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보령, 서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보령, 서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정의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부여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금강을 경계로 전라북도 군산시, 북쪽은 보령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30′∼126°52′, 북위 35°59′∼36°11′에 위치한다. 면적은 358.01㎢이고, 인구는 5만6910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1개 면, 315개 행정리(1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차령산맥의 말단 여맥이 군의 북부까지 미치고 있어서 그 일부지역만 조금 높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준평원화되어 있다. 이 평야는 호남평야와 연결된다.

보령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장태산(將胎山, 367m)·원진산(遠進山, 271m)·노고산(老姑山, 229m)·석천산(石泉山, 209m) 등이 있고, 군내에 천방산(千房山, 324m)·희이산(希夷山, 329m)·월명산(月明山, 298m) 등 300m 내외의 산이 있다.

원진산에서 발원한 도마천(都馬川)이 봉선지(鳳仙池)에서 한산천(韓山川)과 합류하여 길산천(吉山川)을 이루어 금강에 흘러들며, 판교면 북동부에서 발원한 판교천(板橋川)이 남류하다가 남산들에서 서쪽을 지나 장구만(長久灣)으로 흘러 황해로 흐른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고 관개시설도 잘되어 있어서 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지질은 화강암질 편마암이 대부분이나, 금강과 길산천 주변에 충적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해안선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간만의 차가 4m 이상이나 되며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이 지역이 서남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위도의 내륙지역에 비해 온난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 12.5℃, 1월 평균기온 -2℃, 8월 평균기온 26.5℃이며, 연 강수량은 1,100∼1,300㎜이다.

역사

서천군 내에는 비인면·종천면 등지에 고인돌이 분포해 있어 청동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주민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마한시대에는 이 지역에 비미국(卑彌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서천이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이었으며 한산에는 마산현(馬山縣)이, 비인면에는 비중현(比衆縣)이 있었다. 특히 백제시대에 크게 발전한 곳은 한산으로, 이곳의 건지산성은 백제의 서쪽을 지키는 요충지였다. 백제 멸망 뒤에도 그 유민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756년(경덕왕 15)에 서림군(西林郡)이라고 하였고 한산은 가림군(嘉林郡)의 영현이 되었으며, 비중현은 비인으로 개칭되어 역시 가림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서천은 이 지방 출신인 이언충(李彦忠)이 충선왕에게 공로가 있다고 하여 지서주사(知西州使)로 승격되었다. 한산은 고려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뒤에 지한주사(知韓州使)로 승격되었으며, 감무가 있어 홍산을 겸무하였다. 비인은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뒤에 따로 감무가 두어졌다. 한산 출신인 이색(李穡)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뒤에 한산백(韓山伯)이라는 작위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서천군으로 개칭되었고 한산현이 한산군으로 승격되었으며, 비인은 비인현으로 하여 홍주진관에 속하게 하였다가 그 뒤 비인군이 되었다. 비인현의 만호 김성길(金成吉)은 1419년(세종 원년)에 왜선 50여 척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쳤다. 비인은 그 전에도 해적이 자주 침입했는데 이를 방비하기 위해서 1421년에 성을 쌓았다. 성의 길이는 3,000m, 높이 2m 정도였다.

한산 출신인 이상재(李商在)는 한말 구국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했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898년에 그는 독립협회사건으로 붙잡혔으며, 1902년에는 개혁당 사건으로 다시 구금되기도 하였다.

1913년에 서천군·한산군·비인군이 합쳐져 서천군이 되었다. 1930년 장항항이 개항하였고 1931년에는 장항선 철도가 개통되었다. 1938년 서남면 일부와 마동면 일부가 장항면에 편입, 읍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설립된 군내의 장항제련소는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구리·아연·주석 등의 전문제련소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마서면 남산리가 서천면에, 화양면 구동리가 한산면에, 기산면 이사리와 한산면 송림리가 마산면에, 종천면 흥림리가 판교면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 서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문산면 등고리와 금덕리가 판교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는 기산면 내동리 일부가 화양면 금당리에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서천읍 남산리와 삼산리에 조개무지가, 종천면 산천리와 마서면 한성리 등지에서는 간석기가 각각 발견된 바 있으며, 서면 개야리와 주항리 등지에 기반식 고인돌이 있다.

산성으로는 한산면 지현리의 서천 건지산성(사적, 1963년 지정), 서천읍 남산리의 서천 남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 장항읍 장엄리의 서천 장암진성(충청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 비인면의 성북리 산성·성내리 산성·선도리 산성·장포리 산성, 종천면의 장구리 산성, 판교면의 만덕리 산성, 마서면의 한성리 산성과, 서천읍 군사리에 서천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비인면 성내리에 비인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한산면 지현리에 한산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항읍 장항리에 서천포진영성(舒川浦鎭營城) 등이 있다.

봉수로는 운은산봉수(雲銀山烽燧)·칠지산봉수(漆枝山烽燧)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비인면 성북리의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종천면의 지석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한산면의 지현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문산면의 수암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한산면 지현리에 한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서천면 군사리에 서천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기산면 영모리에 문헌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문산면 수암리에 건암서원(建巖書院)이 있다.

세조 때의 문신 구종직(丘從直)을 배향한 청덕사(靑德祠), 권변(權忭)·권성(權惺)을 배향한 화산사, 윤광의(尹珖儀)를 배향한 옥산사(玉山祠), 그리고 율리사(栗里祠)·검산사(劍山祠)·청절사(淸節祠) 등이 있다.

율리사는 비인면 율리에 있는,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을 비롯하여 7인을 배향한 사우로, 1851년(철종 2) 신씨 후손들과 지방유림이 창건하였다. 이 사우는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던 것을 1898년에 복원하였다. 비인면 구복리에 있는 검산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구황(具滉)을 모신 사우로 1844년(헌종 10)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것을 1979년 다시 복원한 것이다.

비인면 남당리에 있는 청절사는 연산군의 폭정을 극간하다가 유배되었던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유기창(兪起昌) 등 5인을 배향한 사우로 1720년(숙종 46) 창건되어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68년 복원되었다.

한편, 능묘 및 비석으로는 기산면 영모리의 이색선생 묘 일원(충청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과 이색 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의 묘와 신도비, 반공오열사묘(反共五烈士墓) 등이 있다. 반공오열사묘는 6·25동란 당시 북한공산군과 투쟁하다가 적에게 붙잡혀 처형당한 다섯 학생의 합동묘소로, 마서면 송석리 송석초등학교 옆 동산에 있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기산면 영모리의 이색 초상(보물, 1995년 지정)과 가정목은선생 문집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이 있다.

신산리의 서천 이하복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한산면 종지리의 이상재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바디장(국가무형문화재, 1988년 지정), 지현리의 한산 모시짜기(국가무형문화재, 1967년 지정), 서천 부채장(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7년 지정), 동산리의 한산 세모시짜기(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74년 지정), 호암리의 한산 소곡주(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79년 지정), 호암리·동산리·마량리의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1년 지정), 문산면 금복리의 서천 대목장(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0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로는 서면의 마량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965년 지정)이 보호되고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서천향교·비인향교·한산향교 등과 문헌서원·건암서원 등이 있다. 서천읍 동쪽 향교촌의 서천향교는 1413년(태종 13년)에 비인면 성내리 교촌의 비인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한산면 지현리 향교골의 한산향교는 1518년(중종 13)에 창건되었다. 이 세 향교에서는 매년 봄·가을에 석전제(釋奠祭)를 지내고 있다.

기산면 영모리의 문헌서원은 1594년(선조 27)에 설립되었으며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을 배향하였다. 문산면 수암리의 건암서원은 1662년(현종 3)에 설립되었고, 이산보(李山甫)·조헌(趙憲)·조수륜(趙守倫)·조속(趙涑) 등의 문신을 배향하였다. 이들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전에 지방교육기관으로서 많은 유생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한산공립보통학교의 설립이 최초이고, 이어서 이승휴(李承休)가 설립한 기산학교, 김영배(金永培)가 세운 한영학교(韓英學校), 이시재(李時在)가 설립한 기독진신학교(基督進新學校)가 개교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15년 이후 폐교되었다. 그 뒤 1면1교의 교육체제가 갖추어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8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7개교가 있다. 서천문화원이 1965년에 개원하여 향토문화의 개발 및 소개, 민속예술과 문화재 발굴 등의 지방문예진흥활동 등을 통해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행사는 저산문화제가 있는데 그 내용에는 길쌈놀이 시연·모시아가씨 선발 등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널뛰기·연날리기·그네뛰기·윷놀이·돈치기·횃불놀이·고누·닭잡기놀이·숨바꼭질·닭싸움·풍년제·길쌈놀이·한산굿놀이 등이 있다. 풍년제는 논농사일이 끝나고 나서 온 마을 사람들이 떡을 만들고 술을 빚어 농악을 울리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이다.

길쌈놀이는 한산면 일대에서 성행되어온 공동적마(共同績麻)의 일놀이로서 농한기를 이용, 경연회를 벌여 모시길쌈의 전 과정, 즉 모시짜개기, 모시삼기, 돌겻에 올리기와 내려감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마전, 모시의 품질검사 등을 연출하는 놀이이다.

한산굿놀이는 백제 때부터 한산 지방에 성행한 농악과 가면극으로 구성된 놀이로 음력 8월 보름에 농부들이 즐긴다. 처음 농악을 울리면서 대열이 평지에 자리하면 상(上)께 예를 올리고 농악과 함께 굿을 한다.

굿놀이에는 중과 마당쇠 수명, 무당·할머니·농부·처녀·좌평(佐平) 등이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세상을 풍자한 뒤에 무당이 천신에게 기도하고 농악대가 농악을 울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서면의 띠뱃놀이와 동백정(柊栢亭)의 당제 등이 전승되어온다. 서면의 띠뱃놀이는 해안일대에 전승되는 놀이 겸 집단제의로서 음력 정월 초에 풍어와 행상에서의 안전조업을 위하여 거행되는 의식이다.

해가 바뀌고 나서 첫 출어(出漁) 전 정월에 좋은 길일을 정하여 마을 사람 모두가 목욕재계하고 미리 마련한 음식을 산신당에 진설하고 산신제를 올린다. 이 제가 끝나면 농악을 치면서 바닷가로 내려와 용왕제를 지낸다.

이어서 강남신령기(江南神靈旗)·영기(令旗) 등 각 어선의 뱃기를 선두로 열을 지어서 석석이굿·기굿이 벌어지고 무당·화주(化主)·어부들이 농악에 맞추어 춤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숯검정을 칠한 원화장이 용왕밥을 든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나오면 농악은 절정에 달한다. 이때 화주와 무당이 용왕밥을 바다에 던지고, 어부들은 바다를 향하여 여러 번 재배를 한다.

젊은 장정들이 띠배를 메고 나오면 각종 기와 농악대가 띠배를 빙빙 돌며 춤과 노래를 계속한다. 띠배에는 사령기를 비롯하여 많은 기가 꽂히고, 갓쟁이·언청이 등의 허수아비가 세워진다. 농악이 울리는 가운데 띠배가 서서히 바다에 띄워지면 남녀노소 모두가 띠배를 향하여 재배를 계속한다. 띠배가 보이지 않게 되면 절을 그만두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

한편, 서면 마량리의 당제는 약 500년간 지속되고 있는데 동백정에서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모여서 제를 지낸다. 어부들이 흰옷을 입고 참여하여 정성을 다하여 제를 올린다. 이렇게 하여야만 1년 내내 마을이 편안하고 풍어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당제는 용왕제의 성격을 띤 제의이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자연물에 관한 설화, 지명전설, 사찰연기설화, 풍수설화 등이 전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풍수사(風水師)의 묘지설화」·「우물터의 은행나무전설」·「곡성바위전설」·「아기장수설화」·「부내복종(府內福鍾)의 명당이야기」 등이다. 「풍수사의 묘지설화」는 옛날 어느 풍수사가 세 아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죽거든 마을 동쪽에 있는 연못에 수장(水葬)을 하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차마 아버지의 시신을 수장할 수 없어 토장(土葬)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막내 아들이 형들 몰래 석관(石棺)을 만들어 아버지의 유해를 유언대로 연못에 수장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수장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막내 아들은 정승이 되었다고 한다.

「우물터의 은행나무전설」은 500여 년 전의 일이라 한다. 어느 날 장항읍에 있는 전망산(前望山) 기슭의 어느 우물에 중이 나타나 물을 얻어 마시다 우물물에 끌려 들어가 빠져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물을 메우고 장사를 지내주었더니 며칠 후 그곳에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나와 쑥쑥 자랐다.

점을 쳐보니 중의 장삼에 은행이 들어 있어 그것이 싹이 난 것이라고 하였다. 은행나무가 고목이 되고 그 속에 큰 구멍이 났는데 한밤중에 작은 아이가 나막신을 신고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전한다.

현재에도 병이 나면 그 환자의 밥그릇을 나무 부근에 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병이 바로 낫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를 베면 마을에 질병이 돌고, 잎이 무성한 해에는 풍년이 들며, 잎이 무성하지 않은 해에는 흉년이 든다고 한다.

「곡성바위전설」은 다음과 같다. 서천역에서 서쪽으로 4㎞ 쯤 가면 마서면 한성리가 있고, 그 한성리 해변 갈목촌에는 가난한 어부가 딸을 데리고 살았다. 어느 날 어부가 파도에 밀려 부상을 입자 대신 딸이 배를 타고 나갔다가 물에 빠져죽었다. 그 날이 음력 8월 15일이었다. 그 뒤부터 8월 15일이 되면 갈목촌 앞바다에 없던 바위가 물 위로 솟아오르면서 처량한 여인의 곡성이 들린다고 전한다.

「아기장수설화」는 비인의 월명산 4층바위에 얽힌 이야기로, 옛날에 늦도록 자식을 두지 못한 부부가 월명산 아래에서 백일기도 끝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용골대·망골대라고 이름을 붙여 두 아들을 정성껏 키웠는데 무척 빨리 자라서 몇 개월 만에 칼싸움을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두 아들이 잠든 사이 자세히 살펴본 부부는 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있음을 발견하고 역적이 될까 두려워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아들이 언덕 밑에서 놀고 있을 때 돌을 굴렸는데 망골대만이 돌에 깔려 죽고 용골대는 그 길로 집을 나가 중국으로 건너가 청나라 장수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용골대는 인조를 무릎 꿇린 장수가 되었고 그 부모는 그 소식을 듣고 월명산에 숨어 있다 죽고 말았다. 4층바위는 용골대 형제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바위로 높이가 4층이나 된다 하여 이렇게 부른다.

「부내복종의 명당이야기」는 종천면 종천리의 들이 부내복종의 명당자리라는 이야기이다. 조선 때 청나라에 간 사신 하나가 청나라 도학자로부터 명당의 지도가 그려진 부채를 선물로 받았다. 금싸라기 석 되가 나온다는 명당이 그려진 부채를 가지고 바다를 건너오던 사신은 바람결에 부채를 바다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얼마 후 종천을 지나다가 부채 속의 명당자리를 생각하고 땅을 파보았으나 금싸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지함(李之菡)이 종천에 와 백일기도 끝에 현몽한 산신령의 계시대로 명당을 찾아 지장풀로 표시를 해두었다. 표시를 해둔 것에 노한 산신령은 그 일대의 지장풀을 모두 묶어버려 결국 이지함도 부내복종의 명당 터를 찾지 못하고 말았으며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다.

이 밖에도 죽산의 삼형제바위에 얽힌 「효자설화」, 부자간의 사랑이 얽힌 「유부도(有父島)·유자도(有子島)전설」, 중이 죽은 뒤에 자라났다는 「전마산 은행나무설화」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전래되는 민요는 기능요가 중심이며 다른 지방에 비해 그 양이 매우 적다. 농업노동요로는 논농사 노래가 주로 불리는데 각 작업과정마다 노래가 있다. 「모내기노래」는 “에헤이 어허여라 상사듸요/ 노다가소 자다나 가소/ 저달이 떴다지거든 노다나가소/ 어허여라 상사듸요.”라고 하기도 하고, 간혹 사설에 “헤에당상 가래로세”라는 어업노동요인 「고기푸는 노래」의 뒷소리가 섞이기도 한다.

「지슴매는 노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과 넘나드나 “아하 하아 하여/ 어허 어어 어허/ 에헤이여 이여으여/ 으헤헤.”와 같이 풍부한 여음으로 불린다. “에헤여/ 아가달가 우지마라/ 어하에이/ 검불 걷어서 군불 땐다/ 에허야 나는 좋네/ 어허야 나는 좋네.”라고 부르는 「벼타작노래」는 「바심노래」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농업노동요는 대부분이 작업장에서 선후창 방식으로 불리나 현재는 농업기계화 추세로 차츰 기능을 잃고 있다. 이밖에도 어린이들이 새를 보면서 부르는 「새쫓는 노래」, 부녀자들이 여러 가지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시집살이노래」 들이 있으나 이것 역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어업노동요는 서면 마량리에서 다양하고 희귀한 것들이 약간 불린다. 「노젓는 노래」나 「그물당기는 노래」는 여음 위주의 선후창 방식으로 불리는데 별 특징이 없다. 「고기푸는 노래」는 ‘에이야 슬비야’나 ‘에이야 가래야’와 같은 뒷소리를 사용하는 평범한 것이나 “……선주네 아주머니/ 열두폭치마가/ 열두폭치마가 나왔다/ 술동이를/ 뒤짚어이고/ 걸어오다가/ 오작오작/ 걸어오다가/ 넘어졌으니/ 우습구나.”라는 재미있는 앞소리로 부르기도 한다.

배가 출항하기 전에 배를 깨끗이 닦으면서 “(앞) 어이야 이여자자/ (뒤) 어이야/ (앞) 물퍼부어라/ (뒤) 어이야/ (앞) 여기도붓고/ (뒤) 어이야/ (앞) 저기도붓고……”와 같이 선후창으로 부르는 「배 닦는 노래」나 ‘에여─ 다려라’를 선후창으로 반복하는 「그물싣는 노래」는 이 지방에서나 들을 수 있는 독특한 노래들이다.

의식요로는 장례의식요인 「상여노래」가 “(앞) 인자가면 원제나 오실련/ 오실렴어(려면) 일러주오/ (뒤) 헤헤이 헤어 헤어/ 에허 이이허 허이어……”라 불리는데 앞소리도 여음으로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비기능요로 「댕기타령」·「사랑타령」·「범벅타령」 등이 불리고 「낙낙새」·「메뚜기」·「풍뎅이」 등의 동물을 소재로 한 동요와 유희요 등이 불린다.

산업·교통

이 고장의 주산업은 농업으로 총경지 면적은 138.09㎢이며, 경지율은 42%이고, 이 중 논이 105.90㎢, 밭이 32.19㎢이다. 이곳에서는 수리시설이 잘 된 한산면과 마산면에 걸쳐 있는 축동저수지, 문산면에 봉선저수지·신농저수지·흥림저수지가 있어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활발하다.

한편, 이모작도 많이 행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저마·생강과 약간의 누에고치가 생산된다. 저마는 종천면·시초면, 생강은 문산면·시초면, 누에고치는 문산면에서 생산된다. 요즈음에는 점차 마늘·사과 등의 생산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군의 특산물인 한산모시의 기원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삼국시대 한산군(현재의 한산면·기산면 지역)에서 자생하던 야생저마로 모시를 짠 것이 그 시초로 보인다. 한산모시는 1960년대 후반까지 한산면뿐만 아니라 서천군 전지역의 가내수공업으로 번창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값싼 화학섬유에 밀려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가 요즈음에는 우아하고 섬세한 옷감으로 다시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값이 비싸서 수요층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수산업은 해안선의 총길이가 72.5㎢인 것에 비하면 다소 미약하다. 연안에서 갈치·오징어 등이 잡히고, 패류와 해조류의 양식업도 성하며, 염전분포도 많다. 광업은 석탄·금·은·구리·철·납 등의 광물이 소량 채굴된다.

공업은 1936년 장항제련소가 건설되어 금·은·동·납·아연 등을 제련했으나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1967년 비료공장이 준공되었는데, 용성인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한편, 서면에는 서천화력발전소가 1984년 건설되어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나 바다가 오염되는 등 산업 폐해가 일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상업활동은 과거에는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3·8일의 비인장과 신장, 1·6일의 종천장과 한산장, 4·9일의 장동장과 길산장, 5·10일의 판교장, 2·7일의 서천장 등이 열렸다. 지금은 1·6일의 한산장, 3·8일의 장항장, 4·9일의 비인장, 5·10일의 판교장 등 4개 정기시장이 열린다.

주요 거래품은 곡물·채소·농기구·수산품·모시·모시제품의 의류 등이며 쌀은 생산지에서 중간상인들이 직접 거래하고 있다. 요즈음에 와서는 정기시장의 기능이 점차 쇠퇴하여 상설시장화하는 추세이고, 서천읍 군사리 국도연변과 장항읍 창선리에 상설시장의 상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교통은 장항읍과 부여군 옥산면으로 통하는 4번 국도, 보령시 주산면으로 통하는 21번 국도, 부여군 옥산면으로 통하는 611번 지방도, 기산면으로 통하는 602번 지방도 등이 서천읍에서 교차하고 있고, 기타 여러 도로들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 장항선철도가 지나면서 판교역·서천역·장항역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도로와 철도교통이 모두 편리하다.

한편, 서천군과 군산시 간의 교통은 그동안에는 장항읍과 군산시의 도선장에서 여객선을 통해서 이루어져 불편했으나, 마서면에서 군산시 성산면으로 통하는 금강 하구둑이 완공되어 양 지역 간의 교통이 더욱 원활해졌다.

또한, 서해안고속국도가 비인면으로 진입하여 종천면·서천읍·기산면·화양면 등지를 거쳐 군산시 나포면으로 빠져나가면서, 서천 인터체인지가 서천읍 북서 외곽에 설치되어 도로교통은 더욱 편리해졌다. 2009년 서천공주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천군과 공주시 두 지역의 이동거리와 소요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

장항항은 군장국가공단(群長國家工團)의 개발과 더불어 국제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장항읍의 유부도, 군산시의 개야도, 연도 등의 도서로 향하는 항로의 출발지이다. 비인항에도 준설·매립공사로 1만 톤급 이상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다. 따라서 서천군은 육로와 해상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관광

이 군은 충청남도의 군 가운데 관광산업이 취약한 지역으로 전통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이 주종을 이룬다. 문화재는 성북리에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이 있고 한산면 지현리에 삼국시대에 축조된 건지산성이 있다. 또한, 서면 마량리에 동백나무 숲이 있으며, 사찰은 장항읍에 장덕사(長德寺), 마서면에 남산사(南山寺), 문산면에 은적사(隱寂寺), 한산면에 봉서사(鳳棲寺), 종천면에 영수암(永守庵) 등이 있다.

관광코스로는 서천읍·장항부두·한산면 지현리의 한산 모시짜기·소곡주공장·건지산성에 이르는 코스와 서천읍·판교면 흥림리의 흥림저수지·지석리의 비인오층석탑·비인해수욕장·비인향교·비인읍성·춘장대해수욕장과 마량리 동백나무숲에 이르는 코스, 서천읍·기산면의 문헌서원·이상재선생 생가지(李商在先生生家址)·건지산성·지현리의 한산 모시짜기·봉서사·봉선저수지에 이르는 코스 등이 있다. 이 군은 비인해수욕장과 춘장대해수욕장의 확장 개발 및 교통발전에 힘쓰고 있어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읍·면
  1. 서천읍(舒川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27.75㎢, 인구 1만 4656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군사리이다. 본래 백제 때 설림군, 신라 때 서림군, 고려 때 가림현(嘉林縣) 지역이었으며, 1413년 서천군 서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1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면이라 칭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서천군 서천면으로 환원되었으며,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앙에 오석산(烏石山, 127m)이 있고, 북동부는 대부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대이며, 남서부는 비옥하고 평탄한 평야지대가 펼쳐지며, 길산천이 기산면과의 면계를 따라서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채소류 등이며, 제조업은 장항읍 다음으로 많으나 활발하지는 않다. 길산천에서 생산되는 갈꽃으로 만든 갈꽃비와 신송리의 봄마늘은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한다.

교통은 장항선철도가 읍의 중앙부를 지나고, 도로는 읍을 중심으로 장항·부여·한산·종천 등지로 연결되고 있으며, 장항항을 거쳐 군산항과 연결되고 있어서 수륙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군사리에 서천향교와 서천읍성지 등이 있다.

군사리(郡司里)·사곡리(寺谷里)·신송리(新松里)·구암리(九巖里)·오석리(烏石里)·화성리(花城里)·태월리(台月里)·둔덕리(屯德里)·동산리(同山里)·두왕리(斗旺里)·삼산리(三山里)·화금리(花衿里)·남산리(南山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장항읍(長項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18.81㎢, 인구 1만 242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창선1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천군·한산군·비인군이 통합되어 서천군으로 되면서 장항면으로 되었고, 1938년 마동면의 산서리·수동리, 서남면의 옥남리·옥동리·장암리가 병합되어 장항읍으로 승격되었다.

지형은 북동쪽이 100m 이하의 구릉을 경계로 마서면과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넓은 평지로 되어 있다. 해안의 간만의 차는 7∼9m이다. 이 읍은 군내에서는 유일하게 농가보다 비농가가 많은 곳이다.

농경지에서 쌀과 채소류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어업 및 천일제염도 활발하다. 또한 근해의 유부도에서는 백합·주꾸미·대합 등이 많이 난다. 1936년에 건설된 장항제련소에서는 금·은·납·아연 등이 제련되었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이 밖에 비료공장과 조선공장이 있다.

교통은 금강 하구에 입지한 장항선의 종착역으로 수륙교통이 만나는 요지이다. 장항항은 1만 t급 이상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부교(浮橋)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금강하구를 사이에 두고 군산시로 생활권이 분리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도로는 서천∼옥구 간의 금강하구언이 있어서 서천과 군산 간의 생활권통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장암리에 서천포진영성이 있다. 창선1리(昌善一里)·창선2·신창리(新昌里)·장암리(長巖里)·화천리(和泉里)·송림리(松林里)·옥남리(玉南里)·옥산리(玉山里)·성주리(聖住里)·원수리(元水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기산면(麒山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0.98㎢, 인구 1,85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산리이다. 본래 한산군의 한산면·서남면·서이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4개 리로 개편되면서 기산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에는 이사리가 마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기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명산인 기린봉(麒麟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내에는 남부에 화양산(華陽山, 100m), 동부에 숭정산(崇禎山, 148m) 등이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내외의 저평한 구릉성산지를 이루고 있다. 서부의 길산천에 연한 산정리·원길리·두북리·두남리·내동리 일대에는 비옥한 충적지가 넓게 발달하여 벼농사가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마늘·파·생강·깨·콩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되며, 한우·돼지·닭 등의 가축이 고루 사육되고 있다. 이 밖에 양봉도 행하여지고 있다. 영모리 일대는 백제시대에 모시재배가 시작된 곳으로서 한산모시의 생산지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거의 쇠퇴하였다.

교통은 서천읍에 연결되는 지방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장항선철도에 근접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영모리에 문헌서원·이색 신도비, 신산리에 이하복 가옥 등이 있다.

화산리(華山里)·신산리(辛山里)·내동리(內東里)·두남리(斗南里)·두북리(斗北里)·원길리(院吉里)·산정리(山亭里)·막동리(幕洞里)·월기리(月岐里)·가공리(加公里)·영모리(永募里)·광암리(光巖里)·황사리(黃寺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마산면(馬山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36㎢, 인구 1,56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장리이다. 본래 한산군의 상북면(上北面)과 하북면(下北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북면과 하북면이 병합되어 14개 리로 개편되면서 마산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귀속되었다. 1973년에는 기산면 이사리와 한산면 송림리가 편입되었으며, 마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명산인 마산(馬山)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내에는 중앙부에 월명산(月明山, 180m)과 석천산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100m 내외의 구릉성산지를 이루고 있다. 면의 서부에는 나궁천(羅弓川)이 남쪽으로 흘러 봉선지로 흘러들며, 하천 주위의 평야에서는 소규모의 논농사가 이루어지나 대부분 지역이 산지이기 때문에 밭농사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콩·모시 등이며 한우사육 및 누에치기도 성행되고 있다. 소구릉지대에서는 밤·대추·도토리·은행·약초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있으며, 양봉도 행해지고 있고 잎담배 경작지도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한산면·시초면·기산면 등지로 통하는 지방도와 국도가 있으나, 일부가 비포장상태이고 교통량이 적어 다소 불편한 편이다.

신장리(新場里)·안당리(安堂里)·마명리(馬鳴里)·가양리(嘉陽里)·요곡리(堯谷里)·삼월리(三月里)·소야리(所也里)·벽오리(碧梧里)·신봉리(新鳳里)·시선리(時仙里)·관포리(冠浦里)·지산리(芝山里)·나궁리(羅弓里)·군간리(軍干里)·이사리(梨寺里)·송림리(松林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마서면(馬西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15㎢, 인구 5,57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계동리이다. 본래 서천군 지역으로 마길면(馬吉面)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동면(馬東面)이 되었다. 1938년 장항읍의 신설로 마동과 서남의 이름을 따서 마서면이라 하였다.

면 내에는 북쪽에 남산(南山, 147m), 중앙부에 중대산(中臺山, 102m) 등이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은 100m 내외의 낮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지역의 대부분은 북부의 판교천과 서부의 길산천에 의해 관개되는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고, 서해연안의 죽산리에는 소규모의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무·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와 과일 생산이 많다. 금강·길산천·판교천 주변에서는 쌀 생산이 많고, 남부의 낮은 구릉지에서는 밭작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장항선철도와 국도가 면의 동부를 병행해 달리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또한, 이 지역은 인접의 장항읍을 통해 군산시와의 지역적 연계가 강하다. 현재의 죽산리 일대는 갯벌로 이루어져 있으나 옛날에는 이곳에 수영(죽산진)이 있었다.

문화유적은 계동리에 조개무지, 봉남리에 삼층석탑 및 성지, 한성리에 성지 등이 있다. 계동리(桂東里)·봉남리(烽南里)·옥산리(玉山里)·한성리(漢城里)·송석리(松石里)·죽산리(竹山里)·월포리(月浦里)·남전리(南田里)·옥북리(玉北里)·덕암리(德巖里)·송내리(松內里)·당선리(堂仙里)·도삼리(道三里)·신포리(新浦里)·산내리(山內里)·장선리(長善里)·어리(於里) 등 17개 리가 있다.

  1. 문산면(文山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19㎢, 인구 1,3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농리이다. 본래 서천군의 동면(東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산면(豆山面)과 문장면(文章面)이 병합되어 문산면이 되었다. 1983년에는 등고리와 금덕리가 판교면으로 편입되었으며, 문산이라는 명칭은 문장면과 두산면의 이름 중 ‘문’과 ‘산’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면내에는 남부에 봉림산(鳳林山, 346m)·천방산 등이 있으며, 대부분 100∼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면의 북부에서 도마천이 발원하여 남부로 흐르며 평야는 동남부에 약간 발달하여 있다. 신농리에 저수지가 있어서 충분한 관개용수를 공급받고 있으나, 논농사는 저수지 주변에서 조금 행해질 뿐이다. 구릉지대에서는 각종 맥류가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도 농가에서는 한우·토끼·산양·닭·오리 등의 가축이 사육되고 있다.

교통은 문장∼은곡 간의 지방도와 신농∼금복 간의 군도가 있으나, 비포장상태이며, 면의 대부분이 산간지역이어서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수암리에 삼층석탑·건암서원·향교탑(鄕校塔), 지원리에 청덕사가 있다.

신농리(神農里)·문장리(文章里)·북산리(北山里)·금복리(金福里)·수암리(水巖里)·지원리(支院里)·구동리(九洞里)·은곡리(恩谷里) 등 8개 리가 있다.

  1. 비인면(庇仁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1.34㎢, 인구 3,2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비인군 군내면(郡內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北面)·일방면(一方面)·남포면(藍浦面)·습의면(習衣面)의 일부가 병합되어 비인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속하였다. 비인이라는 명칭은 폐합 이전의 비인군에서 유래되었다.

면의 중앙부에 월명산이 있으며 북동쪽은 대체로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대부분이다. 서부는 서해안에 근접하면서 점차 평탄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면내에는 안치저수지(雁峙貯水池) 외에 여러 저수지가 있어서 농지에 풍부한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사과·복숭아 등의 과일이 생산되며, 참깨·들깨 등의 특용작물도 생산된다. 해안에서는 염전업과 소규모의 연안어업이 행하여지고 있다. 연안에 있는 할미섬·쌍도 등에서는 바지락조개·김 등이 산출된다.

교통은 보령과 서천을 연결하는 국도가 중앙부를 지나고, 비인∼동백정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내리에 비인향교·비인읍성, 성북리에 오층석탑·산성지, 선도리와 장포리에 산성지 등이 있다.

성내리(城內里)·성북리(城北里)·선도리(船島里)·칠지리(漆枝里)·구복리(九福里)·남당리(南塘里)·율리(栗里)·성산리(城山里)·관리(冠里)·다사리(多沙里)·장포리(長浦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서면(西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35㎢, 인구 4,7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합리이다. 본래 비인군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9개 리를 관할하는 서면이 되었으며, 서면이라는 명칭은 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면은 차령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미만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에는 간석지와 사빈 등이 넓게 발달되어 있다. 면내의 신합리·월호리·도둔리 일대에는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어 쌀생산이 많다. 면의 중서부에 있는 주항저수지(酒缸貯水池)는 이들 간척평야에 풍부한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도둔리의 평야지대는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무·배추·고추 등의 채소류와 잎담배가 생산되고 있으며, 해안에는 염전이 조성되어 있으며, 아직 개간되지 못한 간석지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마량리에는 서천화력발전소가 있어 충청남도 지역 전력소비량의 50% 정도를 생산하고 있으며, 판로가 막연하였던 보령탄전의 저질탄을 소비하고 있다.

도로는 비인과 동백정을 연결하는 군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주항리에 고분군, 마량리의 동백정 일대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도둔리 일대를 도둔곶(都屯串)이라고 하는데 약 1㎞에 걸쳐서 해안사구와 해식애 등이 펼쳐져 있다. 마량리에 비인해수욕장이 있다.

신합리(新蛤里)·원두리(元頭里)·개야리(介也里)·월리(月里)·부사리(扶士里)·월호리(月湖里)·주항리(酒缸里)·도둔리(都屯里)·마량리(馬梁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시초면(時草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39㎢, 인구 1,3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초현1리이다. 본래 서천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왕면(時旺面)과 초처면(草處面)이 병합되어 시초면이 되었다. 시초라는 명칭은 시왕면과 초처면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면내에는 높은 산이 없고, 북서부일대에 150m 이하의 구릉성 산지가 발달하여 있으며, 서부의 석마천과 남부의 길상천 일대에는 풍정들·수왕들·선동들 등 비교적 넓고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어 벼농사가 활발하다. 동부의 봉선저수지는 이 지역의 동경지에 풍부한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감자·당근·오이·마늘 등도 생산된다. 가축으로는 한우·닭·돼지·토끼·산양 등이 사육되고 있으며 양봉도 많이 한다. 교통은 서천∼홍산 간의 지방도와 문산∼마산 간의 군도가 있으나 비포장도로가 많고 교통량이 적으며, 장항선철도와 군도가 멀리 떨어져 있어 다소 불편하다.

초현리(草峴里)·선동리(仙東里)·선암리(仙巖里)·신흥리(新興里)·용곡리(龍谷里)·신곡리(新谷里)·태성리(台城里)·봉선리(鳳仙里)·풍정리(豊亭里)·후암리(厚巖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종천면(鍾川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06㎢, 인구 2,2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산리이다. 본래 비인군의 일방면과 이방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이 합해져 종천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속하였다. 1973년에는 흥림리가 판교면에 편입되었다. 종천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을 흐르는 종천(鍾川)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의 북부에는 문수산(紋秀山, 311m)·희이산 등이 있으며,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이다. 평야지대는 남서부의 판교천 일대와 서부의 산천소류지·흥림저수지의 수로 주변에 발달하여 있으나,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량은 많지 않으며, 구릉지대에서는 사과·자두 등 과수가 재배된다. 특히, 저마는 군내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으며, 일부 지역에서 누에치기와 잎담배 재배도 한다.

교통은 장항∼천안, 장항∼대천 간의 국도와 장항선철도가 중앙부를 동서로 달리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구리에 성지, 지석리에 삼층석탑이 있다. 화산리(花山里)·낭평리(朗坪里)·종천리(鍾川里)·당정리(堂丁里)·장구리(長久里)·신검리(新儉里)·산천리(山川里)·도만리(都萬里)·지석리(支石里)·석촌리(席村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판교면(板橋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03㎢, 인구 2,3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암리이다. 본래 비인군의 동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천군 동면으로 되었고, 1942년에 판교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에는 종천면의 흥림리가 편입되었다. 판교라는 명칭은 장항선철도의 판교역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의 대부분이 차령산맥의 여맥으로 장태산이 있으며, 면의 대부분이 100∼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평지는 종천저수지(鍾川貯水池)와 흥림저수지의 수로 주변에 약간 발달하여 있으며, 이곳에서 소규모의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무·배추·콩·모시 등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누에치기도 하며, 판교리·복대리·마대리·심동리·후동리·만덕리·현암리·저산리 등지에서는 양봉도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장항선철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장항∼부여 간의 국도가 동부를 횡단하고 있다. 서북부의 동구재에는 1.5㎢에 이르는 금암터널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현암리(玄巖里)·복대리(卜大里)·마대리(馬垈里)·심동리(深洞里)·상좌리(上佐里)·우라리(右羅里)·문곡리(文谷里)·후동리(後洞里)·만덕리(萬德里)·판교리(板橋里)·저산리(苧山里)·수성리(水城里)·흥림리(興林里)·등고리(登古里)·금덕리(金德里) 등 15개 리가 있다.

  1. 한산면(韓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02㎢, 인구 2,8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현리이다. 본래 한산군 북부면(北部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1개 리로 개편되면서 한산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에 화양면 구동리가 편입되었고 한산면 송림리가 분리되어 마산면에 편입되었다. 한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을 흐르는 한산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서부에 건지산·관두봉(冠頭峰, 140m), 남부에 봉황산(鳳凰山, 120m), 북부에 월성산(月城山, 139m) 등의 구릉성 산지가 있으며, 북동부에는 여사천(余士川), 중앙부에는 단상천, 남부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어서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북부의 축동저수지, 서부의 고촌제(故村堤)·연방죽 등의 저수지는 평야지대의 관개를 원활히 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고, 양질의 쌀 생산지로 이름이 나 있다. 이 고장은 예로부터 한산모시가 유명하며, 소곡주라는 술도 유명하다. 요즈음도 이곳에서는 새벽 4시 반이면 모시장(場)이 서고 있으나 10년 전에 비하면 거래가 한산한 편이다.

교통은 화양·마산·부여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지현리에 한산읍성·삼층석탑·한산향교·이상재추모비·건지산성 등이 있다. 특히, 한산 모시짜기는 국가무형문화재로, 한산 세모시짜기와 한산 소곡주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지현리(芝峴里)·동산리(童山里)·성외리(城外里)·호암리(虎巖里)·죽촌리(竹村里)·종지리(種芝里)·송곡리(松谷里)·축동리(木丑東里)·송산리(松山里)·원산리(院山里)·여사리(余士里)·나교리(羅橋里)·동지리(冬至里)·단상리(丹上里)·단하리(丹下里)·마양리(馬楊里)·온동리(溫洞里)·연봉리(蓮峰里)·용산리(龍山里)·신성리(新城里)·구동리(九洞里) 등 21개 리가 있다.

  1. 화양면(華陽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1.58㎢, 인구 2,59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포리이다. 본래 한산군 남하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산군 남상면(南上面),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일부가 병합되어 20개 리로 개편되면서 화양면이 되었고,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화양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명산인 화양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내에는 서부에 화양산·원봉(圓峰)이 있고, 북부에 관두봉 등의 구릉성 산지가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저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 평지는 비옥한 충적지로서 벼농사가 활발하다. 그러나 금강 연안의 평야지대에서는 홍수의 피해가 잦다. 서부의 고마리 일대의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금강 연안에서는 양질의 쌀이 많이 생산된다.

이 밖에도 무·배추·고추·마늘·파·생강 등이 생산되며, 죽산리·대하리 등지에서는 양봉도 행해지고 있다. 이 지역은 한산모시 주산지의 하나로서, 최근 화촌리에는 1983년부터 27호의 농가로 구성된 한산모시 부업단지가 군의 지원으로 조성되어 연간 1,000여 필의 세모시를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한산면과 서천읍으로 통하는 지방도와 군도가 있으나, 교통량이 많지 않아 다소 불편한 편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인접한 장항읍을 통해 군산시 등지와 긴밀한 지역적 연계를 맺고 있다.

옥포리(玉浦里)·보현리(保縣里)·와초리(瓦草里)·완포리(完浦里)·화촌리(花村里)·죽산리(竹山里)·월산리(月山里)·남성리(南星里)·대등리(大等里)·대하리(大下里)·활동리(活洞里)·기복리(箕福里)·추동리(楸洞里)·금당리(琴堂里)·창외리(昌外里)·고마리(叩馬里)·장상리(長上里)·망월리(望月里)·봉명리(鳳鳴里) 등 19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대동지지(大東地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한국지리』지방편(권혁재, 법문사, 1996)
『우리고장 충남: 환경과 역사』(충청남도교육위원회, 1986)
『한국지지』지방편 Ⅱ(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지』총론(건설부국립지리원, 1980)
『지방행정구역발전사』(내무부, 1979)
『충청남도지』(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서천군지』(1929)
서천군(www.seo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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