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상주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상주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정의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예천군 · 의성군, 서쪽은 충청북도 옥천군 · 보은군 · 영동군, 남쪽은 구미시 · 김천시, 북쪽은 문경시와 접해 있다. 동경 127°47′∼128°21′, 북위 36°14′∼36°39′에 위치한다. 면적은 1,254.78㎢이고, 인구는 9만 8,138명(2023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7개 면, 6개 행정동(36개 법정동), 362개 행정리(200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에 있다.

자연환경

소백산맥 남동사면에 위치한 서고동저형의 지형으로 낙동강 본류가 동부지방을 관통하여 산과 물, 자연자원 풍부하고, 경상북도 서북부 내륙지방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연평균 기온은 12~13℃정도로 최한월 1월과 최난월 8월의 평균기온이 3℃ , 26℃ 내외로 서북부 산간지대로 갈수록 겨울철 기온이 낮아진다. 연간 강우량은 1,050㎜내외로 낙동강 유역 대부분의 내륙지방이 1,000㎜ 정도에 비하여 다소 높은 편이다.

천기일수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10년간 맑은 날이 연 평균 156일에 달하고 있으며 넓은 평야와 적정한 강우량, 여름철 높은 기온, 많은 일조량등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역사

낙동면 낙동리와 화북면 등지에서 마제석검 · 세형동검 · 동과 · 동령 등 청동기유물이 발굴되었다. 따라서 서기전 7세기경부터는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청동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소국(小國) 단계로 들어섰는데, 그 뒤의 군현개편으로 미루어보면 이 지역에 여러 국가가 성립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곧, 『삼국사기』에 보이는 사벌국(沙伐國) 이외에 변진 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 ·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 · 호로국(戶路國) 등을 이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사벌국은 3세기 후반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여타 소국도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524년(법흥왕 11) 이 지역에 상주(上州)가 설치되고 군주가 파견되었다. 이는 신라의 영토를 상하로 양분한 한 영역의 통치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군현체제가 성립되면서부터 상주에는 음리화현(音里火縣) · 달이현(達已縣) · 지내미지현(知乃彌知縣) 등이 영속되었다. 그리고 고동람군(古冬攬郡)이 함창지역의 가해현(加害縣) · 관현(冠縣) · 호측현(虎側縣) 등을 관할하였다.

557년(진흥왕 18) 상주의 주치(州治)가 청주(靑州)로 옮겨진 뒤 상락군(上洛郡)이 되었다. 그 뒤 687년(신문왕 7) 9주제도가 시행되면서 다시 주치로 되어 사벌주가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사벌주는 상주(尙州)로,음리화현은 청효현(靑驍縣)으로, 달이현은 다인현(多仁縣)으로, 지내미지현은 화창현(化昌縣)으로 개명되었다.

또한, 고동람군은 고령군(古寧郡)으로 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 상주가 사벌주로 환원되었고, 889년(진성여왕 3) 원종(元宗) · 애노(哀奴)의 농민반란이 일어나 신라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신라 말 상주 일대는 유력한 호족이던 아자개(阿慈介)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가은현(加恩縣 : 가해현에서 개명) 출신인 견훤이 후백제를 일으켜 세력을 떨치기도 하였다.

940년(태조 23) 다시 상주로 개칭되었으며, 이어 안동도독부로 고쳐졌다. 그 뒤 983년(성종 2) 12목을 설치할 때 상주목으로 되었다.

1012년(현종 3)에는 안동대도호부로, 1018년에는 다시 상주목이 되었다. 그런 다음 계수관(界首官)으로서 7군 17현이 소속되었다. 함창지역은 고령군이 되었다가 964년(광종 15) 함녕군(咸寧郡)으로 고쳐졌다. 그 뒤 1018년(현종 9) 함창군(咸昌郡)으로 바뀐 뒤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 때 8도체제가 확립되면서 1408년(태종 8) 상주에 경상도감영을 두어 경상도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하였다. 1457년(세조 3) 진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지가 되었으며, 함창에는 1413년(태종 13)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의 상주는 화령현 · 중모현 · 산양현 · 단밀현 등을 속읍으로 거느린, 도 이름에 그 이름이 차용될 정도로 큰 영남의 읍이었다. 게다가, 물산이 풍부하고 농경지가 넓으며,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권민수(權敏手) · 표연말(表沿沫) 등 사림파 인물들과, 영남학파의 중심인물인 정경세(鄭經世)도 이 곳 출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당시, 정기룡(鄭起龍)은 용화동전투에서 왜군을 대파한 뒤 상주성을 화공법으로 수복하였다.

또한, 함창에서는 정경세 등 의병장이 왜군을 대파해 상주지역에는 왜병이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영남학파의 학문이 더욱 번성해 이준(李埈) · 홍여하(洪如河)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그래서 도남서원(道南書院)을 비롯한 많은 원사(院祠)가 건립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시에 상주목은 상주군으로, 함창현은 함창군으로 되었다. 또한, 개화운동이 전개되면서 군수 이인용(李寅用)과 유지들에 의해 광흥학교(廣興學校)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자 문경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의 의병부대에 상주출신 의병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주군과 함창군이 통합되어, 18개 면을 관할하는 상주군이 되었다. 그 뒤 1931년 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19년 3 · 1독립만세운동 당시, 3월 23일 상주읍 장날을 기회로 한암회(韓岩回) 등이 주도해 독립만세시위를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이후 민족실력양성운동의 한 갈래인 청년운동도 매우 활발히 전개되었다.

1945년 이후 상주는 정치 · 경제 · 군사의 중심지에서 벗어나 경제력이 쇠퇴하게 되었다. 1980년 함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 상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시 · 군이 분리되었다. 1989년에는 화북면 남부출장소가 화남면으로 승격했으며,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상주시가 탄생되었다. 1998년에 행정구역 통 · 폐합에 따라 중앙동이 동문동으로 편입되어 1읍 17면 6동이 되었다.

유물 · 유적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며, 사벌국(沙伐國)의 고지로서 많은 유물 · 유적이 남아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남적동과 외서면 관동리, 사벌국면 금흔리, 낙동면 구잠리, 공검면 중소리에 무문토기 및 석기 산포지가 있다.

또한, 부원동 · 중덕동 · 헌신동과 사벌국면 매호리, 함창읍 증촌리, 중동면 회상리, 낙동면 분황리 · 신상리 · 구잠리에서 고인돌 및 선돌의 분포가 확인된다. 삼한시대 유적으로는 사벌국면 금흔리의 토광묘 유적이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병성동의 고분군, 함창읍 증촌리의 고령가야왕릉(경상북도 기념물, 1979년 지정) 및 신흥리 오봉산 일대 고분군, 사벌국면 화달리의 전사벌왕릉(경상북도 기념물, 1977년 지정) 및 화달리고분군, 중동면 우물리 · 회상리고분군, 낙동면 신상리 · 구잠리고분, 청리면 마공리 · 청하리고분군이 있다.

산성으로는 모동면 수봉리의 금돌성(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화북면 장암리의 견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과 남산산성 · 노고산성 · 금흔리토성 · 자산산성(紫山山城) · 병풍산성, 상주조공제(경상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서성동의 상주 복용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함창읍의 상주증촌리석불입상(보물, 1963년 지정) · 상주증촌리석불좌상(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신봉동의 상주석각천인상(보물, 1980년 지정), 남장동의 상주남장사철불좌상(보물, 1989년 지정) · 남장사보광전목각탱(보물, 1987년 지정) · 남장사관음선원목각탱(보물,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화서면의 상주 신봉리 석조보살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사벌국면의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화북면의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보물, 1980년 지정), 공성면의 상주 무곡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지천동의 갑장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도 봉화 운계리 폐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상주 낙상동 폐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거동동의 상주 무양리 석조귀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으며, 2000년 이후 용흥사삼불회괘불탱(보물, 2003년 지정), 황령사아미타후불탱(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 상주목가리석조관세음보살입상(지방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가 지정되었다.

유교문화재로는 신봉동에 상주향교대성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함창읍 교리에 함창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 연원동에 흥암서원(경상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 모동면 수봉리에 옥동서원(경상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도남동에 도남서원 등이 있다.

그리고 청리면 가천리에 체화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화서면 사산리에 옥연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만산동에 상주상산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낙동면 승곡리에 상주양진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이 있다.

또한, 외서면 우산리에 대산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우복종가(경상북도 민속자료, 1982년 지정), 낙동면 승곡리에 상주오작당(경상북도 민속자료, 1982년 지정), 중동면 우물리에 수암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외서면 우산리에 병암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낙동면 운평리에 의암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도 우복 정경세 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상주용산정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사벌국면 금흔리에 정기룡장군유적(경상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 · 정기룡장군유물(보물, 1980년 지정), 청리면 율리에 존애원(경상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 가천리에 상주증손향약(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 월간창석형제급난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상주승곡리추원당(경상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신봉동에 조정임진란기록(보물, 1989년 지정) · 조정 종가 문적(보물, 1989년 지정), 화서면 사산리에 노소재문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 기영회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노익 및 노홍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가 있다.

은척면 우기리에 상주동학교당유물(경상북도 민속자료, 1995년 지정), 만산동에 임란북천전적지(경상북도 기념물, 1988년 지정), 화동면 판곡리에 상주김준신의사제단비(경상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가 있다.

초산동에는 상주민요(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가 전승되며, 무양동에 운평리구상화강암(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상현리에 상주 상현리 반송(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은척면의 뽕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72년 지정), 은척면에 상주두곡리은행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있는데 향교로는 상주향교 · 함창향교가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상주향교는 신봉동에 있는데,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부터 1614년간에 중건하였다.

그 뒤 1631년(인조 9) · 1824년(순조 24)에 중수했으며, 1920년 · 1951년 · 1966년 3차례에 걸쳐 부분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함창읍 고촌리에 있는 함창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한 뒤 1417년(태종 17)에 이건했고, 1648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에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서원으로는 1606년(선조 39)에 설립한 도남(계)서원은 1677년(숙종 3)에 사액되었다. 흥암서원은 1702년에 설립해 1705년에, 백옥동서원은 1714년에 설립해 1789년(정조 13)에 각각 사액되었다.

그 외에도 1702년에 연악서원, 1632년에 옥성서원, 1657년(효종 8)에 속수서원, 1665년(현종 6)에 근암서원, 1685년에 효곡서원, 1692년에 화암서원, 1708년에 봉산서원, 1711년에 운계서원, 1713년에 서산서원, 1709년에 충렬사, 1796년 우산서원, 1745년(명조 21)에 낙암서원, 1693년에 임호서원, 1752년(영조 28)에 청암사우 등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철폐된 뒤 지금은 흥암서원만 남아 있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7년에 상주공립보통학교, 1910년에는 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조영강습소가 설립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9년 옥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된 후에 29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중등학교로는 1921년에 상주공립농잠학교, 1936년 상주고등보통학교(상주중학교의 전신)가, 1945년에는 (상주여중의 전신)가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11개교, 대학으로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서관 1, 전수회관 1, 문화원 1, 공연시설 2, 지역문화복지시설 2, 문화재 75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1981년부터 매년 10월에 ‘상주문화제’를 열어 다양한 행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그 중 8만 5천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어 1인당 0.6대꼴로 자전거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특성을 살린 상주전국자전거축제와 경상감영이 최초로 개영되었던 상주시에서 새로운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1997년도부터 재현한 개발경상감사도임순차행렬 행사가 특징적이다.

민속

이 지방 고유의 민속놀이는 없다. 하지만, 세시에 따라 일반적인 민속놀이가 행해진다. 겨울이 되면 남녀노소 모두가 연날리기를 즐기며, 정월보름에는 소원을 담아 연을 날리기도 한다. 단오에는 그네뛰기 · 씨름 등을 즐긴다.

이 지방은 경상북도 북서부의 벼농사 중심지역으로 민속놀이도 벼농사와 관련된 민속놀이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농악이다. 농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악을 즐겼다.

그래서 정월보름 · 단오 · 추석 등 명절 때뿐만 아니라, 김매기 · 모심기 등과 같은 노역시간에도 농악을 함으로써 노역의 수고를 덜고 작업의 능률도 높였다. 또한, 농악은 신앙과 결부되어 정초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 등 액막이굿을 하며, 우물을 도는 샘굿을 한다.

이 지방의 동제는 모시는 신의 종류에 따라 국사제 · 산신제 · 서낭제, 그리고 입석제로 분류한다. 외서면 우산리 등 네 곳에서 모시는 국사제는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로, 일년에 한 번 정월 초순부터 15일 이내에 자정을 기해 지낸다.

국사제의 제관은 성인남자 중 2, 3명이 선정되며, 선정된 날부터 목욕재계하고 타인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또한, 부정한 사람과의 접촉이나 술 · 고기 · 담배 · 살생 등을 금한다.

산신제는 국사제가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군내에 169개의 많은 신당이 있다. 제사는 매년 한 번 정월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산간지방에서는 2회 내지 3회까지 지내기도 한다.

산신제의 제관은 동민 가운데 생기복덕(生氣福德)과 정(淨)한 사람을 뽑는데 1∼3명이 일반적이다. 제관이 되면 3일기도 혹은 7일에서 14일까지의 정성을 드리는 근신을 하고, 제관집 앞으로는 여자의 출입을 금한다.

서낭제는 13곳에서 행해지는데 토지와 관계된 신을 모신다. 제물은 주로 육류를 사용하며 정월제사가 일반적이다. 제관은 성인 남자 2명이 맡는 것이 보통이지만, 부부가 제를 담당하는 곳도 있다. 제관은 고기와 담배, 외출을 금하고 신발은 반드시 자기 고무신을 신고 3일기도로 근신한다.

입석제는 주로 평야지대에서 행해진다. 신당은 입석과 수목이 결합한 수목입석(樹木立石)으로서 마을 입구에 있다. 입석제도 매년 한 번 정월제사가 일반적이고 제관은 일년 동안 부정하지 않은 고령자를 택하거나, 전 가족을 생기복덕에 맞추어보고 뽑기도 한다.

이 지방의 산악지대에서는 주로 산신을, 평야지대에서는 땅과 관련된 서낭이나 입석을 모시고 있어서, 환경과 신앙 사이의 관련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설화 · 민요

이 지방의 설화로는 「공갈못에 얽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옛날 상주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경주에 다녀오던 중 길에서 한 여인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용모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그는 오히려 불길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마침 대구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독명원(犢鳴院)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밖에 나갔던 그 여인이 갑자기 물동이를 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물을 쏟고 황룡(黃龍)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하였다. 이를 보고 깜짝 놀라 서 있는 김씨에게 그 여인이 애원하였다. “저는 경주 용담의 용녀로 지금 상주 공갈못에 있는 수용에게로 출가를 가는 중이옵니다. 그런데 그 못에는 또 한 마리의 수용이 있어 저의 출가를 방해하고 있으니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이에 그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지 묻자, 그 여인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그 못에 도착하면 용 세 마리가 서로 싸움을 할 것이온데, 청룡은 저의 남편이요, 황룡은 저이고, 백룡은 저의 출가를 방해하는 용이옵니다. 그러니 백룡의 목을 쳐주시기 바랍니다.” 상주에 도착한 김씨는 여인과 약속한 시간에 공갈못에 도착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용 세 마리가 어울려 싸우고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칼을 뽑아 백룡을 내리치려 했으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불행히도 청룡의 허리를 자르고 말았다.

그 순간 물속에 들어갔던 황룡이 나와 매우 슬퍼하며 “당신은 나를 과부로 만들었으니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나 하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그 곳을 떠났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이튿날 죽고 말았다. 이를 본 무당은 필시 용신의 장난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시체를 가지고 공갈못가에 제단을 쌓은 뒤 무당으로 하여금 빌게 하였다. 그러자 못 속에서 황룡이 나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시체를 안고 못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 이 지방 사람들은 공갈못의 물이 어는 것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치게 되었다.

그리고 정월 열나흗날 밤은 인근의 소들이 겨울철인데도 땀을 흘렸다고 한다. 이것은 소들이 밤을 타서 못의 얼음을 밭갈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공갈못은 연꽃이 만발하면 마치 중국의 전당(錢塘)을 방불하게 할 만큼 아름다워서 이 지방의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1964년에 폐지(廢池)되어 논밭으로 이용됨으로써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 외에도 효자 이경래가 아버지의 약으로 사용할 토끼를 구했다는 데서 연유한 「토끼바위이야기」 등이 있다.

이 지방은 예로부터 다양한 민요가 불려왔다. 특히, 농경노동에 따르는 농업노동요가 비교적 잘 전승되어 왔다. 모심기 때 부르는 「공갈못노래」는 경상북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로 일명 「채련요(採蓮謠)」라고도 한다.

선후창으로 불리는 이 농요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널리 애창되고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의 낙동강 연안뿐만 아니라 내륙에까지 골고루 전승되고 있다. 특히, 전라남북도의 일부 지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락과 사설이 불린다.

이 민요는 “상주함창 공갈못에/연밥따는 저처자야/연밥즐발 내따줄께/이내품에 잠자주오/잠자기는 어렵잖소/연밥따기 늦어가요.”라 부르는 기본형이 바탕이 되어 파생형 · 생략형 · 후렴첨가형 등이 생겨났다.

이는 모심기 때 부르던 소리가 점차 유흥요 · 파생요로 발전하면서 생겨난 변이형으로 보인다. 6절로 구성된 기본형의 사설은 연정(戀情) · 사친(事親) · 완월관어(玩月觀魚) · 호련(護蓮) 등의 내용으로, 가락과 더불어 애잔한 흥취를 자아낸다. 이 민요는 애초에 후렴이 없어서, 모심기 때는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받아 부르는 반복형 민요이다.

그 밖에도 논매기소리와 타작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논매기소리에는 「아시논매기소리」와 「두벌논매기소리」가 있고, 타작소리에는 「자리개타작소리」와 「도리깨타작소리」가 있다. 이들 농요도 물론 선후창으로 불린다.

「두벌논매기소리」를 보면, “에이오 방해야/에이오 방해야/이방아가 누구방안가/에이오 방해야/강태공의 조작방아/에이오 방해야/방아만 놀아난다/에이오 방해야…….”처럼 선소리는 사설이 있으나 뒷소리는 후렴만 부른다.

「도리깨타작소리」는 “에이 주야산이 또 들어간다 하 에하 다리라 에하 어깨도 에하 질수 에하 허리도 에하 줏척 에하 힘써 에하 다리라 에하…….” 하며, 급박하고 흥겨운 장단에 그 사설이 몹시 짧다.

그 밖에도 산촌에서 나무꾼들이 부르던 「어사용」 명주를 짜며 부르던 부요(婦謠) 「베틀가」와 「자장가」 등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 · 교통

상주는 산간분지로서 곡창지대로 손꼽히는 지역으로, 밭농사보다는 논농사가 활발하다. 총농경지는 2만 6685㏊로 경지율은 21.3%이다. 그 중 논이 1만 6377㏊로 약 61.3%를 차지하고 밭이 1만 308㏊로 약 38.7%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등이다. 그리고 사과 · 감 · 포도 · 양송이와 유지작물인 참깨, 고추 · 마늘 · 배추 등의 소채류 등이 많이 산출된다. 그 밖에 특용작물로 잎담배를 재배한다. 함창읍 증촌리는 신라시대부터 명주산지로 유명하다.

따라서 지금도 화서면 · 낙동면 · 화북면 · 은척면에서 누에치기를 많이 하며, 제사공장 · 잠업시험장 · 잠종장 등 누에와 관계되는 기관 및 시설물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사과재배가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내서면 · 사벌국면 · 이안면 · 청리면 등에서는 감이 많이 나온다. 특히, 대부분 곶감으로 가공되어 서울 · 부산 · 대구 등 대도시로 판매된다.

포도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품질이 우수한 거봉(巨峰)이 생산된다. 인삼은 주로 화북면 · 모동면 · 화서면 · 화동면에서, 담배는 화북면 · 모서면 · 은척면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목축업으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개 등의 사육과 양봉을 한다. 특산품은 명주 · 상주청결미 · 삼백곶감 · 내서감식초 · 참기름 등이다. 특히, 명주는 함창읍과 이안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며, 품질이 우수해 고급 한복지로 쓰이고 있다.

이 시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불릴 만큼 쌀 · 누에고치 · 곶감의 산지로 유명하였다. 오랫동안 이것들이 상주를 대표해 왔으며, 그 명성 그대로 상주쌀은 전국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삼백곶감 역시 당분함량이 높고 육질이 쫄깃거려 전국 각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내서감식초는 상주단감을 원료로 만드는데 비타민C가 풍부하고, 상주참기름은 순수 토종참깨로 짜 고소한 맛이 오래 간다.

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으며 2008년 현재 광구수는 49개이다. 그것도 가행광구수는 겨우 14개에 불과하다. 광산물로는 석탄과 석회석이 주로 생산된다. 특히, 석탄이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산지는 은척면 · 화남면이다.

2008년 현재 농공단지는 함창 · 공성 · 화동 · 화서 · 외답 총 5단지로 66만 5,918㎡의 면적에 총 67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종사자 수는 874명이다.

상업활동은 1980년도 정기시장(定期市場) 19개소와 일반상설시장(一般常設市場) 2개소 등 모두 21개소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공설시장 20개소, 상설시장 2개소, 1983년에는 공설시장 21개소였다. 그러나 1984년에는 17개소로 공설시장이 차츰 줄어들고, 1985년에는 정기시장 4개소 상설시장 1개소가 줄어 모두 16개소가 개설되고 있다.

상설시장 1개소는 상주 도심지에, 15개의 정기시장은 이안면과 내서면을 제외한 각 면에 고루 개설되어 있다. 낙동장은 5 · 10일, 청리장은 4 · 9일, 공성장은 1 · 6일 등 장날은 각각 다르나 모두 5일장이다.

청리장과 공성장에서는 사과, 화령장 · 함창장 · 화북장 · 용화장 · 은척장에서는 고추가 많이 거래된다. 특히, 함창장에서 거래되는 재래식 비단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상설시장은 1970년 초에 생겨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기시장이 시장의 중추를 이룬다. 그래서 특수시장이라 볼 수 있는 가축시장 및 농협연쇄점 등 농산물공판장에서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3년 현재 함창 · 중동 · 낙동 · 청리 · 공성 · 모동 · 모서 · 화동 · 화서 · 화북 · 은척 · 공검 · 화남 등 13개의 정기시장과 남원동 · 동성동에 일반시장 2개가 분포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 3호선이 예천∼김천, 국도 25호선이 충청북도 보은∼구미와 연결되어 시내 중앙에서 교차된다. 2001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2007년부터 개통을 시작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상주시를 통과하고 있다. 2017년 상주영천고속도로 전구간을 개통하였다. 철도는 문경∼김천간의 경북선이 지나며, 그 외에도 지방도 등이 있어 대체로 편리한 편이다.

관광

삼백의 고장으로서 낙동강변에 접하고 천혜의 자연경관인 속리산 등이 있어 관광개발의 잠재력을 가진 시이다.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1985년 속리산 문장대와 용화지구 온천개발과 함께 16만 평을 관광지로 지정해 야영장과 위락시설 등을 건설하였다.

화북 쪽에서 속리산 등반을 시작하면 높이 10m의 오송폭포(五松瀑布)와 화양동계곡(華陽洞溪谷),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군사를 양성한 곳이라는 길이 약 650m, 높이 7∼15m의 견훤산성과 대궐터, 성불사와 문장대를 볼 수 있다.

문장대는 세종대왕과 문무시중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그리고 문장대를 세 번 갔다 와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전설도 깃들여 있는 곳이다. 낙동강 칠백리 가운데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경천대(擎天臺)는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특히, 백사장이 아름답다.

주위에 높은 산봉우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 산의 송림은 천태만상의 소나무 모양으로 절벽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또한, 경천대 아래는 강물이 굽이쳐 돌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수영장을 비롯한 전망대, 어린이 놀이시설, 야영장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이 일대는 임란공신 정기룡의 유적지인 충의사가 있다.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볼모로 끌려갈 때 따라갔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이 있다.

그 밖에 사벌왕릉 · 삼층석탑 · 가야왕릉 등 문화재가 많다. 도심지에서 7㎞쯤 떨어진 곳에 노음산(露陰山, 725m)을 등지고 운음산(725m) 동편 계곡에 남장동의 남장사(南長寺)가 있다. 이는 신라 흥덕왕 7년(830년) 진감국사가 창건했는데, 경북팔경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극락전 뒤편의 보광전(普光殿)에 남장사 비로자나철불좌상과 이 불상 뒤에 새겨진 목각탱이 있다. 또한, 보광전 앞뜰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과 괘불정이 있다. 그리고 도심지에서 서남쪽 8㎞ 떨어진 곳에 갑장산(甲帳山, 806m)이 있다.

이 곳은 장엄하고 기암괴석이 수려하며, 계곡 물은 수질이 좋아 피서객이 많이 찾는 지역으로, 야생조수애호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산기슭의 용흥사(龍興寺)는 그 아래 폭포가 있어 사찰 경관이 더욱 돋보이며, 절 뒤의 골짜기에는 약수가 있다. 도심지 한가운데 자리잡아 시민공원으로 이용되는 왕산(王山)은 상주복룡리석불좌상과 상주복룡리당간지주가 있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성주봉(해발606m)기슭에 412㏊규모의 성주봉자연휴양림은 산림내 휴양과 휴식에 필요한 최소한 기본시설만을 설치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깊은 계곡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상주예술촌은 문화창작공간이 부족한 상주시에서 폐교를 활용하여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을 조성하여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학생 및 시민들의 예술체험과 작품제작 실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읍 · 면
  1. 함창읍(咸昌邑)

시의 동북단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 43.36㎢, 인구 6,201명(2023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구향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고도(古都)였다. 그 뒤 신라에게 병합되어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고릉(古陵)이 되었고, 경덕왕 때 고령(古寧)으로 고쳤다. 964년(광종 15) 함녕군(咸寧郡)이 된 뒤, 1018년(현종 9) 상주(尙州)에 속하였다. 뒤에 함창(咸昌)으로 고친 다음 1171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그리고 1413년(태종 13)에 함창현으로 되었다. 1895년 함창군(咸昌郡) 지역으로 함창현청이 있었으므로 현내면이라 했고, 교촌 · 구아 · 금취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의 8개 리, 북면(北面)의 15개 리와 인근 4개 면의 일부를 병합해 함창면이라 하였다. 1980년 읍으로 승격된 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해 새로운 상주시가 탄생하자 상주시 함창읍이 되었다.

읍의 동쪽 경계는 낙동강의 상류인 영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이안천이 읍의 중앙을 동류해 영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합류지점에 충적지가 발달해 함창평야가 형성되었고, 남부와 북부는 100∼200m 내외의 구릉으로 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7.76㎢로 41.0%, 임야면적 16.85㎢로 38.9%, 기타 20.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3.94㎢로 78.5%를 차지하고, 밭이 3.82㎢로 21.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명주, 쌀, 단무지, 생오이, 친환경농법농산물(우렁이농법 9호 9㏊)이다. 사과 · 배 등과 밤 · 대추 · 은행 · 산수유 · 토석류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으며, 젖소 · 돼지 · 사슴 · 닭의 사육과 양봉도 이루어진다. 한편, 광업은 소규모의 석탄광구 2개가 있고, 공업은 직조공장과 석재가공공장이 있다. 또한, 가내수공업으로 재래식의 인견직조가 행해지는데 이 지방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이 곳은 문경시와 인접해 있어 상주시보다는 문경시의 경제권에 속한다. 교통은 김천∼문경간의 국도와 경북선이 읍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군도 및 지방도가 동서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한편, 조령(鳥嶺)과 황령(黃嶺)의 길목에 위치해 일찍부터 대로(大路)가 개통되어 해륙(海陸)의 교역이 편리하였다. 따라서, 산업과 문물의 발달이 용이한 입지적 여건이 조성되어 예로부터 팔달(八達)의 구(衢) · 추노(鄒魯)의 향(鄕)으로 불렸다.

문화유적으로는 증촌리 석불 좌상, 증촌리 석불 입상, 전 고령가야왕릉, 오봉산 고분군, 함창향교, 증촌리 입석, 용화사, 봉황대, 임호서원, 용화사 탑, 남산 고성 등이 있다. 종교시설로는 기독교(개신교) 7, 불교 3, 천주교 1로 총 11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1. 공검면(恭儉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9.49㎢, 인구 2,111명(2021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정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시대에는 고동람군(古冬攬郡) · 고릉(古陵) · 고령(古寧)에 속해 있었다. 964년(광종 15) 함령군의 관내였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목에 속했다가 함창현에 귀속되었다. 그 뒤 1171년(명종 2)에는 함창감무(咸昌監務)의 관할 아래 있었다. 1413년(태종 13) 함창현에, 1895년(고종 32)에 함창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였다. 율곡 · 법구 · 부곡 등 16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상면(水上面)의 상흘 · 하흘 등 10개 리와 수하면(水下面)의 여물리(余勿里) 일부, 상주군 외서면(外西)의 이촌리(泥村里)와 가산리(佳山里) 일부를 병합해 ‘공갈못(恭儉池)’의 이름을 따서 공검면이라 하고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 하흘리가 은척면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에 속하였다. 면의 동부는 구릉지와 평지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형을 이루며, 서부는 비교적 높은 산지로 되어 있고, 중앙에 국사봉(國師峰, 338m)이 있다.

서부 산지 사이를 이안천이 감입곡류를 형성하면서 북류하고, 그 활주사면(滑走斜面)에 소규모의 평지가 있다. 동부에는 동천(銅川)의 상류가 구릉들 사이에 수지상(樹枝狀) 하계망을 펴고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오태리에 오태저수지가 있어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총경지면적 12.44㎢로 31.5%, 임야면적 20.27㎢로 51.3%, 기타 17.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34㎢로 67.0%를 차지하고, 밭이 4.10㎢로 33.0%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사과 · 배 · 복숭아 · 감 등의 과수와 콩 · 깨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그 외 밤 · 호두 · 대추 · 버섯 등의 임산물도 생산되는데, 그 중 밤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축산업으로는 닭의 사육이 많으며, 한우 · 돼지 · 산양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광업으로는 계림광산 · 함원광산 · 상원광산에서 무연탄이 채광된다.

면의 동부에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서부에는 내서∼농암과 공검∼음척을 잇는 군도가 남북으로 통과할 뿐이어서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양정리에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인 공갈못의 터가 남아 있고, 지평리에 효자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양정(楊亭) · 부곡(釜谷) · 동막(東幕) · 병암(屛巖) · 오태(五台) · 역곡(力谷) · 화동(華洞) · 율곡(栗谷) · 예주(曳舟) · 지평(支坪) · 중소(中所) 등 11개 리가 있다.

  1. 공성면(功城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9.28㎢, 인구 4,4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산리이다. 신라 때의 대병부곡(大幷部曲)인데, 고려 초에 공성으로 개칭한 뒤 1018년(현종 9) 상주에 속하였다. 한말에 이르러 공성의 동쪽이 되므로 공동면(功東面)이라 명명한 다음 학산 · 옥산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서면의 금계 · 양곡 등 20개 리, 청남면의 18개 리를 병합해 19개 리로 개편한 뒤 옛 현의 이름을 따서 공성면이라 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에 소속되었다.

지형상 낙동강의 지류인 남천 상류의 침식으로 형성된 모식적 산간분지이다. 그래서 기양산 · 국수봉(793m) · 성봉산(星峰山, 572m) · 백학산(白鶴山, 615m) · 서산 등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분지상에는 남천의 상류가 수지상 하계망을 이루며 마름모꼴의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총경지면적 22.52㎢로 25.2%, 임야면적 57.60㎢로 64.5%, 기타 10.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5.46㎢로 67.3%를 차지하고, 밭이 7.36㎢로 32.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그 밖에 사과 · 감 · 깨 등의 생산이 많고, 밤 · 버섯 · 사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도곡리는 인삼재배에 적합한 토질이어서 농가소득 증대의 전망이 밝다. 한우 사육은 군내 2위이며 그 외 개 · 거위 사육과 양봉이 이루어진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천을 따라 나 있다. 그리고 모동∼선산간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횡단하고 있으며, 옥산∼상주간의 군도가 면의 북부를 통과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초오리에 사지(寺址), 무곡리에 폐탑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시설은 총 22개소[기독교(개신교) 17개소, 천주교 2, 기타 3]가 있다.

  1. 낙동면(洛東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91.11㎢, 인구 4,183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촌리이다. 고려시대까지는 상주목의 장천부곡(長川部曲)이었다. 그런데 한말에 이르러 장천면(長川面)이라 한 뒤, 문현 · 문산 등 7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동면(外東面)의 장곡 · 덕촌 등 18개 리를 병합해 17개 리로 개편하고, 낙동강의 이름을 따서 낙동면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는 여러 개의 구릉과 낙동강의 범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서부는 병풍산(屛風山, 366m) · 갑장산(甲長山, 806m) · 수선산(修善山, 684m) 등을 잇는 산릉이 경계를 이루며, 남쪽에는 삼봉산(三峰山, 448m) · 복우산(伏牛山, 509m)이 면의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낙동강이 동북부 경계를 따라 흐르며, 서남단 산지에서 발원한 장천이 면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그래서 하천연안에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21.85㎢로 24.0%, 임야면적 54.42㎢로 59.8%, 기타 16.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5.79㎢로 72.3%를 차지하고, 밭이 6.06㎢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농업으로는 축산, 과수, 시설원예 등이 매우 발달되어 고소득 작목 중심으로 영농하고 있으며 특히 한우사육은 5,434두로서 상주시 전체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낙동면 농촌지도자회를 중심으로 상주게르마늄 일품쌀을 생산하여 타 지역과 차별화된 고품질의 쌀 생산으로 농업경쟁력을 제고하고, 낙동면 장곡리를 중심으로 한 시설원예재배는 면적이 확대되고 있어 시설원예단지로 발전하고 있고, 양계 · 양돈 등 축산업은 시설현대화와 고급육 생산으로 농가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의 북쪽을 동서로 지나고, 선산∼상주를 잇는 지방도가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운평리에 의암고택, 승곡리에 양진당과 오작당, 화산리에 김일(金鎰) 장군의 전적비, 내곡리에 김일 장군 딸의 효녀각이 있다. 운평리에서 채석되는 구상화강암은 거북돌로 불리기도 하는 천연기념물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교가 있다.

상촌(上村) · 낙동(洛東) · 장곡(長谷) · 구잠(九潛) · 물량(物良) · 분황(分皇) · 성동(城洞) · 신상(新上) · 화산(花山) · 내곡(內谷) · 운평(云坪) · 비룡(飛龍) · 용포(龍浦) · 수정(水晶) · 신오(新梧) · 유곡(柳谷) · 승곡(升谷) 등 17개 리가 있다.

  1. 내서면(內西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0.66㎢, 인구 1,870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촌리이다. 신라 때부터 상주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상주가 군으로 될 때 상주의 서쪽이 되므로 내서면이라 했고, 유정 · 내동 등 6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1개 리는 상주면으로, 2개 리는 외서면으로 할양하였다. 그 뒤 외남면의 이동(梨洞)을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했으며, 1986년 상주읍의 시승격에 따라 연원리(蓮院里)와 남장리(南長里)가 상주시로 편입되어 9개 이를 관할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지형이 동서로 장방형을 이루고, 북부와 남부에 산지가 발달해 남부에는 백학산(白鶴山, 615m), 북부에는 소머리산 · 노음산 등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에는 북천이 동류해 낙동강의 지류인 남천과 합류한다.

총경지면적 9.98㎢로 12.4%, 임야면적 65.83㎢로 81.6%, 기타 6.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92㎢로 12.4%를 차지하고, 밭이 4.06㎢로 40.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그 외에도 탈피 표고, 곶감, 과수, 축산 복합영농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곶감의 경우는 수확량의 상주시의 20%를 차지한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또한, 내서∼농암간 및 황간∼내서간의 군도가 북부와 남서부 지방을 각각 지난다. 문화유적은 북장리에 북장사(北長寺)가 있고, 낙서리의 천제당(天祭堂)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신촌(新村) · 능암(綾巖) · 북장(北長) · 고곡(古谷) · 서만(西灣) · 서원(西院) · 낙서(洛西) · 평지(平地) · 노류(蘆柳) 등 9개 동이 있다.

  1. 모동면(牟東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70.50㎢, 인구 2,553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호리이다. 본래 신라의 도량현(刀良縣)인데, 경덕왕 때 도안(道安)현으로 고쳐서 화령군에 속하였다. 그 뒤 1018년(현종 9) 중모현(中牟縣)으로 고쳐 상주에 소속되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가 군이 될 때 중모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모동면이라 했고, 원산 · 송산 등 45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남면의 신안리(新安里)와 공성면의 신기리(新基里) · 우하리(于下里) 일부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동 · 서 · 남부는 성봉산 · 백학산 · 한성봉(漢城峰, 934m: 2007년 중앙지명위원회에서 포성봉을 한성봉(漢城峰)으로 명칭 변경) · 지장산(芝庄山, 772m) 등을 잇는 산지로 에워싸여 있고, 북부는 틔어 있다. 중앙은 저지대로, 석천(石川)과 신천(新川)이 Y자형으로 관류한다. 그리고 합류하는 부근과 그 하류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2.13㎢로 17.2%, 임야면적 52.02㎢로 73.8%, 기타 9.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09㎢로 66.7%를 차지하고, 밭이 4.04㎢로 33.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사과 · 배 등의 산출이 많고, 호두 · 도토리 · 은행 등 임산물도 많이 생산된다. 돼지 사육은 군내 1위로 그 외 개 · 오리도 사육한다. 특히, 이동리의 윗배울에서는 고추 · 인삼 등의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아랫배울에서는 사과를 많이 생산한다. 용호리에는 우시장이 선다.

교통은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모동∼현서간의 지방도가 동부지방과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백화산에 신라 때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금돌성, 용호리에 삼층석탑, 수봉리에 옥동서원, 정양리에 세심석(洗心石)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1. 모서면(牟西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4.98㎢, 인구 2,415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포리이다. 본래 신라의 도량현(刀良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도안현으로 고쳐서 화령군에 속하였다. 그 뒤 1018년(현종 9)에 중모로 고쳐서 상주에 속하게 되었다. 1895년 상주가 군이 될 때 중모현의 서쪽이 되므로 모서면이라 하고, 노산 · 대표 등 4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2개 리로 개편되었다. 1966년 정산리(井山里)에 서부출장소를 설치하고, 득수 · 백학 · 정산 · 호음 등 4개 리를 관할하게 한 뒤 1987년 유방리(柳坊里)를 득수리로 개칭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 산지 동단에는 백학산이 솟아 있고, 서부 산지에는 팔음산 · 천금산(千金山, 465m)을 포함한 소백산맥과 한성봉(漢城峰, 934m: 2007년 중앙지명위원회에서 포성봉을 한성봉(漢城峰)으로 명칭 변경) · 주행봉이 있는 백화산맥(白華山脈)이 마주 보고 있다.두 산맥 사이에 금상천(錦上川)이 남류하면서 좁고 긴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중앙의 구릉들 사이에는 석천과 그 지류가 흐른다. 그래서 이들 하천이 형성한 평지와 구릉이 교차해 복잡한 지형을 나타낸다.

총경지면적 16.17㎢로 19.0%, 임야면적 62.76㎢로 73.8%, 기타 7.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79㎢로 60.5%를 차지하고 밭이 6.38㎢로 39.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밤 · 호두 등 임산물 생산도 활발하다. 게다가 한우 · 돼지 · 개 · 산양 등의 가축 사육도 행해진다. 득수리에 흑연광산인 득수광산과 월명광산이 있다.

교통은 동서로는 황간∼내서간의 군도가, 남북으로는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지나 삼포리에서 교차한다. 문화유적은 정산리에 정효각(旌孝閣)이 있고, 그 밖에 백학리에 수령 500년 가량의 느티나무가, 득수리에 수령 700년 가량의 느티나무가 있다.

학교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시설은 교회 6개(개신교5, 천주교1)와 사찰(암자) 5개가 있다.

  1. 사벌국면(沙伐國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1.68㎢, 인구 4,069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담리이다. 신라 초기에는 작은 부족국가(部族國家)로, 사양벌(沙梁伐) · 사불(沙弗) · 사벌(沙伐) 등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 뒤 신라 첨해왕(沾解王)에게 멸망당해 주(州)가 된 사벌주(沙伐州)의 동북부이다. 또한, 신라 경명왕 3년(919) 왕의 제5자 사벌대군(박언창)이 후백제 견훤의 침공으로 본국과의 교통이 두절되면서 고립무원(孤立無援)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벌대군은 사벌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어 항전을 계속하던 중 930년(경순왕 3) 견훤의 기습으로 패망하였다. 당시 사벌국의 도읍지가 바로 이 곳이라 전한다. 한말에 상주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외북면이라 한 뒤 백담 · 덕평 등 18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북(外北)면의 일부와 중북(中北)면의 14개 이, 대평(大坪)면의 3개 이를 병합해 사벌국의 옛 이름을 따서 사벌국면이라 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는 대부분 구릉성 산지이고, 낙동강이 흐르며 경계를 이룬다. 또한, 남동단에 낙동강의 범람원이 자리잡고 있다. 서부에는 외서천과 동천의 연안에 보기 드문 대규모의 사벌평야가 산지와 병행해 남북으로 펼쳐진다.

총경지면적 24.56㎢로 42.8%, 임야면적 21.54㎢로 37.5%, 기타 19.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9.53㎢로 79.5%를 차지하고, 밭이 5.03㎢로 20.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쌀, 배가 유명한 고장으로 한국 농업을 선도하는 농업의 중심지(벼, 배 재배면적 상주시에서 1위)이다. 쌀과 배의 전국적인 명품화(브랜드화) 추진으로 농가소득을 증대시켜 머물고 싶은 복지 농촌 건설에 면민모두가 앞장서고 있다.

교통은 경북선과 사천∼초산간의 국도가 면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그리고 상주∼풍산간의 지방도가 면의 남동부를 통과하며, 이 사이를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화달리에 사벌왕릉 · 삼층석탑, 금흔리에 정기룡 장군의 묘와 충의사(忠毅祠) · 신도비 및 유물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매호리에 전경세의 유허비와 조우인의 사당이 있고, 매호리에 창녕조씨(昌寧趙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1. 외남면(外南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3.22㎢, 인구 1,619명(202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상리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모두 상주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군의 남쪽 바깥 면이 되므로 외남면이라 했고, 흔평 · 수동 등 5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동(梨洞)을 외서면으로, 왕상(旺上) · 왕하(旺下) · 왕서(旺西) · 왕신(旺新)을 공성면으로, 상두동(上杜東) · 하두서(下杜西)를 청리면으로 이관한 뒤 8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동부일대는 남천의 지류가 수지상 하계망을 펴고 동류하면서 그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리고 서 · 남 · 북부는 산지로 되어 있어 서산 등 5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총경지면적 8.98㎢로 27.0%, 임야면적 20.55㎢로 61.9%, 기타 11.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00㎢로 66.8%를 차지하고 밭이 2.98㎢로 33.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다. 감, 사과, 복숭아,포도, 배 등 각종 과일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감, 포도, 복숭아 재배는 고소득을 올리는데 기여한다.

구서리에 수출용 화강석의 채석장이 있다. 교통은 면의 동남부를 상주∼옥산간의 군도가 통과해 도심지와 연결될 뿐이어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상리에 옥성서원, 신촌리에 주현원의 효자각이 있으며, 소상리에는 약 450년 된 은행나무와 팽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

  1. 외서면(外西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8.08㎢, 인구 2,590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곡리이다. 신라 때부터 사불(沙佛) · 사벌국(沙伐國) · 사벌주(沙伐州) · 상주(上州) · 상주(尙州) · 상주목(尙州牧) 등 상주의 관내에 속해 있었다. 1895년 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상주읍내 서쪽이 되므로 외서면이라 해 고지 · 연봉 등 4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서면의 3개 리, 함창군 남면(南面)의 2개 리 및 수상면(水上面)의 상흘리 일부를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뒤에 다시 내서면에 서만리, 공검면에 양정리와 화동리의 일부, 그리고 상흘리를 할양했고, 1986년 남적리(南積里)를 상주시로 편입시켰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는데, 남쪽 경계에 노음산, 북쪽 경계에 남산이 솟아 있다. 이 산지를 외서천이 남북으로 양단하면서 동류하는데, 연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평야는 사벌평야에 연결된다. 서부에는 이안천이 북류하면서 산지를 개석하고 좁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총경지면적 13.16㎢로 14.9%, 임야면적 69.16㎢로 78.5%, 기타 6.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83㎢로 59.5%를 차지하고, 밭이 5.33㎢로 40.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좀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특히 친환경쌀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연봉배, 야콘, 고추, 표고버섯이 주요 농작물이다. 이천리에서는 고공제품(藁工製品)을 생산한다.

교통은 면의 동부에 경북선과 사천∼초산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내서∼농암간 및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중앙부에서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백전리에 도요지, 우산리에 대산루 · 병암고택 · 우복종가 · 우산동천(愚山洞天), 연봉리에 연봉정(蓮峰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1. 은척면(銀尺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3.95㎢, 인구 1,514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중리이다. 신라 초기에는 사불국(沙佛國)과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각 일부 영역이었다.

그 뒤 사벌주(沙伐州)와 고동람군(古冬攬郡) · 상낙군(上洛郡)과 고릉(古陵) · 상주(尙州) 및 고령(古寧) 등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상주목의 관내에 있다가, 1895년 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은척산의 이름을 따서 은척면이라 하였다. 그리고 수예 · 어운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창군(咸昌郡) 수상면(水上面)의 4개 리와 상서면(上西面)의 일부를 병합한 뒤 은척면이 되었다. 1987년 공검면 하흘리를 편입해 10개 이로 개편했으며,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북동부와 중앙부에 평지가 조금 분포할 뿐 대부분 산지로 되어 있다. 서북부에 칠봉산(七峰山, 600m), 남단에 남산(南山, 822m), 북단에 작약산(芍藥山, 763m)이 솟아 있다. 서부 산지에서 발원한 이안천이 면의 중앙을 동류하므로, 하천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하였다.

총경지면적 8.89㎢로 16.5%, 임야면적 40.80㎢로 75.6%, 기타 7.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67㎢로 63.78%를 차지하고, 밭이 3.22㎢로 36.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보리 · 콩 등도 생산된다. 감이 많이 산출되며, 특산물로 참기름이 유명하다. 밤 · 호두 · 도토리 · 버섯 · 약초 · 사료 · 산나물 등의 임산물과, 산양 · 토끼 · 한우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교통은 면의 북부에 농암∼함창을 잇는 지방도와 농암∼내서를 잇는 군도가 동부에 치우쳐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황령리 칠봉산에 황령사(黃嶺寺), 명승지로는 두곡리에 수령 350년에 둘레가 3m나 되는 뽕나무가 있다. 또한, 우기리 옻샘걸마을에는 피부병이나 옻에 효험이 있는 샘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1. 이안면(利安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2.35㎢, 인구 1,986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범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에서는 고동람군(古冬攬郡) · 고릉(古陵) · 고령(古寧)에 속해 있었다. 964년(광종 15) 함령군의 관내였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목에 속했다가 함창현에 귀속되었다. 그 뒤 1171년(명종 2)에는 함창감무(咸昌監務)의 관할 아래 있었다. 1413년(태종 13) 함창현에, 1895년에는 함창군에 속하였다. 그리고 이안천의 아래쪽에 위치했으므로 수하면(水下面)이라 했고, 모정 · 율정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창군이 상서면(上西面)의 18개 리와 상주군 은척면의 하신리(下新里) 일부를 병합해 이안부곡(利安部曲)이라 했던 옛 이름을 따서 이안면이라 했고, 상주군에 편입시켰다. 1973년에 저음리(猪音里)를 문경군 가은읍으로 이관하고 12개 리로 개편했으며,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남부는 대가산(大佳山, 325m) · 숭덕산(崇德山, 228m) 등의 낮은 산지이며, 북부는 작약산(芍藥山, 763m) · 수정봉(水晶峰, 487m) 등이 솟아 있는 높은 산지이다. 남부 경계 가까이 이안천이 동류하고, 그 지류는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면의 동부를 관류해 함창읍과의 경계를 이루며, 하천 연안에 넓은 함창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55㎢로 22.1%, 임야면적 34.10㎢로 65.1%, 기타 12.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36㎢로 72.4%를 차지하고, 밭이 3.19㎢로 27.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지역특산물로는 명주, 오이, 토기가 유명하다. 삼한시대 지배계급이 입어왔고 예로부터 동서양을 불문하고 의류소재중 최고의 옷감인 전통 명주의 주생산지 이며 또한 깨끗한 물과 자연친화적 유기농법으로 재배 생산하고있는 이안 오이는 이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며 소득 구심작목이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면의 남동 경계를 따라 통과하고, 증평∼문경간을 잇는 지방도가 면을 동서로 관통한다. 문화유적은 양범리에 함양김씨 효자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분교 1개 교가 있다.

  1. 중동면(中東面)

시의 동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7.36㎢, 인구 1,324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상리이다.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고, 신라 때는 사벌주(沙伐州)에 속해 있었으며, 그 뒤 계속 상주목(尙州牧)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목이 군으로 개편되면서 중동면이라 칭했고, 회상 · 회화 등 2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남면(丹南面) 정곡리(鼎谷里)를 병합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서부 경계를 따라 낙동강이 흐르고 북부에 건지봉이 솟아 있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낙동강 곡류의 매상부에만 범람원이 있다.

총경지면적 10.39㎢로 20.1%, 임야면적 29.91㎢로 58.0%, 기타 21.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35㎢로 70.7%를 차지하고, 밭이 3.04㎢로 29.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평야지 농업중심 고장으로 대표 농산물로는 지난 2001부터 죽암지구 번개들 70여ha의 우렁이 농법 무공해쌀이 명성을 높여가고 있으며, 또한 중동배영농조합법인을 줌심으로한 1400여톤의 중동배와 주민들의 고소득작물이 되고 있는 잎담배 생산 그리고 한우사육이 지역의 주요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98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전국 제일의 덕암산 상주활공장이 회상리에 위치하여 주말이면 전국의 패러글라이딩 동호인과 모형항공기 동호인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MBC창사 40주년 기획드라마 상도 셋트장이 낙동강변에 자리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교통은 낙동∼단양을 잇는 지방도와 낙동∼함창간의 군도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각각 남북으로 통과한다.

이 곳은 이른바 이수[二水: 낙동강 · 위강], 삼산[三山: 속리산 · 팔공산 · 일월산]이 취정(聚精)한 명승지라 한다. 문화유적은 우물리에 수암종택 · 청룡사(靑龍寺) · 봉황성(鳳凰城)이 있으며, 간상리에는 동구 밑에서 정월 보름부터 3일간 동신제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1. 청리면(靑里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9.59㎢, 인구 2,719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장리이다. 신라 때 음리화현(音里火縣)으로, 경덕왕이 청효현(靑驍縣)이라 고쳐서 상주에 속하게 하였다. 그 뒤 고려시대에 청리현(靑里 또는 靑理縣)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상주목의 청리현이었다. 한말에 이르러 청리현의 남쪽이 되므로 청남면이라 했고, 마공 · 봉계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지(古支)와 회룡(回龍)의 2개 리를 공성면(功城面)에 할양하였다. 그리고 청동면(靑東面)의 43개 리와 외남면(外南面)의 상두동리(上杜東里)와 하두동리(下杜東里)를 병합해 12개 리로 개편한 뒤 옛 현의 이름을 따서 청리면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 · 남 · 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면계에 조양산(485m) · 수선산(修善山, 684m) · 기양산 · 서산 등이 솟아 있다. 남천이 서부에 치우쳐 북류하고, 북부의 남천 연안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청상지(靑上池) · 매락지(梅洛池) · 정오리지(停烏里池) 등의 저수지가 있어 농업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총경지면적 13.52㎢로 34.2%, 임야면적 20.40㎢로 51.5%, 기타 14.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77㎢로 72.3%를 차지하고, 밭이 3.75㎢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생산고는 낮은 편이다. 사과 · 배 등의 과수재배와 축산, 원예 등 복합영농으로 전환하며, 곶감이 특산물이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천을 따라 면의 서부를 통과하고,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외남간의 군도가 면의 중부를 동서로 지난다.

문화유적은 청하리에 수선서당, 하초리에 서산사, 삼괴리에 삼괴정, 가천리에 화당(華堂)과 상주증손향약 · 월간창석형제급난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원장(遠墻) · 청상(靑上) · 월로(月老) · 청하(靑下) · 마공(馬孔) · 가천(佳川) · 하초(下草) · 수상(水上) · 덕산(德山) · 율(栗) · 삼괴(三槐) · 학하(鶴下) 등 12개 리가 있다.

  1. 화남면(化南面)

시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4.39㎢, 인구 777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온리이다. 본래 신라의 답달비(答達匕) · 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化寧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시대는 1413년(태종 13) 현으로 고쳐서 상주목에 귀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화북면(化北面)이었는데, 그 곳에 설치되었던 남부출장소(南部出張所)가 1950년 화남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소백산맥에서 뻗어나온 높고 험한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쪽에 형제봉(兄弟峰, 803m), 북동쪽에 봉황산(鳳凰山, 741m), 동쪽의 천택산(川澤山, 683m) 등이 있다. 특히, 북서쪽은 소백산맥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며,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위치한 소백산국립공원에 접하고 있다. 하천으로는 금계천(錦溪川)이 면의 중앙을 동서로 흐르고 있다.

총경지면적 5.26㎢로 9.7%, 임야면적 46.86㎢로 86.2%, 기타 4.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2.46㎢로 46.8%를 차지하고, 밭이 2.80㎢로 53.2%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미작 중심에서 고소득작목으로 탈바꿈하는 상태로 과수(포도, 배, 사과) 농사와 인삼, 더덕, 담배, 고추 등으로 농가소득을 높이고 있다.

교통은 상룡 · 평온 · 적암의 국도가 동서방향으로 면의 중앙을 통과한다. 그리고 평온에서 동관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군도와 상곡 · 동관 · 상오 · 화북으로 이어지는 남동방향의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소곡리에 노후(盧珝) · 노홍(盧鴻)의 2개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또 동관리와 화서면 하송리 사이의 대궐터에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다. 교육기관은 없다.

  1. 화동면(化東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6.15㎢, 인구 2,094명(2023년 현재). 면소재지는 이소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 · 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쳐서 상주목에 속하게 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4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동면으로 되어 9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소백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지와 구릉지로 되어 있으며, 서남단에 팔음산(762m)이 있고, 중앙을 석천 및 그 방사상 지류가 개석해 좁고 긴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90㎢로 21.2%, 임야면적 39.34㎢로 70.0%, 기타 8.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43㎢로 62.4%를 차지하고 밭이 4.47㎢로 27.6%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밖에 팔음산 포도, 오이, 인삼, 감자, 택사, 천마, 배, 사과 등이 있다. 특히 팔음산 포도는 2004년도 소비자가 뽑은 7대 농산물에 선정되었다.

교통은 동서로 내서∼평산을 잇는 군도가 통과하고, 남북으로는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선교리에 봉암서원 · 응암서원, 반곡리에 어만각(御挽閣)이 있다. 판곡리 일대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왜가리가 많이 찾아와 서식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이소(以所) · 선교(仙橋) · 판곡(板谷) · 어산(於山) · 신촌(新村) · 반곡(盤谷) · 보미(甫尾) · 양지(陽地) · 평산(平山) 등 9개 리가 있다.

  1. 화북면(化北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99.40㎢, 인구 1,690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유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 · 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에 이르러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친 뒤 상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 상주군으로 개편하면서 중화(中化)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화북면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상봉 · 소곡 등 3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1961년 21개 리로 나뉘었으며, 1966년 평온리에 남부출장소, 용유리에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시내에서 가장 큰 면으로 남북이 길고, 전면이 산지로 되어 있다.

동부는 청화산(靑華山, 970m) · 도장산(道藏山, 828m) 등을 잇는 산릉이 면의 경계를 이루며, 서부는 묘봉(妙峰, 874m) · 관음봉(觀音峰, 985m) · 문장대(文藏臺, 1,033m) · 비로봉(毘盧峰) · 천황봉(天皇峰, 1,058m) · 형제봉(兄弟峰, 803m) 등이 솟아 있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도계를 이룬다.

남쪽은 이안천의 상류로 금계천(錦溪川)과 그 지류들이 흐르며, 북쪽은 화양천(華陽川)의 상류가 거의 직선으로 산지 사이를 북류하면서 좁고 긴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총경지면적 6.95㎢로 7.0%, 임야면적 88.87㎢로 89.4%, 기타 3.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50㎢로 50.4%를 차지하고, 밭이 3.45㎢로 49.6%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 외에도 문장대복수박, 꿀배, 자두, 담배, 오이, 가지, 호박, 오미자,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문장대송이, 청화포도, 청화산청정채소, 속리산 한봉, 인삼이 농가소득증대에 한 몫하고 있다.

교통은 김천∼마성간의 지방도와 노평∼점촌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장암리에서 분기한 군도가 운흥리에서 거창∼문산을 잇는 국도에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장암리에 견훤산성, 상오리에 칠층석탑, 용유리에 늑천정 · 원적사(圓寂寺)가 있다. 또한, 운흥리에는 용화온천(龍華溫泉)이 있다. 명승지로는 장각폭포(長角瀑布) · 옥량폭포(玉樑瀑布) · 병천정사(甁泉精舍) · 왕비암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 화서면(化西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9.52㎢, 인구 2,799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봉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 · 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도 그대로 따랐다. 1413년(태종 13) 화령현 상주목에 속하였다. 1895년 상주군으로 개편할 때 중화(中化)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화서면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4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북면의 서산리(西山里)와 내서면의 율원리(栗院里) 일부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속리산의 남맥(南脈)이 분수령을 이루는 지대이다. 따라서, 남서부에 석천이 형성한 충적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로서, 경계상에 봉황산(鳳凰山, 741m) · 천택산(川澤山, 683m) · 원통산(圓通山) 등이 솟아 있다. 봉황산 남쪽은 석천 연안의 평야를 분지상으로 하는 하나의 모식적인 산간분지이다. 면의 서쪽 경계의 산지는 금강과 낙동강 양 하계(河界)의 분수령에 해당된다.

총경지면적 12.87㎢로 21.6%, 임야면적 42.65㎢로 71.7%, 기타 6.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99㎢로 54.3%를 차지하고, 밭이 5.88㎢로 45.7%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와 더불어 고추, 감, 오이 등 특수작물이 있다. 특히 "문장대 포도"와 "화령(화서)사과"가 유명하다. 그리고 수백년 이상의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과 송이버섯이 자생하기 좋은 날씨와 환경으로 화령지역의 자연산 송이버섯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 받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을 동서로 관통한다. 그리고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하며,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북동부로 나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봉리에 석조보살입상, 사산리에 옥간사 · 노소재문적 · 기영회도, 봉촌리에 화령고성(化寧古城), 상현리에 백운암(白雲庵) · 반송, 하송리에 청계암(淸溪庵) 등이 있다. 상곡리 쇳골에는 조선시대 봉수대의 유적이 있으며, 마을입구에 상주향교의 제향기(祭享器)를 구웠다는 사기그릇 가마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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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상주시통계연보』(상주시, 2008)
『경북통계연보』(경상북도,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경상북도사』(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상주의 얼』(상주군, 1982)
『하천』(건설부, 1979)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경북향토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상주시(www.sa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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