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편찬 경위를 알 수 없으며, 효주(爻周: 글자를 ‘爻’자 모양의 표를 그어 지워버리는 것)하거나 고쳐 쓴 부분이 많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귀중본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977년에 영인하였다.
「간원계사(諫院啓辭)」·「사직소(辭職疏)」·「윤대계사(輪對啓辭)」·「옥당차자(玉堂箚子)」·「응지봉사(應旨封事)」 등을 지은 연대순으로 실었다. 부록으로 「중씨교리공봉사이도(仲氏校理公封事二道)」가 실려 있다.
「간원계사」는 사간원 정언으로 재임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의 면세, 인사 문제 등을 논의해 다른 사간원 관리들과 함께 올린 것들이다. 「사직소」는 이조좌랑·교리·부응교 등의 관직을 사양해 지은 것이다.
「윤대계사」는 1630년(인조 8) 윤대관(輪對官)이 되어 내수사(內需司)의 노비와 토지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에 대해 진언한 내용을 사관이 기록해 놓은 것을 옮긴 것이다. 「옥당차자」는 1632년 부교리로 재임하면서 수찬 신계영(辛啓榮)·이명웅(李命雄) 등과 함께 원종추숭(元宗追崇)을 반대해 지은 2편의 차와 1635년 부응교로 재이(災異)를 당해 교리 정뇌경(鄭雷卿), 부교리 김수익(金壽翼) 등과 함께 지은 차가 있다.
「응지봉사」는 1636년 5월 남양 부사로 있을 때 재이를 당해 응지 상소한 것이다. 수령 인사의 중요성, 양전(量田)·군정(軍政)·부역(賦役) 등의 문제점, 언로(言路)의 개방 등 당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적하고, 아울러 당시 조정의 청나라와의 화의 체결 논의를 비판한 10여 조목으로 이루어진 상소이다.
부록으로 실린 「중씨교리공봉사이도」는 동생 윤집(尹集)이 병자호란을 당해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등을 비판하면서 교리직을 사직한 상소와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고 싸울 것을 강력히 주장한 「산성차자(山城箚子)」로 되어 있다.
조선 중기 인조대의 사간원·홍문관 등 언관의 활동, 궁방전·내수사, 주화론과 척화론 등 당시의 정치·경제 등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