰, 900m)·향로봉이 있고, 그 산세가 동서로 뻗어 상고면과의 경계에 있는 상암산(裳巖山, 491m)에까지 다다른다. 따라서 면의 북부는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응봉에서 발원하는 용산천(龍山川) 및 그 밖의 몇 개 하천이 남류하여 동해로 유입된다. 면의 남부는 이 하천들을 중심으로 동해연안에 평지를 이루었다. 면의 남쪽은 동해와 접하여 있어 만을 형성하였고, 그 안에 염암(鹽巖)과 형제도(兄弟島) 등의 섬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조·보리·콩·감자이며, 특히 콩은 그 품질이 좋아 외국에 수출한다. 축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소·면양·돼지 등의 사육두수가 많으며, 그 가운데 소는 체격이 크고 번식률이 높은 북선소로서 유명하다.

수산물로는 갈마포(葛麻浦)·하평(荷坪)·황암진(黃巖津) 등지에서 명태·대구·고등어·가자미·삼치·송어 등을 어획하고 있다. 해안선 동쪽 끝인 무수단에 등대가 있고, 이 부근은 국내 제일의 다시마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암산에는 송덕사가 있으며, 이곳에서의 수려한 산세와 만경창파의 조망은 풍취가 뛰어나다. 암방동 손곡(孫谷) 마을에 높이 37m, 너비 5m의 손곡폭포가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으며, 하평(荷坪)·황암(黃巖)·주의(周儀)·귀락(貴洛)·암방(巖坊)·교항(橋項)·토원(土垣)·수룡(水龍)·정문(旌門)·마유(馬乳)·증산(甑山)·이배(梨培)·창전(倉前)·대포(大浦)·동호(東湖) 등 15개 동이 있다.

[하우면 下雩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8.78㎢, 인구는 8,920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명천동이다. 면의 남서부 아간면과의 면계에 재덕산과 송봉(松峰, 747m)·증봉(甑峰, 750m)이 있고, 북부에는 지경고개[地境峙]가 있다.

서북부는 길주명천지구대의 단층곡에 자리잡고 있어서 면의 북부를 흐르고 있는 명간천 유역에 평지를 형성하였다. 이 유역에서는 쌀 생산이 많으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조·보리·기장·수수·옥수수·콩·팥 등의 잡곡이 생산되며 채소류도 많이 재배한다.

일찍이 축산업이 발달하여 소·면양·돼지·닭 등의 가축 사육이 왕성하며,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는 ‘명천소’라고 하는 북선소의 대표적 우량종으로 그 이름이 높다. 또 면양 사육이 활발하며 가내 공업으로 순양모를 원료로 하는 방사와 홈스펀 직조를 하기도 한다.

특용작물인 삼의 재배로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삼베는 올이 가는 세포로서 ‘명포’라 하여 유명하다. 광공업으로는 이면·서면·아간면 등 인접 3개 면에 걸쳐 막대한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명천탄전이 개발되고 있으며 용전동의 소화탄광에서는 대량의 갈탄을 채굴하고 있다.

함경선 철도가 면을 관통하며 또 서면 용동·명천·상우북면 용반동을 잇는 지방도로가 함경선 철도와 연계를 맺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가 2개교가 있으며, 명천(明川)·하평(下坪)·용전(龍田)·함진(咸鎭)·하월(下月)·상월(上月)·노(蘆)·석우(石隅)·근(芹)·명간(明澗) 등 10개 동이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하고면·하가면 전체와 상고면의 1개 이, 상가면의 10개 이를 분리시켜 화대군(花臺郡)을 신설하는 한편, 동면의 일부 지역을 화성군(化城郡)으로 이관하고, 아간면·상고면 일부, 서면의 일부로 군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54년에는 보촌리 일부와 화성군의 양화리 일부를 통합하여 황진리를 신설하였으며, 1961년에는 개심리를 보촌리로 병합시켰다.

군의 북쪽은 화성군, 서쪽은 길주군, 남쪽은 화대군과 접하여 있고, 동쪽은 동해에 면하여 있다. 동경 129°13′∼129°45′, 북위 40°46′∼40°59′에 위치하며, 면적은 520㎢, 인구는 7만 3400여 명이다(1996년 현재).

행정구역은 명천읍과 용암(龍岩)노동자구, 고참(古站)·만호(萬戶)·황곡(黃谷)·사(沙)·독포(讀浦)·양정(楊亭)·다호(茶湖)·허의(許儀)·연덕(淵德)·낙동(洛東)·포중(浦中)·포하(浦下)·보촌(寶村)·황진(黃津) 등 14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명천읍이다.

이 군은 대부분의 지역이 칠보산지에 속하는 저산성 산지로 되어 있다. 군의 동부에 있는 칠보산지에는 하매봉(1,047m)·상매봉(1,103m)·칠보산(659m)·재덕산(829m) 등이 솟아 있으며, 재덕·다호평·덕대지 등이 있어 기복이 복잡한 산지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칠보산은 제3기 말∼제4기 초의 유분암·집피암·사암·응회암 등이 단층작용에 의하여 생긴 지루산 줄기들로 되어 있으며, 풍화작용을 받아 ‘함북금강’을 이루고 있다. 군의 서부는 혈암·사암·역암 등으로 되어 있는 길주명천지구대 지역으로 낮고 평탄한 언덕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나 칠보산지가 해안까지 근접하여 암석해안을 이루었다. 하천은 서부 지역에 화대천이 남부 경계쪽으로 흐르면서 유역에 충적벌을 이루었으며, 판령저수지가 있다.

동부 지역에는 보촌천·포화천·우동천·황진천 등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나, 길이가 짧고 유속이 빠르다. 토양은 갈색산림토가 대부분이고, 화대천 지역에는 충적토가 분포되어 있다.

기온은 연평균 7∼8℃, 1월 평균 -7.6℃, 8월 평균 21.5℃이며, 첫서리는 10월 3일, 마감서리는 5월 9일 경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바닷가에서 800∼900㎜, 내륙에서 690㎜이다.

이 군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으로 소나무·참나무·이깔나무 등이 많으며, 서부 일대의 제3기 층 고참분통에는 유연탄이 풍부하게 묻혀 있다.

함경북도 남부탄전의 중심지로 고참탄광·명천탄광·응회암광산 등에 의하여 고품질의 유연탄이 채굴되고 있으며, 동해안의 화학공장을 비롯한 각종 공장·기업소들과 양강도 일대의 석탄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명천·황곡·용암 일대에는 식료품·생활필수품·종이·가죽 가공·의류·가구·화학 제품 공장 등 지방 산업 공장이 있다.

서부 내륙 지대에서는 농산과 축산, 동부 해안 일대에서는 농산과 수산업이 발전되었다. 경지면적은 군 넓이의 11%로서, 옥수수·콩·쌀 등이 생산된다.

특히, 콩은 예로부터 ‘길주명천콩’이라 하여 이름나 있고, 담배와 양파도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배·사과·회령백살구·포도 등의 과일이 생산되며, 소·양·돼지 등이 사육되고 있다. 한편, 동해안 연안에서는 명태·다시마·문어·낙지 등 각종 수산물이 어획 또는 채취되고 있다.

교통망은 평라선(평양∼나진)이 서부 내륙 지역을 지나가고 있으며, 고참역에서 명천으로 가는 철도가 갈라진다. 평라선을 따라 간선도로가 있으며, 화대·보촌 방면으로 도로가 통하고 있다.

칠보산은 함경북도 금강산이라고 하여 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내칠보·외칠보·해칠보로 구분되어 1976년에 칠보산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었다. 칠보산에는 개심사가 있으며, 경내에 있는 대웅전·웅현각은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해칠보무지개바위·해칠보솔섬·금강봉과 금강굴·노적봉 등이 있으며, 황진리에 황진온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명천고등중학교·명천황진고등중학교·명천양정고등중학교 등이 있다. →화대군, 화성군

참고문헌

『명천군읍지』(규장각장서, 1886)
『함북대관』(김성덕 편, 1967)
『함경북도지』(함경북도지편찬위원회, 1970)
『명천군지』(명천군지편찬위원회, 1981)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북한교육기관 및 문화재현황』(국토통일원, 1983)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재관리국, 1985)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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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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