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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관(府民館)

연극단체

 1935년 경성부가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에 세웠던 부립극장(府立劇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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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35년 경성부가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에 세웠던 부립극장(府立劇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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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부민관(府民館)은 경성부(京城府)가 경성에서 강연회라든가 연극·영화·음악·무용 등을 공연할 만한 공연장의 필요성에 따라 경성전기주식회사의 기부금으로 태평로 1가에 세운 극장이다. 당시 기부금 100만원 중 50만원은 빈민들을 위한 경성부립 부민병원을 건립하는데에 사용하였고, 나머지를 보태어 62만원으로 부민관 부지 1,780평을 마련하고 1934년 7월 30일에 기공, 1935년 12월 10일에 준공되었다.
건물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건평은 1,717평, 대강당 1,800석, 중강당 400석, 소강당 160석 규모였다. 이외에도 담화실·집회실·부속실·누간(壘間)·특별실·식당·이발실까지 갖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 당시에는 드물게 냉·난방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이 임시로 사용하다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되었고,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립극단이 피난지 대구로 이전하자 서울 수복 뒤 1954년 6월, 제 3대 국회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1970년대 중반에 국회가 여의도의 새 의사당으로 이사감으로써, 부민관은 시민회관으로 사용되었고 1976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면서 그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199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경성부는 부립극장이 준공되자 성대한 개관식을 갖고, 경성관광협회의 주최로 5대 권번 기생들을 총출연시켜 기념공연 행사를 열었다. 대부분의 극장이 일본인 소유였던 당시에 부립극장의 건립은 각 사회·문화단체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시설도 좋아서 극단들이 끊임없이 대관하여 공연을 가졌다. 이곳에서 극단 화랑원(花郎苑)·현대극장(現代劇場) 등이 창단공연을 가졌고, 극예술연구회 등 유수한 연극단체도 이 극장을 본거지로 활동하였다. 이 밖에도 신파극단과 악극단들도 많이 이용하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극단들이 부민관 무대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으며, 공연장의 부족으로 감히 엄두내지 못하던 연극인들이 뜻을 모아 중앙무대(中央舞臺)·인생극장(人生劇場) 등 새로운 극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한편 중요 강연회가 여기에서 많이 열렸고, 각종 연희·오락 등도 공연되었다.
한편, 이곳은 ‘부민관폭파 의거’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1945년 7월 24일 대한애국청년단원 강윤국(康潤國)·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 등이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동남아, 일본 괴뢰정부의 대표가 참석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곳을 폭파한 사건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부민관은 대관중심 극장으로 우리 연극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관립극장(官立劇場)이라는 한계로 인해 친일어용극이나 관제행사에 주로 사용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집문당,2009)

  •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  (유민영, 태학사, 1998)

  • 한국극장사  (유민영, 한길사, 1982)

  • 경성회보  (1936.1.)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유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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