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산대놀이 (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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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송파산대놀이 / 제1과장 상좌춤놀이
송파산대놀이 / 제1과장 상좌춤놀이
연극
작품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지역에서 전승되던 탈놀이.
국가무형유산
지정 명칭
송파산대놀이(松坡山臺놀이)
분류
무형유산/전통 공연·예술/연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무형유산(1973년 11월 0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지역에서 전승되던 탈놀이.
내용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지역에서 전승되던 탈놀이.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현, 중요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연희되어온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의 중부형의 한 분파로서, <양주별산대놀이>와 함께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가 전승돼오던 송파나루는 오강(五江:松坡 · 漢江 · 西氷庫 · 龍山 · 麻浦)의 하나로서, 수운(水運)으로는 배가 강원도까지 내왕하고, 육운(陸運)으로는 마행상인(馬行商人)들이 많아 전국을 돌았고, 조선 후기 전국에서 가장 큰 향시 열다섯 중의 하나였던 송파장이 서던 곳이다.

송파마을은 주로 연초가공업자와 나무장수가 많아 담배와 땔나무를 서울에 공급하였고 소시장이 성하였으며, 마행상인들의 상업근거지로서 경기일원에서는 부촌이었으므로 <송파산대놀이>가 보존될 만한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연희자들(韓有星 · 李範萬 등)에 따르면 조선조 창업 당시 한양에 도읍을 창건하기 위하여 한양의 사방에 장승을 세우고, 송파 등지의 탈꾼들을 불러들여 도읍지의 잡귀를 쫓고, 왕조창성을 기원하는 굿판을 벌였다고 하며, 약 200년 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송파산대놀이>도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하는 놀이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도 연중행사로 정월대보름과 단오 · 백중 · 추석에 명절놀이로 놀았는데, 7월 백중에는 1주일씩 계속되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24년 큰 규모의 산대놀이판을 송파장터에서 벌였는데, 이 때에 구파발 · 애오개[阿峴] · 퇴계원 · 의정부 · 노돌나루[鷺梁津]등지에서 20여 명의 명연희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듬해 한강대홍수로 송파마을 전체 270여 호가 완전히 유실되어 주민들만 가락동과 돌말이[石村]로 물러나 정착하면서 산대놀이 명맥만 이어오다가, 1973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공원 내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 전수회관이 있어 전수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놀이내용의 구성이나 과장(科場) · 춤 · 탈 등이 <양주별산대놀이>와 거의 비슷하여, 다같이 애오개 · 구파발 등지의 본산대의 분파임을 보여주나, 몇 개의 탈과 춤, 배역이 <양주별산대놀이>에 비해 옛 형태를 지니고 있어 특징적이다.

예를 들면,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이미 사라진 화장무 춤사위가 남아 있고, 또 해산어멈 · 신할미 · 무당의 탈이 남아 있어 이들 탈들이 맡은 역이 따로 있다.

즉, 왜장녀와 해산어멈이 따로 있어 애사당놀이에서는 왜장녀가, 소무 조산(助産)에서는 해산어멈이 등장하여 배춤과 엉덩이춤을 춘다. 신할아비의 아내로 신할미가 따로 있어 미얄할미는 샌님의 본마누라로 되어 있다.

끝장면의 지노귀굿에서도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도끼누이가 무당역을 겸하나, <송파산대놀이>에서는 무당탈이 따로 있어 <봉산탈춤>의 경우처럼 무가를 불러 관중의 흥을 돋운다.

<송파산대놀이>는 모두 7과장(科場: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거리굿(길놀이)으로 송파장을 중심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아오는데, 이 때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길군악>을 울리면서 영기(令旗) · 악사 · 연희자의 순으로 행렬을 짓는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 장터 놀이판으로 오면 개복청(改服廳)으로 들어간다.

다음에는 서막고사(序幕告祀)를 지내는데, 제사상에 가면들을 배열해놓고 여러 제물을 놓은 뒤 제관이 술을 붓고 절하며 고사말을 하는데,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놀이를 시작한다.

제1과장은 ‘상좌춤[上佐舞]’으로 첫째 상좌와 둘째 상좌가 차례로 나와 타령 장단에 맞추어 화장무 · 곱사위춤 등을 춘다.

제2과장은 ‘옴중과 먹중’이다. 둘째 상좌의 춤이 잦은 타령으로 끝날 무렵 옴중이 뛰어들어 둘째 상좌를 물리친다. 옴중이 용트림 · 멍석마리 · 여다지춤을 추고 다시 타령으로 추어 춤이 끝날 때쯤 먹중(1)이 등장하여 옴중의 의관과 용모를 대상으로 재담을 한다. 재담이 끝나면 둘이 함께 대무(對舞)를 춘 뒤 퇴장한다.

제3과장은 ‘연닢과 눈끔적이’인데, 연닢과 눈끔적이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 잽이 옆에 서 있으면 팔먹중(1)과 팔먹중(2)가 차례로 나와 춤을 추다가 연닢과 눈끔적이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 달아난다. 팔먹중(3, 일명 完甫)이 등장하여 연닢과 눈끔적이를 알아보고 함께 춤을 추면, 한 구석에 서 있던 나머지 팔먹중들이 등장하여 함께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제4과장은 ‘팔먹중’인데 셋으로 나뉜다. 제1경 ‘북놀이’에서는 먹중 둘이 나오는데, 하나는 북을 들고 하나는 북채를 들고 등장하여, 장내를 한바퀴 돌며 북을 치려고 하면 살짝 피하여 못치게 한다. 이 때 왜장녀가 애사당을 데리고 나와 먹중(북채를 든 먹중)에게서 돈을 받고는 애사당으로 하여금 법고를 치도록 한다.

이들이 모두 어울려 춤을 추다가 퇴장하면 제2경 ‘곤장놀이(염불놀이)’가 시작된다. 팔먹중들이 등장하여 춤을 추다가 먹중(1)(또는 완보)이 나머지 먹중들이 땡땡이중들임을 알고는 염불을 가르치려 하나, 한 먹중이 못하겠다며 먹중(1)의 곤장을 맞고 퇴장한다.

나머지 먹중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나 한 명씩 곤장을 맞고 내쫓긴다. 제3경 ‘침놀이’에서는 춤추던 팔먹중 하나가 쓰러지면서 시작된다.

먹중들이 먹중(1)(또는 완보)더러 맥을 짚어보라고 하자 먹중(1)이 신명을 풀어 준다고 <백구타령>을 하나 실패한다. 할 수 없이 재 너머 싸릿골의 신주부를 데려와 침을 놓아 벌떡 일어나니 모두 기뻐하며 타령곡으로 춤을 추며 퇴장한다.

제5과장은 ‘노장’으로 역시 셋으로 나뉜다. 제1경 ‘파계승놀이’에서는 팔먹중들이 먼저 나오면 노장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따라 나와 한복판에 엎드린다. 팔먹중들이 노장을 생선인 줄 알고 먹으려다 노장임을 알아보고는 춤을 추며 퇴장한다. 이 때 소무(小巫) 둘이 나와 춤을 추니 노장이 둘에게 유혹되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다가 잽이 옆에 가서 선다.

제2경 ‘신장수놀이’에 이르면 신장수가 원숭이를 신짐인 줄 알고 등에 지고 나온다. 노장에게 신을 두 켤레 팔고는 원숭이더러 신값을 받아오라고 하나, 원숭이는 소무와 희롱만 하다가 온다. 신장수는 화가 나서 원숭이를 때리며 원숭이와 함께 퇴장한다.

제3경은 ‘취발이놀이’로 취발이가 푸른 나뭇가지를 들고 잔뜩 취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재담과 함께 타령 장단에 춤을 추는데, 노장이 소무를 막아서며 취발이를 부채로 친다.

취발이가 노장과 소무들을 보고는 노장과 싸워 내쫓으니, 노장이 소무 하나를 데리고 도망친다. 취발이는 남은 소무와 함께 놀며 춤을 춘다. 조금 후 소무가 임신을 하여 해산어멈을 불러 아기를 낳으니, 이름을 마당쇠라 짓고 얼르다가 소무와 함께 퇴장한다.

제6과장은 ‘샌님’과장이다. 제1경 ‘의막사령놀이(말뚝이놀이)’에서는 말뚝이가 샌님 · 서방님 · 도련님을 모시고 등장하여 의막을 정하는데, 쇠뚝이에게 부탁하니 돼지우리로 양반들을 몰아넣게 된다.

제2경 ‘샌님과 미얄할미’에서 샌님이 소첩(소무)과 함께 등장하여 흥겹게 춤을 추는데, 본처인 미얄할미가 엉덩이춤을 추며 나와 소첩을 보고는 소첩과 싸우다가 샌님의 나무람을 듣고 퇴장한다.

제3경 ‘샌님과 포도부장’에서는 뒤에 남은 샌님과 소첩이 굿거리장단에 멋지게 노는데, 포도부장이 나타나 소첩을 빼앗는다. 샌님은 실망하여 타령 장단에 맞추어 퇴장한다.

마지막으로 제7과장인 ‘신할아비와 신할미’에서는 두 사람이 나와 서로를 확인하고는 신할아비의 구박에 신할미가 뒤로 넘어져 죽어버린다. 놀란 신할아비는 아들인 도끼를 시켜 도끼누이를 불러오게 하여 셋이서 무당을 불러 지노귀굿을 한다. 굿과 함께 연희자 전원이 나와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이 놀이에 소요되는 가면은 모두 32개로, 그 재료는 바가지 · 소나무껍질 · 종이 등이 주가 된다. 반주악기로는 삼현육각, 즉 피리 두 개와 젓대 · 해금 · 장구 · 북 등이지만, 길놀이에서는 꽹과리와 징이 추가된다. 반주음악은 완중한 염불 리듬이 명확한 타령, 유창한 굿거리곡 등을 사용한다.

기본적인 춤사위로는 염불장단에 맞추어 추는 거드름춤류에 사방재배 · 용트림 · 활개펴기 · 복무(伏舞)가 있고, 타령장단 깨끼춤류로는 화장무 · 여다지 · 멍석말이 · 곱사위 · 깨끼리 · 건드렁 · 배치기 · 거울보기 · 영풍뎅이(연풍대) · 덜미잡이 · 궁둥치기 · 팔뚝잡이 · 자라춤 등이 있고, 굿거리장단의 건드렁춤이 있다.

그 특징은 주로 손춤사위이며 해서지방 탈춤에 비하여 아기자기한 동작춤과 뛰지 않는 답지무(踏地舞)로 되어 있고, <양주별산대놀이>에 비하여 거드름춤류는 부족하나 깨끼춤류는 발달되었다.

역대의 명연희자로는 윤종현(尹宗鉉:옴중 · 탈제작) · 김도환(金道煥:첫상좌 · 노장) · 조영완(曺永完:탈제작과 보관, 왜장녀 · 소무) · 김동현(金東鉉) 등이 있고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연희자는 이충선(장구 · 피리 · 해금악사) · 김윤택(첫상좌 · 신주부) · 이범만(노장 · 샌님 · 신할애비 · 팔먹중) · 한유성(韓有星:탈제작 · 취발이 · 눈끔적이 · 신주부) · 문육지(文陸地:노장 · 무당) 등이 있으며, 1999년 현재 예능보유자로는 김학석(金學鉐)이 있다. →탈놀이

참고문헌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이두현,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90,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1)
『한국의 민속극』(심우성, 창작과 비평사, 1975)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와 대본(臺本)』(이병옥, 송파산대놀이보존회, 1980)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 연구』(이병옥, 집문당, 1982)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서연호, 『문예진흥』 6-5, 문예진흥원, 1979)
『주석본한국가면극선』(이두현, 교문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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