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여요선 ()

북여요선
북여요선
인문지리
문헌
1903년 김노규가 백두산정계비와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 간도의 영유권 문제에 관하여 서술한 지리서.
이칭
이칭
대한북여요선(大韓北輿要選)
정의
1903년 김노규가 백두산정계비와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 간도의 영유권 문제에 관하여 서술한 지리서.
편찬/발간 경위

당시 백두산정계비 문제가 대두되고 양국 관리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에서 경원(慶源)의 처사(處士) 김노규는 국경 문제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고금의 여러 문헌에서 자료를 모으고 자기의 의견도 첨가하여 경계시찰위원(境界視察委員)의 참고 자료가 되도록 저술하였다. 이건하(李乾夏)·김가진(金嘉鎭)·유완무(柳完茂) 등의 서문과 이병순(李秉純)의 발문이 실려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大韓北輿要選(대한북여요선)’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이밖에 1925년이창종(李昌鍾)이 지은 『증보현토북여요선(增補懸吐北輿要選)』이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상권은 백두고적고(白頭古蹟攷)·백두구강고(白頭舊疆攷)·백두도본고(白頭圖本攷)·백두비기고(白頭碑記攷) 등으로 되어 있고, 하권은 탐계공문고(探界公文攷)·감계공문고(勘界公文攷)·찰계공문고(察界公文攷)·사계공문고(査界公文攷) 등으로 되어 있다.

「백두도본고」에서는 청나라의 목극등(穆克登)과 함께 정계비를 백두산에 세우는데 직접 갔던 이의복(李義復)의 기행문을 비교하여, 양국의 정계비 설립처가 동일함을 들어 이미 그 당시에도 토문강(土門江)을 국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비기고」에서는 정계비의 내용을 검토하여 토문강이 결코 두만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탐계공문고」에서는 1881년(고종 18) 이후의 양국 사이의 분쟁과 간도 및 두만강 연변에 사는 한인(韓人)들의 반응을 약술하였다. 하권에서는 안설(按說)을 붙여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간도의 영유권 문제에 관한 유력한 자료일 뿐 아니라 한말 격동기의 한국인의 간도에 대한 인식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권두에 있는 지도는 두만강원(頭滿江源)과 토문강원을 분명히 구별하여 그려놓아 국경 문제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증보현토북여요선(增補懸吐北輿要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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