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제주이다. 1936년 3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39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1941년 12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인 1941년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1942년 1월 경상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屬)을 시작으로, 1944년 11월 경상북도 선산(善山)군수로 임명되어 해방될 때까지 재직했다.
해방 후, 1946년 9월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조교수, 같은 해 12월 부교수에 임용되어 강의했다. 1947년 4월 과도정부 외무청 문서과장, 8월 과도정부 중앙물자행정청 사정과장에 임명되었다. 1948년 8월 국무총리 비서관, 1950년 5월 내무부 장관 비서관, 6월 내무부 총무과장, 1952년 4월 기획처 물자동원국장, 8월 한미합동경제위원회 사무국장 서리를 지냈다.
이후 관직을 떠나 1955년 7월 『 조선일보(朝鮮日報)』 논설위원을 맡았으며, 1961년 1월부터 12월까지 『조선일보』 주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사임했다.
1967년 신민당에 입당해 중앙상임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등을 지내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67년 12월 장준하(張俊河)로부터 월간 종합잡지 『 사상계(思想界)』를 인수받아 발행인 겸 사장을 지냈다. 1970년 6월 김지하(金芝河)의 시 「오적(五賊)」을 『사상계』에 실어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사상계』는 폐간되었다.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75년 12월 율산(栗山)알루미늄공업주식회사 회장, 1976년 4월 율산실업주식회사 회장, 7월 율산건설주식회사 회장 등 사위 신선호(申善浩)가 설립한 율산그룹의 회장을 맡았다. 1977년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78년 10월 민족문화추진회 이사를 지냈으며, 1984년 12월 31일 사망했다. 저서로는 『신제국주의』와 『국제공산당과 세계혁명』, 『한국의 좌표를 정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