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6년(고종 33)
사망 연도
1980년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정의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 독립운동가.
개설

평안남도 평양 출신. 아버지는 박정규(朴貞圭), 어머니는 최광명(崔光明)이며, 남편은 독립운동가 김성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3년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를 졸업한 뒤 전주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5년 항일비밀결사인 송죽결사대를 조직,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신병으로 출옥하자 다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의 결성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으나, 이듬해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2년6월이 언도되었다. 1922년 가출옥하였다. 1927년 협동전선의 하나로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자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여자국민당 총무부장을, 1952년에는 무임소장관과 MRA대회 한국대표를 맡았다. 1953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숭의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여성운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1953년 자유당 소속 민의원, 1963년 공화당 전국구의원이 되었다.

그 뒤에도 공화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3·1여성동지회 회장, 전국여성단체 최고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역대국회의원총람』(황석준 편, 을지사, 1982)
『한국여성독립운동사』(3·1여성동지회, 1980)
『독립운동사』 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한국독립운동사』 3(국사편찬위원회, 1967)
집필자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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