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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婦道)

교육개념용어

 여성이 익히고 따라야 할 도리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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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훈 / 부도
분야
교육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여성이 익히고 따라야 할 도리나 덕목.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전통사회에서는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주로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비형식적인 교육에 의존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지식교육은 제외되고 가사기술과 유교정신에 기초한 덕육이 강조되었다.
“아들은 가르치되, 딸은 가르치지 않는다(但男而不敎女).”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조선시대까지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인식에 따라 18세기의 실학파 학자인 이익(李瀷)도 “독서와 강의는 남자의 일이니, 여자는 이를 힘쓰면 폐해가 많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학문보다는 집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식을 돌보고 가사에 힘쓰는 것이 여성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한글이 반포되고 글을 해득하는 여성이 늘어가자, 이러한 덕목과 규범을 널리 익히도록 하기 위하여 왕조에서도 중국의 『여계 女誡』·『여논어 女論語』·『내훈 內訓』 등을 우리말로 옮기거나 간추려서 발간, 보급하게 되었다.
소혜왕후(昭惠王后)가 간행한 『내훈』의 서문에는 “대체로 사람은 나면서부터 천지의 영기(靈氣)를 받고 다섯 가지 덕(五常之德)을 품고 있으며, 몸을 닦고 닦지 아니하는 곳에 난초와 쑥[艾]의 구별이 있다. ……치란흥망(治亂興亡)은 그 지아비들의 밝고 어둠에만 매인 것이 아니라, 부인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인(聖人)에게 기약하여 밝은 거울이 되도록 조심하라.”고 다짐하고, 그 내용으로 언행(言行)·효친(孝親)·혼례(婚禮)·부부(夫婦)·모의(母儀)·돈목(敦睦)·염검(廉儉)의 일곱가지 도리를 무려 40여 종의 경전류에서 인용, 여성으로서의 생활규범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여성 교훈서에서는 여성교육의 목표를 현처양모에 두고 여유사행(女有四行), 즉 여자가 지녀야 될 네 가지 행실에 어김이 없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소혜왕후의 『내훈』은 이러한 여유사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덕(婦德)’이란 “재질이나 총명보다 맑고 조용하며 절개를 지키고, 행동을 바르게 처신하며 부끄러움을 알아 움직임과 멈춤에 법도가 있는 것(不必才明絶異也 淸閑貞節 守節整齊 行己有恥 動靜有法 是謂婦德)”이며, ‘부언(婦言)’은 “구변이 좋아서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말과 남이 싫어하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不必辨口利辭也 擇辭而說 不道惡語 時然後言 不厭於人 是謂婦言)”이라 하였다.
‘부용(婦容)’은 “얼굴 꾸밈보다 먼지와 때를 씻고 의복이나 치장을 청결히 하며 수시로 목욕을 하여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不必顔色美麗也 盥浣塵穢 服飾鮮潔 沐浴以時 身下垢辱 是謂婦容)”이며, ‘부공(婦功)’은 “재주보다 길쌈에 전념하며 쓸데없는 놀이를 즐기지 말고 주식(酒食)을 깨끗하게 만들어 손님 받듦을 잘하는 데 있다(不必工巧過人也 專心紡績 不好戱笑 潔齊酒食 以奉賓客 是謂婦功).”라고 하였다.
유교적인 도덕정신에서 출발한 소망스러운 여성상은 이러한 유교적 부덕의 고취에 있었다. 이에 송시열(宋時烈)의 『우암선생계녀서 尤庵先生戒女書』, 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 士小節』, 안동 김씨의 『ᄂᆡ훈계녀서』 등을 통하여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교육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에게 정숙할 것과 정조를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정렬(貞烈)을 기대하였다. 심지어 이러한 정숙과 정렬을 국가의 원기(元氣)라고까지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조와 수절을 더욱 중히 여겼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효자·충신·열녀의 포상에 있어서 효자 67명, 충신 11명, 열녀 356명이 집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의 정조관을 얼마나 중요시했던가를 알 수 있다.
둘째, 며느리로서 효친하고, 아내로서 경순(敬順)하며, 시가 친척과 화목할 것을 들었다. 여성의 미덕으로 순종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사회는 풍속과 교화의 근본을 여성의 유순함에 두고 이를 실행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각종 법제적 규정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이라면 당연히 출가 이전부터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형제와 우애하며, 출가하여서도 부모를 모시던 대로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울러 남편에게 예와 경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셋째, 조상의 제사를 존중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모셔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가계 영속(永續)의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하나의 신앙적 과정으로서, 최대의 성의와 외경(畏敬)으로 임해야 함을 여성의 임무로 보았다.
넷째, 길쌈·바느질·누에치기 등의 가사기술은 여성이면 누구든지 익히고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이러한 기능을 어머니나 친척으로부터 배웠으며, 또한 여자가 가정의 경제를 관리하였기 때문에 근검절약의 생활태도는 여성에게 필수적인 구비조건이었다.
다섯째, 태교와 육아를 들 수 있다. 한 가문의 후계자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가장 막중한 책임에 대하여 여성 교훈서에는 고사를 들어 태중양육(胎中養育)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태아와 유아에 대한 모친의 보육이 인간형성을 크게 좌우함을 일깨웠다.
여섯째, 자라는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느냐 못 하느냐에 가문의 흥망이 달려 있다고 보아, 여성은 곧 현모로서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하여 자녀교육에 헌신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전통적인 여성에 기대되었던 부도는 사회적 가치기준이 아무리 변하였다 하여도 오늘날까지 그 기본적인 개념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게는 모두 부도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사회적 인식과 자아개발이 이루어진 현대에 와서도, 한 가정의 주부로서 의식주생활을 운영할 수 있는 여성의 슬기는 여전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가정관리뿐 아니라 사회참여에서 여성이 지닌 아름다운 개성과 특성을 살려 나가야 할 것도 아울러 기대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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