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인 1945년 11월 100명의 인사들로 구성된 조선교육심의회가 구 경성제국대학 건물을 활용하여 국립종합대학교를 세울 것을 제안하였다. 미군정청 학무국이 이 제의에 호응하여 1946년 7월 13일 ‘국립서울대학교 안’을 발표하였고, 8월 22일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이 공포되었다.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은 현대적인 국립종합대학교 설치를 규정한 것으로 서울 및 그 근교에 있는 기존의 여러 교육기관을 통합, 개편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1946년 8월 22일 공포된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의거하여 1946년 10월 국립서울대학교로 개교하였다. 9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으로 편성하고, 초대 총장에 앤스테드(H. B. Ansted)가 취임하였다.
9개 단과대학은 문리과대학(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과계통과 이공학부 이과계통의 통합), 법과대학(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계통과 경성법학전문학교의 통합), 공과대학(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공과계통과 경성공업전문학교 및 경성광산전문학교의 통합), 의과대학(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통합), 농과대학(수원농림전문학교의 개편), 상과대학(경성경제전문학교의 개편), 치과대학(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의 개편), 사범대학(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의 통합), 예술대학(미술부와 음악부의 신설)이었다.
그러나 국립서울대학교 안은 많은 논란을 불러와 ‘국대안 반대운동(國大案反對運動)’이라는 파동을 겪게 된다. 이 파동은 처음 미군정 학무국이 국립서울대학교 안을 계획, 추진하면서 통합 대상인 교육기관들과 사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단순히 교육계의 논쟁에 한정된 것이었으나, 점차 그 논쟁이 격화됨에 따라 학원에 침투하려던 좌익세력의 책동과 겹치면서 민족진영과 좌익진영의 대결이라는 정치적, 사상적 투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국대안 반대운동은 1947년 2월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동맹휴학한 대학이 57개, 동맹휴학한 학생은 약 4만 명에 달하였다.
한편으로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국대안 지지운동’ 또한 벌어져 동맹휴학 반대를 선언하고 대학수업을 계속하도록 요구하였다. 결국 1947년 5월 동맹휴학을 주동한 4,956명의 학생이 제적되었다가 그 해 8월 광복절에 제적학생 중 3,518명이 복적되었다. 이처럼 개교 직후 1년여를 국대안 반대운동으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1947년 9월 학기부터 수업이 정상화 되었다.
1948년 8월 새 출발의 의미로 서울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이후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종합대학교로 내실을 기하려 할 즈음 6·25전쟁이 일어나 부산 피난지에 타 대학과 공동으로 전시연합대학을 설치하였다가 1952년 3월 전시연합대학이 해체됨에 따라 부산에 본교를 설치하고 교육을 계속하였다.
피란기간에도 단과대학의 증설과 분화가 계속되어 1950년 9월 사립 서울약학대학을 약학대학으로 편입하고, 1953년 4월 예술대학의 음악부와 미술부를 각각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으로, 농과대학 수의학부를 수의과대학으로 개편하여 총 12개 단과대학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서울 수복 후 1955 행정대학원과 보건대학원을 신설하고, 1957년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개설하였으며, 1961년 12월 수의과대학을 농과대학 수의학과로 개편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경제개발 기조에 따라 국가개발에 직결되는 농·공·의학 분야의 단과대학이 외국 원조에 의해 확대 개편되었다.
1962년 2월 사법대학원, 1963년 4월 교육대학원, 1965년 11월 경영대학원, 1967년 12월 신문대학원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1968년 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를 설치하였다. 1968년 12월 가정대학을 신설하고, 1971년 사법대학원을 폐지하였다. 1972년 3월 방송통신대학을 부설하고, 1973년 1월 환경대학원, 1974년 1월 수의과대학을 신설하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 단과대학들은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문리과대학·법과대학), 종로구 연건동(의과대학·간호대학·치과대학), 성북구 종암동(상과대학), 노원구 공릉동(공과대학), 중구 을지로(사범대학), 경기도 수원시(농과대학·수의과대학)에 분산되어 있었다.
이에 종합화 계획을 마련하여 1975년 2월 연건동·공릉동·수원의 단과대학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단과대학들과 대학원들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고, 경영대학원·교육대학원·신문대학원·문리과대학·상과대학·교양과정부를 폐지하고, 인문대학·사회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경영대학을 신설하였다.
1980년 공과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1982년 2월 방송통신대학이 독립하였다. 1991년에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변경하였고, 1992년 3월 간호대학을 신설하고, 농과대학을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개편하였다.
1995년 학부제를 시행하여 경제학과와 국제경제학과를 경제학부로 개편하였고, 1997년 2월 국립대학간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고, 가정대학을 생활과학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3월 개교 이래 가정형편이나 질병 등으로 퇴학·제적된 1만여 명 학생의 재입학을 허용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인지과학연구소·인문정보연구소, 10월 국제백신연구소를 신설하였다.
1998년 1월 교수윤리위원회를 발족하고, 8월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을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10월 규장각의 『조선왕조실록 』 세계기록유산 등록기념 특별전시회를 열고, 상징조형물을 제막하였으며, 12월 디지탈조선일보와 TEPS(영어능력평가시험) 독점시행 계약을 체결하였다.
1999년 서울대학교공무원직장협의회를 발족하고,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을 개관하였으며, 8월 BK21사업에 과학기술 분야 12개 사업단과 핵심 분야 18개 사업팀이 선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학술정보원을 개원하였으며, 12월 1984년 총학생회 부활 이후 최초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당선되었다.
2000년 6월 도쿄대학교·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고, 8월 공과대학 엔지니어하우스를 개관하였으며, 9월 두레문예관을 개관하고, 학생지원센터를 신설하였다.
2001년 포스코생활체육관을 개관하였으며, 교수학습개발센터(CTL)를 신설하고, 국내 최대 규모의 학술연구용 슈퍼컴퓨터의 가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규장각 고문서 디지털화 작업을 완료하고, 기록관·방사선연구센터를 설치하였으며, 전국교수노동조합의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2002년 2월 인문학연구원·여성연구소·사회발전연구소·농업생명과학연구원을 신설하였고, 9월에는 경영대학이 국내 최초로 세계경영대학협회(AACSB) 인증을 획득하였으며, 12월 e비지니스연구센터·중앙교육연구전산소 리눅스허브센터를 개소하였다.
2003년 1월 미술관을 준공하고, 2월에 수원에 있던 농과대학·수의과대학을 관학캠퍼스로 이전하였으며, 3월 생명공학공동연구원·국제대학원을 신설하였다. 같은 해 6월 인문학연구원에 한국문학연구소·중국어문학연구소·문화유산연구소·언어연구소, 농업생명과학연구원에 농생명과학정보연구소를 신설하였고, 9월 생명과학대학을 관악캠퍼스스로 이전하였다.
2004년 2월 국제학연구소를 신설하고, 3월 예술계 분야(음악대학·미술대학·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을 개설하였다. 4월에 산학협력재단을 발족하고, 11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일본연구소를 신설하였으며, 개교 이래 첫 여성 총학생회장이 선출되기도 하였다. 12월에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개교 이래 최초로 탈북자가 합격하였다.
2005년 1월 실험동물자원관리원, 3월 치의학대학원을 신설하고, 10월 서울대병원에 세계줄기세포허브를 개소하였다. 2006년 1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과 교류협정을 체결하고, 2월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를 통합하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개편하였다.
같은 해 3월 「서울대학교교수윤리헌장」을 제정·공표하고, 4월 공과대학 여성동문 1천명 기념 홈커밍 행사를 거행하였다. 6월 미술관을 개관하고, 7월 도쿄대학교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 』 오대산본 47권을 규장각에서 공식 인도받았으며, 8월 경영전문대학원을 신설하고, 개교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UI 선포식을 가졌다. 또한 11월에는 학생 봉사단체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을 발족하였다.
2007년 4월 유럽·아시아·태평양 과학연구 네트워크(Eurasia Pacific Uninet)에 가입하고, 6월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2007∼2025)을 발표하였다. 7월 제1회 국제하계강좌(ISI)를 실시하였으며, 12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국제한국학센터 설립하였다.
2008년 3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출범하였고, 인문학술정보관을 개관하였다. 같은 해 4월 제1회 학부모초청 행사를 가졌고, 6월 연구윤리 지침을 제정하였으며, 10월에는 서울대학술연구상·서울대발전공로상을 제정하고, 제1회 한국학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11월에는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가 출범하였다.
2009년 3월 융합과학기술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을 개원하고,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였으며, 옥스퍼드대학교에 규장각 장서 400권을 기증하였다. 7월 일반시민을 위한 교양강좌를 개설하고, 9월 WCU 3개 학과와 4개 전공을 개설하였다. 10월에는 국문 웹진 『x서울대 e야기』를 창간하였다.
2010년 국제교류의 확대를 위한 개방형 글로벌 교육기구, 글로벌 협동연구·창업단지, 국제협력기구의 연합체 실현을 목적으로 국제캠퍼스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경기도 시흥시와 체결하였고, 2010년 5월 평생교육원을 개원하였다.
2010년 12월「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의결, 공포되었다. 2011년 12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출범하였다.
학생운동 측면에서는 설립 당시의 국대안 파동을 이겨내고, 1950년대 말 자유당 정부의 독재와 3·15부정선거로 인하여 4·19가 일어났을 때 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 뒤 유신체제와 5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학생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창학이념은 교기에 라틴어로 표기되어 있는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 학문의 이론과 응용방법을 연구·교수하며, 창의적 미래 지도자 양성을 교육목표로 해서 학문의 대학, 민족의 대학, 세계의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1995년 ‘서울대학교 2000년대 미래상’을 만들어 그 모토를 이어가면서 국제수준의 대학원 중심 대학을 표방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비약을 목표로 2007년에는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여 2010년까지 교육을 세계 최상급 수준으로 격상하고, 2015년까지 학제간 연구의 집중지원으로 세계 정상급 연구수준을 확보하며, 2025년에는 세계 정상급 연구중심 대학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구·교육시스템 혁신, 학문 융복합 기반 확대, 창의적 우수인재 육성, 아시아 지식 허브를 발전전략으로 설정하고 실행하고 있다. 연구시스템 혁신 차원에서 세계적 수준의 석학을 초빙석좌교수로 유치하고, 우수학자 육성을 위한 석좌교수제와 중견석좌교수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견석좌교수제는 특히 기초과학 분야 신진교수 중 왕성한 연구 활동으로 탁월한 성과를 낸 교수를 임명하고 있다.
또한 연구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 연구개발 성과급 확대와 함께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인센티브 제도로 학술연구상과 교육상을 제정해서 5년 이상 재직 전임교수 가운데 탁월한 연구성과를 낸 교수에게는 학술연구상, 교육 실적이 뛰어난 교수에게는 교육상을 시상하고 있다. 그밖에 교수 및 연구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교수를 단과대학(원) 10% 이내에서 우수업적교수로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2단계 BK21사업과 인문학 분야 육성을 위한 HK사업을 추진하며, 대학원 특성화 촉진, 경쟁적 연구 분위기 조성, 학과전담 연구지원실 신설 등을 통해 연구중심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선진 연구시스템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교육체제 혁신 방안으로 학부 정원 축소, 대학원 정원 증원, 전공 이수 다양화(연합전공, 심화전공, 자율설계, 복수전공, 연계전공, 부전공)를 시행하고 있고, 이와 함께 기초교양교육을 강화해서 학생자율 프로그램(학생자율연구, 학생자율세미나) 개발, 국내외 사회봉사, 고전독서 강화와 융합교과목 개발 등에 힘쓰고 있다.
학문 융복합 기반 확대 차원에서 기술융합연구원(나노융합연구소·바이오융합연구소·IT융합연구소 등)·융합과학기술대학원·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였고, 그밖에 뇌인지과학과기계항공공학부, 경영전문대학원 EMBA과정, 국제대학원 국제개발정책학과 등 새로운 학문 분야의 학과·전공을 신설하였다.
창의적 우수인재 육성을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해 다면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잠재력 있는 학생 선발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아시아 연구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아시아연구소를 설립하고, 통일평화연구소를 개소해 남북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로서의 통일학 발전을 꾀하는 등 아시아 지식 허브로서의 기능을 강하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 국제교류의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도모해서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조지아공과대학(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 중국 베이징대학교, 독일 마인츠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교((Johannes Gutenberg University Mainz) 등 해외 810여 개 대학·기관과 교류협정을 맺고 교환학생제, 박문학생 프로그램, 복수학위제(듀크대 경영전문대학원 등 12개 대학), 교환교수제, 해외 인턴십, 연수, 유학, 학술교류 등을 시행하고 있다.
교환학생제의 경우 미국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중국 베이징대학,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Berlin) 등 210여 개 대학에 매년 400여 명을 보내고 있고, 30여 명이 미국 스텐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로 어학연수를 가고 있다.
또한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해서 매년 300여 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는 등 우수 해외 학생들을 적극 유치해 2009년에는 유학, 어학연수, 교환 및 방문학생 프로그램 등으로 3,700 여명의 외국인 학생이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국제화교육프로그램으로 매년 여름방학 기간 중 한국학 및 동아시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을 초청해 수준 높은 강의를 제공하는 국제하계강좌는 외국인 학생들과 서울대생들에게 이질적인 문화들을 직접 보고 배우는 체험학습 현장이 되고 있다.
언어교육원에서는 서울대학교 구성원에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 밖에도 국가공인 영어능력 인증시험인 ‘TEPS’, ‘TEPS- Speaking & Writing’, ‘u-TEPS’ 등과 중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6개의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SNULT((Seoul National University Language Test)를 연구 개발하고 있다,
계발활동으로 현재 100여 개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매년 5월과 개교기념일인 10월 15일을 전후해서 열리는 대동제에서는 강연회·심포지엄·토론회·모의재판 등의 학술행사를 비롯하여, 연주회·음악감상회·연주공연 등의 예술행사 및 체육대회, 신앙 강좌, 전시회 등의 행사로 꾸며지고 있다.
교내 소식지로 1952년 2월 창간된 주간 『대학신문』, 1995년 창간된 월간『서울대저널』, 2002년 창간된 여성지 『쥬이쌍스』가 있고, 교지『관악』을 1990년에 창간하여 연 2회 발간하고 있다. 국문 웹진으로 2009년 창간된 『x서울대 e야기』가 있다.
2009년 현재 10개 대학원(1개 일반대학원, 9개 전문대학원), 15개 단과대학(83개 학과), 1개 학부에 재학생은 2만 6,030명(학사과정 1만 3,079명, 대학원과정 1만 54명), 전임교원은 1,900여 명, 외국인 교원은 523명이다. 연건캠퍼스에는 의과대학·치과대학·보건대학원·서울대학교병원이 위치해 있다.
부속기관으로 도서관·규장각·기숙사·언어교육원·평생교육원 등이 있고, 부설연구기관에 인문학연구원·사회과학연구원·기초과학연구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반도체공동연구소·법학연구소·농업생명과학연구원 등 100여 개가 있다.
주요 시설·기관 현황은 다음과 같다. 도서관은 중앙도서관 외 분관으로 사회과학도서관·경영학도서관·농학도서관·법학도서관·의학도서관·치의학도서관·국제학도서관이 있고, 분관을 포함하여 300만여 권의 장서, 1만여 종의 학술지, 3만 3,000여 종의 전자저널, 8만 8천여 점의 비도서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국립도서관이었던 규장각은 고서 17만 5,000권, 고문서 5만여 점, 책판 1만 8,000여점을 소장하고 있고, 2006년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하여 연구기관인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재탄생하였다
기숙사인 관악사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및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일반사생동 13동에 2,200여 명, 대학원동 2동에 1,400여 명, 가족생활동 6동에 200여 명 등 총 3,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연건사는 의과대학 등이 있는 연건캠퍼스에 있는 기숙사로 수용인원은 일반사생동 2동에 420여 명, 대학원동 1동에 150여 명으로 총 570여 명이고, 함춘사는 130명, 국제회관은 50여 명이다. 또한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현재 신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