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정읍시, 남쪽은 곰소만을 경계로 고창군, 북쪽은 동진강 하구를 경계로 김제시와 인접하며, 서쪽은 황해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05′∼126°39′, 북위 35°33′∼35°47′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493.10㎢이고, 인구는 5만 684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510개 행정리(9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다.
북동부는 평야지대이고 남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서부의 서해에 돌출한 변산반도는 군면적의 2/3를 차지하며, 대부분이 산지로 서해바다의 인접지역을 포함하여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이룬다.
변산반도는 내륙의 산악지대인 내변산과 서해 쪽의 해군의 동부 평야지역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서부에는 중생대 백악기 상부의 신라군층에 속하는 퇴적암류가 있으나 대부분 백악기 말 신기화산분출암을 기반암으로 한다. 안지대인 외변산으로 구별된다.
내변산에는 의상봉(椅上峰, 509m) · 낙조대(落照臺, 492m) · 옥녀봉(玉女峰, 433m) · 갑남산(甲南山, 409m) · 쌍선봉(雙仙峰, 459m) 등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들이 솟아 있고 수목도 울창하여 우리나라 팔승지의 하나로 꼽혀 왔다. 낮은 산으로는 계화산 · 시루봉 · 백산(白山, 47m) · 상소산(上蘇山, 115m)이 있다.
내변산을 북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백천내의 하류부인 변산면 대항리에는 1996년에 부안댐이 건설되어 부안읍의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고부천이 동진강으로, 해창천이 서해로 흘러든다. 변산반도의 산지 주위에 약간의 구릉지가 발달해 있으며, 그 밖에 나머지는 평야지대이다.
충적평야는 주로 동진강 하류와 고부천 연변에 넓게 발달했고, 해안에서는 간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계화간척지의 관개를 위해 섬진강댐을 축조하고 유역 변경을 통한 관개수리시설을 건설하였다.
서해안에는 위도(蝟島) · 하섬[蝦島] 등 7개의 유인도와 28개의 무인도 등 35개의 도서가 있다.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하며, 연평균기온 12℃ 내외, 1월 평균기온 -1.5℃ 내외, 8월 평균기온 25℃ 내외이고, 연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군의 동진강 하구 해안단구 취락지에서 민무늬토기의 파편과 함께 깬돌칼 · 돌도끼 ·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서 초기 농경문화의 형성을 입증해 준다.
고인돌이 부안을 비롯해 고창지방에 밀집되어 있고 동진강 · 만경강을 거쳐 내륙지방에 산재해 있어 청동기문화가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전파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54소국 중 지반국(支半國)이 부안지역에 있었다.
백제시대에는 개화현(皆火縣)이라 칭했으며,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한 뒤 신라 땅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부령현(扶寧縣) 혹은 계발(戒發)이라 하여 고부군(古阜郡)에 예속시켰다.
고려 초에 감무를 두었는데 보안현(保安縣)이 이에 예속되었다. 보안현은 본래 백제의 흔량매현(欣良買縣)이었는데, 신라 때 희안(喜安)으로 개칭되어 고부군에 이속되었다. 고려 때 보안으로 고쳐졌으며 한때 낭주(浪州)라 불리다가 보안감무가 겸임하게 되었다.
이 지방은 해안선을 낀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염창산성을 비롯한 13개의 크고 작은 성과 계화도봉수대 · 격포리봉수대, 그리고 진(鎭)과 포(浦)가 많이 산재해 있다. 또, 제안포(濟安浦, 옛이름 撫浦)에는 고려시대의 12조창 중 하나인 안흥창(安興倉)이 있어 임피현의 진성창과 함께 전라도 지방의 세미를 경창까지 운송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보안면 유천리 도요지는 고려청자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고려 말 우왕대에 이르러서는 보안과 부령현에 각각 감무가 설치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자주 출몰하여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가 1355년(공민왕 4) 7월에 검모포(黔毛浦)에 침입하여 조운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명나라 사람 장인보(張仁甫) 등 6명을 도강(都綱)으로 삼아 각각 당선(唐船) 1척과 전졸 150명을 주어 전라도 조세를 운반하게 했으나, 왜구와 싸우다 크게 패하여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1376년(우왕 2) 왜선 50여 척이 웅연(熊淵)에 내박하여 적현을 넘어 침입, 동진교를 부수어 조운이 중단되었으나 상원수 나세(羅世)와 변안열(邊安烈)이 적병 1천여 명을 행안산(幸安山)에서 격파하였다.
1414년(태종 14) 보안현을 부령현에 병합했다가 1415·1416년에 통합, 분리되어 두 현의 이름을 따서 부안현이라 개칭하였다. 1417년 흥덕진(興德鎭)을 폐하고 부안에 이속시켜 부안진이라고 개칭했으며, 병마사를 두어 판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1423년(세종 5) 첨절제사로 바꾸었다가 곧 다시 현감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부안현의 호수는 323호, 인구는 1,662명이었다. 정유재란 때는 의병장 채홍국(蔡弘國) 등이 동지를 규합, 정유이창동맹(丁酉吏倡同盟)을 맺고 호벌치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유(李瑜)의 부인 김씨도 남편의 전사를 보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싸우다가 순절했고, 이 밖에 많은 의병이 활약하였다. 1608년(선조 41)에 정유재란 당시 불타 버린 부안향교를 지금의 서외리에 재건하였다.
이 고장은 실학의 대가인 유형원(柳馨遠)이 태어난 곳으로 보안면 우동리에 유적지가 있다. 1862년(철종 13)에 전라도 각지의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호남선무사(湖南宣撫使) 조구하(趙龜夏)의 행렬을 부안농민들이 가로막고 관리를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이 지방의 농민들은 백산(白山)에서 봉기하여 관군에 대항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때 지방관제 개편으로 군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부군에 속했던 백산 · 거마 · 덕림 등이 부안으로 이속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서는 3월 30일 부안읍 장날을 이용해 은희송(殷熙松) 등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4월 18일에는 줄포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있었다. 1943년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1읍 10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근대 인물로는 1905년 을사오적을 처단해야 한다고 상소하고 계화도에 은거하여 후진 양성에 힘쓴 전우(田愚)와 전생애를 항일투쟁과 육영사업에 바친 이영일(李永日), 한국의 대표적인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한 고제신(高濟臣)과 김환(金桓) 등이 있다.
1963년부터 시작된 계화도 간척지공사가 마무리되어 1978년부터 계화도에서 쌀 추수가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는 간척공사로 수몰된 임실군 주민이 집단이주하였다. 1983년 2월 15일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진서출장소가 진서면으로 각각 승격했으며, 1987년 1월 1일 산내면이 변산면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1994년 12월 1일에 동진면 당산리 일부를 계화면 북창리로 이관하는 면간 경계를 조정하였다. 또한 1997년 8월 1일에는 정읍시와, 1998년 8월 1일에는 김제시 및 정읍시와의 시군간 경계조정이 있었다.
선사시대유적으로는 변산면의 대항리패총(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81년 지정)과 하서면 석상리의 부안구암리지석묘군(사적, 1963년 지정)을 비롯해 보안면 영전리, 상서면 감교리, 하서면 백련리 등지에 고인돌군이 있으며, 보안면 상입석리에는 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보안입석이 있다.
성곽으로는 조선 태종 때 축성된 부안진성(扶安鎭城)과 상서면 감교리의 우금산성(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4년 지정) 등이 남아 있다. 성지로는 백산면 용계리의 백산성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주산면의 사산리토성지 · 소산리산성, 고려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계화면 창북리의 염창산성(廉倉山城) · 수문산성, 동진면 당상리의 구지산토성지, 행안면의 역리산성 등 13개의 산성이 있다.
이 군은 예부터 해안선을 낀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제안포 · 검모포진(黔毛浦鎭) · 격포진(格浦鎭) · 여섭포(勵涉浦) · 위도진(蝟島鎭) 등 진과 포가 많다. 또, 북쪽의 만경지역과 남쪽의 점방산(占方山)을 연결하는 계화도봉수대 · 월고리봉수대 · 점방산봉수대 등도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진서면 석포리에 내소사(來蘇寺, 옛이름 蘇來寺)를 비롯해 692년(신라 신문왕 12) 부설선사(浮雪禪師)가 창건한 월명암(月明庵), 상서면 감교리에 개암사(開巖寺) · 개암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등이 현존한다. 절터로는 변산면 중계리의 부안실상사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86년 지정)와 등운사지(登雲寺址) · 영은사지(靈隱寺址) · 백운사지(白雲寺址) 등이 있다.
특히, 내소사일원(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86년 지정)은 경관이 빼어나며, 경내에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동종인 내소사고려동종(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상서면에 있는 청림리석불좌상과 내소사 삼층석탑, 내소사설선당과 요사,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개암사동종 등이 유명하다. 청림리 석불좌상, 내소사 삼층석탑, 내소사설선당과 요사, 개암사동종은 198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부안읍 서외리에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부안향교대성전, 서원으로는 부안읍 연곡리의 도동서원(道東書院)과 옹중리의 옹정서원(甕井書院), 상서면 가오리의 동림서원(東林書院)과 감교리의 청계서원(淸溪書院), 보안면 영전리의 유천서원(柳川書院)이 있고, 사우로는 부안읍의 노휴재(老休齋), 계화면의 계화재(繼華齋), 하서면의 효충사(效忠祠)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위도면 진리에는 위도관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있다.
도요지로는 고려백자의 요지로 알려진 보안면의 부안유천리도요지(사적, 1963년 지정)와 주산면의 사산리와요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9년 지정), 소산면의 백자요지, 진서면의 부안진서리도요지(사적, 1963년 지정), 보안면의 우동리분청사기도요지, 상서면의 감교리분청사기도요지 등이 있다.
고가옥으로는 1984년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줄포면 줄포리에 부안 김상만 고택이 있다.
하서면 청호리에 고희 초상 및 문중유물(보물, 1982년 지정), 보안면 우동리에 부안김씨종중고문서(보물, 1986년 지정)가 보관되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된 위도면 대리의 풍어제 위도띠뱃놀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도청리호랑가시나무군락(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격포리후박나무군락(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중계리꽝꽝나무군락(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부안 미선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992년 지정)이 변산면에 집중되어 있고, 이 군에서만 볼 수 있는 변란(邊蘭) 등이 자생하고 있다. 또한 변산면 격포리의 채석강(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 · 적벽강(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 등지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부안읍 서외리의 부안서문안당산(중요민속자료, 1970년 지정), 동중리의 부안동문안당산(중요민속자료, 1970년 지정) · 남문안당산(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85년 지정), 내요리의 돌모산당산(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85년 지정), 계화면 궁안리의 쌍조석간(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83년 지정), 백산면의 죽림리석장승(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85년 지정), 변산면 격포리에 수성당(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 민간신앙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있다.
이 외에도 보안면 남포리에는 채홍국 등이 중심이 되어 정유이창동맹을 맺고 왜병을 맞아 싸운 사실을 기리는 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가 있다. 그리고 하서면 백련리에 왜몰치(倭歿峙), 보안면 우동리에 반계선생유적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4년 지정), 계화면 계화리에 간재선생유적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4년 지정), 하서면 청호리에 고홍건신도비(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부안읍 봉덕리에 이매창묘(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83년 지정) 등의 유적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414년에 창건되었다가 1608년(선조 41)에 지금의 부안읍 서외리로 이건된 부안향교가 문헌상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1534년(중종 29)에 김구(金坵)가 세운 도동서원과 1694년(숙종 20)에 설립된 옹정서원 · 동림서원, 그리고 1708년(숙종 34)에 설립된 청계서원과 1711년(숙종 37)에 설립된 유천서원 등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될 때까지 많은 유생을 교육시켰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김기중(金祺中)이 1909년 사립 영신학교(私立永信學校)를 최초로 설립했으며, 이는 뒤에 줄포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10년 사립 영명학원(私立寧明學園)으로 개교한 부안국민학교는 1912년 부안공립보통학교로 되었다가 뒤에 부안남초등학교와 부안동초등학교로 분리되었다. 중등교육기관은 1946년 부안공립초급중학교, 1949년 부안농업중학교(지금의 부안중학교), 1951년에는 부안농림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7개교가 있다.
사회 · 문화 기관으로는 부안군립도서관과 부안군공공도서관이 군민의 교육 ·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부안문화원은 각종 지방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농악놀이가 있다. 음력 정월보름날 당산제의 전희(前戱)로 행해지는 줄다리기는 당산을 감을 동아줄로 남녀가 편을 갈라 행한다. 여자편이 이기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 하여 경기중에 노인들이 회초리로 남자들의 종아리를 때려 힘을 못 쓰게 하기도 한다.
보안면 우동리의 줄다리기는 암줄과 수줄을 마련하여 고를 만들고 비녀목을 꽂아 연결하며 경기 전에 신랑 · 신부 한 쌍이 암수줄 위에 올라서서 혼례식을 올리는 의식을 한다. 그런 다음 마을의 남녀가 모두 참여하여 줄다리기를 한다.
정초에 이루어지는 걸궁굿은 곤장 · 영기(令旗) · 나팔 · 새납 · 꽃나부[舞童] · 대포수 · 꽹과리 · 징 · 장구 · 소고로 농악대를 조직하며 당산굿 · 우물굿 · 길굿 · 마당굿 · 성주굿 · 조앙굿 · 도둑잽이 · 구정놀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걸궁굿은 마을의 안태와 풍농을 기원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집단놀이로 3∼5일간씩 계속된다.
이 고장의 당산제 중 규모가 큰 것은 위도 대리의 띠뱃놀이이다. 정월 초사흗날 산신제를 시작해 보름날 마을 뒷산 절벽 위에 있는 당집에서 원당제를 지내고 마을로 내려와 줄다리기와 주산돌기,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제, 마을의 모든 재액(災厄)을 띠배에 실어 멀리 보내는 액띄워보내기의 순서로 진행되며, 마을의 태평과 풍어를 빈다. 섣달부터 제관과 화주를 정하고 부정맥이의 모든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킨다.
부안 읍내의 당산제는 세 곳에서 행해진다. 읍성의 동문 · 서문 · 남문 안에 세워져 있는 석조형신간(石鳥形神竿)의 오리당산과 그 하위신(下位神)인 석장승 한 쌍씩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행한다. 이 석간신체(石竿神體)들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상단에 오리 모양의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서문안 당산제는 정월 초하룻날 밤에 유교식 제의로 제사를 지낸다. 동문안 당산제와 남문안 당산제는 보름날 낮에 지내는데, 농악을 치고 줄다리기를 하여 흥을 돋우며 무당의 고사와 소지(燒紙)로 축원을 한다. 제관을 정하고 금기사항을 지키는 일들은 모두 비슷하다.
이 고장에 전해 오는 설화로는 「팔장사(八壯士)와 왜몰치 전설」 · 「장자터와 선돌 전설」 · 「고홍달에 얽힌 이야기」 · 「수성당할미 이야기」 · 「군도(群盜)와 허생원 이야기」등이 대표적이다.
「팔장사와 왜몰치 전설」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여덟 장사가 왜몰치고개에 미리 나무성을 쌓고 장군봉 위에 큰 바위와 돌을 모아두었다가 왜군이 침입하자 왜몰치로 유인해 화공(火攻)으로 몰살시켰다는 이야기이다. 현재까지도 야방모퉁이 · 장군봉 · 특무재 · 팔장사묘 등의 이름이 전한다.
「장자터와 선돌 전설」은 마음씨 고약한 부자가 자기를 찾아온 도사를 구박하여 집과 재산이 하루 아침에 장사못으로 변하고, 착한 며느리는 도사가 지시한 금기를 지키지 않아 선돌[立石]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현재에도 장자터 방죽 · 웃선돌 · 아랫선돌 등의 지명이 전하고, 며느리의 화석이라 칭하는 선돌이 보안면 상입석리에 남아 있다.
「고홍달에 얽힌 이야기」는 성균관에서 공부를 마친 고홍달이 귀향길에 김제의 홍산역 근처에서 옥황상제의 시녀인 절세미인을 만나 노곡리에 성수정을 짓고 8년간 꿈 같은 세월을 지내는 내용이다. 현재 정자터에 주춧돌과 선녀가 마셨다고 전하는 옥녀샘이 남아 있다.
「수성당할미 이야기」는 서해의 수호신이며 일명 ‘개양할미’라고도 하는 할머니에 얽힌 전설이다. 이 할머니는 키가 어찌나 큰지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거닐면서 수심을 재서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또, 딸 아홉을 낳아 팔도에 나누어주고 막내딸을 데리고 수성당에 들어가 살았다고 하는데, 이는 어로신앙의 대상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변산의 「군도와 허생원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 옛날 변산에 악독한 도둑들이 모여 세력을 키워서 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던 허생원을 새로운 두목으로 모셨다. 허생원은 도둑들을 설득하여 변산을 떠나 남쪽으로 여러 날 항해해서 지금의 대마도까지 가게 하였다. 도둑들은 그 곳에서 땅을 일구며 착하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 무속설화로 「조앙경의 천지창조설화」 · 「칠성님생성설화」가 무가(巫歌)로 불리고 있으며, 많은 민담이 구전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비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민요로는 노동요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김매기노래」 · 「등짐노래」 · 「방아타령」 등은 유장하고 가락의 변화도 다양하다.
“해 떨어지고 달 떨어지고/연잎전잎 시들어지고/큰 붕어 잔 붕어 꼬리를 치고/이쁜 큰애기 내품에 노는구나/(후렴)나이 나이 나이 어허 어허 어허어 어이 누우나/일흔일곱 살 먹은 늙은이가/일흔일곱 잔을 먹고/일흔일곱 뭇을 짊어지고/일흔일곱 잔등을 넘어 가는구나/나이 나이 나이 어허 어허 어허어 어이 누우나.” 이 「등짐노래」의 후렴은 느긋하다가도 빠르고 변화가 많아 흥겹다.
유희요(遊戱謠)로는 「강강수월래」 · 「소리개살이요」 · 「기와밟기요」 · 「청어낚기요」등과 위도의 「띠뱃놀이요」가 전해지고 있다. 「띠뱃놀이요」는 도서지역 당산제의 제의요(祭儀謠)로 「에용소리」 · 「가래질소리」 · 「술배소리」 · 「배치기소리」의 네 가지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당초에 어로노동요(漁撈勞動謠)가 토속 무의(巫儀)에 흡수되어 제의요로 화한 것이다.
“에용 에용 에에용/에용 에용 에에용”, “어낭청 가래질이야/어낭청 가래질이야”, “어와 술배로다/어와 술배로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어야”. 이 네 노래의 후렴들을 보면 힘차고 씩씩하여 의지와 신명의 강화, 힘의 집결을 촉진하는 활달성이 있으나 단조로운 것이 특징이다.
많은 민요가 부녀층에 의해 보존, 전승되고 있어서 부녀요(婦女謠)가 많다. 이는 시집살이요 · 길쌈요 · 연정요 · 유희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강실도령요」 · 「녹사래기요」는 부녀의 행실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내방가사체로 길게 노래한 것으로서 부녀로 태어난 숙명적인 한, 인간적 욕구인 연정 등을 부드럽고 소박하게 읊고 있다.
“댕기 댕기 모본단 댕기/서룬냥의 근원 댕기/열닷냥의 떠온 댕기/울어머니 꺾은 댕기/요내 솜씨 접은 댕기/우리 오빠 호령 댕기/우리 형님 눈치 댕기/우리 동생 새암 댕기/우리 종년 욕심 댕기/줌치 닷되 밖은 댕기/서광 닷되 물린 댕기/삼단 같은 요내 머리/동백기름 살짝 발라/얼기 설시 빗겨내려/머리 끝에 질끈 매고/담장안에 널을 뛰다…….”댕기 하나에 얽힌 가족관계의 감정표현이 섬세하고 진솔하다.
변산반도 지역은 산지가 많지만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지이기 때문에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된다. 2008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1만 9,082㏊로 경지율이 38.7%이며, 그 가운데 논이 1만 5,268㏊로 80%에 달하여 벼농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진다. 가구당 경지면적이 2.73㏊로 영농규모가 상당히 크다.
논은 동진강과 고부천 유역, 계화도간척지 등 북부해안의 간척지에 넓게 분포해 있다. 농업용수는 경지 주변의 하천과 청호저수지 등에서 공급받으며, 간척지에서는 섬진강 상류의 운암저수지에서 도수로를 통해 공급받아 일부 산간지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논이 수리안전답이다.
1968년에 완공된 계화도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은 질이 좋아 계화미로 이름이 나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보리 · 참깨 · 잎담배 재배도 많이 이루어진다. 변산면 · 보안면 · 상서면 등지의 산간지대에서는 양잠과 약초 재배가 행해지고 변산면에서는 유채 재배도 성하다.
긴 해안선을 끼고 있어 수산업을 전업으로 하는 가구가 비교적 많으며, 계화면 · 변산면 · 진서면과 위도를 중심으로 한 위도면에서 특히 활발하다.
주요 어항으로 줄포 · 곰소 · 격포 · 위도 등이 있으나, 곰소만에 위치한 줄포항과 곰소항은 간석지의 성장으로 선박 출입이 어려워 위축되고, 곰소만 바깥의 격포가 1종어항으로 지정되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위도와 줄포는 조선시대부터 어염(漁鹽)의 주요 산지였고, 광복 후까지도 앞바다인 칠산어장에서는 조기잡이를 중심으로 한 어로활동이 활발해 파시가 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근해 어족의 고갈로 어로활동은 침체되고 김 · 바지락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오늘날 위도는 해수욕장과 바다낚시의 명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새우 · 민어 · 갈치 · 꽃게 등이 주요 어획물이다.
군의 북서부인 계화도와 변산반도 사이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김 양식이 집중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계화면에서는 백합 양식이, 곰소만 일대에서는 새우 양식이 활발하다. 곰소와 줄포는 부근의 천일염전에서 나오는 소금을 이용해 젓갈류를 많이 생산한다.
이러한 양식업을 바탕으로 수산물 가공업이 발달하여 김 가공, 수산물 냉동, 어묵 제조 등이 이루어진다. 거의 모든 업체가 김 가공업을 하며, 계화면 · 하서면 · 변산면 · 진서면의 해안에 김가공공장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이 군은 전라남도 강진과 함께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생산지로서 보안면 유천리와 진서면 진서리에서 옛 가마터가 발견되기도 했고, 지금도 작은 도요지들이 많다.
시장 분포 현황을 보면 2개의 상설시장과 2개의 정기시장이 있으며 쇼핑센터도 4개소 있다. 상설시장은 부안읍에 집중되어 있는데, 서이리의 신시장(新市場)은 상설시장인 동시에 4·9일에 정기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주로 의류 · 포목 · 그릇 · 어물 · 농약 · 철물 · 청과물 · 채소 등을 거래하는 이 시장은 김제시 죽산과 부량군 · 고창군의 일부까지도 세력권에 포함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크게 위축되었다.
구시장(舊市場)은 1930년대에 동중리에 형성되었으나 시외버스터미널이 서외리로 이전되면서 쇠퇴하여 현재는 채소류와 청과물을 취급하는 정도이다. 줄포면 줄포리의 줄포장은 1·6일에 열린다. 조선 말기부터 객주의 활동과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던 장으로 곡물 · 어류 · 젓갈류의 거래가 활발하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로 부안과 정읍에 기능을 빼앗겨 현재는 크게 위축되었다.
인근에는 젓갈류를 거래하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주로 전주 등지와 거래하는 도매상들이다. 곰소장도 있었으나 위도사람들이 격포항을 통해 부안읍 신시장을 주로 이용하게 됨에 따라 그 기능을 잃어 폐쇄되었다.
도로는 부안읍을 중심으로 김제 · 부안 · 흥덕 · 고창을 연결하는 국도와 신태인 · 부안 · 변산 · 줄포를 연결하는 국도가 교차하고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특히, 부안 · 변산 · 줄포를 연결하는 국도는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해안일주도로로 변산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관광지가 있다. 위도 등 서해안의 도서에는 격포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하고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내변산의 산악경승지와 외변산의 해안경승지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나라 팔승지로 꼽힐 만큼 절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고적들이 많아서 연중 관광객이 찾는다.
내변산은 해창천을 따라 군막동, 마상치를 넘어 중계와 백천내, 봉래구곡을 거쳐 깊은 계곡, 맑은 물, 우거진 숲길을 지나면 옥녀담과 직소폭포에 이른다. 특히, 관음봉을 넘어 서해바다를 굽어보며 내소사에 이르는 내변산 등산로는 일품이다.
이 산은 산악들이 마치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둘러쳐진 형상을 하고 있어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 국내 10대 피난처로 꼽고 있기도 하다. 월면암 · 개암사 · 내소사 등의 유서 깊은 사찰들도 침엽수림과 우뚝 솟은 암벽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최근에 완성된 부안댐 일원의 경치도 대단히 아름답다.
외변산의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곳곳에 격포 · 변산 · 고사포 · 모항 · 상록 해수욕장들이 연이어 발달해 있고 적벽강 · 채석강 등 퇴적암층이 해안에 돌출하여 해식애와 파식대를 형성, 경승지를 만들고 있다. 변산반도 해안을 감아도는 일주도로를 따라 서해바다와 눈 아래 펼쳐지는 곰소만, 그리고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지대를 바다 건너 고군산군도와 함께 조망하는 경치는 인상적이다.
1988년에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한 변산반도 해안의 변산 · 격포 · 상록 해수욕장 등에는 여관 · 방갈로 · 휴양소 · 야영장 등 편의시설과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변산반도는 변산팔경(邊山八景)으로 유명한데, 웅연조대(熊淵釣臺) · 소사모종(蘇寺暮鍾) · 월명무애(月明霧靄) · 서해낙조(西海落照) · 채석범주(彩石帆舟) · 지포신경(止浦神景) · 개암사와 우금산성 · 개암고적(開巖古跡) 등이 그것이다.
1960년대 이후 계화도와 육지 사이의 간석지를 막아 조성한 계화간척지는 국내 최대의 연륙(連陸) 간척지로 개척탑에서 간척지를 조망할 수 있고, 제1방조제나 제2방조제에서 넓은 간척지를 관광할 수도 있다.
곰소와 줄포 사이의 변산반도 남쪽 기슭에 위치한 유천리 일대는 고려시대 이후 고려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있다. 여기에서 구운 자기들을 해상로를 이용해 개경 쪽으로 수송했다고 전하며, 지금도 가마터에서 자기 파편들을 볼 수 있다. 그 밖에 위도는 바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는 격포에서 위도사이를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또, 부안의 진산인 상소산에는 서림공원과 부안향교가 있다.
군에서는 최근 역사문화, 낚시, 등산, 먹거리, 갯벌체험, 사계절관광 등 다양한 코스별 테마관광을 개발하여 홍보하고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24.78㎢, 인구 2만 169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동중리이다. 본래 동도면(東道面)이라 하여 동중(東中) · 숙후(0xF69E后) · 남상(南上)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동면(河東面) · 서도면(西道面) · 남상면(南上面) · 남하면(南下面)과 고부군의 거마면(巨麻面) 일부를 병합해 부안의 옛 이름인 부령면(扶寧面)이라 했으며, 1943년부안읍으로 개칭, 승격되었다.
변산반도를 서쪽으로 끼고 동진강 하구의 넓은 충적평야지대가 전개되어 벼농사 위주의 농업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군내의 농산물과 수산물의 집산지로서 옛부터 상시와 하시가 열려 상업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주변에 도시가 없기 때문에 인근의 교육 · 행정 · 경제 · 오락 ·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그 비중이 매우 높다.
교통의 중심지로 전주 · 김제 · 부안을 연결하는 국도, 부안 · 흥덕 · 고창 · 영광을 연결하는 국도, 변산반도에 연결되는 지방도, 계화간척지에 연결되는 지방도가 개설되어 교통이 편하고 서울까지 고속버스도 운행되고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서외리에 부안향교, 옹중리에 옹중서원, 봉덕리에 이매창묘, 동중리에 동문안당산 · 남문안당산, 내요리에 돌모산당산 등이 있다. 동중(東中) · 서외(西外) · 선은(仙隱) · 신운(新雲) · 봉덕(奉德) · 모산(茅山) · 행중(行中) · 연곡(蓮谷) · 옹중(瓮中) · 내요(內蓼) · 외하(外下) · 신흥(新興)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13㎢, 인구 4,0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북리이다. 대부분 지역이 간척사업에 의해 얻어진 간척지로 구성되고 그 전에는 없던 면이나 새로 개간된 지역을 중심으로 행안면 일부와 동진면 일부를 병합해 하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76년 계화출장소로 분리되었고, 1983년에 계화면으로 승격하였다.
면의 서쪽에 낮은 계화산이 있으며, 계화도와 연륙되기 전에는 전지역이 조수현상에 노출된 해안간석지였고 몇 개의 갯골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계화도와 문포 사이를 연결하는 제1방조제와 계화도와 돈지 사이를 잇는 제2방조제의 완공으로 2,741㏊의 농경지가 개간되어 국내 최대의 간척사업에 의한 개척첨단(開拓尖端)이 형성되어 있다.
간척공간에는 취락의 조성은 없고 간척 전에 어촌이었던 창북리 · 의복리 등 간척지대를 둘러싸고 있는 기존의 취락들에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간척공간은 잘 정비된 직사각형 농토와 수로, 농로로 구획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생산된 쌀은 계화미라 하여 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방조제 밖의 간석지에서는 바지락 · 백합 · 김 양식이 활발하고 해안취락들에는 수산물 가공업이 발달해 있다. 새만금간척공사 이후에는 많은 생태계의 변화로 수산양식업이 쇠퇴할 것으로 우려된다.
도로는 부안 · 창북 · 계화를 연결하는 지방도와 부안 · 돈지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형성되어 있으나 해안말단부의 한계지역으로 고립이 심하다. 문화유적은 계화산 산정에 봉화대가 있고, 계화도에는 조선 말기의 유학자 전우(田愚)가 기거하던 영정각과 부근에 선생을 기리는 백색청풍비가 있다. 창북(昌北) · 계화(界火) · 궁안(宮安) · 양산(良山) · 의복(衣服)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31㎢, 인구 3,3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황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관로 옆이 되므로 일도면(一道面)이라 하여 궁동(弓洞) · 본덕(本德)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동면의 오죽 · 하장 등과 이도면의 일부, 남하면의 석천리와 서도면 등을 병합해 동진강의 이름을 따서 동진면이 되었다.
동진강 하구의 간척공사로 평야지대가 많이 형성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충적평야지대로 경지율이 90% 이상이고 주민은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이 곳에서 생산된 쌀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도로는 전주 · 부안 · 고창 · 영광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문포와 화포로 가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장등리에 수령 300년 된 노거목이 있는데, 그 해의 길흉을 알아내는 신목으로 전해 온다. 당상리 용화동(龍化洞)의 대지 위에 있는 성책터 근처에서는 현재도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 봉황(鳳凰) · 내기(內基) · 하장(下長) · 장등(長登) · 당상(堂上) · 동전(銅田) · 안성(安城) · 본덕(本德) · 증산(曾山)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50㎢, 인구 2,9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신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백산의 이름을 따서 백산면이라 하여 금판(金坂) · 신성(新城) · 신복(新福) 등 2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마면과 덕림면(德林面)을 합하여 백산면이 되었다.
백산을 비롯한 높이 50m 정도의 구릉이 있을 뿐, 주변의 동진강 하류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1960년대 말 동진강유역개발에 따른 제방 축조로 동진강의 유로가 고정됨으로써 제방 내측의 농경지가 잘 정비되어 직사각형 농지로 질서정연한 형태를 보인다.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쌀을 주로 생산한다.
도로는 정읍 · 신태인 · 김제 · 부안 등지로 통하는 도로망이 발달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죽림리에 석장승, 용계리에 신라의 삼국통일 당시 백제인의 비화가 서린 백산성지가 있다. 이 곳은 동학혁명의 지도자 전봉준(全琫準)이 부패한 지도계급을 타파하기 위한 농민군을 일으켜 집결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덕신(德新) · 금판(金坂) · 용계(龍溪) · 원천(元川) · 대수(大水) · 하청(河淸) · 거룡(巨龍) · 대죽(大竹) · 평교(平橋) · 오곡(梧谷) · 죽림(竹林) · 신평(新平)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85.13㎢, 인구 4,91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서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변산 오른쪽이 되므로 우산내면(右山內面)이라 하여 수락(水落) · 언포(堰浦) 등 2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좌산내면과 통합해 산내면이 되었으며, 1987년변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형성하며 산지와 해안을 끼고 내변산과 외변산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내변산은 쌍선봉 · 선인봉(仙人峰) · 세봉(細峰) · 의상봉 등의 산 사이를 흐르는 물이 직소폭포 · 바다폭포를 이루고, 외변산은 바다에 떠 있는 고군산군도를 배경으로 해안을 따라 절경을 이룬다. 내변산 계곡의 물을 막아 변산의 부안댐을 축조함으로써 수력발전과 농업용수, 그리고 생활용수를 인근지역에 공급한다.
해안의 좁은 농경지에서는 쌀 · 고추 · 양파를 생산하며, 산지에서는 약초 · 양봉업과 임산물 생산이 활발하다. 해안의 넓은 간석지에서는 수산업 · 수산채취업 · 수산양식업 등이 성하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종료되면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 이들 해안을 이용한 산업활동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도로는 변산반도를 감아도는 해안일주도로가 보안 · 줄포 · 부안 등지로 연결된다. 이 도로변에는 변산반도의 경승지와 어촌 · 해수욕장 · 휴양지들이 발달해 있고, 고군산군도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격포리에 적벽강 · 채석강, 중계리에 실상사지 · 월명암 · 직소폭포, 지서리에 고려자기 요지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격포리의 후박나무군락, 도청리에 호랑가시나무군락, 중계리의 꽝꽝나무군락이 있고, 유형문화유산으로 수성당(水城堂)이 있다. 지서(知西) · 도청(道淸) · 격포(格浦) · 마포(馬浦) · 운산(雲山) · 대항(大項) · 중계(中溪)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45㎢, 인구 2,75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영전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선돌[立石] 밑이 되므로 입하면(立下面)이라 하여 하석(下石) · 사창(社倉)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입상면과 소산면의 일부를 합하여 보안현의 이름을 따서 보안면이 되었다.
해안의 곰소만 연안에는 소규모 염전들에서 자염생산을 하던 곳이 많았으나 간척공사로 현재는 개답되어 신복리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면의 동부는 평야지대이고 서부는 외변산의 산지를 이룬다.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지며, 쌀 · 보리 외에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그 밖에 양잠업 · 축산업과 통조림가공업이 행해지고 있고, 도자기 가마들이 있다. 최근 대규모 벽돌공장들이 설립되어 생산을 하고 있다.
도로는 부안 · 홍덕 · 고창 · 영광으로 가는 국도와 변산반도일주로가 교차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영전리에 유천서원지, 남포리에 호벌치전적지, 상입석리에 선돌이 있고, 우동리에는 조선조 실학자 유형원의 유적지가 있다. 면내 해안을 따라 고려시대와 조선조 때 자기요들의 유적이 산재하여 오랜 요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영전(英田) · 상입석(上立石) · 남포(南浦) · 우동(牛東) · 신복(新福) · 유천(柳川) · 하입석(下立石) · 상림(上林) · 월천(月川) · 부곡(富谷)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51.50㎢, 인구 2,4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오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부안 읍내 서쪽 위가 되므로 상서면이라 하여 봉은(鳳隱) · 개암(開巖) 등 3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서면의 일부와 남하면의 일부가 병합되었다.
동쪽에서부터 퇴적암류의 신기화산분출암에 접하고 있다. 동쪽에는 충적평야가, 접경지대에는 적황색이 덮인 구릉지가, 청림리에는 산지가 발달해 있다. 평야지대에서는 쌀 · 보리가 생산되고, 담배 재배와 양잠업이 활발하다. 산간에서는 감과 밤이 많이 생산된다. 도로는 부안 · 줄포 · 고창 · 영광을 연결하는 국도와 상서 · 하서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발달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감교리에 고인돌군과 우금산성 · 청계서원 · 도요지가 있으며, 고려시대에 건립한 개암사는 죽염제조로 유명하다. 유정자고개 마루턱인 호벌치는 정유재란 당시 왜적을 맞아 분전한 곳이다. 가오(嘉五) · 감교(甘橋) · 고잔(古棧) · 용서(龍西) · 장동(長東) · 통정(通井) · 청림(靑林)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서남부 황해에 있는 면. 면적 14.32㎢, 인구 1,27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지형이 고슴도치 형국으로 되었다 하여 위도라 했는데 1896년 전라 좌 · 우도가 전라남도 · 전라북도로 개편되면서 전라남도에 속하여 고군산군도와 함께 지도군(智島郡)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했고, 196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내에 망월봉 · 망금봉이 있다. 경지율 15%로 주민들은 반농반어를 하고 있다. 농업은 주로 밭농사로 고구마 · 마늘 등을 생산하고, 수산업으로는 멸치 · 전복 · 해삼 · 오징어 · 조기 등의 어획과 김양식이 주종을 이룬다. 옛날에는 조기잡이철이 되면 칠산어장과 위도어장에 조기잡이가 매우 활발하여 파시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격포와 위도간을 운행하는 여객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상거래는 주로 군산과 뱃길로 이루어진다. 문화유적은 치도리에 내원암, 진리에는 위도관아와 수군절제사가 주재하던 진영이 있었고, 왕등도는 고려 때 이규보가 유배되었던 곳이며, 조선 말기 유학자 전우의 우거지였다. 진(鎭) · 정금(井金) · 치도(雉島) · 대(大) · 거륜(車輪) · 식도(食島) · 상왕등(上旺嶝) · 하왕등(下旺嶝)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4.73㎢, 인구 2,2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갈촌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배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면이라 하여 와상(瓦上) · 와하(瓦下) 등 3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산면 · 남하면 · 소산면 · 덕림면 일부를 병합해 주산의 이름을 따서 주산면이 되었다.
남서부의 주산 주변에는 산지가, 서북부에는 높이 500m 내외의 구릉이, 남동부는 넓은 충적평야가 행안면 쪽으로 발달해 있다. 주산면의 구릉지에서는 선사시대 주거지터가 발견, 보고되어 있다. 농업이 위주이고, 쌀 · 보리 외에 파 · 양파 · 잎담배 재배와 양잠이 활발하며, 구릉지에서는 최근 축산업도 발달하고 있다.
도로는 부안 · 줄포 · 고창을 연결하는 도로와 하서로 연결되는 도로가 신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도로변을 따라 저수지가 축조되어 행안면 일대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문화유적은 사산리와 소산리에 요지가 있다. 갈촌(葛村) · 소주(小舟) · 덕림(德林) · 동정(東丁) · 소산(所山) · 사산(士山) · 돈계(豚溪) · 백석(白石)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3.16㎢, 인구 3,0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줄포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건선면(乾先面)이라 하여 대동(大東) · 대중(大中) · 율지(栗地) 등 3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입상면의 일부와 고부군 서면의 일부, 고창군 북일면의 일부를 병합해 1931년 줄포면으로 개칭되었다.
해발고도 40m 미만의 구릉지가 대부분으로 동부 고부천 유역에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고 줄포리에서 곰소만 쪽으로는 간척사업에 의해 확장된 땅이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잎담배 · 고추 등이 생산된다. 수산업은 거의 폐업되었다.
옛날에 줄포는 부안군 남부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거래되던 물산의 집산지였다. 전라남도의 법성포, 충청남도의 서천과 함께 남부 서해안의 3대 포구로서 조기잡이철에는 칠산어장과 위도근해어장에 많은 객주들이 모여 조기와 젓갈류의 집산과 매출이 활발했으나 곰소만의 매립으로 옛날의 영화는 찾을 수 없다.
도로는 부안 · 흥덕 · 고창 · 영광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동리에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김홍원(金弘遠)의 묘와 신도비, 줄포리에 김상만가옥이 있다. 줄포(茁浦) · 장동(壯洞) · 우포(牛浦) · 신(新) · 난산(卵山) · 파산(巴山) · 대동(大東)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 곰소만 연안에 위치한 면. 면적 39.72㎢, 인구 2,56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서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산내면의 남부지역이었던 곳이 1963년 진서출장소가 설치되어 1983년에 진서면으로 승격하였다.
면의 해안에 해당하는 곰소만은 내륙으로 깊숙이 만곡되어 얕은 간석지와 갯골이 발달해 있고, 고창군의 선운산 계곡에서 흘러드는 인천강(仁川江)이 건너편에 있다. 대부분 지역이 외변산의 산지로 경지면적이 좁고 곰소만을 연하여 수산업이나 수산양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곰소항은 어항으로 칠산어장과 위도근해어장이 조기잡이가 성할 때는 위도와 함께 파시를 형성, 성황을 이루었으나 곰소만의 수심이 얕아지고 어장에서의 어황이 쇠퇴하면서 조락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근년에는 천일제염과 젓갈류의 생산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군 군항 개발이 논의되었던 일도 있다. 위도로 가는 여객선이 출발하던 곳이었으나 수심이 얕아지면서 격포로 그 기능을 넘겨주었다.
교통은 변산반도를 일주하는 도로에 의존하고 있어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석포리에 지장암과 내소사가 있고, 경내에는 내소사고려동종과 대웅보전이 있다. 이밖에 진서리에 요지가 있다. 진서(鎭西) · 석포(石浦) · 운호(雲湖) 등 3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25㎢, 인구 3,1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언독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부안 읍내 서쪽 아래가 되므로 하서면이라 하여 청서(淸西) · 두포(斗浦) 등 4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서면의 일부와 병합해 창림리는 상서면에, 상서면의 승평리는 하서면에 편입되었다.
북부의 석불산(288m) 주변의 산지와 행안면과의 인접지역에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농업 위주로 쌀을 생산하고 남부 산간산록에서는 잎담배 재배와 양봉 · 양잠 등이 행해진다. 교통은 부안에서 변산반도를 일주하는 일주도로에 의존하여 불편한 편이다.
청호저수지는 계화도가 간척되면서 갯골 깊은 곳에 둘레를 쳐서 만든 양수저수지로, 동진강 도수로로 통수되어온 물을 양수, 저수했다가 농번기에 계화간척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특수한 저수지이다. 최근에는 낚시터와 물고기요리 전문음식점들이 들어서 성시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적은 백련리와 석상리에 지석묘가 있다. 언독(堰毒) · 청호(靑湖) · 석상(石上) · 백련(白蓮) · 장신(長信)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0.12㎢, 인구 2,50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기리이다. 본래 부안군 지역으로 부안 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도면이라 하여 종산(鍾山) · 송정(松亭)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상면의 12개 이와 남하면 일부, 구지면 일부를 병합해 행안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의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1960년까지도 하서면과의 인접지역이 모두 만이었으나 1970년대에 동진면 · 행안면 · 계화면 · 하서면의 간석지에 방조제를 축조하면서 광활한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직사각형 농지로 잘 정비되어 기계화 영농에 편리하고, 이 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계화미와 더불어 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교통은 부안∼변산반도, 부안 · 흥덕 · 고창 · 영광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 편리하고 농산물 수송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역리에 고읍성터 · 용화사가 있다. 신기(新基) · 역(驛) · 삼간(三干) · 진동(眞洞) · 대초(大草) 등 5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