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니 (Mauritanie)

모리타니의 국기
모리타니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Mauritanie
정의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개관

정식 명칭은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Mauritanie)으로, 대서양 연안 해안선 길이가 754㎞이다. 면적은 103만 700㎢, 인구는 359만 6702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누악쇼트(Nouakchott)이다. 민족 구성은 아랍족의 일파인 흑인계 무어족(Moor)이 40%, 백인계 무어족이 30%, 아프리카 흑인이 30%를 차지하고 있다. 아랍어가 국어이나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통용되고, 흑인 원주민 사이에는 고유한 부족어가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로 신봉되고, 일부 흑인 원주민은 토속신앙을 믿고 있다.

기후는 고온건조한 사하라사막성 기후로, 인구의 80%가 목축업에 종사하며 한발 등으로 인한 농경지의 사막화 및 작황부진으로 극심한 식량부족 상태에 있다.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철광석과 구리를 수출하며, 이들이 수출의 80%를 차지한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9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347달러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이슬람 공화제로서,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56석)과 하원(95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주의민주공화당(PRDS), 통일민주연합당(PRUD), 민주세력연합(RFD), 민주통일연맹(RDU) 등이 있다.

약사

신석기시대에 흑인 원주민인 바후르족(Bafours)이 농경사회를 세웠고, 3세기부터 서부 사하라지역으로 남진한 베르베르족(Berber)이 11세기경에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18세기 이후 프랑스 등 유럽열강의 침략을 받아 1814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가, 1960년 11월 28일 독립하여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1976년 2월 스페인령 사하라를 모로코와 분할하여 이양받았다. 같은 해 3월부터 원주민독립단체인 폴리사리오전선과 내전을 치르다 1979년 8월 모리타니와 폴리사리오는 휴전에 합의하고 서부사하라의 영유권을 포기하였다. 1978년 7월 군참모총장 무스타파 살네크의 무혈쿠데타로 1960년 이후 줄곧 집권해 온 목타르 다다 정권이 전복되었다.

1980년 1월 다시 무혈쿠데타가 발생하여 하이달라(Haidalla) 수상이 전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신헌법초안을 발표하는 등 국내개혁과 함께 강력한 경제재건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정국수습을 기하였다.

그러나 1984년 12월 전 수상 타야(Taya, M.O.S.A.) 대령이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구국군사위원회가 전권을 장악하면서, 의회는 1978년 7월 쿠데타 이래 해산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1991년 7월 신헌법이 제정되고, 1992년 독립 후 최초의 복수정당제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타야가 재당선되었고, 새로운 내각이 발족되었다. 이후 2008년 8월 아지즈(Mohamad Ould Abdel Aziz) 임시군정수반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대외정책은 좌경중립의 비동맹중립외교를 펴고 있으며, 1961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여 인근의 중동·아프리카 국가와 선린평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때 폴리사리오를 지원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단절하였으나 다시 수교하였다. 중국의 막대한 무상원조 제공으로 중국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권과도 원만한 관계에 있었다. 또한 경제난해소를 위하여 미국·프랑스 등 서방제국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3년 7월 30일 모리타니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1964년 12월 10일 모리타니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데 대한 항의로 국교를 단절하였다가 1978년 12월 19일 외교관계를 재개하였다. 2007년 현재 주 모로코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모리타니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우리나라를 인정하고 한반도문제에 대하여 불간섭 및 중립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제31차∼제39차 유엔총회의 대표기조연설 및 비동맹정상회의에서도 한반도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중립정책을 지속해왔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모리타니 수출액은 700만 달러로 섬유·고무·화학연료 등이 주종목이고, 수입액은 3900만 달러로 수산물이 주종목이다.

우리나라는 1979년 이래 트럭·의약품 등의 경제원조를 제공하여 모리타니 경제발전에 기여해 왔다. 1980년부터는 매년 모리타니 어업연수생을 1명 이상 초청하여 훈련시킴으로써 모리타니의 수산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1989년에는 무역 협정을, 2004년 12월에는 투자보장 협정을 체결하였다. 양국간의 협력은 수산업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데, 1977년 3월한국·모리타니 수산합작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84년 1월 어업 협정의 체결로 우리나라 선원이 모리타니에서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대한종합개발회사가 진출해 있고, 40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모리타니는 북한과 1964년 11월 12일 수교한 후 1967년 12월에는 무역 협정을, 1969년 10월에는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1971년 4월에는 경제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977년 6월 7일 자국과 교전중인 폴리사리오게릴라가 수립한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북한이 공인한 데 대한 항의로 국교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모리타니가 폴리사리오게릴라와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1980년 3월 19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재개하여 2006년 현재 주 리비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제3세계론』(신정현, 일신사, 1986)
『아프리카 아프리카』(최평규 편, 국풍, 1983)
『아프리카정치론』(하경근, 일조각, 1974)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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