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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우(朴一禹)

    근대사인물

     해방 이후 전선사령부 부사령관, 정치보위상, 체신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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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전선사령부 부사령관, 정치보위상, 체신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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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회령 출생. 간도에서 국민학교 교사를 지내고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1942년 조선독립동맹의 창립에 가담하였다.
    연안군정대학(延安軍政大學) 교관을 역임하고, 같은 해 7월에는 조선의용군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5년 11월 입북한 뒤 북한정부의 수립을 도왔다.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내무국장, 1948년 3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대의원, 9월부터 1953년 3월까지 내무상,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50년 6월 군사위원회위원, 11월 전선사령부 부사령관, 1951년 7월 정치보위상, 1953년 3월부터 1955년 11월까지 체신상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처럼 박일우는 초기 북한에서 대표적 지성파 인물로 주목되는 존재로서 국내파 영수 오기섭(吳琪燮)을 자아비판에 회부하였을 때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 엄정히 처리하자는 신중론을 내세워 김일성(金日成)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으나, 워낙 직업혁명가로서 논리정연하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좀처럼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러나 6·25에 대한 책임전가문제를 가지고 김일성이 무정(武亭)·방호산(方虎山) 등 연안파(延安派)의 최고 군사지도자들을 음해, 숙청하는 것을 박일우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불충고발(不忠告發)에 의하여 박헌영(朴憲永)의 남로당(南勞黨)에 가담하였다는 반당종파혐의로 1955년 숙청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7년)
    김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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