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충무)에서 전승되어 온 궁중무고형(宮中舞鼓型)의 북춤.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현, 중요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창사(唱詞) 내용의 일부에 이순신(李舜臣)의 충의와 덕망을 추앙한 부분이 있어 승전무라고 한다. 궁중에서는 ‘무고(舞鼓)’라는 이름으로 기녀와 무동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현재도 전해지고 있는 춤이다.
이 무고는 통영지방에서 북춤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추어졌고, 특히 1592년(선조 25)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의 영문(營門:지금의 洗兵館)에서 1896년 해산될 때까지 300여년 간 각종 의식 · 하례(賀禮)와 이순신 사당(祠堂)의 춘추향사(春秋享祀) · 생신제 · 기신제(忌辰祭)에 헌무(獻舞)하였다.
그 동안 통제영에서는 64대 통제사 유중기(柳重起)가 1687년(숙종 13) 취고수청(吹鼓手廳)을 세워 악사(樂士) 100여 명을 양성하였고, 73대 통제사 정홍좌(鄭弘佐)는 1697년에 기생을 양성하는 교방청(敎坊廳)을 세워 1896년 연예가 26가구(家口)를 일체 관급(官給)으로 영문이 혁파(革罷)될 때까지 양성하여왔다.
그 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던 것을 교방청 출신의 이국화(李菊花) · 김해근(金海根), 그의 제자인 정순남(鄭順南), 최고수청 출신의 이갑조(李甲祚) 등으로부터 발굴하여 1968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계승하게 되었다.
춤의 내용은 중앙에 북을 놓고 원무(元舞) 4인이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서 북을 울리며 창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돌고, 협무(挾舞) 12인이 외곽을 에워싸고 돌면서 창을 부른다. 중앙에 놓은 북은 구병법에 모든 지휘 호령신호가 북을 울려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한 번 울리면 집합, 두 번 울리면 진격 또는 전투, 세 번 울리면 퇴진 또는 정전을 뜻한다. 흩어졌다가 모여드는 형태는 구병법의 삼진삼퇴(三進三退)를 뜻한다. 되돌아서서 북을 울리는 것은 높은 기상을 뜻한다.
복식은 원무 4인이 청백주흑(靑白朱黑)의 쾌자(快子)를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한삼(汗衫)을 끼고 손에 두 개의 북채를 든다.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원무 동쪽은 청색[左靑龍], 서쪽은 백색[右白虎], 남쪽은 붉은색[南朱雀], 북쪽은 흑색[北玄武]을 입는다. 협무는 족두리를 쓰고 녹의홍상(綠衣紅裳)에 몽도리를 입고 팔에 한삼을 낀다. 창(노래)은 다음과 같다.
(전주)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
(후렴)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어기야 어가 여기여차
(후렴)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우리 우리 충무장군 덕택이요
(후렴)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낙지자(樂之者) 오날이야지화 지화 지화자 지화호라 지화자(24회)
이 창사는 무고의 창사인 <정읍사 井邑詞>가 구전되는 동안 와전되고, 다른 말이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정읍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달아 높이 곰 돋아샤 멀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
특징은 무태(舞態)가 전아(典雅)하고 고결하며 구성면에 있어서도 매우 정돈되어 무리가 없이 짜임새가 조화되었고, 의상이나 사용되는 무구 등이 역시 궁중무고와 흡사한 춤으로 고전예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전통성을 내포하고 있는 우수한 춤이라고 하겠다. 반주음악은 <영산회상> 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쓴다.
역대 예능보유자는 이갑조(장구), 주봉진(젓대), 정순남(鄭順南:북춤), 이치조(대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