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벌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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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 사벌왕릉 전경
상주 전 사벌왕릉 전경
고대사
지명
초기국가시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있었던 소국.
이칭
이칭
사량벌국
목차
정의
초기국가시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있었던 소국.
개설

『삼국사기』에 기록된 소국으로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있었다. 일명 ‘사량벌국(沙梁伐國)’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석우로전(昔于老傳)에 의하면 “사벌국은 이전부터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첨해이사금대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다시 속하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멸하였다.”고 한다. 「지리지」 ‘상주조(尙州條)’를 보면 “첨해왕 때에 사벌주를 취하여 주(州)를 설치하였고, 법흥왕 11년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고 상주로 삼았다가 진흥왕 18년 주를 폐하였다. 신문왕 7년 다시 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으니 주위가 1109보였다. 경덕왕 16년에 이름을 상주라 하였다.”고 한다. 제14대 유례왕대에는 사도성(沙道城)을 개축하고 사벌주의 호민(豪民) 80여가를 이주시키기도 하였다.

상주는 서북한 고조선 유민들이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추풍령을 넘으면 처음 만나는 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찍이 정치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상주에서는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 청동기시대 고인돌유적이 산재해 있다. 또한 서기전 3∼2세기 이래의 세형동검(細形銅劍)·동모(銅鉾)·이형동기(異形銅器) 등 청동기유물이 다수 출토된 곳으로 전해지는 대표적 지역이다. 아마도 청동기시대부터 독자적인 정치집단이 출현했고, 위만조선 멸망 이후 선진 문화의 유입 속에 서기전 1세기경 소국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주 일대의 토광묘유적을 참고해 보면 사벌국은 2~3세기대 사로국과 비교될만한 국력을 가졌고, 3세기 후반부터 사로국의 정치적 간섭을 받았지만 4세기 중엽까지 독자성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명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진한(辰韓) 호로국(戶路國) 또는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에 비정되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벌국은 이른 시기 사로국에 복속된 것으로 나오지만 관련 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우선 첨해왕 이전에 복속되었다고 하나 관련 기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조사 결과에 입각해 볼 때, 사로국이 진한 소국에 대한 통합전을 전개하기 시작한 시기는 3세기대 중반 이후로 보인다. 그러므로 첨해왕대 백제와의 접경지대인 상주까지 정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불어 신라는 6세기 초 지증왕대에 이르러 요충지에 비로소 주군을 설치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첨해왕대 주 설치 기사는 허구로 여겨진다.

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3세기 중후반 사벌국이 진한의 맹주국인 사로국의 정치적 간섭에 반발하여 인근 백제와 결속을 도모하자, 이에 사로국이 사벌국에 대한 추가적인 무력적 제재를 가하던 과정을 보여준다고 파악된다. 이후 사로국은 북방 진출의 주 교통로이며 백제와의 접경지대인 상주 일대에 대한 확고한 지배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 주치(州治)로 표현될 만한 강화된 지배 방식을 적용시켰을 여지가 높다. 최종적으로 신라는 국가 운영의 기본적인 법체제가 갖추어진 법흥왕대 사벌국의 옛 지역에 상주를 설치하며 군정과 행정을 담당한 군주를 파견하였다. 이후로 사벌국은 독자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신라초기국가성장사연구』(이형우,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상고기 상주지역 정치체의 향방」(이영호, 『신라문화』 41, 2013)
「고분자료로 본 상주지역의 고대 정치체」(김진형, 『영남문화재연구』 24, 2010)
「사벌국의 성립과 전개」(한기문, 『문화사학』 27, 2007)
「전상주지방출토의 이형청동기」(윤무병, 『고고미술』 146·147, 1980)
집필자
김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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