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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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조석주가 조정이나 민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야담집. 일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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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조석주가 조정이나 민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야담집. 일화집.
내용

1권. 필사본. 매 면 10행씩인데, 매 단락 첫 행은 계속되는 행들보다 한 자를 내어 써 20자로 되어 있다. 책 이름은 저자 조석주(趙錫周, 1641~1716)의 호인 백야(白野)에서 취한 것으로 야사총서인 『패림(稗林)』 제8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16, 17세기 무렵의 이름난 선비나 유학자들의 언행이 주를 이루고, 그중에는 저자 자신의 스승과 벗들의 일화나 세태 비평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의 스승은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기호학파(畿湖學派)로서 예론(禮論)에 밝은 것으로 이름났던 권시(權諰)인데,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일화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농담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그가 말하기를 “지금의 은사(隱士)는 모두 ‘뻐꾹 은사(法局隱士)’다.”라고 하여,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대답하였다. “내 일찍이 어린아이들이 숨바꼭질하는 것을 보니, 술래가 된 아이가 오래도록 숨은 아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숨었던 아이가 스스로 ‘뻐꾹 뻐꾹’ 하고 외쳐 술래로 하여금 속히 달려오게 한다.

지금의 은사는 겨우 은일(隱逸)의 미명을 얻은 뒤, 세상이 저를 알아주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 스스로 알려지는 방도를 찾으니, 이는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 ‘뻐꾹’ 하고 외쳐 대는 자와 같은 것이다.”

『백야기문』에는 이러한 단편들이 총 70개가 모아져 있는데, 이들은 인물 연구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사상 등을 살피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원래 『광사(廣史)』 제6집에도 들어 있었으나, 불행히도 이 본은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타 버렸다.

거기에 김려(金鑢)가 정사(淨寫)한 발문(跋文)이 있는데 거기에, “그 전편의 주된 뜻이 다만 당론무군자(黨論無君子 : 당론에는 군자도 없다는 뜻. 『백야기문』 일곱 번째 자료에 나오는 말)라는 다섯 글자가 있어 전체 의미를 잘 읽어 보니, 중봉(重峯)을 배척하였고, 우계(牛溪)와 율곡(栗谷)을 능멸하였으며, 우옹(尤翁)을 비방하였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패림(稗林)』
『古鮮冊譜』(前間恭作, 東洋文庫, 1944∼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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