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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장(色掌)

    조선시대사제도

     조선시대 성균관 소속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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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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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교육, 신분, 직책
    시행시기
    조선시대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성균관 소속의 임원.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동·서재에서 각 2인씩 선임되었는데 상급자를 상색장, 하급자를 하색장이라 하였다.
    또, 색장 위에는 장의(掌議)주 01)가 있었고 아래에는 조사(曹司)가 있었다. 이들은 성균관의 학생임원으로 동·서재에 당직하면서 문묘(文廟)의 수호·관리 및 학생자치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특히, 색장은 매일 아침·저녁 식당에서 도기(到記)주 02)를 확인, 감독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는 성균관유생들의 원점(圓點) 산정기준이 되었다.
    색장의 유고시에는 조사가 이 일을 맡았다. 도기의 감독을 게을리하거나 고의로 회피하는 경우는 처벌을 받았다. 색장을 비롯한 재임은 매년 춘추 2회의 석전(釋奠) 때 유생총회인 재회(齋會)에서 선출되었다.
    신방(新榜 : 갓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학생들)에서 하색장을 맡고, 전방(前榜)주 03)에서 상색장, 그 전방에서 장의를 맡는 것이 관례였다. 재임이 사임하고자 할 때는 동료 재임에게 사표를 제출하여 대사성에게 보고, 수리한 뒤 후임자를 선임하였다.
    그러나 당직일수가 50일 미만인 자는 사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색장은 장의와 함께 조선시대 성균관 학생간부의 하나로서 유생들의 자치활동과 여론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이들은 조선 후기의 당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재임을 놓고 싸우기도 하였는데, 정조대 이후는 노론과 소론계열의 유생들이 독차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학생대표격
    주02
    출석부
    주03
    전번 합격생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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