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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어불문학(佛語佛文學)

    현대문학개념용어

     불어와 불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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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불어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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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불사전
    분야
    현대문학
    유형
    개념용어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불어와 불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자유·평등·박애를 표방하는 프랑스문화와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이상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19세기 초반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간접적인 접촉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7세기 초에 이미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일환으로서 유럽인 선교사들이 중국에 도래하여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전하였다.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들은 북경사행(北京使行)의 임무중에 그러한 문물을 접하였을 것이다.
    1608년(선조 41)에 이미 천주교가 전래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1610년에는 사행 중의 한 사람이 북경에서 12종의 기도문을 가져왔다는 사실로 미루어보건대 유럽문화 및 프랑스문화와의 접촉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19세기 초에는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에 들어와 직접적으로 대민 사목활동을 전개하였다. 1836(헌종 2)∼1837년 사이에 파리외방전도회(La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는 북경교구를 통하여 모방(Maubant)·샤스탕(Chastant)·앵베르(Imbert) 세 신부를 한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후일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하였지만, 한국민과 프랑스국민이 직접 교통한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된다.
    이로부터 약 40년 뒤에는 한·불 양국간의 언어장벽을 극복하여 직접적인 문화교류를 이루려는 시도로서 파리외방전도회 소속의 주한 선교사들이 『한불자전 Dictionnaire Coreen Fran○ais』(1880)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 자전을 편찬할 때 한국인들이 동참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그 인명을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문화교류를 발판으로 하여 1886년에는 처음으로 양국간에 수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정식 국교가 이루어졌으며, 서울에 주한 프랑스공사관이 개설되었다.
    양국민의 순교를 무릅쓰고 이루어놓은 문화교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맺은 국교도 일본의 한국 침략으로 인하여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1918년부터는 망명을 겸하여 프랑스유학을 감행한 문화지사들이 나왔다. 김법린(金法麟)·정석해(鄭錫海)·백성욱(白性郁) 등은 파리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20년대에는 손우성(孫宇聲)·이헌구(李軒求)·이하윤(異河潤) 등이 도일하여 불어불문학을 전공하였는데 이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불어불문학도들이었다. 이들이 귀국하여 1924년에는 해외문학연구회를 창립하는 데에 동참하였으며, 번역·평론·창작 등으로 불문학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문학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보다 앞서 1916년에는 『신문계 新文界』와 『학지광 學之光』에서 이미 프랑스문학이 소개된 바 있었다. 백대진(白大鎭)의 『20세기초두구주제대문학가를 추억ᄒᆞᆫ』과 김안서(金岸曙)의 『오뇌의 무도』에서는 보들레르(Baudelaire)·사맹(Samain)·베를렌느(Verlaine) 등을 위시하여 상당수의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과 인물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프랑스어의 원문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일어나 영어의 번역문을 통해서 프랑스문학에 접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이 분야는 해외문학의 이입 내지 영향 연구로서 한국문학 분야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일제지배하의 암흑기가 끝나고 8·15광복을 맞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 불어불문학과가 창설되었다. 모방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발을 디딘 지 100여 년 만에 프랑스의 언어 및 그 문화를 주체적·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수용하려는 태세가 갖추어진 셈이다.
    이에 일본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였던 손우성·이휘영(李彙榮) 등이 서울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육성하였다. 서울대학교 다음으로는 성균관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이화여자대학교 등에 불어불문학과가 설치되었는데 이때가 1950년대였다. 그 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구의 효성여자대학, 서울의 숙명여자대학교, 춘천의 성심여자대학 등에 불문학과가 설치됨으로써 전국의 7개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교수하였다.
    손우성·이헌구·이휘영 외에도 일본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였던 최완복(崔完福), 대신학교(大神學校)에서 불어를 배운 안응렬(安應烈) 등이 초창기의 불어불문학 교수였다. 이밖에도 일제하에서 불어불문학에 뜻을 두어 전공으로 선택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오현우(吳鉉堣)·김붕구(金鵬九)·이진구(李鎭求) 등이 우리 나라의 불어불문학연구사에 기록될 만한 선구자들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팽창하는 인구와 국민들의 교육열에 부응하여 정부가 대학의 증설과 증과를 권장하는 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에 1970년대 초에 10개 학과였던 것이 1970년대 말에는 수십 개 학과로 늘어났고, 현재는 전국 각 대학(교)에 70여 개 학과의 불어불문학과 또는 불어교육학과가 있고 약 3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각급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교수, 연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의 각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의 학사·석사과정을 마치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그 전공을 심화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특히, 이휘영은 파리외방전도회가 최초로 『한불자전』을 발간한 지 80년만인 1960년에 『신한불소사전』을 편찬, 발간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에 의하여 편찬된 최초의 사전이다. 이휘영은 그 뒤에도 『포켓불한사전』(1969) 등을 계속하여 편찬하였다.
    한편, 1961년에는 한국불어불문학회가 창립되었고, 1966년에 학회의 기관지인 『불어불문학연구 佛語佛文學硏究』 제1집이 간행된 이래 현재까지 연간으로 간행되고 있다. 한국불어불문학회는 그 산하에 불한사전편찬위원회·한불사전편찬위원회·불어학사전편찬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불한사전』(1971)·『한불사전』(1978)·『불어학사전』(1979)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로써 불어불문학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언어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는 완비된 셈이다.
    문학연구는 불문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이 쌓여가고 있다. 시·소설·희곡·수필·평론·철학·언어학 등 다방면에서 저서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장르 가운데서 철학과 언어학은 불어불문학 연구에서 제외되어야 할지도 모르나, 불어불문학의 특성 때문에 연구의 당위성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몽테뉴·파스칼·몽테스키외·루소 등을 비롯하여 현대의 발레리·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작가들은 전통적으로 문인이면서 철학자·사회과학자·자연과학자·수학자 등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문학에 일관되어 흐르는 정신은 어떠한 형태의 정신활동이나 자연현상도 인간과 삶이라는 포괄적이며 종합적인 차원에서 인식하려는 태도이다. 따라서 법칙과 형식미를 존중하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법칙의 파괴와 형식에서의 탈피를 부단히 추구하는 흐름이 있어 왔다.
    또 한편으로는 명징과 논리성을 무엇보다도 우위에 두려는 풍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신비와 감성의 박동을 중요시하는 풍조도 있어 왔다. 고전주의에 대하여 낭만주의, 낭만주의에 대하여 고답파와 사실주의, 사실주의에 대하여 상징주의 등등의 반발과 반응은 삶과 인간을 도식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나온 태도이다.
    요컨대, 프랑스의 문학정신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신앙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정신의 자유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사고하는 갈대’인 인간은 갈대처럼 유연하게 사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탐구하는 비평에 있어서도 인접학문인 언어학·기호학·수학·논리학·사회과학·심리학·정신분석학 등이 원용되는가 하면, 역으로 문학작품이 이러한 제분야에 자극과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의 불어불문학 연구도 그 대상의 특성에 준하여 실로 다양하다. 16세기의 몽테뉴를 비롯하여 현대의 기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시대에 걸쳐서 연구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같은 작가와 작품의 경우에도 연구방법은 다양하다. 실증주의적·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구조주의적·테마적·사회학적 접근방법은 물론 근자에는 기호학적 접근방법을 시도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를 시대적으로 분류해보면 19세기 30%, 20세기가 40%로서 가장 많고 18세기 10%, 17세기 5%이며, 나머지 15%는 시대구분을 할 수 없는 어학연구의 논문들이다.
    1990년대 이후 특기할 만한 사항은 예전에는 지극히 취약했던 프랑수와 비용(Villon,F.) 이전의 중세불어 및 중세불문학에 대하여 어학사 내지 문학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프랑스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불한번역에 못지 않게 한국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한불번역도 근래 활성화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하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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